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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 14. 가롯 유다 - 마 26: 16. 기회
3. 유다가 배반하다 ( 26: 14-16. 막 14: 10-11. 눅 22: 3-6 )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은 30은 아마 30스타테르, 즉 120데나리온을 가리킬 것이다(NBD).
그것은 마리아가 드린 향유 값인 300데나리온(막 14: 5. 요 12: 5)보다는 못했으나 꽤 큰 금액이었다.
한 사람은 300데나리온 짜리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으나, 다른 한 사람은 120데나리온을 얻으려고 주님을 배신하였다. 이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지식과 무지, 믿음과 불신앙, 충성과 배신은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었다.
마 26: 14. 가롯 유다 -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
가룟 유다는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배신하였다.
사람은 심히 무지하고 악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의 곁에서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그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체험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고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다.
요한복음 6: 64,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1] 그 때에
향유 도유에 관계된 예수의 말씀이 막 끝난 때이자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간 때를 지시한다.
결국 이 장면은 대제사장들이 가야바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잡기 위해 모의하던 내용(1-4절)과 연결된다.
2]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거룩한 만수(滿數)인 '열두' 사도의 목록에는 대부분 맨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가 언급된다. 이 말석에 위치한 제자 가룟 유다는 베다니 도유 사건을 기화(奇貨)로 예수를 불의한 자들의 손에 넘길 것을 결심하게 된다.
* 마 10: 4 -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가룟 유다는 예수의 장사라는 암울한 예고와 무모한 물질의 허비 등으로 인해 예수 제자의 길을 포기하고 배반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물론 가룟 유다 배반의 근본 동인은 사탄이지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다.
* 눅 22: 3 - 열 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3절에서는 당국자들의 행위가 부각되었다면, 여기서는 유다의 배반이 '그 때 그가 갔다'는 마태의 전형적인 표현과 더불어 기름 부음 직후에 일어났다.
특히 '열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준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마저도 이런 죄에 빠지는 것을 보아도 우리 성도는 한층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탄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신뢰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능히 우리를 실족시킬 수 있다.
* 마 10: 36 -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미 7: 6 -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3]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가룟 유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언제 대제사장에게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배반 의지가 어떤 장애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매우 적극성을 띤 것이었다.
가룟 유다는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배신하였다. 인간은 심히 죄악 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그의 곁에서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그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체험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고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다(요 6: 64).
그의 불신앙은 없어지지 않았다. 또 그는 도둑이었다. 요한복음 12: 6은 그가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갔다고 말한다. 그의 돈 사랑은 없어지지 않았다.
또 사탄의 활동이 강하였다. 누가복음 22: 3은,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말하고, 요한복음 13: 27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말한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사탄의 능력보다 크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사람은 누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믿음으로 바로 살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마 26: 15. 얼마를 주려느냐? -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
그의 불신앙은 없어지지 않았다. 또 그는 도둑이었다.
그의 물질에 대한 탐심은 마침내 그를 멸망케 하였다.
1]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유다는 요 12: 6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의 욕심이 많은 자였다.
* 요 12: 6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는 그러한 탐욕스런 본성을 노출시켜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팔려고 그 값을 흥정하고 있다. 이 같은 사악한 흥정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간접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직접 화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돈을 탐하는 유다의 죄성이 강조되고 있다.
마가와 누가복음에는 약속만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돈을 직접 받은 것으로 되어 있어 그의 물욕에 가득한 행동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준다.
본문의 '넘겨준다'는 말은 그가 직접 예수를 묶어 공회에 넘긴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예수를 불의한 죄목(罪目)을 뒤집어 씌워 고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예수가 피소(被訴)된 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 수하에 있는 자들에 의해서였다(57-68절).
따라서 '넘겨준다'는 말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체포할 만한 적기(適期)를 마련하고 또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파송된 무리에게 예수가 손쉽게 체포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6, 47-59절).
여하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놓고 벌어진 흥정은 순식간에 완결되었다. 실로 죄악 된 계획은 죽음의 화살처럼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2]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기로 하고 받은 돈은 은 30 세겔이다. 은 30은 아마 30 스타테르, 즉 120데나리온을 가리킬 것이다(NBD).
그것은 마리아가 드린 향유의 값인 300데나리온(막 14: 5; 요 12: 5)보다는 못했으나 큰 금액이었다. 한 사람은 300데나리온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으나, 다른 사람은 120데나리온에 주님을 배신하였다.
이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지식과 무지, 믿음과 불신앙, 충성과 배신은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었다.
* 출 21: 32 -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출 21: 32에 의하면 황소가 남의 노예를 죽였을 때 은 삼십 세겔을 배상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예수는 노예의 값어치에 불과한 적은 액수로 불의한 자들의 손에 거래되었다.
Meyer는 이렇게 적은 액수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며, 이것은 단지 슥 11: 12의 예언을 자구적으로 맞추기 위해 그 액수의 양을 축소하여 기술한 것이라고 한다.
* 슥 11: 12 -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이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오히려 당시 공회와 유다 양자 간에 예수를 노예 정도의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고 멸시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좋다. (Robertson).
예수는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가장 고통받고 멸시받는 존재로 이 땅의 마지막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자기 비하를 통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멸시받고 고난받는 자들과 죄로 인해 절망 가운데 있던 영혼들을 구원하셨다.
* 히 4: 14-16 –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를 은 30 세겔에 팔아넘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 예수에 대한 실망 때문에 예수를 배반하게 되었다.
유다는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즉 민족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생각했었는 데 반해,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바로 이 점이 유다의 기대에 어긋났다. 결국 실망 속에서 유다의 헌신은 미움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마침내는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 유다가 예수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 그로하여금 어쩔 수 없이 봉기하게 만들려고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었다고 생각한다.
즉 예수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되면 자기가 기대했던 대로 봉기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다의 배반 동기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적어도 그의 배반 동기는 탐욕과 예수에 대한 실망 등이 뒤섞인 복합적이다.
마태에게 있어서 유다의 배반 동기는 그렇게 큰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유다의 배반 사건이 성경의 예언(슥 11: 12)의 온전한 성취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마 26: 16. 기회 -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
은 30을 받은 가룟 유다는 스승을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
1]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예수를 팔고자 한 가룟 유다의 반역은 이제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예수를 넘겨주기 위해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갔고 은 삼십에 합의를 본 후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1) 은 삼십에 팔린 예수
은 삼십은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는 돈이다.
* 출 21: 32 -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그런데 그러한 금액에 예수께서 팔리셨다. 그들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예 한 사람의 가치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인간의 영혼임을 생각할 때 하물며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는 어떠한가?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그리스도를 단돈 은 삼십을 놓고 흥정하였다.
인간의 욕심은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때문에 그들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단돈 몇 푼에 흥정하고 팔아넘기며 그것으로 자신의 창고를 조금이라도 채우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를 노예 한 사람값인 은 삼십에 머리를 맞대고 흥정하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처럼 말이다.
(2) 배반당한 예수
① 제자에게 팔리신 예수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삼 년간 함께 생활하며 가르치고 보호하셨던 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과 정열 속에 생활하였고, 그리스도의 보호 속에 살았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는 따뜻한 아버지였고 엄한 스승이었으며 안전한 피난처였다. 그러한 스승을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팔아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팔린 예수, 그러기에 더욱 비참해 보이고 고독해 보이는 예수, 예수는 이렇듯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제자에 의해 팔리셨다.
② 자기 백성에게 배신당한 예수
예수는 자기 제자에게만 배신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구하고자 오신 자신의 백성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자신의 사역을 위해 선택하신 백성, 자신의 사랑과 능력을 가장 많이 베푼 백성, 그 백성이 도리어 예수를 배반했다.
③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넘기워진 예수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자라는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야 하며, 대적들의 모함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주님은 도리어 배척당하셨다.
이처럼 배반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일어난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웃에 의해 배반은 시작될 수 있으며, 내가 가장 의뢰하고 신뢰하던 자로부터 배반이 진행될 수 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을 뜨겁게 하십시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뜨거운 사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향해 우리의 사랑이 변함없어야 한다.
* 계 2: 4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3) 예수님이 실망한 사람들
가룟 유다는 예수께 실망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본 유다는 세상에 대한, 세상적인 것에 관한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실망하고 그를 배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수께 실망했다. 세상적인 욕심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본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욕심이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지 않자 실망하고 그리스도께 등을 돌렸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역시 예수께 실망했다. 출세욕으로 가득 찬 그들의 눈은 예수로 인해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해지는 듯하자 위협을 느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들은 모두 예수를 자신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자신들의 가치에 의해 평가하였다. 그 결과 예수는 실패한 구세주, 실패한 메시야, 실패한 지도자를 보았고 실족한 그리스도로 보았다.
실족한 그리스도,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섰다.
(4) 예수로 인해 실망했던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나무에 목매어 자살했다. 예수로 인해 실망했던 자들은 천국문을 가로막는 악한 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기준으로 그리고 자신의 관점과 욕심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실망한 자들의 결과는 이러하다. 그들의 결과는 죽음과 저주요 멸망과 파멸이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부자 청년이 끝내는 물질을 끌어안고 심판의 자리로 나아갔듯이 그리스도께 실망하고 떠나는 자들의 종말에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 마 19: 22 -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 기회를 찾더라.
'기회'의 헬라 원어인 '유카이리아'(*)는 본래 '좋은 시기를 뜻한다.
아마 예수를 넘겨주기에 '무리가 없을 때'를 찾는 것이리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마리아는 값이 300데나리온 이상인 귀한 향유를 죽음을 앞두신 주께 부어드렸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이 주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에 감히 비교될 수는 없다.
둘째, 하나님과 주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위해 쓴 돈은 가난한 자를 구제한 돈보다 귀하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다 주셨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돈과 수고를 드려야 한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한 사람은 300데나리온 짜리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으나, 다른 한 사람은 120데나리온을 얻으려고 주님을 배신했다.
지식과 무지, 믿음과 불신앙, 충성과 배신은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생활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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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은 마침내 그를 멸망케 하였다.
💖아무도 알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수 있는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행복한 하루 되세요.💖
물질에 대한 탐심은 마침내 그를 멸망케 하였다.
설교 감사합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은 마침내 그를 멸망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