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인생학교
박돈규의 책시렁: 알랭 드 보통 매뉴얼(2)-일
※스위스 태생의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ㆍ46)은 ‘일상의 철학자’로 불린다. 우리 주변에 흔한 사물이나 생각에 인문학적 렌즈를 들이대 재발견하는 기쁨을 선물해온 이야기꾼. ‘알랭 드 보통 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이 남자의 생각 그 두 번째 글감은 일(work)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밥벌이로서의 일을 드 보통은 어떻게 바라볼까.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싸울 가치가 있는 건 모두 당신 삶의 평형을 깨뜨린다(There is no such thing as work-life balance. Everything worth fighting for unbalances your life).”
2013년 11월 알랭 드 보통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일을 대충 하다가는 판로가 막히거나 잘리거나 문을 닫기 일쑤다. 일은 끝없이 밀려오고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따라서 이상적인 의미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란 현실에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일’이라는 명사를 찾으면 맨 앞에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낸다. 하지만 무엇이 일을 우리의 활동 중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괴로운 것으로 만드는지를 다룬 책은 놀랍게도 거의 없다. ‘일의 기쁨과 슬픔’(정영목 옮김, 은행나무)은 현대 직장의 기쁨과 위험을 탐사한 책이다. 드 보통은 하역 부두부터 비스킷 제조, 로켓 과학부터 항공 산업까지 다방면으로 살피고 체험하면서 다양한 직업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무엇이 성취감을 주고 무엇 때문에 피로해지는지 살핀다.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소유하는 물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 나아가 그 생산에 관여한 사람이나 연장까지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돼지, 목수, 직조공, 우유 짜는 아낙네와도 알고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구매 가능한 물품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물품의 유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거의 깜깜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많은 물건을 손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 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드 보통은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숱한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말한다.
▲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의 기쁨과 슬픔'.
현대인의 일과 삶, 그 의미를 추적했다.(책표지 클릭 .^^.)
‘물류(logistics)’를 예로 들어보자.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로지스티코스’, 즉 군대에서 식량과 무기의 조달을 책임지는 병참 장교라는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늘날 이 말은 창고 보관, 재고 조사, 포장, 운송 기술을 전체적으로 일컫는다. 고속도로 근처나 공항 주변에 볼 수 있는 회색 창고를 떠올려도 좋다. 이들은 구경꾼에게 자신들이 거기 있는 목적을 설명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지루하게 보이기로 작정한 듯한 부지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드 보통은 영국 중부의 한 물류 창고로 들어간다. 평소에는 가정용 크기로 포장된 것만 보던 물건들이 산업용으로 엄청나게 크게 포장되어 트럭에 잔뜩 실린 채 조금씩 움직여가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초콜릿 바, 시리얼, 생수, 매트리스, 마가린이 어둠 속에서 북쪽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 광경은 어떤 면에서는 강물처럼 위로를 주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정체된 분위기를 걷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흘러 지나가는 삶 자체다.”
물류 단지의 특징인 좌고우면하지 않는 일 처리는 밤에 특히 투명하게 드러난다. 과거에 밤은 유령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함께 웅크리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물류 허브는 인간의 연약함이나 영적 세계, 또는 자연적 리듬 그 어느 것에도 양보하는 법이 없다. 노동자들은 물러난 태양 대신 조명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일을 하고 있다. 트럭이 3분에 한 대꼴로 출발하는데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도시마다 매일 아침 화물트럭이 신선한 치즈와 젤리, 생선 케이크와 양 커틀릿을 싣고 도착한다.
시간이 핵심이다. 어떤 특정한 순간에 창고 내용물의 절반은 72시간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가령 딸기는 한겨울엔 이스라엘, 2월에는 모로코, 봄에는 스페인, 초여름에는 네덜란드, 8월에는 잉글랜드, 9월부터 크리스마스 사이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날아온다. 딸기를 따는 순간부터 곰팡이의 공격에 굴복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여유는 96시간뿐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동자가 게으름을 떨쳐내고 창고들 사이에 화물 받침대를 깔아놓거나 으르릉거리는 디젤 트럭 안에 앉아서 기다린다.
이 거대한 식량 창고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 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결과 우리는 일본어를 배우거나 미적분을 익히거나 관계의 진정성을 걱정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더 보통은 “포도주가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빵이 알프스처럼 쌓여 있는 우리의 풍요로운 세계는 기근에 시달리던 중세의 조상이 꿈꾸던 생기발랄한 곳이 아니다. 겉으로는 법을 잘 지키고 고분고분하게 살지만 속에서는 소리 없이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몰디브에서 낚시로 포획했다’고 포장지에 적힌 참치 스테이크를 보고 몸소 그 경로를 되밟는다. 따뜻한 물에 사는 물고기가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드 보통은 몰디브로 가서 어선을 탄다. 서른세 살에 다섯 자녀의 아버지인 이브라힘 라시드 선장은 “자녀가 생존하려면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성숙한 참치를 적어도 열다섯 마리쯤 곤봉으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마침내 시속 50㎞로 헤엄치는 참치 떼와 마주친다. 그 저주받은 생물은 부레가 없기 때문에 가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평생 꼬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기 때문에 살이 점점 더 근육질이 되어 특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잡힌 뒤 공장에서 잘려 포장되고 비행기에 실려 영국으로 간 참치가 트럭으로 배송되는 과정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참치 입에서는 아무런 비명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저 둔탁한 소리만 들렸다. 참치의 뇌와 그간의 경험이 박살 나는 소리였다. (…) 참치 공장 사람들은 칼로 3분 만에 참치를 저미는 방법을 안다. 슈퍼마켓에서 오래전부터 눈에 익은 라벨 두루마리와 마주치자 놀랍고도 뭉클했다. 어부들이 몽둥이로 참치를 때려죽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 비행기의 구조는 참치의 어떤 면들과 비슷하다. 아가미처럼 공기를 흡입하는 보조날개가 있고 동체를 따라 지느러미들이 달려 있다. (…) 트럭은 이른 아침에 브리스틀 교외의 알루미늄 창고에 멈추고 참치는 다시 동네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인도양의 소금물에서 들어 올려지고 나서 52시간 뒤의 일이었다.”
‘모먼트(Moments)’란 이름의 비스킷을 만드는 공장을 방문한 대목도 흥미롭다. 그 회사의 디자인 책임자는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라고 말한다. 소비자를 분석했더니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을 토로한 게 시작이었다. 밀가루 반죽으로 심리적 갈망에 응답하겠다는 계획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이 회사는 브랜딩 전문가를 통해 비스킷의 크기와 형태, 코팅, 포장, 이름 등으로 그것을 실현했다. 비스킷이 마치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미묘한 느낌의 인격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하고 로먼 크르즈나릭이 쓴 '인생학교: 일'.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을 일러준다.(책표지 클릭 .^^.)
드 보통은 대체로 현대인의 ‘행복’과 ‘고통’에 대해 글을 써왔다. 2013년 런던에서 그를 인터뷰할 때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인데 서점에는 자기계발서가 차고 넘친다”고 했더니 드 보통은 이렇게 답했다. “그 책들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넌 뭐든지 할 수 있다(You can do it!)’ 아니면 ‘낮은 자존감(low self-esteem)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둘 사이에는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상업적인 공모(共謀)가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와 낮은 자존감이라는 현실 사이의 틈새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다.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살핀 직업 중에서 인공위성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과는 정반대라서다. 그들은 자아(ego)를 개입시키지 않고 집단적인 작업을 한다. 흔히 거대한 팀을 이뤄 공정의 어느 작은 부분을 붙잡고 5년에 걸쳐 일한다. 어쩌면 누구도 뭘 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왜 그 일을 하는지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그 질문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인데.”
이 책과 함께 로먼 크르즈나릭이 쓴 ‘인생학교: 일’(정지현 옮김, 쌤앤파커스)을 읽어보길 권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취직하면 막연히 일주일에 5번 시간 맞춰 직장에 가는 우리에게 ‘난 왜 일하는가?’ ‘내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돌직구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는 카뮈의 말처럼, 영혼이 담긴 일을 찾는 것은 현대인의 가장 큰 열망이다. 저자는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큰 공포는 ‘영혼 없는 노동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인생학교: 일’은 당신의 재능이 세상의 필요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지, 직업을 바꿀 때 ‘안전’과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문답으로 들려준다. “현대인이 종교처럼 집착하는 ‘천직에 대한 열망’이 철저히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 통렬하다. 우리가 인생의 순간순간을 열정적으로 불살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왔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나는 완벽한 일(perfect job)에 대한 공상에 잠기는 것을 어느 순간 멈췄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데 대한 핑계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우리 사무실 문명의 하루는 초보 조종사의 비행기 이ㆍ착륙과 닮아 있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나 술 없이는 실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는 힘겹게 이륙하고 쿵 소리와 함께 착륙한다.” 우리는 일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한다. / 박돈규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15.04.2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