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숭례문 구간도 서대문역 4번출구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돈의문박물관에서 길을 건너면 정동으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우린 박물관으로 가서 스탬프를 찍고 가기로.
박물관을 돌아보는 스탬프 투어도 있다.
귀여운 강아지를 뒤로 하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빠져 나와 우린 경희궁으로.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는 현재의 구세군회관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일제가 박문사 정문으로 사용하려고 떼어간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 사업을 하면서 현재 위치에 옮겨 세웠다.
경희궁은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620년에 완성되어 처음에는 경덕궁이라 부르다가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아 경희궁으로 바뀌었으며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 불렀다. 경희궁에서 살았던 왕은 인조에서 철종까지 10명에 이르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임금은 영조다. 특히 숙종은 이곳에서 13년간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태어나고 가례가 치러졌고, 이곳에서 승하한 임금이기도 하다.
숭전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경희궁 창건 당시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등 공식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경종, 정조, 현종 세 임금의 즉위식이 이곳 숭정전에서 거행되었다. 지금의 숭정전은 복원된 건물이고 원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태령전은 특별한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건물이다. 1744년 영조 어진이 완성되자 태령전을 중수하여 이곳에 보관하였다. 현재 건물은 복원된 것이다. 태령전 뒤에는 서암이라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본래 왕암이라 불렀던 이름 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짓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 지금은 숭정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공사중이라 태령전도 밖에서 찍었다.
영렬천은 경희궁 위선당 뒷편에 위치하는 샘으로 바위 틈에서 물이 나와 언제나 마르지 않고 매우 차가워 '조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바위에 선조의 글씨를 집자한 '영렬천'이 새겨져 있다.
고려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5층 석탑이다.
경희궁에서 사용했던 어정으로 이 우물은 조선시대 경희궁 창건 당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향 실내악단이 역사박물관에서 있을 뮤지엄 콘서트 리허설 중이다.
소나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우리가 빠져 나온 역사박물관이다.
경희궁 앞에서 길을 건너면 정동길이다. 정동길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은형제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러시아공사관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이 러시아공사관은 을미사변으로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2월11일 세자 순종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공사관은 국권피탈 이후 1925년부터 1950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영사관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외벽 일부와 3층 정망탑만이 남아 있다.
이화여고 심슨 박물관
신아기념관 건물은 광복 후 신아일보사가 매입한 후 3, 4층이 증축돼 지금 모습이 됐다. <신아일보>는 한국 최초의 상업 신문이었으며, 1980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경향신문>에 흡수되기 전까지 <신아일보> 신문은 한국 최초로 다색도 컬러 인쇄를 도입해 컬러 지면을 구성하고 신선한 레이아웃을 선보였으며 신문이 강제 폐간된 이후 건물은 창업주 장기봉과 <신아일보>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885년 10월 11일 아펜셀러 목사가 자신의 정동 사택에서 성찬식을 거행한 것을 시초로 설립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로 오늘날까지도 한국 감리교단을 대표하는 교회다.
국립정동극장은 한국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근현대 예술정신을 계승하여 1995년 ‘정동극장’ 명칭으로 개관, 공연예술의 현장이 되고, 공공극장으로서 본연의 역할과 책무를 확대하고자 ‘정동극장’에서 ‘국립정동극장’으로 명칭을 변경되었다.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의 감리회 선교사인 헨리 아펜셀러가 정동에 세운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으로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으로 이곳에 배재학당이란 이름을 하사하였으며 2008년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배제학당과 정동교회를 설립한 헨리 아펜셀러 동상이다.
숭례문은 조선 왕조가 사상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반영하여 지은 이름으로 "예절을 높인다."는 뜻으로 유교의 사서 중 하나인 중용에서 따온 말이다.
숭례문 현판 글씨는 양영군이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근거는 없고, 그 자체로 명필로 꼽힌데다 도성의 정문이라는 본체의 상징성 때문에 세간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 현대에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현판 작품으로 남았으며, 600년 세월이 흐르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이 전한다.
한양도성 스탬프함.
서울 한양도성 완주기념 뱃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