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제삿밥을 먹었다 / 황정아
시동생의 결혼식은 잘 치렀다. 어머니 계시는 본가에 가족들이 모였다. 결혼 경비와 손님맞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마른 큰 누님과 욱하는 남편이 부딪쳤다. 큰소리가 오가는 중,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하늘이 폭우를 퍼부었다.
남편이 큰 누님을 향하여 큰소리를 질렀다. “서로 얼굴 볼 일 없을끼요.” 그리고는 “어머이! 작은 누나들! 다음에 봅시다.”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큰 누님의 대거리가 이어졌다. “오냐, 니 그 성질머리 고치기 전에는 절대 만나지 말자.”
예기치 않았던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밤중, 남편은 무작정 차 시동을 걸었다. 와이퍼는 차창 밖 빗줄기를 바삐 씻어내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긴장이 전해왔다. 길은 S자 곡선으로 이어져 남편의 핸들에 눈길이 자주 갔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하니 몸도 마음도 후줄근하게 젖어있었다.
‘한결같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인디언 달력처럼 꽃피우고 새 우는 3월이 왔다. 음력 2월 8일 시아버지 기일도 돌아왔다. 시누이들이 오셨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짐을 받았다. 밤은 깊어가고 이윽고 제사가 끝났다. 기다렸던 저녁 밥상을 차렸다. 몇 달 전, 다시는 볼 일 없다고 하였던 두 사람이 상을 마주하며 앉았다. 남편이 생선 살을 떼어 큰누나의 밥 위에 얹어주었다. 누나는 문어숙회를 남편 앞 접시에 얹어주었다. 순간 가족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 가슴에도 찌르르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맛난 음식을 먹고 만날 날을 기약하며 즐겁게 헤어졌다.
그런 중에도 집안 대소사 문제로 만나면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알았소, 나도 같은 생각이요.”라는 끝말로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정작 제삿날에 만나면, 장녀 장남이 마주 앉아 속없는 사람들처럼 제사 음식을 서로의 밥상 위에 얹어주며 맛있게 먹고 늦게까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탄없이 나누었다.
세월은 3월과 함께 또 시아버님 기일을 불러왔다. 형제들과 산청 시동생 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 길가의 키 큰 벚나무 가지에는 젖이 통통 불은 돼지 젖꼭지 같은 꽃망울이 발그레하였다. 가로수 뒤 후미진 곳에서 열심히 꽃물을 올리고 있는 노란 개나리들, 화창한 날씨였다.
암을 이겨낸 넷째 시누이 부부가 도착하자, 마지막 손님으로 도착한 조카 부부가 젊음을 더해주었다. 시동생과 동서는 점심 재료를 살뜰하게 준비했다. 수산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해물과 횟감으로 점심을 먹었다. 한 상에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면경처럼 훤히 보이는 서로의 삶들은 가릴 것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산시장에서 사 온 봄날의 해물들이 바다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었다. 나의 요리가 시작되었다. 살아있는 돌 문어는 자줏빛 꽃처럼 삶아내고, 부채모양의 옷을 입은 삶은 따개비 알맹이는 돌담치와 함께 반지르르하게 조렸다. 탕국 한 솥 끓이고 말린 생선들은 푹 쪄내어 통깨와 빨간 건고추로 고명을 얹었다. 생 감성돔과 참돔은 팬에 구웠다.
동서가 미리 요리해 놓은 나물들의 조합, 일곱 색깔이 한 대접에 모이니 오늘 모인 식구들 같았다. 노란 전들이 몇 접시 놓이고 동그란 술떡과 과일, 다른 음식들을 더하여, 시동생과 동서가 제사상에 올렸다.
우리 부부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십 년이 지났을 때쯤 시동생과 동서가 제주가 되어 주관하고 있다. 몇 해 동안 신앙적 이념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형제들과의 만남은 중요한 일이기에 함께 음식을 만들고 더불어 시간을 나누었다.
제사 음식은 가족들을 한 띠로 모아주는 삶의 중심이었다. 형제간의 마음이 닫혔을 때도 서로를 풀어 주는 특별한 만찬이기도 했다. 집안 식구들이 오랫동안 즐기던 익숙한 음식들을 정성껏 만들어서일까. 음식 하나하나에 깃든 제사 절차와 상차림은 언제 보아도 경건하다. 형태와 대상은 다르지만 함께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예배자로 보였다. 제사가 끝나고 늦은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산청의 봄밤은 깊어가고 옛이야기가 밥상 위로 날아다녔다.
동제가 있는 날 저녁엔 마을 여인들의 손길이 제사 집에 머물렀다. 전 굽는 고소한 기름 향이 온 마을에 퍼져나가는 저녁 시간, 어르신들의 헛기침 소리에 제사 집 대문이 열리고 뒷산 그림자도 슬그머니 마을로 내려왔다.
대청마루에 조촐한 술상이 차려지고, 아이들도 잠이 들면 꼭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자정이 되면 제사 음식이 집마다 배달이 되었다. 기다리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먹으며 그 밤을 행복하게 보냈다. 이른 아침에는 어르신이 계신 집집마다 방문하여 제삿밥 드시러 오라고 바쁘게 내달렸다. 옛이야기는 자정이 지나도록 무르익어갔다.
어느새 아침이다. 해는 뒷산 어둠을 밀어내고 지붕 위 가까운 하늘에서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하동 섬진강을 끼고 재래시장 구경에 나섰다. 벚꽃 철에만 채취하는 ‘벚굴’을 맛보았다. 함께 오신 사촌 아주버님이 비싼 벚굴 점심을 대접하였다. 시누이들이 어린 머위와 매실장아찌를 사주셨다. 함께 한 형제들과 아쉬운 악수를 나누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님은 한참 전에 떠나셨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던 큰 누님과 말없이 속 깊은 둘째 누님도 먼 곳으로 가셨다. 다시는 볼일 없다던 형제간의 다툼도 끝났다. 남은 형제들끼리 제삿밥 먹으며 순한 세월로 흐르고 있다. 봄은 떠났다가 또 오건만 인생은 한번 가면 영원한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그래서 산 자들은 떠난 자들을 위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제사 음식으로 추모의 정을 나누는 것이리라.
올해도 봄이 익어가는 3월 한밤중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옛이야기 비며 가며 맛난 제삿밥을 먹었다.
첫댓글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제삿상도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