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處方)
인삼(人蔘), 시호(柴胡), 전호(前胡), 강활(羌活), 독활(獨活), 지각(枳殼), 길경(桔梗), 천궁(川芎), 적복령(赤茯?), 감초(甘草)
올해 1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자주 가는 식당의 60대 여사장님이 한 동안 보이지 않아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식당에서 직접 쓸 김장으로 배추를 300포기나 하고 감기에 걸려서 지금 일 주일 째 식당에 못 나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 60대 여사장님이 김장을 마치고 감기에 걸리자마자 몹시 춥고(오한 惡寒), 몸이 떨리고, 몸살 통(근육통·관절통)이 있고, 열이 전혀 없고, 콧물이 나면서 가벼운 기침의 증상들이 있었다면 바로 무리하게 김장을 많이 하느라 과로로 인하여 기운이 떨어져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감기에 걸려서 나타난 증상들이므로 기운을 올려주면서 땀을 나게 하는 처방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즉 반드시 사람의 기운을 올려주는 인삼이 들어 있는 상한 초기에 사용하는 처방을 투여해야 합니다. 기운을 올려주는 인삼(人蔘)이 들어 있는 상한초기에 땀을 내는 처방으로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 삼소음(蔘蘇飮)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 등이 있습니다. 만약 이 식당 여주인 환자에게 사람의 기운을 올려주는 인삼이라는 약재가 들어 있지 않은 마황탕·갈근탕 등을 복용시켜 강력하게 땀을 내면 땀구멍이 열리면서 기운이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애당초 기운을 너무 많이 써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독감에 걸렸는데 땀을 내는 약을 복용하고 기운이 더욱 떨어지니 이번에는 실내의 추위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감기에 걸려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마황탕을 복용하고 기운이 더욱 떨어지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땀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면서 기운이 더욱 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상한 초기에 사용하는 땀을 내는 모든 처방들은 강력하게 발한시키는 처방, 중간 정도로 발한시키는 처방, 약하게 발한시키는 처방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누어지며 또한 기운을 올리면서 땀을 내는 처방과 기운을 올려주지 않으면서 단지 땀만 내는 처방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삼패독산은 기운이 떨어져서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독감에 걸린 환자에게 사용하는 처방입니다. 당연히 추위 때문에 발병하는 독감은 어느 정도의 추위였는지, 추위에 몇 시간 동안, 얼마 동안이나 떨고 있었는지, 입고 있었던 의복은 어떠했는지, 기운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등의 요소에 따라서 증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겨울에 오랜 시간 심한 추위에 떨고 있었다면 추위가 몸 깊숙이 파고들어와 당연히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증상들이 매우 심하게 나타납니다. 강력하게 땀을 내는 처방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겨울에 잠옷 바람으로 잠시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옆집 사람을 만나 몇 분 정도 대화를 하는 중에 몹시 추워서 집으로 들어온 경우에는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초기 감기 증상이 매우 약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환자에게는 당연히 기운을 올려 줄 필요가 없으며 약하게 땀을 내는 처방 향소산, 곽향정기산 등의 처방을 사용합니다.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상한초기 증상이 중간정도일 때는 중간 정도로 땀을 내는 처방을 사용합니다. 강력하게 발한을 시키는 약재인 마황과 계지가 들어있는 마황탕과는 달리 중간 정도로 발한을 시키는 강활 독활이라는 약재가 들어있는 인삼패독산은 여러 가지 형태의 과로로 인하여 기운이 떨어져서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증상이 중간정도 일 때 사용하는 처방입니다.
감기에 걸리자마자 발생한 오한, 몸살 통, 콧물 등 의 상한 초기 증상이 매우 심하든지 중간 정도이든지 아주 약하든지에 관계없이 어차피 땀을 내서 치료할 증상이라면 복잡하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누지 말고 그저 강력하게 땀을 내는 처방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 번거롭게 강, 중, 약으로 나누어 처방을 달리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을 수도 있습니다.
침(針)을 맞을 때는 매일 맞는 게 아니다, 침을 맞을 때에는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침으로 사람의 피부를 찌르면 그 곳으로 기운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맞으면 좋지 않다. 잘 먹으면서 침을 맞아야 한다, 매일 맞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강제로 땀을 내면 전신의 땀구멍이 열리면서 침을 맞은 것처럼 기운이 빠져 나가게 됩니다.
여름에는 특히 음식을 잘 먹어야한다는 말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여름에 땀을 흘리면 기(氣)와 혈(血)이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땀구멍이 열리면서 사람의 기운이 새어나가고 땀이 나가면서 혈액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피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땀은 혈액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땀을 많이 흘려도 피를 많이 흘린 것과 똑 같은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음식을 잘 먹어야 기운이 나고 또한 혈액은 먹은 음식으로부터 만들어지고 혈액이 있어야 기운이 생기는 법이니 여름에는 특히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땀을 나게 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할 때에 사람의 기(氣)와 혈(血)이 상하지 않도록 오히려 대단히 신중을 기하였습니다. 사람이 추운 곳에서 떨게 되면 누구나 소변이 자주 마렵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추위에 떠는 동안 땀으로 나가지 못한 수분을 모두 소변으로 제거하지 못하게 되므로 혈액이 묽어져서 인체의 다양한 곳에서 분비되는 진액들이 많아지고 묽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추위에 오래 동안 떨고 있었던 사람은 혈액이 많이 묽어져 있을 것이고 잠시 동안 추위에 떨고 있었던 사람은 혈액이 조금 묽어져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묽어져 있는 만큼만 발한을 시켜 혈액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야 하므로 강력하게 땀을 내는 처방, 중간 정도 땀을 내는 처방, 약하게 땀을 내는 처방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추위에 잠시 동안 떨었기 때문에 약한 오한, 약한 콧물, 약한 몸살 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발한시키는 처방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오한, 콧물, 몸살 통 등의 증상을 사라지게 할 수는 있지만 곧 구갈(口渴), 불면, 마른기침, 자한(自汗) 등의 부작용이 신속하게 뒤따르게 됩니다.
강발한 시키는 처방을 무리하게 장시간 계속 사용하면 체중감소, 무기력(無氣力), 피로(疲勞), 현기증(眩氣症), 식욕부진(食慾不振), 근육의 경련(痙攣), 근골(筋骨)의 동통(疼痛) 등의 기혈(氣血)의 손상으로 초래되는 더욱 심각한 증상들이 발생할 수 도 있습니다. 서양의학적 약물인 해열진통제의 부작용과 일치되는 증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추위에 오래 동안 떨게 되어 매우 심한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약하게 땀을 내는 처방을 사용하게 되면 약한 발한 효과로 인하여 증상이 신속하게 소실되지는 않겠지만 강발한 시켰을 때 나타날 수도 있는 부작용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강활, 독활이 들어 있는 중간 정도로 발한을 시키는 인삼패독산은 강력하게 발한 시켜야 하는 환자에게 사용하면 다소 늦게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삼패독산을 약하게 발한 시켜야 하는 환자에게 사용했을 때 역시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한 초기 증상을 발한을 시켜서 낫게 하는 다양한 처방 중에서 비교적 안전한 처방이 인삼패독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인(老人)이 노동, 운동, 성적(性的)인 과로 없이 단지 추위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고 있다가 감기에 걸리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오한 몸살 통 등의 감기 초기 증상이 심하다면 당연히 인삼이 들어 있지 않은 마황탕, 갈근탕, 소청룡탕 등의 처방을 사용할 수 있지만 강력하게 땀구멍을 열어 땀을 내는 처방을 기운이 없는 노인이 복용하면 복용 후에 땀이 나면서 오히려 기운이 크게 떨어져 또 다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노인의 경우 특별한 과로 없이 단지 의복이 추위와 맞지 않아서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오한, 몸살 통, 콧물 등의 증상이 다소 심하다고 하여도, 기운을 올려주면서 중간 정도로 발한시키는 인삼패독산을 투약하는 것이 매우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