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대학교의 한 연구팀이 자폐를 가진 아이들의 시각적 사회기술은 독특한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가 있는 아이들과 있지 않은 아이들 모두에게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모습이 담겨있는 만화를 보여주고 스크린과 연결된 시선 추적 장치를 통해 아이들의 사회적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찰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얼굴 표정이나 사회적 상호작용과 같은 주변 환경의 사회적 요소에 점점 더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자폐가 있는 아이들은 감촉이나 기하학적 모양과 같은 비사회적 자극에 더 관심을 보이곤 한다. 제네바대학교 연구팀은 만화를 보는 동안 아이들이 어디를 보는지 관찰해 자폐 아동의 관심이 비장애 아동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폐 아동은 자라며 점차 저마다 다른 주의 선호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라이프(eLife)에 게재된 해당 연구는 조기 개입을 통해 자폐 아동의 사회적 주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자폐 아동이 또래 비장애 아동과 더욱 유사한 발달 과정을 거치도록 하여 맞춤형 개별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존과 적응에 중요한 선천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타인의 존재를 감지하는 섬세한 주의 체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신생아 때부터 얼굴이나 얼굴과 유사한 형상, 특히나 움직이는 얼굴에 큰 흥미를 보인다. 이처럼 유아기에 생물학적 움직임에 대한 흥미를 갖는 것은 아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데, 주변 환경 탐색과 상호작용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하여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허나 ASD가 있는 아이에게는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이러한 기초적인 사회적 흥미가 부족할 수 있다. ASD는 굉장히 다변적인 신경 발달 장애로 반복적 행동 양상, 제한된 관심사와 더불어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한다.
시선 추적
그렇다면 모든 자폐 아동이 이러한 사회적 어려움을 동일하게 겪을까? 혹은 장애의 정도나 연령에 따라 차이를 보일까? 제네바대학 연구팀은 실시간으로 안구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시선 추적 장치를 사용해 166명의 자폐 아동과 51명의 비장애 아동이 짧은 만화를 자유롭게 시청하도록 하여 아이들의 시각 선호도를 분석했다. 표본의 동질성을 위해 참가자들은 전부 2세에서 7세 사이의 남아로 구성되었으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제네바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의 박사후 연구원이자 해당 연구의 제1저자인 나다 코조비치에 따르면 각 아이들은 별다른 지시 없이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놓인 어린 당나귀가 등장하는 3분짜리 만화를 시청했다. 만화는 연구를 위해 특별 제작된 것이 아닌 참가자 연령대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만화가 상영되었다.
ASD의 선호의 비동기화
만화를 보며 비장애 아동은 캐릭터 간 사회적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이가 들면서 서로 같은 사회적 요소에 집중하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허나 비장애 아동에게서 관찰되는 이러한 '동기화' 현상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폐 아동은 만화 속 사물이나 배경의 불규칙성 등 다른 유형의 자극에 관심을 보이며, 나이가 들며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적 선호를 발전시킨다.
제네바대학교 심리학 및 교육과학대학의 심리학과 정교수이자 연구의 공동 저자인 다프네 바블리에에 따르면 자폐 아동 사이에서 공통된 선호를 가진 하위 그룹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비장애 아동에게서 관찰되는 동기화 현상이 자폐 아동에게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발달 양상을 조명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또한 시각 선호가 비장애 아동과 상대적으로 유사한 자폐 아동이 일상생활에 더 잘 적응하고 인지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연구에 사용된 만화와 같은 사회적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은 아이가 향후 사회생활을 하며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조기 치료의 필요성
연구를 이끈 제네바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부교수인 마리 셰어에 따르면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자폐 아동, 특히 발달 지연이 심한 아동의 경우 조기에 사회적 관심을 대상으로 치료적 개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연구는 자폐 아동이 어릴 때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갈수록 이에 점점 더 무관심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제네바대학교 연구팀은 시선 추적 기법을 조기 자폐 치료 덴버 모델(ESDM)이라는 행동 치료의 효력을 평가하는 데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고안된 이 집중 행동 치료법은 놀이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폐 아동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네바에서 2012년부터 100명이 넘는 3세 미만 자폐 아동이 ESDM을 통해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보았다. 연구진은 자신들의 획기적인 시선 추적 기술이 ESDM이 자폐 아동의 발달에 어떠한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지 밝혀내어 더 나은 발달 장애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