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5,8)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단절과 분열의 집에서 나와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이어가기 힘든 여건 한복판으로 찾아가시어 구원의 기쁜소식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게라사인들의 지역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불결했고, 더러운 영들이 출몰하는 무덤들이 널려 있었으며(5,2-5), 돼지들을 방목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절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5,7) 하고 말합니다. 그는 즉시 그분을 알아보긴 했지만 '괴롭히지 말아 달라'며(5,8) 관계맺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무덤 곧, 폐쇄와 단절과 죽음의 집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했습니다(5,5). 쇠사슬과 족쇄를 채워보았지만 그것을 끊어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지요(5,4). 이는 자아가 왜곡되어 분열에 빠진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유다인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악의 세력에 휘둘려 불의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더러운 영에 들렸다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본질인 거룩한 영이 악으로 오염되고 뒤틀린 상태를 뜻합니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히면 폐쇄, 단절, 거짓과 거부, 자아분열과 왜곡, 두려움 등에 빠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자초할 뿐이지요.
더러운 영은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합니다(5,9). 한 사람 안에 있는 더러운 영의 이름이 군대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군대'란 개인으로 보면 극심한 분열과 자기소외를 겪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한편 사회적 맥락으로 보면 군대는 팔래스타인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에 대한 증오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거부하고 자기 몸을 돌로 찧는 사람은 자아분열에 이르고, 사회를 비정상화 하여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몰아내주시자 '옷을 입고 제정신을 차리게 된' 그는 그분께 “함께 있게 해달라”(5,18)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을 모두 알리라."(5,19)고 하십니다. 자아회복과 인간다운 사회로 되돌아감은 죄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며 예수님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도 이웃 형제의 거친 마음, 닫힌 마음, 상처받은 마음, 무디고,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마음 속으로 찾아들어가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길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하느님의 선과 자비의 손길을 거부하고 관계를 단절한 채 무덤에 거처하는 자폐인이나 주검이 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시는 하느님을 믿고(히브 11,8), 무덤에서 나와 순수한 영을 회복함으로써 사랑의 집, 정의의 집, 받아들임의 집으로 돌아가 자아를 통합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불평등의 악에 과감히 맞섬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실현해가는 정상적인 사회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