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생들에 비하면 '독일 대학생들'은 정말 모든 조건이 갖춰진 듯싶었다. 우선 아무나 대학에 오지 않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기가 결정하고 집안에서 허락해서 대학을 가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9년의 김나지움 과정을 거쳐서 대학에 오게 되는데. 다양한 형태의 김나지움이 있다. 크게 이공계와 인문계로 나뉘고, 인문계에도 고전어계열과 현대어계열 등 몇 개의 유형이 있다. 그리스어 계열의 인문계 김나지움 졸업생들을 보니까 정말 놀랄 정도로 그리스어를 질했다. 그쪽 계열 출신이 아닌 교수들도 고전 그리스어에 관해서는 거기 졸업 학생들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김나지움 과정에서 일반교양에 관한 공부까지도 전부 마치고 온다. 대학은 완전히 전문화과정이다. 그래서 바로 석사과정, 즉 대학원인 셈이다. 중간고사(Zwischenprüfung)라는 것을 보아서 논문 쓸 자격이 되는지를 검토하는 절차가 있긴 하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왔을 경우 바로 이 중간고사를 면제받고,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셈이다. 그런데 학부를 졸업 못하고 다니다만 왔을 경우는 그 중간고사에 해당하는 자격시험을 보거나, 그에 대등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쨌거나 독일의 대학에서는 우리 대학처럼 교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이 ‘교양교육’ 때문에 대학의 전문성과 학술성이 떨어지고, 대학의 분위기가 아카데믹하지 못하다.
대학에 들어온 독일 학생들은 매우 진지했다. 칸트 프로[초보]세미나에 들어가서 갓 김나지움 마치고 온 독일 학생들과 같이 세미나를 했는데, 이미 김나지움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다 완독하고 온 학생들이었다. 토론에서 웬만한 칸트 원본의 구절들을 줄줄 외우다시피 설명하는데 깜짝 놀랐다. 독일은 모든 교육이 대화와 토론 중심으로 펼쳐진다. 나도 오래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내 아이들도 독일 유치원을 다니고 큰애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거기서 유치원에서 무엇을 교육하고 초등학교에서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는지 대략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자가 자기 의견을 똑똑하게 말하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 중심으로 모든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토론을 좋아하는 독일인의 민족성으로까지 승화된 것이다. 거기서는 어디서건 토론이었다. 가족들의 모임에서도, 친지나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학생들의 맥주파티에서도 그렇다. 텔레비전도 큰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면 온 국민이 보면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저 어디가나 독일인들은 만나면 그저 이야기, 토론이었다.
김나지움을 나온 학생은 독일의 어느 대학에나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자기가 원하는 전공에 따라 자기가 선호하는 대학을 선택해서 입학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그러면 원하는 대학교에 자리가 있으면 그 대학에 입학이 된다. 등록금이 없으니까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잠자리와 생활비다. 잠자리는 대학이 마련한 기숙사와 대학이 속한 도시가 확보하고 있는 사회복지 건물이 해결을 위해 나선다. 그 다음 생활비는 그 학생의 부모의 수입에 달려 있다. 부모 수입이 학생의 학비를 댈 여력이 있으면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경우 지자체에서 나서 강제로 학비를 대게끔 조처하는 제도가 정비돼 있다. 그러니 독일의 대학생은 돈이 없어서 공부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 다음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 제도'가 있다. 수많은 단체가 능력 있는 젊은이를 발굴해서 지원하기 위해 재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거기에 ‘정당’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독일은 정당이 자기들의 ‘정치이념’에 따라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관심 갖는 사람들을 모아서 교육하며, 자기들의 정당이념을 지지하도록 만드느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네 지지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청소년들을 잡는 것 아니겠는가! 일반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부터 시작해서 김나지움 학생 그리고 대학생까지 손을 뻗혀 자기들의 정당이념과 정책을 홍보하며, 같은 생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홍보한다. 거기에는 온갖 정책들이 다 포함돼 있다. 취업, 노동시수, 최저임금, 복지, 교육, 생태 등 모든 이슈들이 다 망라돼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 자신들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며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리고 막말로 자기편으로 확보하려고 애쓴다.
‘정당 장학금’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런 잠재적인 사회 엘리트들을 자기 당원으로 만들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정당들이 앞 다투어 실력 있는 대학생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으려고 ‘장학금을 통한 학생유치’에 총력을 기울인다. 가장 선호대상은 누구겠는가! 법학도와 의학도다. 법학도와 의학도들은 장학금 주겠다는 데가 너무나 많을 지경이다. 그러니 가난한 집안 출신의 학생이라도 이쪽에 입학만 되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다음 이공계가 공부만 마치면 취직이 문제가 없으니까 지원을 많이 해준다. 독일에서도 인문사회계가 덜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정당이념이니 정책이니 하는 것은 결국 인문사회계열의 엘리트들이 책임져야 할 분야다. 그러니 실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장학금은 쉽게 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