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월요일 강론>(2025. 2. 3. 월)(마르 5,1-20)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이방인 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한 첫 번째 선교사』
1)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는 단순한 ‘구마 이야기’가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셨음을 전해 주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이방인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타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 마귀들이 예수님께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은, 그 지역에서, 또는 인간 세상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것을 피하려고 ‘타협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마귀들의 청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는 모릅니다.
돼지들이 집단 자살을 했기 때문에 ‘군대’ 라는 이름의 그 마귀들은 인간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되었고,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졌을 텐데, 결과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들의 청을 허락하신 일은, 돼지들 속에서 살아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돼지들의 주인들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본 일입니다. 그 일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 하나를 구하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손해를 입히신 셈인데, 어쩌면 하느님은 섬기지 않고 재물만 섬기는 그 지역 사람들을 깨우쳐 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말 못하는 짐승인 돼지들은 마귀들이 자기들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면서 집단 자살을 했는데, 사람들은 ‘군대’ 라는 이름의 마귀들과 함께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귀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졌거나, 아니면 마귀들에게 길들여졌거나......>
3)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라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이 마귀가 제거된 것을 기뻐하지는 않고, 예수님을 무서워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라는 번역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라고 요구하였다.”로 바꾸는 것이 옳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사실상 예수님을 쫓아냈습니다. 마귀보다 더 힘이 센 예수님의 권능이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고, 또 유대교와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도 품고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생기는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싫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살던 대로 살게 내버려두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보수’ 라는 간판을 내걸고서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을 물리치고, 잘못된 것을 고쳐서 바로잡는 일은, 진보든지 보수든지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단순히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면서 잘못된 것들과 악을 그대로 두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 고집 자체도 죄이고, 악입니다.>
4) 마귀 들렸다가 예수님 덕분에 해방된 사람이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달라고, 즉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청한 것인데, 아마도 그 지역을 떠나고 싶은 심정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요청과는 다르게 그에게 새 임무를 주셨는데, 그 임무도 ‘부르심’(성소)입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를 선교사로 삼아서 파견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그 사람은, 사도들보다 먼저 이방인 지역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한 사람, 즉 첫 번째로 이방인 지역에서 활동한 선교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군대’ 라는 마귀들의 이름은 그것들의 폭력성을 나타내는데, 당시 로마 군대의 폭력성이 배경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군대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국민을 보호하지는 않고 정권만 지키려고 한다면, 또는 자기들 집단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군대’ 라는 이름의 마귀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마귀들’이라는 이름의 군대와 ‘군대’ 라는 이름의 마귀들이 사실상 같은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어떻든 모든 ‘악’과 ‘악의 세력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완성될 때 모두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연중 제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