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자동차다. 한때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더불어 3대 명차로 불리던 마이바흐가 예전과는 다른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롤스로이스, 벤틀리가 여러 셀럽들에게 사랑받으며 이른바 ‘힙’한 브랜드로 거듭날 때, 마이바흐는 벤츠의 서브 브랜드로 앉은 자리를 바꿨다. 롤스로이스, 벤틀리를 구매하는 이른바 ‘셀럽’들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과한 튜닝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마이바흐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용히 구매했다. 그 때문에 내 눈에는 마이바흐가 훨씬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런 마이바흐를 시승할 기회라니. 놓칠 수 없다.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차체의 색상은 투톤 컬러로 구성할 수 있다. 색상의 조합은 7가지로, 시승차의 컬러는 하단은 화이트, 상단은 블랙으로 구성됐다. 흰 셔츠와 검은 재킷을 입은 이미지인데, 최근 본 영화인 ‘크루엘라’도 생각나고, 남극의 펭귄도 생각난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의 색상이라 더 눈에 띈다.
게다가 차체 곳곳에 치렁치렁한 크롬 장식은 마이바흐만의 특권이다. 앞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마이바흐 전용으로 웅장함이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여기에 윈도 몰딩, 배기구 주변까지 많은 크롬을 둘렀지만 결코 과하게 보이지도, 고급스러움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러한 크롬 장식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보닛의 중앙을 따라 고급스러운 넥타이핀을 꽂은 듯 당당하게 자리 잡은 크롬 핀이다. 이는 아주 먼 옛날의 자동차들의 보닛이 날개 모양으로 열리기에 만들어졌던 라인 장식을 오마주하여 만든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서도 이 라인이 눈에 띄는데, 라인의 끄트머리엔 메르세데스의 삼각별이 빛나고 있어 심리적인 만족도가 무척 높다.
측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마이바흐 전용 20인치 단조 휠이다. 특유의 디자인과 번쩍이는 질감은 멀리서 보아도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길쭉한 차체는 S클래스 롱 휠베이스 모델보다도 18cm가 더 길다. 덕분에 리어 도어의 길이 역시 꽤 늘어났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비율이 전혀 망가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숏 보디 모델도, 롱 보디 모델도, 심지어 마이바흐까지 잘 어울리는 차체의 디자인은 볼수록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늘어난 길이 덕분에 2열의 무릎 공간은 12cm나 더 증가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2열의 공간이 남아돈다. 허리만 숙이면 좌우를 넘나드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로 널찍하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시트는 웬만한 소파가 부럽지 않다. 좌석에 앉고 윈도 상단에 있는 버튼을 당기면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그다음 뒤에서 슬그머니 벨트를 건네는 벨트 피더를 통해 벨트를 착용하고, 헤드레스트에 있는 쿠션에 머리를 기대어 도어 패널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최고급 세단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펼쳐진다. 시트는 자연스레 뒤로 눕혀지며, 1열 조수석은 앞으로 최대한 당겨진다. 다리 및 발 받침대도 슬쩍 등장하여 완벽한 휴식을 위한 자세가 만들어진다. 1열 시트 뒤편에 붙은 디스플레이와 2열 센터 콘솔에 있는 태블릿은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기에는 꽤 멋진 편이다.
사실 이러한 장르의 자동차에서 휴식이라는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 수많은 사회 구성원 중 극소수의 리더들이 타는 차인 만큼 다음 업무를 위해 이동하는 공간에서 최대한의 평온함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곳은 업무 공간이 될 수도, 응접실이 될 수도 있는데 이 모두를 위한 NVH 대책은 완벽에 가깝다. 우선 유리 사이에 삽입된 필름 레이어인 IR 라미네이티드 글라스가 기본으로 적용된다. 이는 적외선을 차단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외부 소음 역시 놀라운 수준으로 억제한다. 또한 타이어 트레드 내부의 폼 소재가 흡음재 역할을 하는 저소음 타이어도 장착해서 실내는 거의 도서관에 가까운 정숙함을 유지한다. 덕분에 음악을 들을 때도, 중요한 통화를 할 때도, 동승자와 대화를 나눌 때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쾌적함을 완성하는 것은 안락한 승차감이다. 구름을 타고 다니면 이런 기분일까? 웬만큼 거친 노면을 지나도, 과속 방지턱을 넘어도 별다른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 할 일을 충실히 해내는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아주 약간의 출렁임이 느껴지지만, 이 역시 기분 좋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나아가 드라이브 모드를 마이바흐 모드로 맞추면 뒷좌석 승차감이 한층 더 좋아진다. 쇼퍼 드라이브를 위해 2단 기어로 출발하며 변속도 한층 더 부드러워져 전체적인 가속이 무척 리니어해지는 특성을 나타낸다. 승차감 역시 더욱 몽글몽글해지며 도로를 따라 항해하는 기분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면 어떨까? 당연히 뒷좌석에 초점이 맞춰진 차지만, 의외로 운전하는 감각도 중독성 있어 오너 드라이빙으로도 꽤 괜찮은 차라고 말하고 싶다. 5.47m의 긴 차체를 가져 운전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으나, 후륜 조향 시스템 덕분에 실제 체감하는 길이는 무척 짧아진다. 좁은 골목길의 코너를 지나더라도, 2차로 도로에서 유턴을 하더라도 의외로 한 번에 돌아가기에 부담을 한층 덜 수 있다.
전체적으로 컴포트한 세팅은 운전의 재미를 짜릿함보단 여유로움에서 찾게 만든다. 8기통 4.0ℓ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은 9단 자동변속기와 궁합을 맞추며 최고출력은 503마력, 최대토크는 71.4kg·m를 발휘해 2.3t의 육중한 차체를 부드럽게 이끌고 나간다. 가속 페달에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미끄러져 나아가는 느낌은 도로를 항해하는 혹은 구름을 타고 날고 있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넉넉한 출력은 추월이 필요할 때 가속 페달에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뒷좌석에서 들을 수 없었던 8기통 엔진 특유의 소리는 운전자의 귀를 즐겁게 만들 줄도 안다. 잡다한 소리는 다 줄이고 듣기 좋은 소리만 걸러서 실내로 전달하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꽤 박력 있는 가속력을 선보인다. 0→시속 100km 가속은 4.8초 만에 끝낸다. 앞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도로 위를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뛰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뛰어난 고속 안정감은 속도감이 잘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웬만한 요철은 눈 깜짝하지 않고 미끄러지듯 타 넘으며 자세를 유지하여 평화로운 실내를 유지하는 덕분이다. 속도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어느새 도로의 제한 속도를 훌쩍 넘고 있다. 시속 80km와 그 두 배에 달하는 속도에서 느껴지는 차이점은 풍절음이 조금 강해진 것뿐이다. 차선을 변경할 때는 무게와 부드러운 세팅으로 인한 롤링이 느껴지지만, 자세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몸짓을 보는 것 같다. 도로 위의 차들을 이리저리 헤치며 갈 때는 우아한 춤 동작을 함께하는 기분이다.
코너링 실력은 어떨까? 이 차를 타고 코너링을 즐기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궁금한 것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법. 길고 무거운 차체를 코너로 던져본다. 무거운 무게 탓에 타이어는 꽤 이른 시점부터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차체는 동요하지 않는다. 운전자와 탑승객에게 괜찮다며 달래주는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감각이 재미라는 요소와는 동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코너링의 재미를 찾는 자동차도 아니니 당연하다. 오히려 이런 급박한 움직임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실내를 유지하는 모습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러한 모습의 연장선상에서 제동 능력 역시 충분하나 그 감각은 승차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된 것이 인상적이다.
여러 자동차들을 운전하다 보면 성향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친구처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차, 개구쟁이처럼 톡톡 튀는 차, 어른처럼 점잖은 차처럼 말이다. 짧은 시간 함께한 마이바흐 S580은 품격 있는 어른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짜 어른의 멋이란 무엇인지 마이바흐와 함께하며 깨달았다. 내게 어울릴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지만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하기엔 그 벽이 무척 높다. 가끔 누군가 내게 빌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운전석에 앉을 쇼퍼(Chauffeur)도 함께.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470×1955×1510mm
휠베이스 3396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982cc | 최고출력 503ps
최대토크 71.4kg·m | 변속기 9단 자동
구동방식 AWD | 복합연비 7.3km/ℓ
가격 2억716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