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야화> 안순왕후 한씨
예종 왕위 오르자 후궁서 왕비 승격 아들 제안대군 낳은 것이 큰 힘 돼
재위 1년2개월 만에 돌연 예종 승하
장밋빛 궁중생활, 하루아침에 ‘잿빛’ 왕좌도 아들 아닌 성종에게 넘어가
서열, 성종 생모 인수왕비 뒤로 밀려 이후 대비로서의 삶도 순탄치 못해
1461년 세자빈으로 있던 장순왕후(章順王后·1445~1461년) 한씨가 사망한 후, 세자빈의 자리가 공석이 됐다.
왕실에서는 한백륜의 딸을 세자궁에 들이고 종 5품 후궁인 소훈(昭訓)에 오르게 했으니,
이 인물이 바로 훗날 예종의 비가 되는 안순왕후(安順王后·1445~1499년) 한씨다.
세자빈을 바로 선발하지 않고, 우선 후궁으로 들인 것이 주목되는데,
이것은 문종 때 연이어 세자빈이 폐출된 후 후궁 출신인 승휘 권씨를 승격시켜 세자빈으로 삼은 관행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세자로 있던 예종의 후궁으로는 숙의 최씨와 후궁 이씨도 있었는데,
안순왕후가 이들을 제치고 세자빈이 될 수 있었던 데는 평소의 행실과 더불어 1466년(세조 12년) 2월에
예종(세자시절)의 아들인 제안대군(齊安大君·1466~1525년)을 낳은 것이 큰 힘이 됐다.
1468년 9월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왕위를 이어받자 그녀는 바로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후궁 출신으로 실질적으로 왕비가 된 첫 사례다.
후궁에서 왕비가 된 그녀의 사례는 이후 성종의 후궁으로 있다가 왕비에 오르는
폐비 윤씨와 정현왕후의 사례로 이어지게 된다. 안순왕후는 남편이 왕이 되고,
아들인 제안대군까지 있었으니 왕비로서의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469년 11월 예종이 재위 1년2개월 만에 승하하고,
예종의 후계자 자리도 제안대군이 아닌 자산군(성종)에게 넘어가면서,
왕실에서 그녀의 위상은 확 떨어지게 됐다.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왕후는 제안대군이 네살이라 너무 어리다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권력의 최고 실세 한명회의 사위 자산군으로 하여금 예종의 후계를 잇게 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희왕후가 대비로서 왕실 여성의 최고 서열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서열 2위를 두고 성종의 전왕 예종의 비 안순왕후와 현왕 성종의 생모 인수왕비간에 위차(位次) 논쟁이 일어났다.
성종 아버지인 의경세자 부인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왕비는 원래 세자빈의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인 1471년(성종 2년) 요절한 의경세자가 덕종(德宗)으로 추존되면서,
수빈(粹嬪)으로 칭해졌던 인수왕비가 공식적으로도 왕비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1471년부터 정희왕후가 사망하는 1483년까지 조선 왕실에서는 3명의 대비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대비 서열 2위를 정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실제 왕을 역임했던 예종의 비 안순왕후의 서열이 높아야 할 것 같았지만,
정희대비의 공식 발표는 인수왕비를 위로 한다는 것이었다.
1472년 2월20일 <성종실록>에는
“이제 의지(懿旨)를 받으니, ‘왕대비의 서차(序次)가 일찍이 인수왕비의 위에 있었으나,
세조가 항시 인수왕비에게 명하여 예종을 보호하게 하고 시양(侍養)이라고 일컬었으며,
또 장유(長幼)의 차례가 있으니, 그 위차(位次)는 마땅히 왕대비(안순왕후)의 위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안순왕후보다는 인수왕비의 서열이 높음을 공식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아들 제안대군도 왕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안순왕후는 실제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인수왕비보다 왕실 서열에서
밀리는 아픔을 맛본 셈이다.
안순왕후는 예종과의 사이에서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를 낳았는데,
현숙공주는 연산군 때 최고의 간신 반열에 오르는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혼인했다.
임광재는 부마(駙馬)의 신분으로 첩을 두었다는 죄로 유배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현숙공주와는 별거생활을 했다. 짧은 왕비생활과, 그 이후 대비의 삶도 별로 순탄하지 못했던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년) 12월23일 창경궁에서 승하했다.
왕비의 무덤은 이미 조성돼 있던 예종의 창릉(昌陵) 옆에 동원이강릉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1499년 2월14일 <연산군일기>를 보면 “대행(大行) 왕비를 창릉에서 장사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생전에는 남편과 짧은 시간을 함께했던 안순왕후였지만, 사후에는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