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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꼬막 비빕밥 | 벌교읍 꼬막회관 식당 |
필부는 독실한 불교 신자도 아니고 그냥 절집이 좋아
심심파적 절집에 머무르며 눈도장이나 찍는
별 볼일 없는 뜨내기 행락객에 불과하다.
이런 필부가
국내 삼대 사찰 중 양산 통도사와 합천 해인사는 구경삼아 다녀 온 적이 있으나
유독 조계산 밑에 자리 잡은 송광사 하곤 인연이 없었다. 그럼에도
송광사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태고종의 고찰 선암사에는 발길을 수차례 했음에도
조계산 반대편에 자리 잡은 송광사와는 어떤 연유인지 발길이 닿질 않았다.
모처럼 만에 주어진 송광사 순례 기행이 필부의 평정심과
비움의 깨침을 느끼고,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사찰기가 되었음 한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승보종찰불일문
송광사 초입에는 남도 삼백리길 안내와 조계산 도립공원 안내도를 세워놓고
방문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6월의 푸르름이 산문을 찾는 행락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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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삼백리길 안내도 | 송광사 도립공원 안내도 |
송광사는 국내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 불교의 역사를 함께 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말 체징(體澄, 804-880)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한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 사찰로 변모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선종사찰이 되었다.
식당가 주차장을 벗어나 조계산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면 송광사 매표소가 등장한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한산하고 오가는 행락객도 드물다.
불가에서는 삼보(三寶)를 이렇게 말한다.
부처를 상징하는 불(佛 )과 부처의 말씀인 경전을 상징하는 법(法 ).
그리고 부처님을 따라 수행과 중생구제를 하는 승(僧 )이 바로 삼보다.
이를 각각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라 한다.
매표소를 지나 산문으로 들어서면 좌편에는 다원과 불교 용품을 파는 한옥 매장이 보인다.
절은 수행과 참선의 도량이지만 절집에 들어서는 필부의 마음도
평정심을 되찾은 듯 물결이 자는 듯 한 편안함이 밀려온다.
다원과 불교 용품을 파는 다송원 |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입석 |
다원을 지나 입석으로 된 승보종찰 조형물은
필부가 갖는 경건함에서 이탈된 생각을 갖게 하는 모양새다.
다원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겸한
누각인 청량각이 등장한다.
청량각 아래는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
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청량각을 건너가면 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도로이고
계곡 옆 오솔길을 거슬러 송광사로 들어간다.
청량각은 다리위에 지붕을 얹어 산문의 격을 한껏 높인 송광사.
청량각 천장 내부 단청 | 모퉁이를 지나면 편백나무 숲이다. |
청량각을 지나오면 좌편으로 아치형 자그마한 다리가 보이고
다리 우편에 "무소유의 길"이 드러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을 실천하시고 열반하신 스님
법정스님이 즐겨 걸음 하시던 불일 암으로 향하는 길이다.
아쉽게도 필부는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송광사 대웅전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후 4시경 산문을 찾았으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무소유의 길 800m 언제가
무행으로 걸어 볼 힐링의 공간이다.
송광사 계곡과 "무소유의 길"로 이어지는 다리 | "무소유의 길" 이정표와 홍예교 |
도립공원 조계산에서 발원한 물길은
크고 작은 소와 폭포를 만들며 송광사 계곡을 지나고
이내 생태습지 주암호로 흘러들어간다.
송광사 계곡 정경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좌편에는 하마비 우편에는 오래된 음각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하마비가 있을 정도면 그 옛날 어느 정도의 위세를 떨치던 사찰 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송광사 일주문 주변 정경!!
절집에 들어 온 느낌이 아니라 예전 세도가의 솟을 대문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수목과 일주문. 불일서점 그리고 뒤로 보이는 전각들의 지붕이 조화롭게 배열된
모습이 산문에 들어서는 행락객의 마음에 경외감이 들게 한다.
고려시대 16국사 부도비가 즐비한 일주문 주변 정경
부도밭 앞에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의 기개가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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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일주문 전각에 붙여진 현판 두개. 사진에 보이는 현판이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 이고
그 뒷편에 길게 늘어진 현판이 승보종찰 조계총림 현판이다.
송광사 일주문 전각은 화려하다 못해 아름다움의 극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
마음과 언행의 경건함이 절로 생겨난다.
16명의 국사 부도비와 일주문 정경 | 불일서점과 일주문 |
송광사를 대표하는 임경당과 우화각
송광사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만 보던 이 장면은
중세의 성곽처럼 물로 단절된 "해자"로 둘러 싸인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로 지레 짐작하고 상상했다.
세속과 불( 佛 )세계로 연결하는 무지개다리 능허교에
누각을 얹어놓은 우화각의 계곡물 정취는
송광사를 대표하는 한 폭의 그림이다.
홍예교와 임경당 누각이 어우러진 계곡물에
투영된 반영은
선계 불국에 들어가는 환상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징검다리 에서 바라본 송광사 백미 임경당 우화루 정경
자연 친화적인 징검다리
측면에서 바라본 임경당 반영과 징검다리 | 징검다리를 건너면 돌계단이 보이고 |
위에서 바라본 징검다리 | 그림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징검다리 |
송광사 해우소
필부가 유서 깊은 절집의 웅장한 전각들을 놔두고 유독 해우소를 찾은 것은
이곳이 진정 수행자들의 비움을 실천하는 곳이기에 관심사가 클 수밖에 없다.
유홍준씨가 선암사 해우소를 찬탄해 마지않았다면
송광사 해우소는 정갈함과 단아함이 배어있는
청결의 결정체였다. 다녀오면 곧바로 비움의 경지로 달려갈 수 있는...^^
해우소 내부전경은 여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정겹고도 청결하다.
비움의 실천을 몸소 경험(?)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해우소 내부 전경(신발을 갈아 신는 신발장) | 비움의 깨침을 수행하는 도량 |
측면에서 본 침계루와 척주각. 세월각
일주문 뒤쪽에 4방 1칸씩의 몹시 작은 건물이 두 채 있는데, 현판에 척주각·세월각이라 하였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자그마한 건물이다.
죽은 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재식시(齋式時) 영가(靈駕)의 관욕처(灌浴處)가 된다고 한다.
즉, 망령도 남녀를 갈라서 척주각은 남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소가 된다.
영가가 절에 들어오기 전에 이 관욕소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네이버 사전 참조)
우편에 보이는 척주각과 세월각
화려한 우화각 내부 정경 | 침계루와 송광사 계곡 |
송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대길상사( 大吉祥寺 ) 수선사( 修禪社 )라고도 하며
해인사.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이며 승보사찰로서 유서 깊은 절집이다.
대웅보전은 1951년 소실 후 1988년 송광사 8차 중창불사로 재단장 되었으며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으로 현대 한국 전통건축의 수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송광사 대웅보전
대웅전 처마는 여타 대웅전과는 달리 독특한 겹처마로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배가된 대웅전이다.
송광사 종고 루에는 범종. 법고.운판.목어가 걸려있다.
우화루를 통하고 종고루를 통과해야 비로소 송광사 대웅보전을 만나 볼 수 있다.
우화루에서 바라본 징검다리 | 송광사 종고루 |
송광사 대웅보전 내부전경
대웅전이란 말 대신 대웅보전으로 부르는 이유는 전각 내에 주불과 협시불이 함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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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종고루 | 대웅전 뒤 설법전 수선사로 오르는 계단 |
송광사 좌편에 자리 잡은 승보전
승보사찰 송광사로 상징하는 이곳은 부처님 당시에 영축 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송광사는
스님들의 참선 수행을 최우선시 여기는 사찰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마저도 방해가 된다하여
절집의 흔한 풍경도 생략된 수행의 도장이다.
승보전과 수행중인 스님들 | 가사를 휘적이며 승보전 요사체로 들어가는 스님 |
관 음 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이다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좌. 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처사로 군집. 불반을 향해 기립해 있는 관음전이다.
관음전 관음상 | 관음전의 화려한 천장 단청 |
승보전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비사리 구시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를 옮겨다 만들었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군 문덕면 대동리 후곡(너문골) 봉갑사 인근 마을의 느티나무다.
그 쓰임새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주는 것으로
쌀 7가마 사천명분의 밥이 담긴다고 하였다.
관음전 뒤로 올라가는 계단에 올라서면 탑인지 부도 인지 모를 탑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 부도 탑으로 1210년 열반해 3년 뒤에 1213년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감로 탑에서 내려다보는 송광사 가람배치 경관이 이승의 세계가 아닌 듯 절세절경이다.
감로 탑에서 내려와 올려다 본 정경 | 감로 탑에서 바라본 절집 군상 |
감로 탑을 보고 있자면 숙연한 마음과 청량한 정신이 교차한다.
경내 참배객을 위한 청간수 | 관음전과 승보전 전경 |
기품있는 송광사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1988년 중창당시 "108 번뇌를 잊으라"는 의미에서
108평 터에 건물을 올렸다 한다. 또한
송광사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절집 마당에서 흔히 보는 석탑과 석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송광사 터는 연화부수형 (물위에 떠있는 연꽃 같은 형태의 풍수)으로 연꽃이 가라 앉을까
대웅전 앞에 석등과 석탑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송광사 위쪽 해우소 | 윗길 해우소에서 내려다 본 계곡과 침계루 |
계곡 윗쪽에서 내려다 본 침계루와 우화각
침계루는 사자루라고도 불리며
"계곡을 베고 누웠다" 해서 이름 붙여진 2층 누각이다.
계곡을 덥고 있는 수목과 침계루 단청
그리고 우화각을 받치고 있는 능허교
이들의 조화를 계곡수와 함께
눈에 담고 카메라 앵글에 잡는 재미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침계루 (스님들의 학습 공간)와 우화각
가물어서 계곡 수량이 많지 않다. | 우화각을 짊어진 능허교의 아름다움 |
신라 말에 세워진 일주문 전각은 1310년 중수되고
이후 3번에 걸쳐 고쳐지어졌으며 지금의 전각의 모습은 1802년의 모습이라 한다.
어디 사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송광사 일주문의 현란한 자태는
전각을 감싸고 있는 노회한 느티나무와 더불어
송광사 산문을 찾는 행락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조계 문이라고도 불리는 일주문은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흔치 않은 조형이다.
현판은 종서로 쓰인 특이한 현액으로 산문을 찾는 참배객과 행락객들의
눈과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주문 좌편에는 사찰에서 드물게 보는 서점이 있다
불교서적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점은 아마도 송광사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목과 불일서점 | 송광사 일주문과 전각들 |
Epilogue
순천 송광사를 다녀온 필부는
오래되고 묵은 과제물을 정리한 기분이다.
송광사 전각과 함께 내려오는 내력의 역사에 궁금증을 더해가며
앵글에 담았던 사진들과 대조. 비교해가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승보종찰 송광사에 푹빠져 지낸
순간순간이 득도와도 같은 깨달음이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아름답고 멋진 역사를 품고 있는
사찰이 존재한다는 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파고 들수록 깊이 있는 무게감이 더해 오는 송광사의 내력과 역사는
사람이 부처고, 부처가 사람인 수행의 절집이고
수많은 부처가 새롭게 탄생하고 수행하며 인간세상을 올바른 길로
행선하는 수행자의 요람이었다.
송광사에 가보기 전에는 임경당과 우화각이 투영된 반영에 매료되어
호기심이 발동했으나, 실제의 전각과 교각을 보고나니
보이는 형태보다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내력과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은
필부가 몸과 마음을 씻고
정진 수행하는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2019년 06월13일 소 금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