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자리돔은 해역별로 생김새나 맛이 다르고,
먹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모슬포 쪽 자리돔은 까맣고 뼈가 억세고,
가파도 자리돔은 구워 먹기에 좋고,
한림 비양도 연안에서 잡은 놈은 젓으로 담구는 것이 제격이라 한다.
서귀포 연안 섭섬이 있는
보목동과 범섬이 있는 법환동의 자리돔은 몸 색갈이 밝고,
뼈(가시)가 부드럽고 맛이 고소해서
날로 썰어 강회나 물회로 먹기가 좋다
급하게 흐르는 조류를 섬이 막아주기 때문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자리돔 잡는 것을 ‘자리 뜬다’고 한다.
옛날 전통적인 어법이, 테우(제주 전통뗏목)에서
그물을 바다 속으로 늘어뜨렸다가
퍼 올리듯 자리돔을 잡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통 유채꽃이 노랗게 땅을 덮을 즈음
바다에서는 자리를 뜨기 시작하는데,
5월에서 8월 사이에 잡히는
자리돔은 몸 색깔이 엷은 다갈색을 띠는데,
이때 잡히는 자리돔이 살이 넉넉하면서
뼈가 억세지 않아 물 횟감으로 가장 좋다.
여름철 자리돔이 물횟감으로 으뜸
2002년 월드컵운동장 뒤편,
서귀포칠십리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서귀포 법환동 ‘해녀마을해녀횟집’을 운영하는 강지준 씨는
범섬 앞 연안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뼈가 특히 연해 자리돔물회로 그만이라 한다.
어머니와 누님을 해녀로 두었다는 강씨는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자리물회를 다른 곳과 구별지어
굳이 ‘범섬자리돔물회’라 이름 짓기를 고집한다.
자리돔물회는 여름철 음식답게
당근, 오이, 양파, 무, 상추, 미나리, 깻잎과
청양고추 등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
야채는 잘게 채 썰고,
자리돔은 몸체 길이가 5~6센티미터 정도가 가장 알맞은데,
큰놈은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내 비늘을 치고,
작은놈은 그대로 비늘만 치고 뼈째 자잘하게 썰어낸다.
채 썬 야채와 잘게 썬 자리돔에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섞어 넣고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등 갖은 양념도 한데 넣어
살짝 버무린 다음, 생수를 붓는다.
여기에 시원하게 얼음을 띄우고
식초를 살짝 치면 자리돔물회가 완성된다.
여기에 잘게 썬 제피 잎을 넣으면,
톡 쏘는 듯한 제피의 독특한 맛이 잡내를 없애고
국물을 더욱 맛깔스럽게 한다.
자리돔물회 솜씨로 소문난 이 집 안주인 김창숙 씨는
외지 사람들은 제피 잎을 싫어하기도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반드시 제피를 넣고 제 맛을 즐긴다고 한다.
자리물회는 비린내가 나지 않고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
입 안에서 뼈와 함께 고소하게 씹히는 연한 자리돔살의
감칠맛은 제주를 대표하는 맛으로 부족함이 없다.
자리물회 다섯 번이면 보약이 무용지물
자리물회는 옛날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일손을 잠시 멈추고
된장을 풀어 자리돔을 내장째 숭덩숭덩 썰어 넣고,
숟가락으로 오이를 듬성듬성 잘라 넣어
시원한 맛으로 후루루 마시듯 먹었던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때 들어가는 우리 고유의 된장은 맛을 내는 기본 기능 외에
위생시설이 부족했던 옛날에 방부제 역할도 하여
배탈이 나지도 않게도 했다.
다른 지방에서도 가자미나 오징어 등 여러 가지 횟감으로
물회를 만들 때는 대게 고추장을 풀어 넣는데,
제주도 자리돔물회에는 된장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 제주도 사람들은 한 여름 시원한 자리물회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식히면서 나른해진 몸도 추슬렀다.
자리돔물회의 상큼한 맛이 여름철 영양보충에도 한 몫을 한 것이다.
뼈째 먹을 수 있어 양질의 칼슘과 지방,
고단백질의 보충에 그만이다.
예로부터 제주도에서는
자리돔회 다섯 번이면 보약이 필요 없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자리돔의 영양성분을 우리 조상들이 훤하게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리물회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하는데,
여기에 부드러운 제주도 미나리가 한 맛을 더해준다.
특히 자리돔회는 술 먹은 다음날 숙취 해소에는 말할 것 없고
여자들의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국물 맛이 입맛을 당기게 해 밥맛을 잃을 사람에게도 좋고,
소화가 잘돼 위장이 약한 사람도
자리물회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요즘 생선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횟집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회라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자리돔은
제주도가 아니면 먹을 수가 없는 토속음식이다.
맑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상큼한 자리돔물회를
먹는 맛은 제주도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별난 맛이다.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주의 대표적 향토음식인
자리돔물회를 먹어보지 않는다면 아쉬운 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