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18-21 사도들이 손을 얹을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본 시몬이 돈을 주면서 그 능력을 사겠다고 하자 베드로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며 시몬은 이 말씀에 안에서 어떤 부분이나 할당된 몫도 없다고 하는 장면이다.
이전 말씀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고 두 사람은 가서 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고 성령 받은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한 뒤 손을 얹으니 성령이 임한 증거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도들이 손을 얹을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본 시몬이 돈을 주면서 그 능력을 사겠다고 하자 베드로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며 시몬은 이 말씀에 어떤 부분이나 받을 몫도 없다고 하는 장면이다.
시몬이 가짜로 믿는 척했다는 증거는 없다. 침례 받고 기쁨으로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몬은 좋은 땅에 심기어진 씨앗이 아니었다. 아직도 말씀보다는 자신이 행하던 것과 같은 기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은 아직도 세상의 탐욕들이 가시덤불처럼 싸여 있어 그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몬은 18절에서 사도들이 손을 얹음으로 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돈을 내면서 그 능력을 사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은사는 전적으로 내적인 영적 경험이 아니라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이다. 사도들이 손을 얹었을 때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17절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이도록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종류의 영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특권보다는 엄숙한 책임이다. 이러한 영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은 그가 영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19절에서 시몬이 돈을 내면서 이 권위를 내게도 줘서 만약 내가 손을 얹는다면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했다. 시몬은 손을 얹어서 성령의 능력을 나누어 주면서 사람들을 영적으로 지배하고 그들에게서 돈을 받아내려는 욕심이었다. 그 능력만 갖게 된다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영어에서 Simony라는 단어는 돈을 받고 성직을 사고 파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대주교나 총회장이 되려고 투표권을 가진 교회 대표들에게 좋은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돈까지 주는 것도 역시 시몬과 똑 같은 성직매매이다. 오늘날 이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는 아니다. 마태복음 24:24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9절에는 종말이 가까울수록 가짜들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몬을 보고 베드로는 20절에서 그대의 은이 그대와 함께 망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시몬이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이 출교 명령과 동등한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약 그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엄숙한 경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이 말이 저주와 동등한 예견이라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엄숙한 경고라고 볼 수 있지만 출교 명령이나 저주로 볼 수는 없다. 구약에서도 예언자들을 통해 무서운 저주와 같은 경고를 하신 것은 저주하고 멸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말이 저주가 아니라 그런 악에서 즉시 떠나라고 책망하는 예언적 경고로 보아야 한다. 만약 저주였다면 아나니아를 저주했을 때 즉시 죽었던 것처럼 바로 어떤 일이 나타났어야 했다. 더구나 22절에서는 회개하라고 했기 때문에 더욱 저주나 출교 명령은 아니다.
21절은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라고 했다. 차지할 자리란 함께 나누어 가질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몫이란 함께 유산을 받을 상속권을 말한다. "우리의 일" 이란 대부분 영어 번역에서는 "이 일" 또는 "이 사역"으로 번역했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 말씀" 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을 자격도 없고 그 축복도 역시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말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용할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역하려고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