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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분지로 (小藤 文次郞)......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안타까운 우리나라 지리교육의 한 단면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왜 우리가 일본의 지질학자 즉 지리학자도 아닌 지질학자의 한 논문, 그것도 침략국의 지질학자의 논문 속에 기술된 몇 가지 용어와 그 성과에 목을 매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연구의 성과는 그 자체만을 순수하게 보아야지 거기에 어떤 상(想)을 개입시키지 말아라?
하지만 한 나라 그것도 일제(日帝)의 지질학자인 고토 분지로가 쓴 논문에 터잡아 그들의 구미에 맞게 만든 산맥이라는 용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행태에 대해서 피해국의 국민 입장에서 한 말씀 거들 자격은 있지 않을까?
그런 심경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근대지리학이라는 미명-사실은 지질학이겠지만- 속에 감추어진 우리의 무능과 게을음을 식민사관의 잔재와 함께 떠올려야만 하는 우리는 하루 빨리 이 해묵은 논쟁을 마무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한북정맥 그리고 보개지맥
얼마 전 지인들과 고대산 ~ 지장봉 ~ 관인봉을 잇는 산줄기 산행을 했다.
산줄기를 하는 trekker로서 산줄기의 족보를 캐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진행하는 산들의 중심이 되는 보개지맥을 우선 머릿속으로 그린 다음, 백두대간을 제외하고는 아직 학계에서는 물론 산꾼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조차 생소한 개념인 정맥, 지맥 개념 등을 동원하여 백두대간 → 한북정맥 → 보개지맥 그리고 거기서 분기하는 고대단맥 그리고 관인단맥을 머릿속으로 그림으로써 산줄기 전체를 이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산줄기와 산맥의 비교학적 고찰!
우선 산맥도를 보자.
고토가 기술한 광주산맥
아래 산맥도에는 광주산맥이 금강산과 철령 중간 지점 부근에서 분기하여 팔당 두물머리 바로 앞에서 맥이 다함을 알 수 있다,
- 이 지도를 보면서 우리는 지리 교육을 받아왔고 우리나라의 지형을 이해했으며 그것을 기본 지식으로 토목업자들은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았으며, 산악인들은 산으로 갔고 사진 작가들은 촬영여행을 떠났으며 아이들은 산이름 찾기 놀이나 도시 이름 찾기 놀이를 하였던 것이다. -
고대산 옆으로 경원선이 지나고 있고, 그 경원선이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추가령구조곡을 이용하고 있다고 고토 분지로가 그의 논문 '조선산맥론'에서 밝혔으니 그 글을 보면, 고토는 추가령구조곡을 "조선을 남부와 북부로 구분하는 경계"이며 '토끼의 목'으로 비유하면서 "육지의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이고, 원산에서 서울을 거쳐 제물포에 이르는 유일한 고개인 철령과 추가령(죽가령)을 지나는 지구대로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야 내륙을 통과할 수 있다.(조선기행록, 고토 분지로 저, 손일 옮김, 푸른길 간, 347쪽)"고 기술하였다.
그러면서 "서울 남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다보면 우리를 향해 단애면을 내민 급경사의 산지를 볼 수 있다. 이 산지는 금강하구에서 원산항 입구까지 달린다. 서울에서 12km 떨어진 이 산지 가장자리에 난공불락의 광주산성(남한산성)이 위치해 있다. 나는 이를 광주산맥이라 부르고자 한다."라고 하여 광주산맥은 최소한 한강을 건너 광주(廣州)를 지나 장항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이야기하였고 자신이 그린 산맥도에서도 그렇게 그리고 있다(아래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맥도' 참조).
보는 바와 같이 고토는 '단애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주된 이유는, 그의 연구의 대상이 절벽이나 절개지 그리고 천변(川邊)의 돌들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의 이 글로 미루어 볼 때 광주산맥의 주행은 서울 남산을 지나고, 청량산이 있는 남한산성은 그 우측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것이 된다.
또한 산맥을 지도에 그릴 때에 그는 선(線)으로 그 위치와 범위를 나타내었는데, 일본 지형학 사전에는 "산지가 선상(線狀)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선 경우(a
이 문제는 산맥이 선이라는 1차원적인 개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의 범위를 포함하는 3차원 적인 부피의 개념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되므로 아주 중요하며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지질구조선(地質構造線)의 線과 관련하여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지질구조선은 선(線)의 개념
그런데 그가 남산에서 동쪽을 볼 때 단애면 즉 낭떠러지를 드러낸 급경사의 산지가 육안으로 관찰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일렬로 오는 것으로 인식한 광주산맥의 실제의 폭이 후술하는 바와 같이 한 쪽은 도봉산에서 다른 한 쪽의 끝은 마석의 마치고개까지 이를 정도로 너무 넓다는 데 그 놀라움이 더 커진다.
한편 "마식령산맥의 단층애는 동쪽을 바라보는데, 광주산맥의 그것과 한 쌍을 이루면서 트렌치단층을 이루고 있다. 제3기말에 대규모로 현무암이 분출하여 그 바닥을 매웠으며 오늘날 철원이라는 불모의 평원을 이루었다." 고 추가령 구조곡을 쓰고 있다.
고토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원땅이 불모의 땅이라는 궤변은 접어두고 우선 궁금증 몇 가지가 제기 된다.
즉 ①고토는 왜 자기 멋대로 토끼를 동원하여 토끼와 우리나라를 비유하였는가? ②고토는 과연 산맥을 분수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게 보았는가? ③또한 우리나라 산맥 이름의 창시자인 고토가 광주산맥의 주향을 중국 방향으로 보면서 지금과는 사뭇다르게 금강하구까지 뻗혔다고 하였는데 3년 후인 야쓰 쇼에이에 와서는 그 길이가 짧아졌고 지금도 별 말없이 그것을 답습하고-설명은 금강~원산만으로 하고 있지만-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④그 산맥은 한강을 건너며 그 광주산맥의 폭이 최소한 남산에서 남한산성의 청량산(수어장대)에 이를 정도로 넓다는 것인지 그리고 ⑤산맥은 광주산맥과 차령산맥이 엉키는 지질구조선이 이렇게 서로 교차를 해도 되는 것인지 등이 그러하다.
사대주의와 지정학적 운명론
고토는 1900년 겨울 조선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근역강산맹호기상도'를 보았기 때문에 조선땅의 생김새가 범(虎)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본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연약한 '토끼'니, 노인이 중국을 바라보고 예를 표하는 형상'이니 하는 모습으로 바꾸었고 따라서 그런 나라는 당연히 일본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대주의와 지정학적 운명론(반도적 성격론)을 우리 국민들에게 주입하려 하였던 것이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즉 고토는 지질학자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나라 역사에 지대하게 관심도 많았고 식견도 넓음을 그의 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가령 "추가령구조곡의 북쪽은 기자조선이다.(전게서 345쪽) 조선남부는 삼한(BC209~57)의 땅으로.... 마한은 신라의 라이벌로 백제로 발전한다......단군은 조선왕들의 아버지이며..기씨조선, 위씨조선..수도를 평양... " 나아가 교묘하게 백제와 신라를 설명하면서 "이들(백제와 신라)간의 투쟁이 바로, 이들 경쟁자로부터 군사원조를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부응하여 일본(倭)이 오래 전부터 조선과 관계를 맺게된 원인이다(전게서 353쪽 註2)."라고까지 왜곡하여 기술하였던 것이다.
기자는 중국 은나라 주왕의 숙부인데 주왕에게 간언을 하다 숙청을 당했던 것을 무왕이 구출해 주었으나 무왕의 신하되기를 거부하여 무왕이 조선에 봉해주었다는 것이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목은 이색(1328~1396)은 "우리 조선씨(단군)가 나라를 세운 것은 당요 무진년이다. 비록 대대로 중국과 통하였지만 일찍이 군신관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무왕이 은 태사(기자)를 봉하면서 신하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요 무진년은 중국의 역사와 나란히 한다는 의미요, 군신관계 부정은 정치적 독립성을 의미한다. 또한 단군은 시원성(始原性)과 고유성을, 기자는 문명성과 세계성을 상징하며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2014. 10. 1.게재.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즉 조선이라는 나라는 예전에는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그 이후에도 어려울 때 수시로 일본의 도움을 받아왔고 지금은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니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 아니겠는가.
이것만 봐도 고토 분지로가 당시 조선땅에 들어온 이유는 이 땅의 지질을 연구하려는 순수한 학술적 의욕이 아니라 이 땅의 지질을 조사하여 자원을 침탈하기 위함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 생각할 것이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호랑이'라는 단어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었다-아니 없었지 않았을까?-고 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호랑이는 범 혹은 호(虎)라고 불렀지 호랑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스러운 동물로 여겼던 범을 우리 문화에서 없애는 작업과 병행하여, 광물을 파악하는 이런 지질 조사 작업과 산림과 토지를-1910년 토지조사령, 삼림령, 어업령, 1915년 광업령 등,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20권, 39쪽 이하- 빼앗기 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측량을 하는 과정(삼각점을 산꼭대기에 박아야 하였으므로)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범(虎)과 늑대(狼)를 맹수라 하여 포획하고 사살하였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우리 문화 속의 범은 범과 이리(늑대)가 합친 말인 호랑이로 바뀌면서 백두대간의 '백두산'과 함께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논쟁에는 다분히 감정적인 문제도 존재한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즉 "기존의 산맥체계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과거청산의 욕구가 분출하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이 지형학적인 산맥의 개념을 부정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박수진, 손일논문 한국의 산맥론(Ⅰ), 대한지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05, 130쪽)"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산줄기를 찾자는 일이 과연 민족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어서 그런 것일까.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를 도대체 언제까지 가지고 가자는 것일까? 과연 산꾼들이 옳바른 우리나라의 산줄기 지도를 보면서 우리의 이름으로 된 우리의 산하를 거닐고 싶고 우리가 일제의 잔재같은 산맥도(山脈圖)-자세하게는 지질도-를 보고 배워왔던 그 지도를 우리 아이들에게는 옳바른 지도로 공부를 하게 하여야겠다는 이런 욕구가 과연 일제에 대한 감정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지리학자들은 이우형 선생이 1980년 산경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는 과연 산경표의 그 존재나 알고 있었으며 그 존재에 대해서 연구한 실적이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가?
반문하고 싶다.
광주산맥의 끝은 금강하구
한편 ②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것은 고토는 '이 산지는 금강하구에서 원산항 입구까지 달린다.'라고 하면서 광주산맥의 시발점이 추가령이나 철령이 아닌 금강하구라고 말하다가 다시 금강하구를 거쳐 중국까지 간다는 등 광주산맥을 묘사한 글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땅속에 있는 광주산맥의 지질구조선이 중국 남부의 산지와 같은 주행방향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산줄기가 아닌 산맥이라도 광주산맥은 그 모태가 되는 태백산맥에서 갈라져야 한다는 게 일반인의 사고일텐데 말이다.
어쨌든 고토는 그렇게 기술을 하면서도 금강하구를 거론함으로서 맥의 한 끝이 바다 혹은 강끝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지리학자들은 지금 이 광주산맥을 설명할 때 "태백산맥에서 분기한..."이라는 '지맥(支脈)' 개념을 동원하고 있어 산줄기 개념에서 백두대간에서 정맥이 분기했다는 '개념의 계급화'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고토 분지로가 작성한 논문에 첨부된 지도를 보면, 정신없이 그려진 36개의 산맥들이 얽히고설키게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광주산맥과 추가령구조곡 부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1903년 고토의 조선산맥도에 그려진 추가령구조곡은 두 군데서 출발하여 평강 부근에서 하나로 만나 제물포까지 진행(녹색)을 하게끔 그려져 있으며, 광주산맥은 추가령구조곡 부근에서 출발하여 서울 우측을 지나 천안을 거쳐 금강하구언에서 맥(노란색)을 다하게끔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한편 그 아래에 있는 차령산맥은 강원도 속초 부근에서 출발하여 보령과 군산 중간 지점이니 아마 서천 정도에서 마무리를 짓는데 막판에 이르러 광주산맥과 겹치게끔 되어 있다.
⑤와 관련한 논점인데 지질구조선이 겹친다는 것-물론 고토의 산맥도는 광주산맥을 제외하더라도 소백산맥이나 황해도, 평안도의 산맥도가 바둑판같이 그려져 혼란을 주지만 -은 산맥이 뒤엉키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이론상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산꾼들은 알고 싶어 한다.
고토의 뒤엉킨 산맥이 3년 뒤 어떻게해서 그렇게 말끔하게 정리되었을까.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 과정은 설명이 없는 것일까.
위치가 바뀐 광주산맥
기술한 바와 같이 고토분지로가 1903년 그린 산맥도는 1906년 그의 제자 격인 야쓰 쇼에이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추가령구조곡 방향으로 광주산맥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복잡하던 바둑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대신 소백산맥 부근은 바둑판에서 부챗살로 바뀌었고....
그때 졸지에 노란선의 광주산맥이 위치를 이동하여 위로 올라가면서 인천 부근에서 끝나게 된 것인데 야쓰 쇼에이는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여 광주산맥이 위치를 이동하였는지 밝히고 있지 않았고 이 지도는 다시 모습을 바꿔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실업실찬지리(實業實撰地理) 1906년 刊'에서는 지금과 같은 모습의 단순화된 산맥도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그 경위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줄기는 다시 현재에 이르러서는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끝나다니?
지질구조선이 끝났다는 것인가?
즉 3년 사이에 우리나라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질 변화 또한 하루 아침에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그린 이의 의지에 따라 산맥이 오르내리기도 하고 길이가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즉 지질구조선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광주산맥은 중국방향의 산맥으로서 그 지질구조선이 군산을 지나 중국 절강성까지 진행한다고 하였는데 끊기다니?
그렇다면 산맥의 연속성(continuity)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여기서 잠시 우리나라 산줄기사(史)에 큰 획을 그은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의 글을 인용하여 우리나라 산맥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1.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악론>(1903)
고토는 <조선남부의 지세>(1901), <조선북부의 지세>(1902) 를 발표한 후 종합하여 <조선의 산악론>(1903) 논문을 발표했다.
고토는 한반도를 크게 한토, 개마지역, 고조선지방으로 나누어, 그 안에 무려 36개의 산맥선을 분류해 넣었다(<표 참조).
현행체계에 비해 산맥 수가 2배 이상 많은 것은, 주요 산맥들을 연맥(聯脈)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백련맥은 4개의 평행하는 분맥들이 형성하고 있는 연맥이다.
한반도의 3개 구조선, 추가령곡의 존재 또한 고토가 처음 정립하였다.
2. 야쓰쇼에이의 <한국지리>(1904)
동경에서 출판된 <한국지리>에 고토의 지질구조도를 크게 단순화시킨 <조선산계도>를 수록했다.
그 과정에 별도의 지질조사는 없었고, 고토의 것을 정리한 것이다.
특히 고조선지방 산맥들을 단순화시켰고, 고토가 태백련맥, 소백련맥을 구성하는 각각의 분맥에 명칭을 부여한 데 반해 야쓰쇼에이는 그림에 표시는 했되 이름은 하나만 부여했다.
따라서 이름만으로는 산맥 수가 14개로 줄었다.
낭림산맥을 없애버린 것도 특이할 만하다.
3. 실업실찬지리(1906)
야쓰쇼에이가 없앴던 고토의 낭림산맥이, 평안산맥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가장 큰 특징은 부채살처럼 복잡하던 태백련맥, 소백련맥의 분맥들을 말끔히 정리, 한 줄기 선으로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써 오늘날의 산맥그림과 거의 비슷해졌다.
즉 고토 이후 3년만에, 추가적인 지질조사 없이, 오늘날 쓰이는 산맥체계와 명칭이 거의 확립되었다.
4. 기타(해방 이전)
<고등소학대한지지>(1906) :
"교과서를 새로운 산맥체계로 개정한다"는 선언을 하여 사료적 의의는 있겠으나, 그림 자체는 야쓰쇼에이의 것과 같다.
<조선지리풍속>(1930) :
"조선의 산맥은 고래로 많은 삭박(削剝)을 받아왔으므로 지학적으로 나타내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산맥은 분수계를 나타내며, 지질구조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산맥은 전래의 산줄기다.)
<조선광상론>(1944) :
기존의 3방향 외에 마식령방향을 추가하여, 조선의 산맥방향을 4개로 나누었다.
5. 일제시대 산맥의 요약(박민)
산맥을 서술함에 있어 산맥형성 요인, 지반운동, 조산운동에 대한 독자적 연구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고토의 분류방식에 따라 산맥이 뻗은 방향을 중심으로 추가령구조곡 이북은 요동방향, 이남은 중국방향의 산맥이 발달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에 따라 산맥의 분류체계나 명칭이 다르고, 주향에 일관성이 없었으며, 산맥을 표현하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여 통일된 산맥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6. 라우텐자하(Lautensach)의 <코리아(Korea)>(1945)
라우텐자하는 고토의 연구를 답습하지 않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고토가 단애의 관찰만으로 단층구조를 추정한 것은 지질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이 아니며 임의의 시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조선지세도>에서 주한국산맥(낭림산맥+태백산맥) 및 함경산맥, 소백산맥만을 주요 산맥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2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7. 다테이시의 <조선-일본열도지대 지질구조 논고>(1976)
고토의 선구자적 노력은 인정하되, 견해는 고토와 크게 달랐다.
고토가 지나방향을 고기(古紀)에 형성된 습곡산맥으로 본 반면, 다테이시는 중생대 이후의 단층운동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습곡에 의한 산맥은 생성년대가 오래되어 현 지형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한국방향과 지나방향만 인정할 수 있고 모두 단층기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8. 김상호의 <한국의 산악론>(1977)
고도가 낮고 연속성이 약한 광주산맥, 차령산맥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온 반면 경상도의 1,000미터 이상 산들이 상당수 산맥호칭이 없다는 사실, 평야지대인 황해도에 멸악산맥을 비롯한 다수의 지괴, 산맥을 그린 사실 등 불합리한 현행 산맥체계가 결과적으로 지형인식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9. 김옥준의 <남한 중부지역의 지질과 지구조>(1970)
연구범위가 옥천지향사대(차령, 노령, 소백산맥 등 남한 중부지방)로 한정되긴 했지만, 지질학적 관점에서 지층 내부의 지질을 바탕으로 외부 지형을 판단했다.
결과 소백산맥을 평행하는 두 산맥으로 나누었다.
소백노령산맥(노령산맥을 포함한다) 및 덕유산맥이 그것이다.
10. 대학교재 기타
강석오의 <신한국지리>(1985) :
분류체계는 고토의 것을 수용하였으나 인문상의 영향을 고려하여 주간산계, 서한산계, 서남산계, 동북산계로 나누었다.
권혁재의 <한국지리> :
"한국방향과 요동방향만 뚜렷할 뿐 나머지는 2차적인 것이어서 태백, 함경, 마천령, 낭림, 소백산맥 외에는 산맥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다테이시의 견해와 유사하다.
임덕순의 <우리나라 국토 전체와 각 지역>(1992) :
노령산맥이 차령산맥에서 분기하는 것으로 보고, 광주산맥 아래에 용문산맥을 새로 만들어넣는 등 학계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독단적 분류를 했다.
11. 해방 이후 산맥의 요약(박민)
해방 이후에도 한국의 산맥 분류체계 및 명칭은 고토의 틀을 유지한 채 수용, 전수되었다.
라우텐자하, 다테이시, 김상호 등이 부분적 비판을 제기하였으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산맥관이 수립되지 못한 탓에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처럼 고토의 연구결과를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의 <조선산악론>이 전적으로 옳게 평가받아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교과서 내에 형식적으로나마 계속 실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석필 선생은 평가한다.
"어지럽지 아니한가.
체계의 근간이 된다는 구조선만 해도 3개에서 출발, 2개, 1개, 4개가 주장되다 다시 3개로 돌아왔다. 각각이 "습곡이다, 단층이다" 말도 많았다. 구조선이 춤을 추니 거기 따라야 하는 산맥들이 어지럼을 타는 것은 당연한 일.
붙었다 떨어졌다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는 것이 자유자재다.
자고로, 설이 많다는 것은 맞는 소리가 없다는 뜻이다. 산맥은 이처럼 어지러운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결론은 늘 원위치로 돌아왔다.
위에 전재한 논문의 줄거리를 요약해 드리자면 이렇다.
산맥체계는 1903년의 고토의 연구에 모든 근간을 두고 있다. 3년 후인 실업실찬지리에 이르러 현행산맥의 명칭 및 체계가 거의 정립되었다. 이후 체계의 근본을 흔들 만한 몇 가지 이견들이 제기되었으나, 고토 분류의 근본을 바꾸지는 못했다.
고토가 옳아서가 아니라, 바른 대안을 정립해보겠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 현행 교과서에 실려 가르치고 있는 산맥도들의 난맥상은 난무했던 학설만큼이나 다양하다. 고토의 바둑판 같던 산맥도가, 두 명의 저자를 거치면서 3년만에 현재의 날씬한 그림으로 바뀌는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것이 추가적인 지질연구 없이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것은 언급했었다.
학자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부채살같은 소백련맥에서 분맥 하나를 쏙 뽑아 대표 소백산맥이라 내세운 것일까.
다시, 야쓰쇼에이는 무슨 근거로 산맥체계의 중심인 낭림산맥을 지도에서 삭제했고, 실업실찬지리는 또 무슨 근거로 그것을 부활시켰을까?
대답은 없고 학설만 잔뜩인 것이 산맥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리를 전공한 지리교사 출신의 노희웅 선생은 일찍이 그의 저서 '교실밖 지리여행(1994년 刊)'에서 논리적으로 이런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즉 노희웅선생은 신경준의 저서로 알려진 산경표를 "사실 이 책을 지은 이는 오랜 세월 이 땅에 살아 온 모든 사람들"이라고 차분하게 소개한다.
그러면서 "고토 분지로가 지질학적 연구 방법- 땅 속의 힘이 작용한 단층선, 습곡 등 지질구조선을 조사하여 지구의 지각을 연구함-을 써서 새로 만든 우리나라 산줄기 쳬계는 정작 우리의 실제 지형과 삶에 온전히 맞지 않다."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산맥 체계를 비판한다.
즉 "높고 연속성이 강한 산줄기들은 지질구조선을 반영하지만 그 밖의 많은 산줄기들은 빗물과 하천에 의해 오랫동안 침식되어 지질구조선이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토 분지로의 산줄기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따른단다.
계속하여 노희웅 선생은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고토 분지로가 랴오뚱 반도 방향, 중국 방향으로 뻗어 있다고 본 산줄기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실제로 연속성이 약한 구릉지이거나 중간이 끊겨 있다. 게다가 지질 구조선에 따라 셋으로 나눈 우리나라 산줄기 방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함경산맥(필자 주: 고생대)이 멸악산맥(필자 주: 중생대)과 같이 '랴오뚱방향'이라면 형성된 시기와 원인이 같아야 하는데, 오히려 함경산맥은 '한국방향'이라고 한 태백산맥과 같이 높고 동해쪽으로 치우쳐 있고 함경산맥은 태백산맥과 형성 시기, 형성 원인이 비슷하므로 이를 멸악산맥과 함께 묶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전게서 25쪽~27쪽).
우리나라 산맥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이야기가 아닐까?
소위 '산줄기파'들의 질타를 의식하였기 때문인지 그동안 우리 산줄기에 대해서 무관심하던 지리학계에 대하여 전남대학교 박철웅 교수는 "산맥이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근자까지 지리교육의 주요 내용으로 다루어져 왔으나 1980년 산경표가 발견되면서 이는 우리 산줄기에 대한 체계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표출된 것.......지리학회의 소극적인 대응....기존 산맥도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한다.(박철웅 논문, 산맥개념의 교육적 함의와 중등 지리교사들의 산맥체계 인식.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008. 3.刊, 28~29쪽)
그러니까 우리나라 지리학계는 1980년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으니 관심도 없었다는 얘기에 다름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이우형 선생과 조석필 선생, 노희웅 선생 등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여기에 2004년도 말 국토연구원의 김영표박사는 '새 산맥지도'라는 것을 발표하여 논쟁에 기름을 부어넣는다.
매스콤을 휩쓴 이 지도는 사실 당시로는 충격이었고 이 지도가 지리학계에 준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학계에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즉 "분수계와 산맥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한 비전문가의 대동여지도를 좀 더 깊이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혹평을 하거나 "한반도 산맥지도는 일본인 학자 고토분지로(1903)에 의해 처음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이후 한국의 지형학자 및 지질학자들-지리학자가 아님-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결과물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도 고토분지로가 제시한 산맥도가 현행 교과서의 산맥도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산맥을 부정하는 이들은 일본인에 의해 처음 그려졌다는 사실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이후 지형학자들이 수정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박수진, 손일논문 위 논문, 130쪽)"고 항변한다.
하지만 기술한 조석필 선생의 '산맥 변천사'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1903년 고토 분지로가 만든 36개의 산맥은 1906년 야쓰쇼에이를 거쳐 1906년 실업실찬지리에서 함경산맥을 추가하여 마천령 산맥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산맥도와 같은 모습의 산맥도가 완성된 것이고, 지금도 그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뭐가 크게 달라졌다고 흥분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고토 분지로의 산맥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가본데 고토 분지로의 것은 3년 만에 대수정을 거쳐 이미 1906년 경에 현재의 것과 근사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데 이것이 최근의 연구 성과물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김상호 교수나 권혁재 교수 같은 이들은 기존의 산맥도-자세히는 지질도-에서 벗어나 새 산줄기 체계를 주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지리학계의 주류는 '산맥파'인 것 같다.
산맥은 그 성인(成因)과 무관하게 산지가 선상(線狀)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선 것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인 산맥이란 과연 무엇인가?
산경표(山經表)의 산줄기야 분수계를 중심으로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거한 맥이라 치고 도대체 산맥이 무엇인지가 궁금해 진다.
분수계란 물론 물이 두 갈레로 갈리는 경계를 뜻하는 것이므로 길게 얘기할 것도 없는 반면 지질구조선을 근간으로 한 산맥은 입장이 좀 다르다.
우선 산맥이라는 용어는 mountain ranges 혹은 mountains를 일본인들이 山脈이라는 한자로 번역을 하였고 이를 고토 분지로가 한국 땅덩어리에 인입을 하였으며 당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사용한 개념이다.
여기서 山과 脈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산이 하나의 혈관과 같은 것으로 이어져 끊임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continuity)으로 인식을 하게 되어 산맥은 물을 건너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는 해왔다.
脈이란 말이 그런 말 아닌가?
그 용어를 정립한 일본의 학자들이 바보인가?
그리고 우리나라 일부 지리학자들의 멘토 고토 분지로가 어떤 사람인데 그런 걸 모르겠는가?
이 산맥의 기반이라는 지질구조선이란 지각변동에 의해 형성되는 단층, 습곡, 산맥 등의 배열을 말하는 것으로서 한반도는 안정 지괴로 지반이 견고하기 때문에 단층운동이 우세하게 작용하여 직선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한국지리, 김주환외 5인 공저, 교학사 간, 45쪽).고 한다.
어쨌든 산맥의 사전적인 의미는 '큰 산들(scale)이 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줄기'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예전의 중학교 교과서를 보면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뻗은 광주산맥, 차령산맥, 소백산맥들은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서쪽으로 갈수록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이 산맥들 사이를 북한강, 남한강, 금강이 흐르면서 중상류 지역에 크고 작은 분지....."라고 하면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산맥이 분수계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중학교 사회1. 67쪽-
즉 산맥 = 분수계라는 의미이다.
산맥에 관하여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지반운동 또는 지질구조와 관련하여 직선 상으로 길게 형성된 산지(권혁재 교수)"라고 하거나, "네오토닉의 산맥이란 제3기 중신세 이래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각운동의 일환으로서 지반 융기가 진행되어 이룩된 산맥(김상호 교수)", 그리고 손일 교수는 "지형학적으로 산맥은 여러 개의 능선이 일정한 방향으로 함께 달리는 연맥이며 고도뿐만 아니라 폭을 지닌 산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드디어 연맥이 나오고 폭이 등장한다.
연맥이라는 개념은 고또 분지로의 산맥도에 나온 이후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American Geological Institute에서 발행한 'Glossary of geology'의 정의를 보면 "산봉우리가 있건 없건 산지 혹은 좁은 간격의 산줄기(mountain ridges)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단일체로 방향, 위치, 형성 그리고 연대, 구성 부분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하고 있고 일본 지형학 사전에는 "산지가 선상(線狀)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선 경우(a
이해가 분명하게 간다.
미국의 지형학백과사전(Fairbridge, 1968)에는 "Mountains are commonly classified in physical geography according to scale and contiguity, without referance to genesis. Nevertheless, the geologist finds it difficult to resist recognizing a common genesis on the basis of common scenery."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산맥이란 보통 지형의 생성원인과는 상관없이 규모와 연속성에 따라서 자연지리학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질학자들은 지형의 근간이 되는 그 성인(成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산맥이라는 것은 그 산맥의 생성 원인과는 무관하게 외형을 가지고 판단하면 될 것이고, 그 외형은 선상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선 -산봉우리들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것이라는 정의가 가능할 것 같으며 그리고 그 성인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은 지리학자가 아닌 지질학자 곧 고토 분지로 같은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장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국토연구원의 연구원들이 해석을 할 때에는 산맥은 "그 생성원인과는 무관하게 규모와 연속성을 가진 산지"라고 해석하는 반면, 박수정과 손일의 논문에서는 뒷 문장에 중점을 두어 그것도 지질학자는 뺀 채 "형성과정 역시 도외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genesis'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Mountain range: a linear topographic feature of high relief… , although these may be complicated by valley cutting. … Geologists have often insisted that a range must be a mountainous belt or group “formed by one cause”or related
by a common history (Fairbridge, 1968, p.747).”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산맥(mountain range)의 경우 하천에 의해 절단될 수 있으며, 동일한 성인과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장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해석하여 "산맥의 주의미는 지형학적으로는 일렬로 늘어선 높은 산지(high relief)"라는 기본 개념은 생략하였다.
지리학이란 무엇인가?
비전문가인 일반인
하지만 이런 일반인들과 2004년도 국토연구원의 상식 혹은 생각(주장이 아니라)은 전문가의 날 세운 비판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즉 "산봉우리의 연속성은 일반인들도 가시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이 동일한 지질 및 지형형성작용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적 견해와 오랜 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질 및 지형발달과정에 관한 증거들의 대부분은 땅 속에 묻혀 있어서 상당한 추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속성 개념은 능선이 계속해서 이어진 능선의 연속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산체 방향의 연속성 내지 지속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이해를 구하기 어려운 개념일 수 있다.(박수정, 손일 위 논문 132쪽)"고 하니 결국 땅속에 있는 것들을 들어가 보지도 않고 일반인들이 뭘 알겠느냐는 얘기 아니겠는가.
이 대목에서 필자는 고토가 1900년 한겨울에 4마리의 조랑말에 6명의 대원을 이끌고 고개의 절개지나 강가를 다니면서 주운 돌을 현미경으로 관찰을 하고, 고개나 야산에 올라 그 돌들로 관찰된 산지가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주위의 고개나 산 이름을 붙여 산맥 이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전통 지리학은 무시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질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한 나라의 자원을 침탈하는 무기로 사용하였고 온 나라의 산지를 다 파헤친 것 처럼 작성한 그 연구성과물로 논문이라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업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임의로 붙인 산맥 이름을 지금도 우리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역겨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산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질 구조선 혹은 지맥 등이라는 말만 사용하였어도 우리는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헤매지 않고 있을텐데 말이다.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논쟁의 본질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학자들의 산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도 인용(認容)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이름이라면 더 좋지만 ...
우리는 전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를 하고 있지 않은가.
산맥이름을 線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면 지맥(地脈), 부피의 개념이어야 한다면 지체(地體) 정도의 이름을 부여하여 지질도로 보내자.
박수진, 손일 교수의 논문에서 발췌한 이 지도를 보면 충분히 그런 논의가 가능하다.
지질도를 근거로 좀 검은 곳에 선을 그으면 산맥도가 되는 거 아닌가?
차령산맥은 직선으로 긋기 위하여 흰 곳을 넘나들고 소백산맥은 아예 전라도 쪽의 시커먼 곳은 손도 대지 않았다.
또한 다른 시커먼 곳은 선이 그어지지 않고 1906년에 그은 그 자리들에만 선이 그어졌다는 것도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즉 어느 정도는 예전의 산맥 이름들을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그 아픈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산경표의 개념을 도입하여 주장해 보자면 이 지질도에 차령산맥이나 노령산맥은 악착같이 그은 반면 소위 도솔지맥이니, 한강기맥이니, 춘천, 영월지맥, 비슬지맥, 문수, 팔공, 보현 지맥도 보이지를 않는다.
이런 지질도 가지고 선을 그으려 하니 고토의 지도는 바둑판이 되었고 야쓰의 지도는 부챗살이 된 것이리라.
아마 여기에 착안하고 보완했다고 하는 산맥 개념이 위에서 얘기한 "연맥이며 일정한 폭을 가진"이라는 말일 게다.
태백산맥이나 낭림산맥 부근을 보고는 그 난감한 기분을 여러 개의 능선이 한 쪽으로 주행하며 그것들을 이런 지도에서 보자면 일정한 폭을 가진 것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그 답답한 심경을 이해하게 된다.
그냥 평범하게 보자면 이 지질도는 한 개의 커다란 산줄기이다.
여기에 이르러 필자는 주장한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산체(山體)-국토의 70%가 산지-이므로 다른 나라들도 mountain ridge보다는 mountain range를 쓴다고 하고 '여러 개의 능선이 일정한 방향으로 함께 달리는 연맥이며 고도뿐만 아니라 폭을 지닌 산체(손일교수)라고 하니 그냥 우리나라 전체를 백두대산맥이라 부르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야 후술하는 바와 같이 연속성과 규모면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산맥급 정도가 되어 세계 지도에도 조그마한 선으로나마 표기가 되겠지 광주산맥이나 차령산맥 정도를 가지고 세계지리학회에 가서 우리나라의 산맥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하여 다른 나라 학자들이 귀나 기울여 주겠는가?
산맥의 규모(scale)와 연속성(continuity)
자! 보자.
산맥의 규모와 연속성에 대해서!
연속성이란 끊기지 않음인데 그 끊김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규모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냐의 문제로 귀결이 되겠다.
지리학자들은 산맥은 지질구조선이므로 강에 의하여 단절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그 예를 히말라야산맥이나 로키산맥을 들고 있다.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길이(km) | 위치 | ||
---|---|---|---|
1 |
안데스산맥 (Andes Mountains) |
7,000 |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
2 |
로키산맥 (Rocky Mountains) |
4,800 |
미국, 캐나다 |
3 |
남극횡단산지 (Transantarctic Mountains) |
3,542 |
남동극 순상지, 남서극 대륙 |
4 |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 (Great Dividing Range) |
3,059 |
호주 |
5 |
히말라야산맥 (Himalayas) |
2,576 |
부탄, 인도, 네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국, 미얀마 |
위의 표는 산맥의 길이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안데스산맥의 평균고도가 4000m, 로키산맥이 약3000m, 히말라야산맥이 6500m, 알프스 산맥만해도 1050km에 평균고도 2500m 등의 규모이다.
또한 고토가 자주 비교한 이탈리아에 있는 아펜니노 산맥만 하더라도 1,400km에 이르고 가까이 중국의 대흥안령산맥이 평균고도 1100m 이상에 길이가 1200km 정도가 된다.
조금 전 논문에서 인용한 즉 "연속성 개념은 능선이 계속해서 이어진 능선의 연속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산체 방향의 연속성 내지 지속성을 의미한다."는 그 대목이다
적어도 산맥이라면 이 정도 크기(scale)가 되어야 산맥이라는 족보에 오를 수 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지형학 사전에도 high relief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들 산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인간의 생활하고는 거리가 멀다.
지리 그 중에서도 자연지리가 무엇인가.
인간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산맥. 즉 히말라야나 안데스, 로키, 대싱안링산맥에서 보듯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고도 2,000~8,000m 이상이 되는 산지의 연속인 곳.
그곳이 산맥!
맞다.
중간에 강에 의하여 끊기는 곳 있는가?
그렇다면 로키산맥이나 안네스 산맥들의 중간이나 어느 부분이 강에 의하여 끊긴 부분이 있는가.
단절이 아니라 그 산체에서 강을 내 보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길이가 아니라 폭이 200~700km라는 안데스산맥을 한 번 보자.
안데스산맥의 지형은 지구상에서 가장 장엄한 지형으로 꼽힌다. 7개국의 상당 부분에 걸쳐서 남북으로 펼쳐져 있으며,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산계와 에콰도르안데스·페루안데스·센트랄안데스·파타고니아안데스산맥 등 6개의 주요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베네수엘라 산계는 오리노코 강 유역과 마라카리보 호 및 카리브 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려 콜롬비아의 산맥(오리엔탈 산맥) 동쪽 부분으로 이어진다. 3~4개의 산맥으로 구성된 콜롬비아 산계는 에콰도르 국경에서부터 손가락처럼 북동쪽으로 굽어지면서 콜롬비아 전체의 윤곽을 이루는 지형을 형성한다. 에콰도르안데스산맥은 화산성 산지인 옥시덴탈 산맥과 센트랄 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남북방향으로 펼쳐지면서 거대한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페루안데스산맥은 대체로 남동쪽으로 뻗은 3개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시덴탈 산맥 서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페루안데스산맥과 센트랄안데스산맥은 알티플라노 고원에서 결합하여 더 광범위하게 뻗어나간다. 세계 최대의 내륙분지인 이 고원에는 항행 가능한 호수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길이 176km의 티티카카 호가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다. 아르헨티나 북부로 진입하여 북서쪽 주 들을 지나는 안데스산맥은 남쪽으로 뻗으며 다시 너비가 좁아진다. 남아메리카 전체 산계 중 가장 울퉁불퉁한 지형 일부를 포함하는 파타고니아안데스는 볼리비아에서부터 남쪽으로 티에라델푸에고까지 이어지면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경계를 이룬다. 안데스산맥의 최고봉인 아콩카과 산(6,959m)이 산맥 남부에 해당하는 파타고니아안데스산맥에 자리잡고 있다.
보는 바와 같이 안데스 산맥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안데스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개의 산맥을 몽땅거려 하나의 흐름 즉 산체(山體)로 인식을 하고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오리엔탈 산맥은 안데스 산맥과 주향성이 같은가?
베네수엘라 산계는 또 어떠한가?
또 폭이 200~700km 정도의 크기의 맥이라면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경우, 좁은 곳의 동서 길이가 200km, 너른 곳이 320km라고 하니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아예 우리나라 전체 범위보다도 넓다.
그런 산맥들은 정말이지 지질구조선이 평탄하게 그것도 너비가 몇 백 km가 될 정도로 큰 규모이고 그 산맥 안에는 계곡과 지류 등이 다 포함되어 있으므로 강에 의하여 단절되었다기 보다는 그 강이 흘러나가는 계곡 자체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그렇다면 이는 전체적인 연속성에서 볼 때 산경표에서 말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대원칙에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이런 이론으로 우리나라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면 백두대간이 약 1684km 정도 되니까 산맥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므로 거기에 정맥들을 위시한 곁가지들도 다 전체 백두대산맥에 포함시켜 길이 약 1700km, 폭 200km 정도라고 하여 새로운 산맥 개념을 정립시켜보자.
그리고 좋다.
주행방향도 한국방향으로 하고......
백두대간을 5개로 쪼개놓고 나서는 태백산맥은 500km에 평균고도 800m, 가장 북단에 있는 강남산맥의 경우는 길이 290㎞에 평균높이 930m이라고 나와 있으니 이정도로는 scale면에서 볼 때 아무래도 산맥의 족보에도 올리기가 쉬울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세계 지도에도 콩알만 하게 나오는 그런 작은 땅덩어리에서 산맥을 36개로 만들었다가 다시 13개로 나누고는 다시 14개로 세분하니 혼란이 더 커지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세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줄기를 가지고 산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의미한 것 같다.
산맥이 위와 같은 개념이라면 우리는 14개의 산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고 위와 같이 아예 백두대산맥이라는 이름 하나만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산지를 아우르는 것이 나을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놓고 보면 scale이니 continuity의 문제도 해결이 되고 high relief의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without referance to genesis를 어떻게 해석해야 부드러운 우리말이 될 것인가의 갈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지맥개념의 우리 산줄기를 산경표와 연관시켜 과학적으로 정리하는 게 옳바른 순서가 아닐까.
오죽하면 박철웅교수 같은 이는 "우리는 지형지식을 (중등학생들에게) 너무 구체적으로 가르치려 한다(박철웅논문 산맥개념의 교육적 함의와 중등 지리교사들의 산맥체계 인식,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008. 3월호 36쪽)."고 개탄했을까.
즉 '이런 산맥 체계는 땅 속의 힘이 작용하는 단층선, 습곡 등 지질구조선을 조사하여 만든 것이고 이것은 높고 연속성이 강한 산줄기들에게는 적용이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산줄기같이 빗물과 하천에 의해 오랫동안 침식되어 지질구조선이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노웅희, 박병석, 전게서 26쪽).' 는 설명이 우리에게 아주 그리고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되고 다가온다는 것 아닌가.
여기서 대한지리학회 회장이며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양보경 교수의 글을 발췌해 보면....
이러한 산맥분류 체계는 일본인 지질학자가 지형보다도 지질구조(地質構造)를 바탕으로 하여 분류한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땅 위의 모습이 기준이 아니라 땅 속의 지질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땅 위에서 인간의 모듬살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생활기반이며 산과 하천의 모습이 제외된 것이다. 그리고 원산-강화를 잇는 지질구조선(地質構造線)을 경계로 남북이 크게 구분되어 남과 북이 이질적인 단위로 나누어지도록 되어 있다. 또한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했던 백두대간이 마천령산맥 함경산맥의 일부 낭림산맥 태백산맥으로 조각나고, 민족의 성산(聖山)이었던 백두산은 아무런 중요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뭇 산 중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이는 수도인 한양(漢陽)과 백두산에서 한양을 연결시켜 주던 산줄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이 산맥 체계에는 하천과 같은 수계(水系)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산수(山水)를 함께 고려했던 『산수고』는 제외하더라도, 산줄기만을 대상으로 하여 분류한 『산경표』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산경표』의 산맥 체계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산맥만을 대상으로 하였음에도 수계가 포함된 것이었고 오히려 수계가 기준이었다. 지형을 이해할 때 그 땅 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포함시켰는가, 인간을 배제하고 땅속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가 하는 차이는 결과는 땅을 바라보는 사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하천 중심의 인식 체계라 할 수 있는 조선의 자연 인식체계는 인간을 바탕에 둔 인간주의적 자연지리학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20세기에 도입된 서구 및 그를 수입한 일본의 자연지리학이나 지형학 체계로 변모되면서 인간을 배제한채 자연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였으며, 그것도 땅 속의 지질을 기준으로 산맥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인에 의해 성립된 산맥체계에 대한 반발과 그를 시정하기 위한 계몽적 노력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는 민간차원에서 실시될 수 밖에 없었다. 1910년에 설립된 조선광문회는 빼앗긴 국토와 역사의 줄기를 되찾으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조선 구래의 문헌 도서 중 중대하고 긴요한 자를 수집, 편찬, 개간하여 귀중한 도서를 보존, 전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광문회에서 『택리지(擇里誌)』 『도리표(道里表)』에 이어서 1913년에 지리서로서 세번째로 간행한 책이 『산경표(山經表)』였다. 이 활자본의 책머리에 실린 서문 겸 해제에는 이 책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윽히 생각해 보건대 우리나라의 지지는 산을 논한 것이 많으나 허물을 들추어 보면 산란하고 계통이 없다. 『여지고』는 신경준이 편찬한 것인데, 그 「산경(山經)」에 산의 줄기와 갈래의 내력을 바르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높이 솟아 큰 산이 되고, 옆으로 달려가 고개가 되고, 산이 굽이돌아 안아서 읍치(邑治)를 만든 것 등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음이 없으니, 진실로 산의 근원을 알려주는 조종이 된다. 『산경표』는 「산경(山經)」을 강(綱)으로 삼고, 옆에 이수(里數)를 부기한 것을 목(目)으로 삼아 나열하여 놓았으니, 모든 구역의 지경과 경계가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분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탕으로 삼은 「산경」의 금상첨화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로 지리가(地理家)의 나침반이 될 만하다 하겠다."
고 하여 『산경표』를 우리나라 산의 줄기와 갈래를 제대로 나타낸 책으로 평가하고, 이 책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통치 기간 동안에 이러한 산맥체계는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어, 조선의 원형적인 자연 인식 체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즉 양보경 교수의 설명에도 나오듯이 백두대간의 백두산은 괜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일제가 교묘하게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백두대간을 5조각으로 동강을 낸 다음 산맥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이를 한국 지리에 인입시켜 백두산이라는 우리 민족의 성산을 족보에도 없는 산으로 만들고 우리 민족이 신성시 여기던 범을 늑대와 결합시켜 호랑이로 만들어 근역강산맹호기상도를 토끼 모양으로 만들어 나약하고 힘없는 나라로 인식케 한 것이 별다른 의도없이 생긴 것일까.
이렇게 안타까운 양보경 교수의 마음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학문의 내용과 수준은 그 시대의 생활양식의 구조와 지식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다. 조선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체계의 변화는 조선 사회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지식의 축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연환경이 가지는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조선 후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권(生活圈)에 기초한 강 중심의 인간주의적 자연지리학으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강하였다. 또한 이는 조선 후기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가 지역 내지 국토의 공간 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인식한 실학적 지리학자들에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지리학의 다양화, 계통지리학적인 전문화의 추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근대지리학적인 면모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다시 옛 지리학의 체계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화의 원형을 정확히 알고,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모색해 보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창조와 발전은 원형의 올바른 인식에서 출발한다. 국토를 이해했던 우리의 원형적 사고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다시 광주산맥으로 돌아가 본다.
산맥의 북서쪽은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 남동쪽은 북한강(北漢江)이 경계를 이룬다. 즉 북한강 유역과 임진강(臨津江) 유역 사이의 산줄기라고 알려져 있다. 포천과 화천 사이의 광덕현(664m)과 금곡과 마석 사이의 마치고개(242m)가 주요 고개이다. 광주산맥은 팔당 협곡을 건너 남쪽으로 이어지며, 한강을 건너 하남시의 검단산(685m), 광주의 청량산(480m)·문형산(497m)이 솟아 있다. 이 가운데 남한산성은 청량산에 있고, 산맥은 용인 남쪽에 이르러 끝난다. 이 산줄기는 대부분 경기변성암복합체의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맥의 북동부에는 백산(白山, 1,267m)·대성산(大成山, 1,175m)·광덕산(廣德山, 1,046m)·국사봉(國師峯, 1,189m)·화악산(華岳山, 1,468m)·명지산(明智山, 1,267m)·현등산(懸燈山, 936m) 등 1,000m 급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서남쪽으로 올수록 점점 낮아져서 서울부근에서는 북한산(北漢山, 837m)·도봉산(道峰山, 710m)·인왕산(仁王山, 338m)·관악산(冠岳山, 629m) 등 5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로 변하며, 한강을 건너서는 100m 전후의 구릉지로 낮아진다.
이 산맥의 방향은 중국방향(북북동∼남남서)이며, 차령산맥(車嶺山脈)과 노령산맥(蘆嶺山脈)과 같은 방향이다. 지질은 주로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개석(開析)을 크게 받았고, 하천에 의하여 곳곳에서 절단되어 산맥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양수리~청평 간의 골짜기와 경안천 골짜기가 단층에 의해 형성된 것처럼 일직선으로 뻗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 부근의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 화강암산지는 절리(節理)와 박리작용(剝離作用)으로 큰 바위가 드러나 뾰족한 봉우리를 이루거나 인수봉과 같이 돔상(dome, 狀)의 둥근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암벽등반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 산맥의 연평균기온은 10∼13℃이고, 식물은 온대 중부지역의 낙엽활엽수림대를 형성한다. 침엽수도 있으나 낙엽활엽수가 절대 우세하다. 우리나라 고유식물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저지대와 구릉지는 대부분이 개간되어 있고, 졸참나무·박달나무·신나무·달피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주류를 이루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백과사전에는 분명히 광주산맥이 임진강과 북한강의 분수계라는 말을 하고 있다. 당연하긴 하지만 여기서도 또 의문점이 생긴다.
유역의 의미
우선 백과사전에서는 광주산맥의 규모가 북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의 사이라고 하였는데 사실 유역(流域)이란 개념이 산맥을 설명하는데 왜 필요한지 의문이 생긴다. 즉 유역이란 한 분수계 안에 흘러드는 빗물과 눈이 녹은 물이 한 하천으로 모이는 범위를 '하천 유역'이라 하는 바, 가령 한강의 경우 한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는 산줄기는 백두대간, 한북정맥, 한남정맥 등이다.
그런데 강을 품고 있는 다시 말해서 강의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 안의 범위가 유역인데 거꾸로 북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의 사이라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이므로 '북한강의 북쪽 울타리이자 임진강의 남쪽 울타리'로 바꾸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산경표에서 말하는 한북정맥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료로 보아도 이 산줄기 이름은 산경표가 먼저 사용한 개념인데 이를 광주산맥이라고 이야기하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유역 개념은 산줄기를 설명할 때 필요한 개념이지 -지리학적인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지질구조선을 이야기하는 산맥에서는 무익한 개념인 것이다.
각설하고 분명 광주산맥은 도봉산을 지나 관악산으로 흐르고 있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그 다음 행에는 마치고개로 진행을 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산맥은 물속으로도 진행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남양주에서 청평으로 가는 고개인 마치고개부터 서쪽으로 도봉산까지의 왕숙천과 중랑천을 다 포함한 그 평탄면 그러니까 남양주시 전체가 광주산맥이 되는 결론이다. 아니면 더 나아가 남한산성의 청량산부터 관악산 그러니까 송파, 강동구,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등 서울 전체가 다 광주산맥이라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잘 오던 산맥이 두 개로 나뉘어 하나는 도봉산 쪽으로, 다른 하나는 천마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 쪽으로 갔다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 고토가 남산 위에 올라 바라보면서 이름한 광주산맥은 동쪽으로는 남한산성, 용인으로 가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도봉산과 관악산도 가는 그런 줄기하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를 산줄기 개념으로 풀어본다면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수락지맥이 마치고개로 가는 거라고 보면 너무도 간단하기만 하다.
이상하긴 하지만 이게 산맥개념이라는 것이란다.
이는 조금 전 산맥의 정의를 "그 외형은 선상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갈라지고 길게 늘어 서지 않은 상태로 한강을 건넌다고 하면 안 되고 "굵고 길게 늘어서서 한강을 건넌 것"이라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지도를 그릴 때 모형도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지 말고 그냥 철령 부근부터 남양주를 지나 서울, 용인까지 다 광주산맥에 속한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그 남쪽 이하는 즉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갈라져서 충청북도의 북부, 충청남도의 중앙부을 지나 충청남도의 보령까지 연결되는 산맥인 차령 산맥이 커버하고 있으니 문제없다는 것 아닌가. 차령산맥은 어떠한가. "오대산에서 시작된 산맥은 강원도 평창군과 원주시에서 남한강의 지류가 산맥을 자르고 지나가며, 충북의 진천군에서는 금강에 의해 다시 개석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박수진, 손일 위 논문) 143쪽"고 하니 차령산맥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광주산맥 밖의 산들 즉 안성땅과 여주, 이천 그리고 수원과 시흥, 안산, 화성 쪽에 있는 산들은 족보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산들인가? 바로 이런한 점들에 산맥의 맹점이 있는 게 아닌가? 분명 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문에서 광주산맥이나 차령산맥이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였다고 하여 그 산맥의 '족보성'을 인식을 하였다. 그렇다면 광주산맥이나 차령산맥은 산맥이 아니라 지맥이라고 봐야 옳다.
기왕의 선이 나왔으니 하나 더,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시험 문제를 풀기위하여 달달 외우고 봐야만 하였던 낯익은 그림이 있다. 높새바람이라는 것인데 "일정지역에서 그 지역만의 특수한 바람이 불 경우 이를 지방풍이라 하는 바, 그중 높새바람이 대표적이다. 높새는 북동을 가리키고 북동풍을 높새바람이라고 한 것이다. 여름에서 초가을에 차고 습기가 많은 기단이 동해까지 확대 정체하다가 태백산맥을 넘고서부터 서쪽으로 불어내리며 푄현상을 일으켜 고온건조하게 변하는 것이다 기온이 높아지고 매우 건조해지는게 특징이다. 태백산맥 서쪽 경기도 지역이나 충북 지역에 영향을 미쳐서 농산물이 말라죽거나 하는 현상을 초래 할 수도 있다. 유럽의 알프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므로 푄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이기도 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온다.
이렇게 우리에게 태백산맥 등 산맥은 일렬로 늘어선 산지의 모습으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태백산맥을 백두대간으로 4글자만 바뀌면 이해하기가 너무 쉬워진다.
즉 분명 태백산맥인데 영향을 주는 곳은 영서지역, 경기도 그리고 충청북도라고 국한되어 있으므로 이를 그냥 남한의 백두대간이라고 하였으면 낙동정맥 이하의 정맥 서쪽 지방은 높새바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바로 이해가 가는 것이다. 하지만 태백산맥이라고 하였으니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태백산맥 서쪽은 높새바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까라는 의문을 하나 더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산줄기는 우리네 생활과 친화적인 것이며 과학적이기까지도 하다.
모형도라는 지도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지명을 산맥의 분포와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일반도에서는 글자로 그 방향성과 폭만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교과서에서는 산맥의 전체적인 분포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백지도 위에 선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것은 교육적인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과연 그럴까. " 일반도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하는 지도도 포함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필자가 호남정맥을 진행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노령산맥을 찾다보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분명 산경표 상의 체제하에서 볼 때 영산기맥 쪽인 전라북도 정읍과 전라남도 장성군의 경계이 있어야 할 노령산맥 상의 노령이 주행을 달리하여 이 호남정맥 쪽의 순창군 덕치의 노령에 와 있는 것이었다. 노령이라고 해서 똑 같은 노령이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연맥(連脈)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박철웅 교수 같은 이는 산맥은 선의 개념이 아닌 체적 즉 부피의 개념을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도에서 보듯 노령산맥은 선의 개념으로 되어 있지 '폭'의 개념이 아니지 않는가?
비전문가인 민간인들이 나서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었던 우리는 분명히 선으로 표시된 지리부도를 보고 배웠었고 성장하여 우리의 산줄기 광주산맥을 가고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도를 보고 아무리 가보려해도 도저히 갈 수가 없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산악계에서는 답사가로서 그런대로 선구자 역할을 했던 전(前)노인봉 산장의 산꾼 성량수는 필자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태백산맥에 이어) 차령산맥을 종주하려고 두로봉을 출발하였는데 한강에 딱 걸려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 그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 건 1980년 지도쟁이 이우형 선생에 의해서였고 1990년 들어오면서 선생의 강연, 홍보 등이 조금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를 강타한 IMF 후폭풍은 양산된 40대 이후의 실업자들을 대거 산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그 사람들은 백두대간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하면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전문 산악인 몇 명이 걷던 그 길을 안내산악회가 주도하기 시작했고 등반 위주의 대학산악회에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산악회가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걸으면서 그들은 생각했다.
아! 이게 정말 산줄기구나. 이 백두대간이 정말 우리나라 산맥들의 참이름이구나. 그런데 왜 우리는 백두대간을 몰랐었지? 왜 선생님들이나 교과서에서는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지?
산에 다니는 사람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태백산맥때문에 속아서 살아왔다고 .... 당황스럽긴 조정래 선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급해진 지리학계는 전가의 보도인 지질구조선을 꺼내든다. 그러면서 몇 개의 논문이 나오고 그동안의 지리학계의 무능, 무관심에 대해서 자성하는 목소리도 한 쪽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1994년 노희웅 선생은 자신의 전공인 지리를 아이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기 위하여 만든 '교실밖 지리여행'에서 백두대간을 언급하고 그 책은 곧 중등지리교사나 아이들에게 큰 파급을 미쳤고, 조석필 선생은 의사라는 본업은 내팽겨치다시피 하고 청진기와 주사기 대신에 등산화를 다시 신고 수 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1년간 홀로 자판을 두들겨가면서 1994년 '산경표를 위하여'라는 책을 만들기에 이른다. 자비 출판이라는 명목으로 혼자서 만든 책은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또 소위 '산경표 교도(敎徒)'들로부터 강연과 개인적인 질문들이 줄을 잇자 1997년 선생은 다시 청진기를 내려 놓고 '산경표를 위하여'라는 책을 수정, 보완하여 '태백산맥은 없다'로 지리학계에 화두를 던지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하여 숫자쟁이 박성태 선생은 실제로 우리나라 산경표에 나온 산줄기들을 일일이 다 답사를 하면서 대간과 정맥이 10대 강을 구획한다는 원칙에서 일부 벗어나 있음을 지적하여 산경표를 새롭게 해석하고 정맥의 하위 개념인 기맥, 지맥까지 파악하여 2004년 '신산경표'를 발간한다.
나아가 자하 신경수 선생은 우리나라 산줄기를 수체계(樹體系)로 인식하여 이를 도표로 완성하였고 스스로는 우리나라 30km급 이상 산줄기를 완주하고 10km~30km급 산줄기를 단맥으로 그어 800여 개의 단맥 중 400개가 넘는 산줄기를 직접 답사하면서 산줄기의 연결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결 론
2009년 교육과정 개편 때 드디어 '조상들의 국토관'이라는 제하에 산경표가 지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고, 우리의 산경표가 선조들의 지리인식 정도로나마 소개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리학계는 이야기한다. "(산줄기와 산맥 등) 이 둘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그 장점을 잘 살리자."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산맥의 유무에 관한 논란은 부분적으로는 산맥의 목적과 성인에 대한 명확한 지형학적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인별로 분류된 산맥을 표현하려는 목적과 사용되는 지도의 축척, 그리고 교육의 목적에 따라 계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박수진, 손일 위 논문 150쪽)"고 말한다. 그러고는 계속하여 "이 부분은 지리학 및 지리교육 전문가와의 토론을 통해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들의 산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교육과 홍보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결론을 맺는다.
학계의 이런 주장이 과연 이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지리학 및 지리교육 전문가 몇 명의 논의를 가지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으며 지리학계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불신을 다 해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산맥과 산줄기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데 그들을 제외하고 자신들끼리 논의를 하겠다는 것인가? 역사에 가정이란 것은 불필요한 것이겠지만 이우형 선생, 조석필 선생, 노희웅 선생이 없었더라면 과연 지리학계의 자기 반성 나아가 근자의 이런 논문이나 학술적인 성과물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나왔을까? 하긴 학자가 아닌 일개 산꾼이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런 논쟁의 대열에 낀다는 자체가 학자들에게는 모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리교육을 함에 있어 그 지리를 70%가 산지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의 보존과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개발한다는 차원에서도 우리의 산줄기을 알고 공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산줄기나 산맥의 생성 원리, 하천 쟁탈, 두부 침식, 곡중분수계, 경동성 요곡운동, 지표곡면도, 지괴....이런 것들을 가지고 홍보를 아무리 잘 해도 일반인들 중 얼마나 그걸 알아듣고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 것들이 홍보가지고 될 것인가? 그냥 간단하게 10대강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만 그려주고 그것을 토대로 지리 교육을 할 때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알아듣는 것이지 일반인들이나 모든 학생들을 다 지질학자로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자, 다시 이야기한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산의 대부분은 mountain이 아니고 hilll의 개념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등산 혹은 등반이 아니라 hiking 내지는 trekking 정도이니 산경표를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만든 지도로 공부를 하고 좀 더 어려운 산맥 개념의 산맥도는 일본인이 작명한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가지고 고등교육 즉 대학 이상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산맥 개념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산맥이름을 쓰자.
산맥이름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지리학자들이 구시대의 유물같은 14개의 산맥이름을 버리고 우리나라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가령 '백두대산맥'이라 하고 여기서 뻗어나간 지맥들을 정맥이니 지맥이니 하는 하위 개념을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제대로 정리하면 멋진 산줄기 그림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모든 일반인들이 환영하는 일 아니겠는가.
우리나라같이 조그만 나라는 우리나라대로 알맞는 산줄기 체계가 있다. 우리는 상당 기간을 우리나라에 맞는 민주주의로 살아왔잖은가.
지질학 개념인 산맥은 이참에 지질도로 내려보내고 우리의 산맥도는 산경표를 근간으로 이를 현대 과학에 맞게 새롭게 그리면 되지 않겠는가.
도로명이니 거리명으로 예산을 쏟아부은 것에 일부분만 노력을 경주하고 예산을 투자해도 중분히 가능한 거 아닌가?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려는 것 보다는 올바른 지리교육을 확립하고 읽기에도 창피한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 산맥 이름을 더 이상 보지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글을 맺으면서 필자는 존경하는 조석필 선생 '태백산맥은 없다'에 빗대어 한 마디로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광주산맥은?
"광주산맥은 고토 분지로의 창작물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첫댓글 우리산 알리기...열심히 하시는군요.
너무나 장문이라 글쓰는데 투입된 과다한 노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글도 경제성이 있어야 쓰는 이나 읽는 이가 덜 불편한데....
결론은 광주산맥은 없다군요.아울러 태백산맥도 없고.
대체로 동의할만한 논지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 모든 산들의 뿌리가 백두산에 근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식이면 유럽의 모든산의 조종은 몽블랑이겠고,북미는 맥킨리,남미는 아콩카구아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은 당연히 에베레스트겠지요.
조종산을 근원으로 해서 분수령을 이어가면 어느 대륙이던 말단까지
물건너지 않고 선을 그을수 있습니다.당연히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없으니
워낙 글재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유라시아판 구조에서는 히말라야에서부터 모든 게 시작되는 걸로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산들도 크게 보자면 중국의 대싱안링산맥과 이어진 걸로 보여지고...
그렇다면 우리나라 산지를 하나의 산맥 혹은 산체로 본다면 이해가 쉽게 갈 것 같더군요.
그런 연후에 백두대간이든 정맥이든 아니면 다른 개념의 산줄기를 그으면 될 것도 같고....
작은 규모의 산줄기를 너무 세분 시켜서 산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형님 말씀 깊게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기예보때마다 보믄 어떤때는 백두대간 어떤때는 태백산맥이란 말이 아직도 혼용되고 있더만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걸 찾아야겠죠...하지만 산행은 극히 개인적인 행위라서....너무 무거운 주제로 산행하는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 제 사견입니다...
저희는 그저 있는 산줄기든 산이든 가면 그걸로 끝나는 거고 사실 그래야 하는데....
쓸데없는 데 너무 신경쓴다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고....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기에 어느나라도 그런 방법으로 산맥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백두대간식으로 하면 스페인의 지부롤터해협에서 시베리아끝 베링해까지
에베레스트를 지나는 유라시아대간 그을 수 있습니다.
토끼와 비유했다든지 하는 분지로의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나쁜놈같으니.
산행을 하면서 우리들의 산흐름을 정확히 알고 하는 것이 좋겠지요, 후손에도 전해주고,
이제 시작인 것 같네요, 현오님같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보다 빨리 다가오겠지요.
하긴 뭐, 친일파의자손들이 전부 우리나라의 요직을 아직도 꿰차고 있는 나라니까요.......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노인으로 비유한 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걸 고토가 갖다 써먹기도 하였고....
그러니까 실생활과 밀접한 지리학에선 산경표, 학문적 냄새가 강한 지질학에선 산맥을 사용하자.
글고 산맥은 왜정시대 꺼 말고 우리가 다시 연구하여 사용하자..이말이죠?
아 전부터 이부분 술꾼님의 의견이 궁금했습니다 ㅎ
요켠대 그런 이야기입니다.
실생활에 관계된 것이 지리학일테고 땅 즉 지구의 근원을 따지는 것은 아무래도 지구과학 쪽일테니까...
백두산이 간도(지금은 중국땅)와 물안건너고 연결되는 유일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지는 달문을통하여 송화강으로 물을 내 보냅니다
결국 대간, 정맥을 따지는 건 우리식이고 그 우리식의 지리학 개념이 낮은 구릉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지질구조선이 거의 없어진 지역도 많으므로 산맥을 논하기에는의미가 없다는 얘기죠.
그럴 경우 우리나라의 아버지 산은 백두산이고 또 알맞게도 그게 대륙에서 들어오는 관문에 떡하니 버리고도 있으니 안성맞춤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건국 설화와도 맞물리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걷는 발길만큼이나 현오님의 우리 산줄기 연구에대한 열정에 탄복합니다.
아는듯 모르는듯 걷고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듯합니다...감사드립니다
부끄럽습니다.
이런 작업의 필요 없이 열심히 산줄기나 타야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