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여행] 천년세월을 지켜낸 창락사 칠층모전석탑........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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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천년세월을 지켜낸 창락사 칠층모전석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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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가면 제천외곽 영월, 정선, 방향으로 뻗어진 장락동 내토로 대로변을 달리다 보면 우측으로 장락동 장락
사가 있는 허허벌판에 1000여년을 지켜온 고고한 탑이 하나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문
화와 외세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긴 세월을 버텨온 만큼 빛바랜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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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사의 우측 넓은 벌판은 옛날 통일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세웠다는 창락사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유랑자
는 내토로를 지나쳐 다니면서 언제 시간이 나면 한번 둘러본다는 게 어떻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꽤 시간이 흘
러 버린 것 같다. 오늘 유랑자는 마음먹고 시간을 내어 ‘칠층모전석탑’을 둘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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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樂洞 七層模塼石塔[장락동 칠층모전석탑].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10세기 경, 현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창락사(蒼樂寺) 터에 조성된 모전석탑.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에 소재하고, 1967년 보물 제459
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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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원래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온 역사!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불교가 처음 한국에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
림왕(재위 371~384) 2년인 372년에 고구려에 전래된 것이 공식 기록이다. 물론 그 이전에 불교가 이 보다 먼저
전해졌으리라는 것을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梁: 502~557) 때 승려 혜교(慧皎: 497~554)가 저술한 [양고승전
(梁高僧傳.519)] 등의 문헌에 나타난 내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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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탑은 원래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온 역사이래.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던 불가의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따라서 불교도에 있어서는 건립 초기에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까 모전탑은 우
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262년이 흐른 뒤에 목탑이 아닌 돌로 쌓은 모전석탑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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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으로 당시 신라인들이 회흑색의 점판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후 이를 쌓아
건축한 것이다. 문화재청 등의 설명에 따르면 현 제천시 장락동 일대에 있었던 신라시대 고찰 창락사(蒼樂寺)에
서 조성한 탑이라고 하나, 사실 창락사(蒼樂寺)라는 사찰명은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구전되는 명칭이고, 본 모전
석탑을 세운 사찰의 정확한 명칭은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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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전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으로 634년에 건립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모전석탑은
한국만의 고유한 양식으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전탑에 사용된 돌은
안산암으로 삼국시대 신라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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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에 이미 벽돌을 구워 전탑을 만들 기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모전석탑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는 모전석탑이 보다 경제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벽돌보다 경제적으로 불리하였으나 그러나 보다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견고한 탑을 원하여 반 영구적인 돌을 선호하였다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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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따르면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 무렵 폐사되었다고 한
다. 남한강 유역의 다른 절터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특히 크게 번창하여, 이 시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가장 많
이 출토된다. 현재는 탑의 동쪽 부분에 장락사라는 절이 새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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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일명 장락동 장락사 칠층모전석탑[長樂里七層模塼石塔(보물 제459호)] 또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병 장수
를 기원하는 ‘장수 탑’이라 불리는 고탑으로 드넓게 펼쳐진 장락동 벌판 한편에 높이 9.1m의 칠층모전석탑이 서
있다. 멀리에서 보면 마치 작은 성냥갑같이 작게 보이지만 그러나 다가가면 갈수록 웅장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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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또한 잠시 합장을 하고 여기를 오가는 모든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운 탑이 되길 기원해본다.
본시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
塼塔]이라고도 한다. 현재 탑이 서있던 절터가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층고 7층[9.1m]
에 이르는 거대한 이 탑이 주위를 압도하듯 버티고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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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전석탑은 총 7층에 이르는 대형 탑으로, 다른 모전석탑과 비교했을 때 각 층의 줄임 비율이 적당하여 장중
한 기풍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외형 또한 일반 전탑과 매우 흡사하다. 탑의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으
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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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창락사(蒼樂寺)라는 사찰명은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구전되는 명칭이고, 본 모전석탑을 세운 사찰의 정확한
명칭은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암튼 구전에 정해오는 선덕여왕이 세웠다는 창락사에 세워졌던 고탑이 1000여 년
의 세월을 버티며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장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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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장수 탑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탑의 형태는 유랑자가 여주 신륵사에 갔을
때 보았던 보물 226호인 신륵사 ‘다층전탑[높이 9.4m]’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이곳 모전탑은 신륵사 다
층 석탑과는 달리 상륜부가 없다, 장락동 창락사[蒼樂寺] 터에 조성된 모전석탑!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2
번지에 소재하고, 1967년 보물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탑의 동쪽 부분에 장락사라는 절이 새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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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이만한 탑이라면 응당 사리장엄구 및 각종 유물들이 봉안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탑에서는 해당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봉안유물이 없지는 않았다. 1967년 탑 수리 당시 5층 옥신부에서 길이
50-54 ㎝, 높이 31 ㎝인 부등변 사각형 화강암 석재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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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창락사는 정거랭이[장락리 옛 마을이름] 벌판 사방 오리가 절터였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이 절들의 규모가
얼마가 컸던지 오보마다 석등이요, 십보마다 불상이고, 백보마다 가람이었다고 하니, 이 탑 역시 정거랭이에 있
었던 이름 모를 가람의 탑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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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 유구가 정확히 발견되진 않았지만 본당에서 절골 까지 5리 사이엔 회랑이 연하여 승려들이 눈비를 안 맞
고도 수도했다 하며, 사월초파일과 칠월칠석날이면 3,000여 명의 승려가 목탁과 바라를 치고 법요식을 거행했다
고 하니 정말 통일신라대 불교에 대한 불심은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탑을 자세히 뜯어보면 수많은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7층으로 쌓았으며, 1층 탑신에는 간간이 장대한 화강석을
끼워 구성하고 있어 벽돌 탑의 흉내를 내고 있으면서도 석탑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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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모전석탑은 수많은 석재들이 겹쳐져 결구되는 특성상 전탑보다 내구성이 더 강하다. 이 탑에서도
그런 내구성을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2-13세기에 조성된 한국의 모전석탑으로 천 년 전 원형 거의 그대로 현
대까지 전해여 당시 제천 지역의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에 1967년 6월 23일 보물로 지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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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樂殿[극락전]주련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극락당 앞 보름달 같은 얼굴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옥호와 금빛 얼굴이 허공을 비추네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만약 누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경각에 한량없는 공덕이루리라
[원전:기암 법견(奇巖 法堅. 1552~1634)대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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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은 단층으로 여러 개의 자연석으로 짜여 탑신 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 부는 회흑색의 점판암을 벽돌과 같이
잘게 끊어서 꼭대기까지 쌓아 올렸다. 1층 탑신에는 귀기둥을 따로 끼우고 남북 면에는 내부로 통하는 감실을 내
고 여기에 높이 1.37 m, 너비 1.08 m 크기로 네모난 문틀과 두 짝의 돌문을 만들어놓았는데, 현재는 이 중 남쪽 문
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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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탑 전체가 벽돌탑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 두 감실의 문틀과 문짝, 그리고 네귀에 세운 귀기둥은 별도
의 화강석을 이용하여 새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석탑 맨 윗부분에는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가 있
었으나 이 또한 지금은 없어졌다. 1967년 보수할 때 상륜부를 왜 만들지 않았는지는 알수는 없지만 조금은 안타
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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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觀音殿[관음전]주련
一葉紅蓮在海中 [일엽홍련재해중] 한 떨기 붉은 연꽃이 바다에 피어나니
碧波深處現神通 [벽파심처현신통] 푸른 파도 깊은 곳에 신통을 보이도다
昨夜補陀觀自在 [작야보타관자재] 간밤에 보타락가산에 계시던 관자재보살이
今日降赴道場中 [금일강부도량중] 오늘 이 도량에 강림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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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무너지기 직전에 탑을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무늬가 조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
어 혹 탑의 머리장식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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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귀기둥을 별도의 화강석으로 끼워 맞춘 방식은 다른 모전석탑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착상이라고 하겠다.
지붕은 위아래가 모두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지붕 밑의 층단 받침은 8단에서 시작하여 맨 위층에서는 6단으로 구
성되고, 지붕 위의 층단은 9단에서 시작하여 위층에서는 7단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탑 전체에는 회칠을 했던 흔
적이 남아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만 남기고 모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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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해체·수리할 때 5층 옥신부에서 길이 50~54cm, 높이 31cm 사각형의 화강암재 속에서 한 변 13.5cm, 깊
이 4.5~5.5cm의 네모난 사리공이 확인되었으나 내용물은 없었다고 한다. 7층 옥개석 윗면에서 꽃 모양이 투각된
청동편이 발견되어 상륜부는 청동제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탑의 양식이나 전재가공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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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락사가 자리한 곳은 옛 문헌에 보이는 정거랭이[옛 마을이름] 벌판으로 정거랭이 사방 오리가 옛날 창
락사(昌樂寺)가 있었던 절터라고 하니 이곳에 큰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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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모전석탑은 수많은 석재들이 겹쳐져 결구되는 특성상 전탑보다 내구성이 더 강하다. 이 탑에서도 그
런 내구성을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2-13세기에 조성된 한국의 모전석탑으로 천 년 전 원형 거의 그대로 현대
까지 전해여 당시 제천 지역의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에 1967년 6월 23일 보물로 지정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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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장락사는 송학산 강천 사에서 수도하던 수도승 법해(法海)스님이 1964년부터 상주하면서 불사를 일으켜
창건한 것으로, 탑 뒤에 초막을 짓고 주석한 후인 7년 후에 법당을 신축하여 지금의 장락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법해스님은 탑 주변을 정비하고 꾸준히 불사하였으나 노쇠하여 1973년 2월 9일에 열반하자, 그해에 성원
(聖元)스님이 주석하면서 관음전을 신축하고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봉안하여 지금의 가람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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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장락사 칠층모전석탑과 그 주변에서 금동불상, 금동편, 그리고 백자편이 발견되어 그 심증을 확인해 주
고 있다. 하지만 모전석탑이 세워졌던 절이나 모전석탑 자체에 대한 문헌기록은 전하는 바가 없어 사찰이 언제
창건되었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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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사 칠층모전석탑 찾아가기◀
*주소:충청북도 제천시 탑안로8길 24
(지번)충북 제천시 장락동 64
*대표번호: 043-643-7502
*주차: 장락사 주차장 있씀
*애완동물: 동반가능
*유모차/휠체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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