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히메노 코토리
때는 1600년대 조선.
김득신이라는 사람이 살았음.
참고로 이 유명한 그림을 그린 화가 김득신과는 동명이인,
내가 소개하는 김득신은 진주대첩하면 떠오르는 그 인물, 김시민의 손자가 되는 사람임.
하여튼 집안도 좋고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그에게 매우 모자란 부분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어린 시절 앓은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지능이 둔해졌다는 사실이었음.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 하면 처음으로 글을 깨우친 나이가 10살이고, 처음으로 작문에 성공한 나이가 20살이었다고 함.
당대의 문자가 한글이 아닌 한자임을 감안해도 남들은 보통 5,6세에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니까 10살부터 한자를 읽기 시작했다면 상당히 늦은 나이가 맞음.
이 사람의 아둔함이 당대에도 유명했는지,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민담에도 김득신의 바보 썰이 상당 부분 남아있는데...
이야기 1.
김득신에게는 그를 오래 모신 늙은 마부가 있었음.
이 마부는 나이가 먹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은퇴를 결심하고 김득신을 찾아감.
마부 : 저... 마님. 여쭐 말이 있습니다.
김득신 : 뭔데?
마부 : 저... 쇤네도 이제 늙어서 마부 일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그러면 이제 먹고 살 일도 막막하고... 땅뙈기 조금만 내려 주시면 그걸로 남은 여생 농사짓고 살겠습니다.
김득신 : 뭐??? 땅을 달라고? 장난해?? 썩 꺼져버려라!
늙은 마부는 애써 실망을 감추며 뒤돌아서 나가려고 했음.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김득신이 마부를 불러 세우며 이렇게 말을 함.
김득신 : 잠깐 기다려. 땅문서 받아가야지 어딜 가.
주변 사람들 : 뭐야??? 줄거면 아까 주지 왜 사람을 낚고 그래요???
김득신 : 아니 그게 아니라;;;; 마부는 맨날 내 앞에서 말을 끌잖아.. 그래서 얼굴을 까먹었어. 뒷통수 보니까 딱 알겠더라고.
이만하면 무슨 안면인식장애 아닌가...;;;;
이야기 2.
김득신이 어느 한식 날에 말을 타고 밖으로 나감.
그렇게 말을 타고 들을 지나는데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좋은 시구가 떠올라버림!
그 시구는 이러했음.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 즉 말 위에서 한식을 맞았으니.. 라는 지금 상황과 아주 딱 떨어지는 시 구절이었음.
그런데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게 어울리는 다음 구절이 생각나지 않음. 그래서 김득신이 시구를 중얼거리며 머리를 부여잡는데 말을 끌던 뜬금없이 이렇게 말을 함.
하인 : 도중속모춘(道中屬暮春) 아닙니까?
저 말 뜻은 길 가던 도중 늦봄이 들어버렸다는 뜻으로 김득신이 지은 시구에 아주 딱 맞는 내용이었음.
김득신은 놀라 자리에서 내이려 이렇게 말했음.
김득신 : 야 너 천재 아냐???? 나보다 똑똑하네 와... 이제부터 내가 말 끌테니까 네가 말에 타라.
하인 : 마님 이거 원래 있는 시잖아요.
김득신 : 원래 있던 시라고....?
하인 : 매년 한식날만 되면 주구장창 읊어대셨잖아요. 저도 기억하는데 까먹으셨습니까?
김득신 : ......
하여튼, 일화만 보면 단순히 '동네 멍청이'에 불과해 보이는 김득신에겐 사실 한 가지 반전이 있으니
그건 바로 당대 손꼽히는 시인 중 한 사람이라는 점임.
風塵一別洛陽家 난리 통에 한 번 서울 집 떠나 온 뒤로
獨抱深愁亂似麻 홀로 깊은 시름 안은 채 삼처럼 어지럽구나
窮谷積陰春意懶 깊은 골짜기 쌓인 음기에 봄이 더디니
小梅寒勒不開花 작은 매화가 추위에 움츠려 피지 못하네
<병자호란 때 피란 가서 처음 짓다>
바로 이 시가 김득신이 지은 시임.
20살에 처음으로 작문에 성공한 사람이 이젠 제법 그럴듯한 시를 지어내는 수준에 이른 것임.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답은 뭐 진부하지만 결국 노력이었음.
본인이 남들보다 멍청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김득신은 정직하고도 단순하게 책을 여러 번 읽어 공부하기로 함.
10번? 100번? 아님.
그가 남긴 독후 감상문인 '독수기'를 보면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적혀있음.
「<사기>의 백이전 1억 1만 3천 번 읽다.
<노자전>,<능허대기>,<의금장>.... 등등은 2만 번 읽었다.
<제책>, <목가신기>... 등은 1만 8천 번.
....
전부 합해 36편이다.
<장자>,<중용> 등은 1만 번을 넘게 읽지 않았기에 기록에서 제외한다.」
그러니까 1만번 이상 읽은 책만 36편에 달한다는 소리임.
물론 당시의 억은 현재의 10만을 가리키는 단위라 백이전을 읽은 실제 횟수는 11만번임...
책 하나를 11만번....ㅎㅎㅎㅎㅎㅎㅎ 사람인가
물론 이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음.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정약용.
정약용은 이렇게 말함.
"책을 잘 읽는 선비라면 사기의 백이전을 하루에 100 번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같은 글을 백 번이나요....?
아니 조팔 갑자기 나 현타오는데...
분명 자극 받고 힘내려고 김득신 글 쓰고 있엇는데 왜 현타가 오지 휴....
하여튼 정약용은 이렇게 말함.
"독서를 잘 하는 선비라면 하루에 글을 백 번 읽을 수 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읽으면 3만 6천 번이 된다. 또 그렇게 3년을 읽어야 10만 번이 넘는데 3년 내내 책만 읽을 수 있나? 중간에 아프기도 했을 것이고 집안 일도 처리해야 했을 거고 넉넉잡아 4년쯤 걸렸겠지. 백이전만 4년인데 어느 세월에 36편을 만 번 읽는단 말인가? 아마 천 번쯤 읽은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전해 듣고 잘못 적었겠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인간 스펙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도 정약용이 마냥 의심만 한 건 아니고 '그럼에도 독서량이 장하다고 할 수 있다' 고 인정하는 말도 남기긴 했음.
평생을 자신의 떨어지는 기억력과 끊임없이 싸우며 공부한 김득신은 마침내 59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함.
10살에 처음으로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 60을 내다보는 나이에 진정한 인간 승리를 거머쥔 것임.
그것도 단순하고 분명한 노력 하나로.
아마 김득신이 10개월에 글을 뗀 천재였다면 이 묘비명이 와닿지 않았겠지.
솔직히 책을 만 번 볼 자신은 없지만 뭐라도 해보긴 해봐야겠다는 느낌을 얻으며 글을 마침.
첫댓글 대단하다.. 솔직히 읽는 내내 저거도 남자니까 가능했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ㅋㅋㅋㅋ 내가 여자여도 저 정도 노력을 하면 평범한 남자들보단 잘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비슷한 노력을 한 남자들보단 못할 거 생각하니 다시 씁쓸해지는..
일단 저만큼의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어 안하는것보단 하는게 확실한 결과가 나오니까..ㅜㅜ!!!!! 누워있었는데 책상에 앉았다 뜨흑 열심히해야지
와우 진짜 대단하다.... 여샤 넘잘봤어 완전흥미돋고 글 넘잘써줬당 ㅜㅜ고마웡!
우와!!!!! 나 이사람 엄청 찾고 있었어!!!!!!!!!!!!!!!! 우연찮게 이비에스로 봤는데 암만 생각해도 이름이 생각 안 나서 계속 궁금해했는데 이사람이구나!!!!
좌절하지않은게 제일 대단하다 난 하루만 공부안되도 시발거 내머리는 안돼 이러는데
대단하다ㅠㅠ나도 공부중인데 외웠던거 생각 안나면 다 때려치고 싶던데ㅠㅠㅠ묘비문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어 글 쪄줘서 고마워 여시야
환경과 배경을 떠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이상을 꿈꾸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스럽다... 하면 된다의 좋은 예시같아 여샤 재밌는 이야기 고마워!!
나도 낼부터 다시 공부해야지ㅎ_ㅎ
묘비문에 진심이 느껴진다ㅜㅜㅜㅜㅜㅜㅜ
10살부터 60살까지 노력하는 끈기가 진짜 대단하다...
와...... 나라면 엄청 좌절하고 한량으로 살았을텐데
말이야 11만번이지 가늠도 안되고 부끄럽다ㅜㅜ
우와 진짜 열심히 노력한 거라 더 대단해보여
진짜 대단하신분이다..
눈물나도록 노력했구나...위로가 된다...ㅠ여시야 글 올려줘서 고마워
존잼....ㅠㅠㅠ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늙었나보다.. 저 묘비명을 보는데 눈물이 남...
여시 글 읽고 여시글 정주행하고있어ㅠㅠ너무 재밌고 유익한 글 많이 쓴당😘😘
묘비문 대박...
와 완전 힘나ㅠㅠㅠㅠㅠㅠ모든 여시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글써줘서 고마워 여시
와 대단하다... 엄청 노력했네... 나도 열심히 해야지...ㅠ
헐... ㅠㅠ 미칭.. 대박이다..... 이런 뒷이야기? 한국사 뒷이야기 이런건 어디서 볼 수 있는거지...
진짜 엄청 와닿는다 ㅠㅠ 글 고마워 여시야
와 뒷통수 얘기보고 피식했는데 진짜 대단하신분이구나.... 김득신님.... 기억할게요...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와 대단하다...내용이 너무 흥미돋이고 요즘 공부하고 있는 나한테 너무 큰 힘이
되는 이야기야ㅠㅜㅠ 올려줘서 고마워 여시!
와 이 글 읽고 구글에서 더 찾아봤는데 조부는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이셨대!! 역사는 알면알수록 흥미돋이다! !!🍀🍀
북마크!! ㅠㅠ디시보러와야지 고마워 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