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장 9절 ~ 12절
O 선지자들로 인하여 내 안에 있는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니 주로 인하여 그의 거룩하심의 말씀들로 인하여 내가 술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만취된 사람 같도다. 9)
Mine heart within me is broken because of the prophets; all my bones shake; I am like a drunken man, and like a man whom wine hath overcome, because of the LORD, and because of the words of his holiness. 9)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앞으로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짐승의 표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받을 것을 권유함을 보게 된다면 위 말씀처럼 마음이 상하고 모든 뼈가 떨리게 될 것입니다.
이는 백신사기극에서도 일어난 일로 예배를 하기위해서 백신 접종을 독려한 목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백신을 분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이 기도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서 앞으로 짐승의 표가 나타나도 그들은 속임수에 동참하여 짐승의 표를 독려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목회자이건 성도이건 모두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짐승의 표를 알고도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권유하는 것이나 그들도 속아서 짐승의 표를 권유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열매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분별하지 못함은 모르고 속았던 간에 알고도 동참하였든지 간에 같은 것입니다.
백신을 접종을 독려하는 목회자로 자신도 속았다고 해도 그 열매가 성도들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통로가 된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의 유익을 깨닫지 못하는 술취한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말씀이 사람들의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술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짐승의 표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자기의 영 혼 육을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충돌은 영적인 영역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실과 근거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설득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실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영적인 관점에 의하여 진실로 보여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땅이 간음하는 자들로 가득 찼고 맹세로 인하여 이 땅이 애도하기 때문이니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고 그들의 행위는 악하며 그들의 힘쓰는 것은 정직하지 않도다. 10)
For the land is full of adulterers; for because of swearing the land mourneth; the pleasant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dried up, and their course is evil and their force is not right. 10)
the (course) of life 인생의 (행로)
이 땅이 황폐화 됨은 곧 사람의 죄 즉 불순종에 의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맹세로 인하여 땅이 애도함은 주의 심판의 약속이 실행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의 심판의 맹세는 사람의 맹세와는 달리 무조건 실행이 되며, 그것으로 인하여 재앙과 재난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애도하는 것입니다. the pleasant places를 초장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원문의 의미가 제한됨이 느껴지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the pleasant places of the wilderness는 광야에서 즐거운 곳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즐거운 곳은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머문 곳이며,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안 즉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광야를 의미하는 구절로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광야에서도 즐거운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말라 사라지게 됨이라는 의미가 전달되어져야 합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불경하니 정녕, 내가 내 집에서 그들의 사악함을 보았노라. 주가 말하노라. 11)
For both prophet and priest are profane; yea, in my house have I found their wickedness, saith the LORD. 11)
당시의 선지자들도 모두 불경하고 사악하였다면 지금의 선지자 제사장이라고 볼 수 있는 지금의 기득권자들또한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중형 교회에서도 월에 걷히는 십일조가 억단위가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 사기극과 5G 사태에서 아무런 목소리나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대중 집회가 일어나면 항상 돈을 또 걷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교회에 나가시면 어떤 행사가 있으면 그 행사를 위하여 돈을 걷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하십니다. 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이자 기회인데 성도들의 헌금을 그들은 그들의 생활비로만 전용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생활비로 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생활비를 초과하는 돈을 십일조라는 의무를 부과하여 걷었다면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이웃사랑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 잘못된 것에 소리를 내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재정적인 큰 부를 축척하면서도 소규모 시민단체보다도 조용하고 영향력이 없음의 열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든 언론이든 분별하여만 살아날 수 있는 때입니다. 하지만 백신 사기극은 분별로 거부하면 되는 것이지만 5G 전자파 피폭은 좀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무리 분별한다고 한들 어리석은 이웃이 나를 향하여 전자파 중계기를 설치하면 피폭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설치는 현행 헌법, 실정법의 적용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옆 건물을 향해 설치되는 5G 중계기를 단지 설치하는 건물주의 동의하에 설치하는 것은 옆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의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대형교회들이 이웃을 보호하는 데에 침묵하는 불경에 대해서만 느끼지만 하나님은 모든 목회자들의 불경함과 사악함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의 무능과 위선은 그들의 몫이지만 그것으로 영향을 받고 고난과 고통속에 빠지는 것은 저와 성도들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백신 사기극은 자기에게 결정권과 그 책임이 각자에게 있었지만 5G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5G는 백신과 달리 큰 고통이 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백신이 스스로 맞음을 유도하여 재앙이 허락되는 구조였으므로 5G는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없고 어리석은 이웃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5G로는 백신처럼 고통스러운 재앙이 일어나지 않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실내 5G중계기에 피폭되는 곳에 온종일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들이 아프지 않아 보임은 다행이기도 하며,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5G중계기가 아직까지는 살상수준으로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계기로 우리에게 재앙이 허락될 때 그것이 사용되어질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길이 암흑 속에서 그들에게 미끄러운 길들처럼 되리니 그들이 내쫓기어 거기서 쓰러지리라. 이는 그들을 감찰할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12)
Wherefore their way shall be unto them as slippery ways in the darkness: they shall be driven on, and fall therein: for I will bring evil upon them, even the year of their visitation, saith the LORD. 12)
어둠속에 미끄러운 길이란 지옥에 이르는 길입니다. 어둠은 곧 말씀이 없음을 의미하며, 말씀이 없고 기도가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백신을 밝은 곳에서 바라보지 못하여 백신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 이러한 어둠속에 있음은 그들이 미끄러운 길들에서 점점 더 깊은 구렁으로 미끄러져 끌려 내려갈 것입니다. 백신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둠속에서는 짐승의 표도 분별하지 못하여 그것이 어떤 것인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신사기극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재앙이란 고난과 달리 심판에 속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으로 단련하여 주시지만 지옥에 갈 자들에게는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들 스스로 지옥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사탄과 타협하고 세상의 압력에 타협을 하여도 고통스러운 삶에 처하여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세상과의 타협은 재앙만 불러오는 것입니다.
백신을 맞아서 그나마 건강하던 몸마져 버티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의 타협은 세상적인 행복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매우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함이 당장 거친 충돌과 손해가 있는 것처럼 속이기 때문에 이것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매우 큰 일이 일어나고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 진정한 평안에 이르는 길입니다. 가난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그가 쉬는 시간이나 잠을 편히 자고, 값싼 라면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백신을 맞은 사람은 쉬어도 쉬지 못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며 비싼 요리도 맛이 없고 소화도 못합니다.
O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니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장 24절
우리 삶의 모든 고민의 문제가 위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계속 동시에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백신은 분별하였지만 짐승의 표는 제 자신의 모든 세상적인 권세를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세상적인 것을 놓지 못한다면 저는 재물을 섬기고 재물의 종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재물의 종이 됨은 재물을 선택함이 아니라 지옥을 선택함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가 구속되어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구속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구속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확인한 사실로 증명되는 것은 세상과의 타협으로 평안은 절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장되면 세상은 지옥밖에는 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백신에 타협함은 곧 죽음과 몸의 절망적인 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에 타협함으로 올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평안한 세상이 아니라 죽음과 절망적인 고통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과 타협하여 사는 사람들이 삶이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살아보는 것이 어떤지 확인해 보길 바랍니다. 세상은 그것이 매우 큰 비효율과 고통이라고 선동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