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66: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개역개정판)
이사야서는
총 66권으로
성경 66권을 반영할 정도로
복음의 내용을 잘 드러내준다고 하는데
이사야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그 문체와 신학적 내용이 방대한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삶이
그리 성경에 근거하여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가득이 가장 클 것이다.
바쁜 우리...
돈이 있거나 없거나 바쁜 우리...
일이 있거나 없거나 바쁜 우리...
힘이 있거나 없거나 바쁜 우리...
그놈의 ‘빨리’ 소리는
대부분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 예비하는 개미에게 배울 필요가 있는 우리는
그 배움도 빨리 하려고 하고
그 열매도 빨리 맺고 싶어하는 것 같다.
칭찬은 더 빨리 듣고 싶고
고난은 더 빨리빨리 면하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로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한 발 늦은 단어 아닌가?
일 다 터지고
위로가 무슨 소용?
대책을 마련하던지 해야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데
외양간 고치느라 힘들지 하는 말에 위로받을 한국인들은 많이 없을 것 같다.
외양간 고치는 걸 좀 돕든지
외양간 고치도록 돈이나 빌려주던지
외양간 고치는데 박카스나 좀 사오던지
우리의 본질이 이러하다.
한국인의 종특이 이러하며
그러한 특성은
교회 내에서
은혜 가운데 잘 가려지고
오직 말씀과 은혜에 근거한 귀한 교제와 나눔이 넘치지 않겠...
내가 잘하면 되는 것이지
남들을 논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가서
특정한 일을 도모하거나 막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손처럼
문짝을 뜯어내고
나귀 턱뼈 하나로 1:1,000으로 싸워 이기는 초인조차도
시간을 거슬러가서
들릴라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는 그 손가락을 부러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이 타이밍이 문제였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나흘이나 의도적으로 지체하셨던 주님은
나사로는 살려주셨지만
우리의 삶은
욥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복구할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남기고
회복과 위로의 과정을 거친다.
어쩌면
어쩌면
그 회복과 위로라는 과정을 반드시 알게끔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왕되심과
어머니처럼 위로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고난이 면피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가 뭔지도 모른다.
AI처럼
빠르고, 자세하게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니까 맨날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했었는지 모른다.)
가장 더웠던 8월에 시작한 이사야 묵상이
10월초에 끝이 났다.
이사야를 제대로 묵상하지도 못했지만
11월에는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을 통해
다시금 이사야 후반부를 묵상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언제나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아쉬움이 가득할 것이다.
강원도에 한파주의보가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발효되었다는데
서울 방문이 무산된 날
서울의 아침기온은 9,10도
대관령의 아침기온 1,2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영하권이 느껴졌겠지...
시간도, 세월도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세상도, 내삶도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모세의 손자 요나단조차도
먹고 살기 위해 미가에게, 단지파에게 사명, 아니 일자리를 의지했던
그 사사기 시절보다
지금이 더 어두울지 나을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의 위로다.
말씀 앞에 두려워 떠는 삶
이사야 66장 5절
사 66:5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판)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온전히 순종하려는 신실한 성도들인데
이들의 삶은
평탄함보다는 고난과 박해
그리고 미움을 받고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여호와께서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라며
말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조롱하고 비웃는 이들
불신자들보다는
신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위로는 이런 경우에 임한다.
그리고 심판은
그렇게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조롱이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임한다.
추수 때(잠 6:8)에 할 일도 많고
기억할 것도 많겠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기억해야할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