지금은 격리 중 / 조미숙
지금은 밤 11시 35분. 뒤늦게 앉아 노트북을 켰다. 잠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다들 글을 잘 썼다.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남의 글만 읽고 있자니 나 혼자 딴 세상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카페 글쓰기를 클릭했다. 난 지금 격리 중이다.
큰딸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확진됐다. 친구들과 놀고 와서 목이 안 좋다며 검사를 했는데 계속 음성이었다. 일주일 정도 자발적으로 격리 비슷하게 주의하며 일주일을 보낸 끝에 단순한 인후염일 것이라 결론 지었다. 병원에서 검사하고 약도 지어 먹었다. 또다시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그래도 목이 이상하다고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양성 판정을 받았다. 처방약은 가족이 와서 받아가야 한다고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약 찾으러 간 김에 나도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었다. 딸의 격리 기간에 나도 날마다 신속항원검사와 피시알(pcr)도 했다. 분명히 같이 밥 먹고 그랬으니 감염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 주의 사람들과도 조심했고, 격리 되면 볼 책도 욕심껏 빌려왔다. 많이 아프지 않다고들 하니 책이나 읽을 요량이었다.
딸 뒷바라지 하는 것은 큰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인스턴트 식품이 대부분이라 남편이 사다 준 즉석 컵밥이라든가 편의점 도시락이 있어 한결 편했다. 라면도 끓여 주고 그랬지만 끼니마다 챙기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한 시간 정도 환기도 하고 설거지도 뜨거운 물로 소독해가며 신경을 썼다. 다행히 딸은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짜피 이렇게 된 것 공부라도 열심히 하면 좋겠는데 가만 보니 맨날 자는 것 같았다. 시험이 코앞인데 걱정이 되지만 문을 열어 볼 수도 그렇다고 아픈 아이한테 공부하라는 말도 할 수 없어 속만 태웠다.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두고 그동안 제대로 못 해 준 것 같아 큰맘 먹고 소고기를 구워 먹였다. 아이는 희희낙락 좋아라 했다.
금요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주말에는 한 달에 한 번 쉬는 남편이랑 딸과 영산강변에 돗자리 펴 놓고 잠깐 쉬다가 왔다. 남편은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술 한 잔 마시며 보내는 걸 좋아한다.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반찬을 해서 보낸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될지 몰라 미뤘던 거였다. 마트에서 남편이 아는 사람이 우리 식구랑 밥을 먹자고 하는데 어떡하냐고 물었다. 난 조심스럽긴 한데 남편이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했더니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이 꽤나 즐거웠다. 커피까지 마시고 헤어졌다. 물론 되도록이면 마스크를 벗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말이다.
월요일 오전에 잠깐 지인들과 유달산을 돌고 김밥과 커피를 사 들고 공원에 떨어져 앉아 먹었다. 집에 들어와서 반찬거리 다듬는 데 시간을 보냈다. 메추리알 삶아서 까고 시래기 껍질 벗기고는 전래놀이 수업이 있어 잠깐 다녀왔다. 그때부터 밤 11시까지 반찬을 만들었다. 불고기, 제육볶음, 미역줄기 볶음, 깻잎반찬, 김장아찌, 양파장아찌, 소고기장조림까지 아이들 식성에 맞게 나누고 또 먹기 좋게 소분해서 얼렸다.
다음날 아침 아는 동생이 고창읍성에 놀러가자는 것을 택배 보내야 한다고 뿌리쳤다. 어젯밤부터 머리도 심하게 아파 두통약부터 먹었다. 택배 물건을 챙기는데 아이스박스가 맞지 않아 남편 가게에 들러 가져 와 다시 포장해서 보내고나니 11시가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불러내 김밥 사들고 가까운 산에 갔다. 등산보다는 산책에 가까워 쉬엄쉬엄 얘기하며 걷다 왔다. 커피 마시고 노닥거리다 들어 왔는데 집이 썰렁하다. 문을 닫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한기가 느껴졌다. 머리도 다시 아팠다.
다음날 아침 몸이 너무 무거웠다. 아마 아이들 반찬한다고 너무 무리했나 보다. 오후에 숲해설 강의가 있는데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사라도 한 대 맞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갔는데 양성이 나왔다. 서둘러 수업에 대타 설 사람을 구하고 관계자에게 연락하고 비대면 진료로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왔다. 자는 아이 깨워서 양성임을 알리고 화장실에 있는 딸의 물건과 내 것을 바꿔치기 했다. 비어 있는 아들방으로 들어와 그대로 누웠다. 저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니 보물이(반려견)가 낑낑거렸다. 하루종일 문 앞에서 낑낑대다 울다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말 못하는 짐승도 걸릴 수 있다는데 조심해야지. 그 다음부터는 내가 잠깐 화장실 가느라 나와도 멀리서 꼬리만 흔들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나에게 많이 서운한가 보다.
딸아이가 점심에 어제 먹다 남은 제육볶음으로 볶음밥을 해서 줬다. 저번에 쓰고 남은 일회용그릇에다 미역국까지 곁들어서 쟁반을 받치고 문앞에 서 있었다. 저녁에도 어떻게 할까 물어봐서 그냥 있는 반찬에 주라고 했더니 이것저것 챙겨서 문을 두드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아이가 일어나질 않는다. 항상 12시까지 잠을 자니 밥 달라고 깨울수도 없고 해서 나갔는데 다행히 식탁 위에 바나나가 있어 가져 와서 먹고 약을 삼켰다. 앞으로도 아침은 계속 그럴것 같아 남편에게 들어올 때 빵 좀 사오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냉장고에 도시락도 있는데 꺼내서 데워먹지 그러냐고 한다. 아니 내가 맘대로 돌아다니며 만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다. 말에 정이 없다. 그래도 많이 아파하니 종합감기약을 사와 처방 받은 약과 함께 복용하라고 한다. 너무 아파서 두 가지 약을 먹으면서 버텼다.
어설프더라도 딸이 살림을 했다. 남편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데 항상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한다. 마침 미역국이 있어서 이틀은 버텼는데 떨어졌다고 걱정하더니 콩나물국을 끓였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며 매일 환기시키는 것까지 알아서 했다. 물론 나이로는 당연히 해야되겠지만 공부한다고, 아니 엄마 닮아 게을러서 손도 까딱 안 하는 아이였다.
3일째부터는 기침과 콧물이 심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질듯 아팠다. 목이 너무 아프다 했더니 딸이 도라지차를 배달시켜 주었다. 따뜻한 도라지차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다시 비대면 처방을 받아 약을 바꿨다. 약을 타러 나갔던 딸이 단골 카페로 생강차를 사러 갔나보다. 까페 주인이 모과청를 보냈다. 하루에 몇 잔씩 모과차를 마시니 조금씩 기침이 잦아들었다.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어 지나는지 모르겠다. 자가가 깨다가 책을 읽다가 유투브를 보다가 끙끙 앓다가 하다보니 이젠 이틀 남았다. 아직 몸살기는 남아 있는데 기침이 멎으니 살 것 같다. 잘하든 못하든 엄마라고 그래도 곁에서 수발 들어주는 딸아이가 있어 고맙다. 끼니를 챙기는 게 비록 반찬을 안 만들더라도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화장실 갈 때 잠깐 보이는 베란다 창문으로 봄 햇살이 가득했는데 격리 끝나면 벚꽃도 다 지겠다.
첫댓글 격리되기까지, 격리하는 중의 불편한 점을 자세히 써서 내가 아픈 듯 공감이 갑니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주부의 역할도 새삼 깨닫게 되었구요. 어서 가족의 중심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꽃은 져도 글쓰기 모임은 곧 합니다. 푹 쉬고, 잘 드시면 나으실거예요.
따님이 효녀네요. 아플 땐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힘이 되더라고요.
와우, 카페 글쓰기에서 바로 쓰시는군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였고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한글에 썼다가 복사하여 붙이기만 하거든요.
그런데 요리 여왕이세요.
그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해서 소분해서 얼리고....저는 못하는 일이라서 존경스럽습니다.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