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천신인문학상
하나 하면,...잘잘잘 / 김명희
엄마 없는 조카 하나와 엄마 없는 이모 하나가 타이베이로 여행을 갔다 잘 웃는 조카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곳을 좋아했다 으슥한 뒷골목을 줄곧 걸어 다녔다 걷는 맛이 난다고 동파육이 흐물흐물 흘러내리게 얹은 덮밥이 맛있다고 했다 길거리 의자에 앉아서 먹는 게 제 맛이라고 했다 엄마 없는 조카 하나는 잘 걸었다 걷는 게 힘난다고 했다 그러고선 자주 발마사지를 받았다 아프게 하면 더 웃음이 난다고 했다 다음 날 걷는 게 더 좋아진다고 했다 해 뜨는 것보다 해 지는 게 좋다고 갑자기 노을 보러 가자고 했다 지하철을 탔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잘 모르는 언어를 나눠들었다 조카 하나는 잘 따라 불렀다 네가 좋아 네가 보고 싶어를 반복하는 가사라고 했다 엄마 없는 조카와 엄마 없는 이모는 한 번씩 노래가 흥겹다고 말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엄마 없는 조카는 카메라로 엄마 없는 이모를 찍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서로의 엄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을이 예뻤다고만 시간이 잘잘잘 흘러갔다고만 여러 번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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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면,... 잘잘잘」은 전체 투고작 중에서 단연 눈에 띠는 수작이었다. 산문적 리듬감을 유려하게 활용하면서 우리들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의 고통을 평범하지 않게 다루어 냈다. ‘엄마 없는 조카’와 ‘엄마 없는 이모’가 함께 떠난 여행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감내하고 서로가 서로 모르게 위로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자칫 신파적이거나 감정 토로적으로 흐를 수 있는 시적 정황임에도 그러한 평이함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함께 투고된 「흰 바늘」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상실된 어머니와의 기억을 ‘바늘’이란 이미지로 결집해내어 상실을 감내하는 시간을 견디는 일상을 잘 엮어냈다. 그 외의 작품들 수준도 골랐다. 때문에 이후의 창작 작업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최종적으로 당선작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다른 심사위원의 평가도 동일하여 「하나하면,... 잘잘잘」을 혼쾌히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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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말하는 '상실'에 대처하는 두 가지 자세
-애도와 우울증
상실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애도와 우울증이 그것. 우울증은 미완성된 애도이다.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슬픔과 비정상적인 우울증이 갈리는 분기점에 '애도 작업'을 두었다. 애도 작업에 성공하면 상실에 따른 고통이 슬픔으로 남지만, 실패하면 그 고통은 우울증이라는 정신 병리적 질병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애도 작업이란 사랑 대상에게로 향한 리비도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사랑 대상에 고착된 정을 떼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