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순진해 / 박명숙
어디서든 카메라 앞에 서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손가락으로 브이(V)나, 하트 모양을 만들어 재밌게도 하던데, 내겐 영 어색하다. 난 한결같이 차렷 자세다. 기껏 해 봐야 이가 드러나게 활짝 웃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사진에 비친 내가 마음에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 “한번 서 봐요. 예쁘게 찍어 줄 테니.” 하면 말한 사람 민망하게 손사래 치다 못해 도망치기까지 할 정도로 싫어한다.
평소에 자주 보던 유튜브 영상을 찾으려고 핸드폰 화면을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안 보이던 글이 눈에 띄었다. ‘순천 시민에게만 주는 혜택, 가족사진 무료 이벤트’였다. 안 좋아하다 보니, 그 흔한 사진관 한 번 가족과 같이 간 적이 없다. 그러던 터라 이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거기에다 올해 남편이 환갑이다. 옛날 같으면 동네잔치를 벌일 만큼 큰 가족 행사였지만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념으로 가족사진이라도 남겨두고 싶어서 이런 행사가 더 반가웠다. 친정이나 시댁 식구와 함께한 단체 사진은 있어도 우리 가족만 찍은 것은 없어서 잘됐다 싶어 얼른 신청해 버렸다. 접수 기간이 종료되면 그중에서 몇 가정을 선정할 건데, 가족 수가 다섯 명이면 당첨될 확률이 더 높으니 기다려 보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00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왔다. 계약금 5만 원을 일단 보내야 촬영이 진행된단다. 무료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으니 이 돈은 사진을 받아 볼 택배비로 쓸 거라 했다. 물건이 크다 보니, 그것까지 사진관에서 부담하기는 힘들겠구나 싶어 알았다 대답하고 바로 송금했다.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가족과 의논하여 방문할 날짜를 정해서 알려 주라고 이번에도 상냥하게 설명했다.
모두 일이 없는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신대지구 00 스튜디오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환대를 받았다. 직원들이 양쪽으로 줄줄이 서서 깍듯이 인사하며 맞이했다. 가족들은 지나친 환영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다양한 종류의 옷과 신발이 즐비하게 있어서 마치 가게에 온 듯했다. 일단 앉으라며 그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보이는 사람이 자리를 마련해 줬다. 내 가방을 보더니 “사모님 가방이 예쁘네요. 참 잘 어울려요.” 했다. 가족들에게 말을 건네도 입을 열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물주로 보여서인지 눈빛이 내게로 더 쏠리는 것 같았다.
“오늘 촬영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부부 결혼 리마인드(remind), 흰색 상의와 청바지 옷차림으로, 남자는 정장 여자는 드레스 입고 찍은 것으로 총 천 컷 할 예정이고요.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찍을 줄이야.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 왔지만 우리는 거기서 하자는 대로 따라 줬다.
먼저, 부부만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해 준다며 한쪽 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알았다. 가방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사진 촬영을 지휘하는 실장이었다. "무료 행사를 하고, 참 좋은 일 하시네요." 난 진심으로 말했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아, 네 그렇죠 뭐." 라고 대답했다. ‘무슨 일을 하시나요?, 어디서 사시나요?, 자녀들은 몇 살이나 됐을까요?, 직업은 있나요?’ 나는 순진하게 물어보는 말에 거짓 없이 다 대답했다. 남편도 옆에서 분장하며 똑같이 질문을 듣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 그이는 없는 듯 조용하다가 가끔 웃기만 했다. 난 속이 탔다. 나까지 말을 안 하면 분위기가 이상할까 봐서 그러는 줄 왜 남편은 모르는 걸까? 거들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 얼굴은 훨씬 젊어 보이게 변장해서 이전 감정은 사라져 버렸다.
“표정이 자연스럽게 웃으시고, 자세는 우리가 하라는 대로 협조해 주면 됩니다. 잘해 주시면 ‘김치’할 거구요. 마음에 안 들면 ‘대가리’ 할 테니 따라서 말하면 됩니다. 오늘 대가리가 많이 나오면 안 되겠죠?” 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사진을 찍을수록 사진 작가의 표정이 굳어가고, 김치가 아닌 대가리가 쏟아져 나올 줄을. 안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지만, 요구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지쳐 있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진땀 빼고 나니,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눠 주며, 방 이름이 적힌 곳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컴퓨터 한 대가 책상 위에, 카드 결재기가 그 옆에 보였다. 벽에는 액자가 크기별로 걸려 있고, 아래에 금액이 적혀 있는데 백만 원대, 작은 것은 몇 십 만원의 숫자다. 실장이 컴퓨터를 켜더니 우리 사진을 넘겨 가며 보여 줬다. 역시나 사진 작가가 찍어도 내 눈에는 어색한 표정뿐이다. 그래도 무료라고 하니 한 장 골라서 가야 온 보람이 있어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세 사진으로 정했다.
담당자는 벽을 가리키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이런 크기로 인화해서 준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크기에 따라 다르니 눈으로 한번 훑어보라는 눈치다. 만약에 하지 않으면 기본 사이즈로 하나 보내 드린다며 그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여줬다. “어느 게 마음에 드시는지 가족과 상의해서 결정되면 불러 주세요.” 하며 나갔다. 보고 온 것처럼 무료 행사에 맞게 한다고 말하니 갑자기 말투가 싸늘해진다. 그제야 말한다. 가족들은 처음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를 알았단다. 미끼에 걸린 물고기처럼 “속았구나.” 우리는 배를 움켜쥐며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생애 처음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은 우리 집 거실에서 오늘도 방긋방긋 웃으며 행복을 선물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날 사진관에서 수고한 분들에게 늦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난 이렇게 순진하다. 그래도 좋다. 사진보다 순수한 향이 더 나답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렇게 낚여서 사진 찍은 또 한 분을 저는 알아요.
무려 이 방에 있어요. 하하하!
저도 한 장만 찍으려고 갔는데 사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 예산보다 한도 초과할 수밖에 없었네요.
덕분에 이쁘게 찍으셨으니 된 거네요.
그럴 때 아니면 마음 내기 쉽지 않잖아요.
하하하 그러셨군요. 누구실까요?
제가 봐도 선생님은 사진 예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앙선례 선생님이세요.
저 아닙니다.
저희도 올해 선생님처럼 무료 촬영 이벤트에 낚여서 갔지요. 메이크업도 받고 좋았어요.
네, 그러셨군요.하하.
오메, 저희 남편도 무슨 이벤트 당첨됐다고 시댁 식구들 다 불러 놓은 상태인데요. 어쩌죠? 하하.
백만원 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냥 뿌리치고 와도 돼요. 제 주변에도 많이들 겪었고 원래 그렇게 영업한대요. 사진은 진짜 예쁘게 잘 나와요. 전문가들이 하니깐요. 보정도 원하는만큼 해주고요.
그러시군요. 찍고 찾으시면 좋죠. 저는 큰 액자가 필요 없어서 거절했어요.
저는 두번째 단락 읽기 시작하면서 벌써 알아차렸습니다. 하하.
네, 아셨군요? 저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서 처음 겪어 봤거든요 하하하.
"사진보다 순수한 향이 더 나답기 때문이다." 끝이 좋아서 글이 좋으네요. 걱정 많이 하며 읽었는데, 하하하!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