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회화성이 짙은 장르라는 사실쯤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시는 감정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많은 방법을 동원하는 예술이니까.
또한 현대에 들어 이미지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그 경향은 더욱더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가 자신의 회화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형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만약 많은 방법 중 2가지를 꼽으라면 묘사 그리고 문장부호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자 그럼 이 두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1. 묘사
묘사.
묘사 빠진 시는 잉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시는 묘사를 주로 이용하는 분야이다. 또한 시의 회화성은 묘사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언어 또는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묘사라는 말의 뜻임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럼 묘사가 잘 쓰인 시를 한 번 감상해보자.
處署 지나고 (김춘수)
*처서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처서: 가을의 절기 중 하나로 더위가 물러간다는 뜻
가을의 절기 중 하나인 처서를 배경으로 한 시이다. 비가 내리는 가을의 풍경은 그 얼마나 시원한가. 시인의 상상력은 나뭇잎 뿐만이 아니라 귀뚜라미의 무릎까지 적신다. 그야말로 모든 세상이 시원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이렇게 가을의 시원함을 시인의 상상력과 묘사를 통해 더욱 잘 이끌어내고 있는 이 시야말로 진정 이미지즘을 잘 나타내고 있는 시라 하겠다.
2. 문장부호
묘사는 무엇보다 이미지즘을 잘 나타내는 시 서술 방법이지만 그보다 내가 더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문장부호에 대해서 말하겠다. 문장부호의 회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 이형기의 낙화를 보자.
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본문 내용의 빨간색이 바로 문장부호의 회화성을 잘 나타내는 시 구절이다. 분분한 낙화(落花)….꽃들이 떨어지는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이 단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을 말줄임표를 통해 나타내고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언젠가 꽃이 다 떨어진다는 것을 묘사한 이 대단한 장면…. 그야말로 문장부호 하나의 엄청난 시적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종삼의 묵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묵화(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역시 빨간색을 칠한 부분이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시인은 먹물만을 이용해 그린 그림인 묵화처럼 매우 단순한 풍경을 이렇게 짧은 시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부분의 쉼표이다. 시인은 .이 아닌 ,를 시의 마지막에 사용하였다.
보통 마침표를 찍는 것이 시가 끝났을 때에 의례인 것을 생각하면 드문 경우라고 하겠다.
이 부분의 포인트는 시가 단순히 한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서로 의지하는 소와 할머니가 앞으로도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일 것이며 이러한 장면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바로 시의 포인트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문장부호는 그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데에도 활용된다.
그럼 마지막으로 기형도의 <쥐불놀이-겨울 版畵5>라는 작품을 통해 문장부호가 시의 회화성을 어떻게 돋보이게 하는지 살펴보자.
쥐불놀이-겨울 版畵(기형도)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걸요?
돌리세요, 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 술래
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감 마른 짚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주관적 생각이 많으므로 비판적으로 읽으시길.>
처음에 내가 이 시를 봤을 때의 느낌은 그로테스크한 기형도 시인의 우울한 경향을 보여주는 어떤 한 시 정도로만 보였다. 하지만 이 시의 제목이 왜 쥐불놀이인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고 문장부호에 유난히 물음표가 많다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시의 물음표가 나타내는 것이 하나의 장면이라면. 예를 들어 줄을 단 깡통에 불을 붙인 그 단면의 장면을 ?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면.
위의 사진처럼 쥐불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끝이 둥근 물음표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물론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사랑을 목발질한다고 한 시인의 말은 ?가 지팡이를 상당히 닮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이 시도 무언가 한 사물을 묘사하고자 한 이미지즘 시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쥐불놀이->물음표 연상->목발질 연상과 같은과정의 상상력을 통한 시 말이다.
이상 문장부호를 통해 시에 회화성이 구현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 많아 다소 읽는데 껄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이 시는 수많은 방법들을 통해 이미지를 구현하는 재밌는 장르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짓는 과정을 통해 또는 감상하는 과정을 통해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