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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부터 구봉산, 복두봉, 멀리 오른쪽 뒤는 운장산
높이 648m의 성봉은 금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충남 금산군과 전북 진안군의 경계를 이루며 선봉을
지나 견부리재를 넘어 성치산-성봉-봉화산으로 이어지고 솔재를 넘어 덕기봉 수로봉으로 나아가다가 지삼재를
넘어 베틀봉 삼도봉으로 이어진다. 성치산(성봉)은 동쪽으로는 적상산, 덕유산, 성수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천
태산, 덕기봉, 월영산, 양각산, 민주지산이 확연히 보인다.
남쪽으로는 산 아래 금강 물줄기의 용담댐 건설로 생겨난 용담호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봉황천이 흐르는 고무
골과 무자치골 아래 십이폭포를 산 속에 품고 있다.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 있는 무자치골 하류에 형성된 수직
의 폭포들은 제각기 수려한 경관들을 담고 있다. 떨어지는 폭포, 바위 홈으로 쏟아 내리는 폭포, 암반에 새겨진
여러 필체의 글씨 등이 어우러져 금산을 대표하는 8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 성봉 정상의 안내판에서
▶ 산행일시 : 2022년 7월 16일(토), 맑음, 초복
▶ 산행시간 : 4시간 40분
▶ 산행거리 : 산악회 공지거리 약 13.0km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7 : 20 - 복정역
10 : 20 - 진안군 주천면과 금산군 남이면 경계, 용덕고개(광대정재), 산행시작
10 : 46 - 515.8m봉
11 : 19 - 성치산(城峙山, △671.2m)
11 : 45 ~ 12 : 04 - 541m고지, 점심
12 : 45 - 성봉(城峰, 653.5m)
13 : 24 - 신동봉(615.9m)
13 : 48 - 무자치골, 성봉 갈림길
13 : 55 - 선학폭포(십이폭포 제12폭포)
14 : 22 ~ 14 : 44 - 제일폭포(십이폭포 제1폭포), 휴식
15 : 00 - 십이폭포 주차장, 산행종료(16 : 00 버스출발)
18 : 40 - 복정역
2. 산행지도
▶ 성치산(城峙山, △671.2m)
秋山寒擁兩峰祠 가을 산은 차갑게 양봉의 사당을 감쌌는데
秋草平沈義塚碑 가을 풀 우거진 속 의총비가 묻혀 있네
報國豈徐投轄後 보국을 어찌 투할한 뒤로 늦추리오
喪元早決批鱗時 목숨 걸고 조기에 비린할 때를 결정했지
角殘野戍愁雲黯 화각 끊긴 들판 진터에는 슬픈 구름이 어둑하고
鴉亂荒壇落日遲 까마귀 떼 요란한 거친 단에는 지는 해가 더디네
眼見東氛吹轉急 동쪽의 요기가 점점 급히 불어오건만
何人爲報九原知 뉘라서 구천에 전해 줄 수 있으리
ⓒ 한국고전번역원 | 권경열 (역) | 2010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이 쓴 「금산의 종용당에서(錦山從容堂)」이란 시다. 임진왜란 때 이 금산에서
벌어진 전투는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양봉(兩峰), 두 분의 ‘봉(峰)’자 호를 가진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霽峰
高敬命, 1533~1592)과 중봉 조헌(重峰 趙憲, 1544~1592)이 전사하였다. 제봉 고경명은 1592년 7월 광주(光州)
의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때 두 아들 인후(因厚)와 종후(從厚)도 참전하
여 인후는 함께 죽고 종후는 부친의 시신을 수습해 돌아왔다가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중봉 조헌은 1592년 8월
금산전투에서 관군의 협조를 받지 못하고 700여 명의 의사와 함께 전사하였다.
시구 중 투할(投轄)은 수레의 바퀴를 고정하는 비녀장을 빼서 던져 버린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한 뒤를 가리키는 듯하고, 비린(批鱗)은 비늘을 건드린다는 뜻으로, 신하가 직간(直諫)을 하다가 군주를 범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를 지휘했던 의병장 중봉 조헌이 이전에 수차례 상소를 올
려 극언을 하였다가 선조(宣祖)의 노여움을 사 좌천되고 유배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비록 버스로 지나가지만 내 처음 금산은 가 본다. 차창 밖 풍경은 임진왜란의 상흔은 찾아볼 수 없고 한 집 건
너 인삼의 고장임을 알리는 간판이 이채롭다. 삼계탕축제장을 지나 금산 외곽을 돌아간다. 55번 국도는 봉황천
을 한참 거슬러가다 흑암교 건너 산골짜기 도로를 간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용덕고개는 전북 진안군 지명이
고, 충남 금산군에서는 광대정재라고 한다. 도계 오른쪽 능선에도 준봉들이 즐비하지만 왼쪽의 성치산 오르는
능선이 훨씬 더 붐빈다.
광대정재 정자도 금산군 관광안내도도 성치산 입구에 있다. 금산군의 관광 10경을 잠깐 일별한다. 진악산, 대둔
산, 서대산, 칠백의총,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적벽강, 보석사, 금산산림문화타운, 산꽃벚꽃마을오토캠핑장, 십이
폭포. 이중 내가 가 본 데는 대둔산과 서대산 뿐이다. 아마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십이폭포가 아닐까 한다.
복날이고 하니 산보다는 계곡의 물놀이에 끌리는 이가 비단 나만이 아니다. 십이폭포는 무자치골 열두 개의 폭
포를 말한다.
수풀 우거진 소로의 잘난 산길을 간다. 뭇 산행표지기들이 나뭇가지가 휘어지게 달려 있고, 열 걸음이 멀다 하
고 주렁주렁 달렸다. 성치산이 나만 여태 몰랐던 명산인가 보다. 그럴 것이 겨우 10분 남짓 올라 벌목한 사면
건너로 산 첩첩한 조망이 트이고 낯선 산들이라 그 이름을 알아보기 바쁘다. 명덕봉이다. ‘山’자 모양의 듬직한
산세가 명덕(明德)에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성치산까지 줄곧 완만한 오르막이다. 도중의 515.8m봉이랬자 오르
막이 잠깐 주춤할 뿐이다. 줄달음하기 좋다.
610m봉에 올라서고 바위 섞인 소나무 숲길이다. 수렴 걷어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좌우로 조망이 트인다. 멀리
운장산이 반갑다. 무자치골 건너 신동봉과 성봉이 어서 오시라 손짓하는 것 같다. 새삼 명산의 조건을 생각한
다. 무엇보다 산 첩첩의 조망이 우선 아니겠는가. Y자 갈림길 이정표에 왼쪽이 성봉 가는 길(5.0km)이라고 한
다. 성치산은 성봉 가는 도중에 있다 하니 곧장 왼쪽으로 갈까 하다 오룩스 맵을 확인하자 성치산은 도계 능선
을 오른쪽으로 50m쯤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닌가.
약간 떨어졌다가 한 피치 길게 오르면 널찍한 헬기장이 나오고 바로 성치산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은 허접하지
만 그 뒤의 소나무 가지에 무수히 달린 산행표지기를 보면 내로라하는 산꾼들이 다 다녀갔다. 산 이름 유래에
대한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 내용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교전하였다 하며 산봉에 성을 쌓았던 곳이
있어 성치산이라 한다.” 조망은 사방 키 큰 나무숲 둘러 시원치 않다. 그러나 명산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성치산
에 대해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잠시 서성이다 온 길 뒤돌아 성봉을 향한다.
3. 명덕봉
4. 성치산 오르는 중에 북동쪽 조망
5. 명덕봉
6. 명도봉, 멀리 왼쪽은 운장산
7. 성봉
8. 신동봉
9. 오른쪽이 신동봉
10. 앞 능선은 성치산에서 성봉으로 이어진다
11. 오른쪽 멀리가 운장산
12. 멀리 가운데로 부귀산과 그 너머로 마이산이 보인다
▶ 성봉(城峰, 653.5m), 신동봉(615.9m)
갈림길 지나 바윗길을 살금살금 내린다. 잡목 숲 벗어나 절벽 위다.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다. 모처럼 관산(觀
山)한다. 가까이서 멀리 명도봉, 구봉산, 복두봉, 운장산, 부귀산,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또 본다. 성봉 너머의 뭇
산들은 알아보지 못하겠다. 절벽 내리고 숲길을 간다. 이 지방에 오후에 소낙비가 한 차례 쏟아질 거라고 했다.
복날 소낙비로 산중샤워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복날(복 받은 날)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도 복이라고 그런 일은
없었다. 사면에서는 후덥지근하다가도 능선을 갈 때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저 줄달음하는 선두 일행을 쫓지 말아야 했는데 후회막급이다. 용덕재에서 산행을 시작한 이후 물 한 모금
마실 틈이 없었다. 하긴 1시간이 약간 지났다. 나라도 점심을 먹고 가려고 자리 물색하며 간다. 555.7m봉 지나
고 바람 솔솔 부는 소나무 숲 공터가 나온다. 나만 허기진 게 아니었다. 김춘선 대장님이 우리도 여기서 점심 먹
고 갈까요 하며 동의를 구한다. 예닐곱 명 일행 전원이 쌍수 들어 환영한다. 후미에게 무전으로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자 그들은 성치봉 정상인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라고 한다. 거기는 여기보다 덜 시원할 텐데 하고
걱정해준다.
이번에도 나만 고봉밥 도시락을 싸왔다. 모두 빵이거나 떡 또는 과일이다. 탁주도 사양하니 독작한다. 점심시간
이 약간 긴 휴식시간일 뿐이다. 19분. 그리고 또 줄달음한다. 여전히 완만한 오르내리막이다. 일월비비추가 꽃
술 흔들며 응원하는 산길이다. 구석리 십이폭포(4.6km) 가는 갈림길 지나 0.3km 오르면 성봉 정상이다. 키 큰
나무그늘 진 너른 공터에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성봉 안내문이 매우 의문이다. “동쪽으로는 적상산, 덕유산, 성수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천태산, 덕기봉, 월영
산, 양각산, 민주지산이 확연히 보인다.”라고 하는데 사방 키 큰 나무숲 둘러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을뿐더러
정상을 벗어나더라도 근처에 그런 데는 찾지 못하겠다. 지도에서도 아득히 먼 산들이다. 다만, 성봉에서 북동진
(성봉에서 충남 땅으로 간다) 하여 한 차례 길게 급전직하하였다가 숨차게 오른 640m봉이 경점이다. 그래도
적상산, 덕유산은 알아보지 못하겠다.
갈림길에서는 늘 망설이고 아쉬움이 남는다. 성봉에서 도계 따라 봉화산으로 가는 능선이 보기 좋고 걷고 싶은
장릉이어서다. 그 능선을 가면 이 능선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신동봉을
최대한 높여 놓고 오른다. 멀리서 볼 때 첨봉이던 신동봉이 암봉이기도 하다. 막바지에서는 바윗길을 오른다.
신동봉. 키 큰 나무숲 그늘진 너른 공터다. 절벽에 바짝 다가가면 조망이 훤히 트인다.
신동봉은 新洞峰일 것. 이 산 동쪽 아래에 남일면 신동리(新洞里)가 있고 신동천(新洞川)이 흐른다. 신동봉에서
능선 길을 좀 더 가다 내릴까, 이정표 안내 따라 곧바로 왼쪽의 가파른 능선을 내릴까 궁리하다가 왼쪽으로 내
리기로 한다. 숲속 능선을 더 간다한들 산행거리가 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보지 못한 드문 경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산학폭포와 금룡폭포를 보지 못하고 내리게 되니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
13. 앞 왼쪽이 성봉
14. 멀리 오른쪽은 구봉산, 멀리 가운데 부귀산과 그 뒤로 마이산이 보인다
15. 멀리 가운데 부귀산과 그 뒤로 마이산이 보인다
16. 앞 능선은 성치산에서 성봉으로 이어진다
17. 앞 왼쪽이 성봉
18. 신동봉
19. 성봉 오르는 길에 본 일월비비추
20. 성봉 남서쪽 조망
21. 성봉 남서쪽 조망
22. 신동봉 내리는 길에 북서쪽 조망
▶ 십이폭포
직하하는 내리막이다. 군데군데 바위 나오면 펼쳐지는 전경 구경한다. 신동봉에서 20분 정도 내리면 성봉 갈림
길이 나오고 무자치골이다. 무자치는 물뱀을 말한다. 이 골에 물뱀이 많았나 보다. 그다지 비가 오지 않았는지
골이 말랐다. 너덜투성이다. 너덜을 건너왔다 건너가기를 반복하여 내린다. 십이폭포 제12폭포인 산학폭포를
안내판 보고 알아본다. 물이 겨우 암벽을 적실뿐이다. 폭포 왼편에 산학(山鶴)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고 한다.
폭포가 신선이 계곡의 정상인 선봉(仙峰)으로 오르기 위해 타고 다니는 학처럼 보인다고 한다.
제11폭포는 금룡폭포다. 폭포 끝자락에 금룡(錦龍)이라는 아름다운 글자가 있다고 한다. 등로 난간에 기대어 내
려다본다. 제법 긴 암벽에 물줄기가 구불대며 흐른다.
제10폭포는 거북폭포다. 바위와 소가 어울린 모습이 거북이 모양이라고 한다.
제9폭포는 운옥폭포다. 물방울은 은하수를 뜻하고 구름 위로 은하수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 운옥(雲玉)이라
새겨져 있다고 한다. 폭포 넓이는 12폭포 중에서 가장 넓으며 6개의 못을 거느리고 있다.
제8폭포는 명설폭포다. 하얀 물보라는 눈이고 폭포수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골을 울린다는 뜻으로
명설(鳴雪)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럴 듯하다.
제7폭포는 고래폭포다. 폭포수가 바위의 빗살 같은 홈을 타고 내려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모습이 꼭 수염고래
입처럼 생겼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 암반을 두루 훑으며 찾았다. 오늘은 면도한 모습이다.
제6폭포는 구지소유천폭포다. 폭포 왼쪽에 작자를 알 수 없는 다음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噴雪林梢壁起煙 눈을 뿜어 숲나무 끝과 벽에 푸른 안개 피어오르고
層層十二靈簾県 층층이 열두 개의 신령스런 발이 걸려 있으니
石門一點空間處 석문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네
認是仇池小有天 이것이 구지봉과 소유천이라는 것을 알겠네
소유천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고, 구지는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구지산
정상에 고여 있는 물이 땅속을 통해서 소유천으로 흘러내린다고 한다. 소유천은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36동천
(洞天) 중의 하나로, 보통 선경(仙境)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두보(杜甫)의 「진주잡시이십수(秦州雜詩二十首)」
중 제14수에 “만고토록 구지에 고인 물이, 땅속으로 몰래 소유천으로 흐른다네.[萬古仇池穴 潛通小有天]”라는
구절이 나온다.
제5폭포는 죽포동천폭포다. 십이폭포를 대표하는 폭포다. 대나무 숲처럼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춰져 마치
수면이 대나무 숲처럼 보여 죽포이고, 이곳이 별천지인 동천이라 한다. 암반에 내려가 관폭한다. 물줄기가 가늘
어 보잘 것이 없지만 주변의 풍광은 심산유곡이다.
제4폭포는 삼단폭포다. 폭포가 삼단의 층층 계단을 이룬다.
제3폭포는 일주문폭포다. 잔잔한 소 위에 바위 두 개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어 신선계로 들어가는 일주문처럼
자리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환속하는 셈이다.
제2폭포는 장군폭포다. 사기소마을을 감싸고 있는 장군대좌에서 흘러오는 물로 장군의 고함소리처럼 거세고
힘차다고 한다.
제1폭포는 제일폭포다. 무자치골에서 맨 처음 나타나는 폭포다. 딱히 이 모양이 폭포다고 알아보기 어렵다. 그
아래 너른 모래톱에 이은 암반에 십이폭포수 모두 모은 옥수가 흐른다. 수대로 알탕한다. 무더운 한여름 산행의
개운하고 달콤한 맛이다.
제일폭포에서 5분 정도 걸어 나가면 농로가 나오고 곧 봉황천이다. 봉황천 다리 건너기 전 휴게소 옆에 십이폭
포 주차장이 있다. 예상보다 산행을 일찍 마쳐 다른 때와는 달리 여유롭다. 버스 그늘에 둘러 앉아 간단한 뒤풀
이 시간을 갖는다. 두부김치, 양파부침, 고사리나물 등을 안주하여 탁주 나눈다. 가외로 산행대장님과 꼬꼬 님
이 휴게소에 들러 각각 거금을 들여 금산의 명품인 인삼튀김과 인삼탁주를 사왔다. 갑자기 입맛이 고급스러워
진다. 서울 가는 길의 졸음조차 얼근하다.
23. 멀리 오른쪽은 진악산(?)
24. 앞은 성치산, 오른쪽 뒤는 명덕봉
25. 성치산 능선 너머는 명도봉
26. 신동봉 내리는 길에 북쪽 조망
27. 신동봉 내리는 길에 북쪽 조망
28. 금룡폭포
29. 죽림동천폭포
30. 물레나물
31. 자두
32. 닭의장풀
첫댓글 닭의장풀 꽃이 정말 닭을 닮았군요.
산들이 참 깨끗합니다.
더운데 고생하셨습니다.
폭포
★정지용
산골에서 자란 물도
돌베람빡 낭떠러지에서 겁이 났다.
눈뎅이 옆에서 졸다가
꽃나무 알로 우정 돌아
가재가 기는 골짜기
조그만 하늘이 갑갑했다.
갑자기 호숩어질랴니
마음 조일 밖에.
흰 발톱 갈갈이
앙징스레도 할퀸다.
어쨋든 너무 재재거린다.
나려질리자 쭐삣 물도 단번에 감수했다.
심심산천에 고사리밥
모조리 졸리운 날
송홧가루
노랗게 날리네.
산수 따러온 신혼 한 쌍
앵두같이 상기했다.
돌부리 뾰족뾰족 무척 고부라진 길이
아기자기 좋아라 왔지!
하인리히 하이네ㅅ적부터
동그란 오오 나의 태양도
겨우 끼리끼리의 발꿈치를
조롱조롱 한나절 따러 왔다.
산간에 폭포수는 암만 해도 무서워서
기염 기염 기며 내린다.
산수 따러온 신혼 한 쌍
앵두같이 상기했다.
뜻밖의 험로를 만나 정색하여 애쓰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조망이 시원합니다. 요근래 비가 많이 온거 같은데 거긴 비가 안온 모양입니다. 계곡에 물이 읍내요 😭
성치산이 달려 있는 산행표지기 수로 보더라도 명산 반열이었습니다.
저만 여태 모르고 안 갔던... ^^
이 산악회는 거나하고 부뉘기 좋네요
그것도 발이 빨라야 천신하지 산 욕심부리다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ㅋㅋㅋ
모처럼 알탕하셨겠군요...여름철에는 목욕하기가 참 어렵더라구요...아랫녁 산 구경 잘했습니다^^
알탕 맛에 산행하는 요즘입니다.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 흠인데 달리 느릴 데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