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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조명
이렇게 새로운 껍질이 생긴다
그때 낙타는 내 정수리를 찌르거나 쉭쉭 대는
콧김을 내뿜으면서 노려보았다 싱싱한 비린내와
조각배 한 척이 그의 등에서 웃고 있다
나도 웃어주었다 바글거리는 어둠에 대하여
나는 머리 부분을 겨우 밀어내었을 뿐이므로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잠의 깃 그러나 함께
해갈의 실마리가 되던 새벽잠에 금방
먼지가 내려앉았다 나의 등짝은 훨훨 벗어던진
모서리의 익숙한 맛을 잊지 못한다
낙타는 안개를 건너 꽃잎을 한 줌 움켜쥔다
지하도에 갇힌 불빛은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한 다발의 가시나무는 스스로를 가지런히 다듬고, 햇빛은 가던 길을 멈추고, 어둠은 웃음소리 내려놓고, 함정은 젖가슴을 들어내고, 숨은 말들은 물음표를 들고 희끄무레한 하루를 가라앉힌다
조금씩 어긋나는 금빛 죽지 타고 남은 재 속에서 뼈를 추린다 껍질을 벗기면서, 모서리의 익숙한 맛을 뱉어내면서, 시장기는 관절을 꺾어 뿌리 내렸을까 그러나 낙타 눈에 물을 가둘 수 없다
가시나무 옆구리에 그물맥이 손을 뻗는다 눈물도 없이 낙타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 듣는다 모래 속에 빠지면서 껍질은 뻗어나간 길 끝을 막고 지나간 물길을 바라본다
그들은 상처 난 발굽이 없었다
낙타는 정말 가시나무를 먹었을까
북소리
강가 북소리 산을 부른다 여름 땀에 얹혀있던
산 그림자 먼저 출입문 나선다
고삐 끈 늘어진 벼랑도 언뜻 고개 돌린다
북소리 언저리에서 파닥거리는 안테나
말이 통하지 않는 조각 맞춰 가닥가닥
풀어지는 나뭇가지 북서풍에 허리 동인다
늦은 태풍 눈 들여다보며 날개 편다
어, 어슬렁거리던 몸 흔들며 미친 척한다
새가 되는 바람구멍 찾을 수 없다
줄줄이 매달린 꿈을 삭발하면 아직 길게
남은 그믐달 그림자 보인다
미루나무 등뼈 다 드러낸 채 제 목숨
끊어낸다 비어있는 소리, 밖으로 이어진 지도
그 오른쪽으로 휘 돌아선다 흩날리는
부레 내놓으며 물살 가른다
무슨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예언서를 읽어볼 수 없다 접근금지 푯말을
떠난 관절의 염증과 입구 잊어버린
빨간 반송함, 반송 우표 잔뜩 붙여놓았다
어, 표정 없는 불길이 달려온다 저 물결 사이로
타들어 가는 마지막 울음, 그가 타고 앉은
흠집에서 섬 냄새가 난다 입술은 제자리에서
컹컹 헛기침한다 물오리는 주둥이를
아래로 처박고 땅거미 덮어쓴 하늘을
우러러 쏴르르 울어댄다 눈을 먹어 치우는
경계선,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묵보다 작아졌다
그의 손가락을 조심하라
그러니 그의 손가락 위에 올라앉지 마라
안을 향해서만 드러내는 인간의 뿌리. 그 안에 거하며 거드름 피우며 파먹는 신이 부러워 그는 위에 살면서 밤낮없이 아래만 내려다보며 입을 오물거려 입맛을 다신다
그러니 그의 손가락을 조심하라
패자의 아이
1
우리는 이긴 자의 자식이 아니고
패자의 아이, 사용 후 버려져도 좋은
잉여 전리품, 소모품이었다
풀꽃 가득 하늘거리는 초원에서 만나면
사랑을 말할 수도 있었을 아이, 아이
익명의 토굴 속 견고했고 너무 깊어
그 밖의 세상 알 수 없었고
헤어 나오려 하면 할수록 죄어드는 사슬
시궁창 같은 암흑 속 아이의 전부였다
다르게 사는 법 잊으라 했고
잊혀지지는 않았으나 잃어지는 것은 많아서
우리 자신 스스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 되어갔다
이무기 꿈속이었음을 깨닫기에는
살아온 날 너무 짧았고 살아갈 날
안개 속에서 좀체 모습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세상 다른 사람, 아니 검은 물체
우리가 아는 세상은 끝없이 이어 덮쳐오던
타자의 전쟁을 ‘위안’하는 일로만 가득했다
눈도 귀도 없이 입만 가진 전쟁을 한없이 토해내었고
토사물 그것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갔으며
뱉어낼 입 가질 수 없었다
눈 감지 못하던 수많은 죽음과
죽음으로도 스러지지 못한 아이, 아이, 반쪽 어른
되어가도록 우리의 땅 우리를 잊어가고
가슴 속 칼날 같은 옹이 무성하게 자라갔다
2
아끼며 감춰두었던 사랑, 여태껏 남아있을까
그 사랑은 이 사랑 어떤 방법으로 알아봐 줄까
해방이라는 작은 비둘기 짧은 전언만 남긴
채 알아듣기도 전에 사라져갔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겉돌기만 하는
돌기가 된 우리 갈 곳을 모르는 미아가 되어갔다
어느 만큼 떨어져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내 땅
가깝기도, 멀기도 한 고향 맘속에서만 손짓했다
짓밟힌 땅이나 내 땅이므로
내 뿌리 아직 남아있을 내 땅이므로
헤매며 찾아 귀소하고픈 내 땅에
닦고 벗기고 깎아내고 씻어내고
씻어내고 깎아내고 벗기고 닦아도
맑아지지 않을 것 같은 몸뚱이 끼어들 땅
찢겨진 옹 가슴 씻어낼 나의 물 남아있을까
잠시 멈춰서서 따스한 햇볕 조응하는 일
머리 들이밀며 깊은숨 쉴 곳 기다리고 있으려나
모두 같이 타인 되어있지 않을까
여전히 난무하는 타자의 시선과
우리만 알 수 있는 전쟁 중이었으므로
우리의 화형식 우리가 몸소 치르며
살아 꿈틀거리는 비밀 몇 개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위안’이라는 말 면류관이 아니고
벗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으리라는 가시나무
스스로 무성하게 키우는 나 위무할
위안 어디쯤 잡혀 있는가
왜 우리에게만 용기 짐 지워 주는가
나와 이겨야 하고 타자와 타인을 견뎌야 하는
믿음 어느 구석에도 솟아날 틈 남아있지 않은데
내 나라 내 땅에서조차 이성체가 되는 것 아닐까
나도 나를 모르며 합류한 내 조국 알아봐 줄까
만나지도 살아보지도 못한
다르게 사는 법 배워야 했으나
방법 알지 못했고 돌아온 탕아처럼
짐 지워진 익명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악머구리 같은 잔상과 싸워야 하는
그것은 새로운 나, 우리의 전쟁이었으므로
끝나는 일 없었고 차라리
사랑하는 방법 배우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
전쟁은, 역사는 힘센 자, 빼앗은 자의 것이므로
내 안의 전쟁에서도 나는 항상 패자였다
겨우 돌려받은 언어 이미 말하는
기능 소실되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내 울 안과 밖의 말, 말이 달랐고
우리 동류들 더욱 영혼을 잃어갔다
뒤늦게 되찾은 권리 사용할 줄 몰랐고
마냥 쭈뼛거리는 눈길조차 어디를 향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할 줄 몰랐다
결국, 우리는 타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의 곁다리에 불과했다
견디고 이기고 돌아왔노라는
내 땅이었으나 마음 놓아둘 데 없는
그 이후, 우리는 이단아였고 미아였다
주검으로 사라졌어도, 떠도는 구름처럼
흩어졌어도, 어찌 살아 깃 내려놓으려 했어도
그 후로도 여전히 내 땅은 아니었다
우리는 ‘너’와 ‘나’가 되어갔다
침묵하는 상처 묻혀갔으나
시퍼렇게 꿈틀거리는 따까리*가 살이 되지는 못했다
다른 이의 언어로도 나의 언어로도
풀어 놓지 못하는 나만의 전쟁
흘러온 시간만큼 다듬어진 그들의 언어와
견뎌온 세월만큼 깎여진 나의 언어
나는 나와 살고 울퉁불퉁 때로는 멀쩡한
껍데기 속에 갇혀 갈 곳 찾지 못하는
더불어 살지 못하는 지난 시간의 손상된
사람, 민낯 들키고 싶지 않은 소멸된 여인
어느 때고 따까리가 되기는 죽음보다 무서운
우리는 내 몸뚱이로, 내 말로
내 일상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익명의 땅에서 바람처럼 스러져
돌아오지 않은 것만 못하기도 했다
나였던 그 아이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왔으나 잊혀진 지 오래고 수치심
무더기무더기 쐐기풀로 앉아서 가로막았다
지난날로부터 멀어지려 애쓸수록
여러 개로 나누어진 그림자 끌고 지키고 앉은
그들 못지않은 여기 남아 골 깊어진 아픔도 같이
밤이면 더욱 선명해졌고
낮이라고 옅어지는 일 없었다
그들이라는 그림자에 의해 만들어진
오목새김 된 셀 수 없이 많은 화인
그들의 것이었으므로 내 마음대로
지우거나 옮길 수 없었다
어느 한때 나의 것이기도 했지만
사방이 막힌 벽 속에서, 그림자에 둘러싸인 나, 우리
무엇을 더,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바람결 따라 소멸되는 편이
다른 이도 우리도 차마 꺼내지 못한
암묵의 서사였는지도
누가 눈여겨 보아주기 바란 적 있었던가
그냥 잊어주기 바랐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염원했으며
다만 내 땅 여기에 몸담고 앉아
묵혀둔 사랑 맘껏 풀어 놓아보고 싶을 뿐
우리는 이들 안에 용해될 수 없었다
모두 연기緣起일 뿐이었다
4
낮을 잃은 밤으로 사는 우리 대신으로
이제는 맘껏 울어 줄 수 있겠는가
이제는 감히 숨 좀 쉬어 줄 수 있겠는가
붉디붉게 데워진 맘 한 자락 섞어 줄 수 있겠는가
… 있겠는가
있겠는가
있겠는가….
늦가을 바람결에 놀 빛 사위어 가고
여전히 나의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나도 따라 그 길을 잇는다
‘용서할 수 없음’으로 용서하므로
승자의 아이가 된다
*
따까리
① 상처의 딱지, 전남 지방의 방언.
② 개인이나 단체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한 개인이나 집단에 신체적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 (전문성이 결여되고 통상적으로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점에서 고문과는 차이가 있음.)
*
감히 부끄러운 언어로 나일지도 모르는, ‘위안부’라 불려진 우리의 아픔에게 바친다.
어둠... 밝음
그는 눈과 아가미와 함께 산다
그들은 이웃이며 친구이나 하나같이 모든 일에 서툴었다
서로의 주장을 뒤집어 보이느라 시끄러웠다 그나마 그가 좀 나았는데
이웃이 아닐 때가 많으며 친구는 더더욱 아닐 때가 더 흔했기 때문이다
때로 아가미 속으로 들어간 눈의 진술은 걸러져서
형편없이 흐물거렸으나 관계 유지를 위해 눈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관망을 택하다가 울컥 토해내는 아가미의 숨 속에 함몰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서로 그럴듯한 자세를 취하며 그에게 다가와
지난 저녁과 아침에 대해 목격한 것과 예감한 것을 한데 묶어
바람 마당에 걷어차 버렸다면서 희희덕거렸다
그는 비슷한 아침과 저녁이 전에도 있었음을 상기해내곤
그가 언젠가 쓰려고 남겨두었던 어둑한 그림자가 그들 곁에 찰싹 붙어
언제든 그를 덮쳐올 것이라는 느낌과 함께
어두운 비어있음으로 인하여 채워지는 어둠을 기억했다
그들의 어둠에 대한 모종의 협상은 어둠 속에서만 이루어졌고 어느 것이
중요한지 잘 안다고 큰소리치는 그들에게 그는 밀리기만 했다
그는 진화의 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그들을
초대했으나 또 그때는 둘 다 어디론가 사라져 그들의
창은 비어있었고 문은 열어놓은 채였다
그는 그들을 찾아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으나 꽁지깃이
없다는 걸 깨닫고 시무룩해졌다
날개는 이미 누구에겐가 빼앗기고 없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꽁지깃은 언제 태어날까 기다리며
꼬리라고 불렸던 곳에 앉아서
오늘은 몇 번이나 날다가 떨어졌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노을을 바라보다 물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행인 1 그가 쌓아놓은
모래언덕에 꽃을 심으라 거들었고
아가미는 내가 모두 먹어 치울 테니 허튼짓 말라고 했다
그는 아리송한 채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들이 친구인지 이웃인지 아닌지 여전히 헷갈렸다
멀리 달아났던 눈 돌아오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짧은 통증과 함께 남아있던 체온이 눈을 뜬다
행인 1과 아가미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골똘하다가 책방에
들르기로 했으나 너무 멀리 있는 데다가 바람이 막아
섰으므로 단념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기 시작했다
체념 어렵고 단념 좀 더 어려웠으나
남김없이 멍 뱉어내면 되는 일이라 생각되었으므로 따뜻하고
차가운 약국에 상비약 많이 걸려있었음을 기억해 냈고
팔을 쭈욱 펴면 되는 일이었으나 영문 모를 응시
앞을 가리더니 약국은 없어지고 여태 버려져 있던
상비약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빨간 공
따라 굴러가다가 그를 흘긋 쳐다보고 그냥 지나친다
건너편에서 눈과 아가미, 하늘에 손가락을 데었다며 그를 내려다
본다 그들의 손가락에 날개가 달려있고 그가 잡으려 하자
꽁지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발화점을 놓친 호흡
반만 켜진 전구처럼 반절만 보이는 세상에 반쪽 발로
뛰어가고 어떤 등장인물 그도 흐르고 있다
그들의 연대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이 어 어 하는 사이 재빠른 삭제를 선택했다
어둠... 밝음
달빛
얼마 전까지 그는 달빛을 줍고 있었고 그의 긴 목 잘라내어 허리춤에 꿰매고 있었으며 부엉이는 여름을 위한 변주곡에 맞춰 안개 숲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누군가 지어낸 꿈속 빠져나오느라 그의 목 다시 길어졌다
그럴싸한 이유 하나만으로 땀 흘리고
견디는 방법 생각해내지 못해
머리에 구멍 내고 다시 메우는,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한참 만에야
몇몇은 낡았고 게다가 그늘져 있었고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눈
내리는 것 지켜보다가
모두 모아서 실핏줄 안쪽
더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모조리 다 덮을 수 있도록
어딘가 걸터앉아 있을 달빛 찾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오래도록 머물렀을지도,
쉼표의 제어력과 마침표의 박자
섞기가 희미해질 무렵이면
오래도록 맴돌았을 실핏줄
안쪽 벽에 가득가득 피어있는
그도 그 알아 보았을까
들여다보기
- 시라는 환상
여백은 잉여인가.
살아오는 도중 수년 동안, 아마도 가장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었던 시기, 바로 몇 년 전의 선대들보다는 적어도 햇볕이나 공기만큼은 순수 우리 것이었던 우리, 거의 모두 다 그랬으나, 나 혼자만 내몰린 것 같던 한여름 한낮의 뙤약볕같이, 한겨울 눈바람처럼 우르르 쏟아지던 그 쓸쓸함의 시대, 긴 일제 강점에 의한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의 고갈과 바로 이어진 6·25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후진국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조국은 서독에 월남전에 사우디에 멀쩡한 국민을 차출했고 이산가족 찾기에 온 나라가 몸부림을 치기도 했던, 깨어있던 젊은이의 피가 낭자했던 거리에서 최루탄 가스에 마음이 매웠던, 그런 연이어 나타나는 아픔의 터널을 견디고 있던 때, 강제 ’위안부‘, ’징용‘의 상흔은 지난한 현실에 지쳐 보듬어주지 못하는 외면의 역사가 되어있던 나날들, 그러한 선대들의 희생 위에서 겨우 목숨 부지한 분들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베풀어준 교육도 조금 받은 나는 사치스럽게도 몇 권 안 되는 책도 서로 돌려가며 좀 읽었고 먹도 갈았다. 그분들의 덕이다. 결코,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조금 알면서부터는 늘 죄송했고 부끄러웠다. 오욕의 역사를 뽑아내기 위한 달리기에 힘들던 선대들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면서도 나보다 앞선 교육환경을 누리는 이들이 부러워 늘 우울했고 가끔 분노에 떨며, 나태하고 섬약한 정신 상태를 살았다. 삶의 여백을 빼앗긴 소시민을 연기한 안소니 퀸의 ‘25시’ 영화를 보고 게오르규 글을 읽으며 동병상련에 가슴앓이하던 때, 어느 다른 의미보다 삶의 여백을 빼앗긴 주인공에게 짙은 연민을 느꼈던 시절도 된다. 운이 좋았던 소수의 사람 몇 빼놓고는 대부분 그리 살았다, 세상을 웬만큼 살아온 지금도 잘 모르는데 어린 나이의 내가 얼마나 알고 느꼈으랴. 그래도 부조리한 역사의 뒷길에 서 있는 나라의 위태로움은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나라는 후진국에서 겨우 발돋움한 개발 도상국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오더니 이제는 선진국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한 불신이 버무려진 아릿한 통증은 나를 포함한 우리를 가장자리로 내몬다. 막다른 절벽이 나타나지 않을까 위태롭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현대에도 후진성과 개발도상에 놓여있는 부분들이 수도 없이 서민 생활 곳곳에 끼어있지 않은가. 누구는 선진국에 살고 누구는 후진국에서 초점 흐린 눈을 둘 데 없어 하며 누구는 개발 도상국에 두 발 모두 빠트려 허우적댄다. 후진국의 이름표를 달고 있던 때도 개발 도상국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던 때도 선진국을 누리는 이들이 꽤 있었다. 본인의 노력 덕분인지 줄을 잘 선 조상 덕이었는지 짐작만 갈 뿐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시대의 상흔을 따라 견디기 위해서 감히 문인화 흉내 내기, 시 흉내 내기, 여백의 미학적 배치를 작품의 고저를 판가름하는 데 상위가치를 두는 그 나타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백을 찾느라 여백을 만들지 못했던 나의 시절.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문인화는 물론 시에서도.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갈망 또는 열망이 소위 말하는 문학 청소년 시절을 거쳐 사그라지고 있는 어른이 된 뒤까지 무언가 찾느라 골몰한다.
나는 여백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있던 그 어느 때가 되살아 오른다. 차갑고 컴컴한 그림자인 여백은 나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다가도 그와 같이 어울려 더하고 빼려는 나의 서툰 시도, 나의 일방적인 말 걸기에 깊고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던 때, 그로 인하여 나의 언어는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길을 찾아줄 것이라 믿는다. 나 같은 소시민에겐 예나 지금이나 남보다 더 치열하지 않으면 여백은 간곳없어진다. 어느 지점의 어머니가 ‘너무 애쓰지 마라, 그냥 같이 살면 되지’ 하신 말씀이 항상 내 뒤통수에 박혀있다. 그분의 우주였던 나만 쳐다보고 있는 간곡한 시선을 밀쳐낼 수 없던, 도망갈 구멍도 마련해두지 못했는데 몰아붙이던, 나의 일상. 삶의 보편양식에 몸을 담근 순간부터 시가 시이기 때문에, 안타깝고 잔인하며 솔직한 선물 같은 시와 더불어 밤마다 작당, 모의하느라 몽롱한 나날을 지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골방으로 내모는 앞선 이들의 깊은 사유로 빚어내는 언어 조합은 나로 하여금 항상 경의를 표하게 하며 나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고뇌의 시기는 자아 형성이나 지혜 같은 거창한 결론도 도출시켜준다고 하니 그렁저렁 즐거움이 없었다고 하기엔 견딘 세월에 미안하지 않은가. 고뇌하느라 즐거웠다고 해두자. 이 쓸쓸함을 견디기 위한, 그래도 그때는 강했다고 적어도 어제까지는 오늘보다 강했다고 해두자.
사전적인 의미로서의 시의 정의나 석학들의 해석도, 일반적일 뿐 외람되지만, 나에게는 효용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따로 풀어놓을 함의가 있기나 한가. 그렇지도 않다. 단지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고정관념에 얽매어 시를 쓰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새롭고 낯선 시선을 품으려 하고, 쓰려하고, 읽으려 하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양생까지 하려 하며, 기 회자되는 정론에 의해 형성된 주관에 매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는 슬픔을 아는 자의 것이며, 그이의 세상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에 흔들리는 그를 혼자가 아니게 붙잡아주며 시처럼 간결하고 함축적인 삶을 부추긴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시 흉내 내기에 바쁘고 처절하기까지 하다. ‘시 흉내 내기’, 나의 이 슬픔은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에 냉기가 와락 달려든다. 끝없이 헤매면서도 나를 쓰러뜨리지 않으려 시가 내밀어주는 손을 놓치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도 같으나 이런 생각도 주제넘은 건 아닌지. 종이 한 장의 거대한 여백 앞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설렘, 내가 앞으로 전개해야 할 변수에 대한 중압감은 또 어떻게 선을 그어야 할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때의 상태를 많이 즐긴다.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참혹한 사랑에 목이 메며.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시에 화내지 않는다.
늘 복합적으로 몰려오는 이런 함의는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념을 창출해 내게 한다. 시를 만나며 얻어낸, 곁에서 서성거리며 함께 호흡하는 일에 동참해도 된다는 허락 내지는 유예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 나나 시나 지쳐가고 있음을 나도 안다. 흔하디흔한 핑계일 뿐이겠으나 일상의 시간을 따라 흐르느라 변화의 리듬과 연동하지 못하는 망설임 내지 시에 대한 신앙의 강도가 문제였음을 나는 또 인정한다. 그럼에도, 도저히 정복되지 않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적어도 그처럼 성난 파도와 함께 가끔 나타나는 시는 나의 시를 파괴하려는 이빨이 그리 사납지 않으리라는 믿음 정도는 있다.
사소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 가령 잎 다 떨구고 거무튀튀해졌던 나뭇가지에 새봄을 온몸으로 올리며 주변에 깨어있었음의 작은 소요, 앞으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세상과 만나리라는 약속을 선포하는 모습 같은 것에도 목이 메는 요즈음의 나는 과연 잘살고 있는지 물어오는 나의 속 물음에 별로 딱 맞아떨어지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아 낯설게 하리라는, 나한테는 버겁고 큰 포석을 놓으며 나라는 의지에서 멀어지는 것, 자의식의 비대를 조심할 것 등등 여러 가지 회의적인 생각이 줄을 서지만 결국은 공空이라는 것도 좀 안다.
나의 시는 어디로 어떻게 향해 가고 있는가. 갈 곳이 있기나 한 것인가. 무엇이 있어 나의 등을 떠미는가. 나라는 아집 앞에 자기 객관화가 가능할까. 내 사유의 범위는 깊고 넓은가, 그것의 적확한 표현을 위한 언어 찾기는 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혼란스럽다. 내 시에 대한 ‘이유’을 말하고 설명하는데 버겁고 막막하다. 이유를 털어놓으려면 마음의 좁고 깊은 부분을 펼쳐야 하는 고백이 될 터이니. 어둡고 구석진 ’나‘와 ’너‘의 마음을 이유나 설명으로 채근하지 않고 가볍게 뛰어넘기를 바란다. 따라서 또 하나의 슬픔이지만 훌륭한 시인이 못 되는 나는 나의 시가 나를 용서하기를 기도한다….
시가 온전한 눈빛을 들어내며 오는 일은 드물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의 실체보다 그의 유령과 함께 지낸다고 해야 맞다. 내 감정이 한 방향으로만 편향되게 흐르게 해 줄 줄기를 찾다가도 무지에 편승한 편향을 걱정한다. 말 버리기와 찾아내기에 머리를 싸맨다. ‘풍부하나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지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 마음에 담아 두었으나 따라갈 수 없는 금언이다. (, ).
나의 시는 언제나 실패한다. 나는 자주 자취를 감추는 여백을 키우는데 젬병이라 짝사랑하는 여백에 항상 미안하다. 여백은 내게 강요하지 않는다. 인내심이 강하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그는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를 막아서기도 한다. 여백을 붙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성근 머릿속을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내 시가 품고 있어야 할 무엇, 무엇 등과의 화해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까.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번 사랑을 언약한다. 어릿어릿한 나의 어리숙한 시, 그래도 좋다. 내가 시 곁에 있을 수 있으므로.
밤새워 만만치 않은 여백과 마주하느라 초췌한 나에게, 누가 어느 날 걱정과 냉소 섞인 듯한 눈빛을 던져온다. ‘왜 마음 다치는 일에 마음을 뺏기며 여백을 갖지 못하는가. 그거 쉬운 일 아닌가…. 그만 들여다보면 되지 않나…. ’ 글쎄 그럴까. 아직도 나에게 합당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들에겐 쉬운 일이 내겐 매우 어렵다. 그냥 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절대로 끝이 없을 것 같은 결핍과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가끔 꿈을 꾼다. 그런데 나는 아직 깨어있으려고 눈을 부릅뜬다. 영원히, 적어도 얼마간이라도 명맥을 유지하는 작품들, 깨어있는 한 꿈은 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역설, 내게 너무도 요원한 일을 나는 감히 갈망한다. 나를 가끔 소용돌이 속으로 이끄는 모종의 쿠데타의 불씨가 내 안에 아직 남아있기를 또 기원하며 존 덴버의 투데이가 나를 위로하며. 나의 저 깊은 곳에서 울림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타자들의 비판에 신경 세우지 마라.’던 스승의 당부 따라, 읽어주는 이의 입맛에 다 맞출 수는 없으니 내가 아끼는 작은 이들의 지나가는 듯한 비판과 격려에 반추하며 힘을 얻는다. 나를 아끼는 그들은 적어도 일회성의 추임새는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음으로다. 그럼에도 내가 내놓은 언어의 난반사를 독자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서 염려가 안 될 수는 없다. 고정관념에 얽매지 않은 독자라는 스승이 내가 잃어버린 마지막 언어, 나의 시가 만든 그림자를 바르게 찾아 붙여줄 것을 기대한다, 오, 읽는 이의 응시가 나의 시를 완성할지니.
또한, 온 마음을 적셔 물 들고 싶을 만큼 깊고 격조 높은 당신 영혼의 시가 나의 시, 이 안에도 깃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