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도 안되는데 눈앞에 닥친 중대재해법에 속타는 동네 밥집 사장님
홍다영 기자
입력 2024. 1. 17. 06:00
타임톡 1
음성으로 듣기
번역 설정
글씨크기 조절하기
50인 미만 사업장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동네 식당·빵집 사장님들은 이런 사실도 잘 몰라
정부·여당 ‘2년 더 유예’ 추진하지만 국회 논의 공전
법 개정 가능한 시간 불과 10일 남아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다 뜨거운 기름이나 불에 화상을 입거나 칼질하다 다치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 코로나19 때보다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직원 부주의로 일어나는 사고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좀 많이 부담이 되네요.”
AD광동 침향환 케이에스마케팅
혈압관리? 먹은지 3년 됐어요. 확실히 달라요
알아보기
서울 광진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업주 구모(50)씨가 지난 15일 오후 매장에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눈 앞으로 닥친 상황에 대해 한 말이다.
구씨가 운영하는 치킨집은 하루 매출액 100만원 정도로, 총 5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재료비와 배달 수수료, 매장 임대료와 가스요금, 전기요금, 직원 월급을 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는 게 구씨의 말이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 처벌 위험도 더해졌다.
구씨는 “직원을 졸졸 따라다니며 가스 밸브는 잘 잠그는지 하나하나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자영업자는 취약 계층인데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면 생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동네 치킨집에서 닭 튀기다 사고 나면 중대시민재해 해당할 수도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던 중대재해처벌법이 길거리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동네 식당, 동네 빵집, 동네 호프집으로 확대 적용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면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5~49인)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5일 인천 서구 한 지식산업센터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 적용이 확대되면 종사자가 5명 이상인 개인 사업주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대상이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27일부터는 동네 식당·빵집에서도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식당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했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제조물·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를 의미한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나오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나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그런데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광진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 중년 남성은 중대재해법에 대해 묻자 “그게 뭔데요? 몰라요”라고 말했다. 빵집을 운영하는 한 여성은 “(빵집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고요? 그런 걸 적용하기 전에 산재 처리하면 되지 않나요?”라며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고,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빵집을 운영하는 여성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외식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우려하면서, 처벌보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음식을 만들려면 불과 칼을 다룰 수밖에 없는데 직원 실수로 발생한 사고까지 책임을 묻는다면 장사를 어떻게 하겠느냐”며 “음식은 사업주 과실이 아니어도 온도나 보관상의 이유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 유무죄 판단이 나올 때까지 조사를 받으러 다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영업하기 어려워지고 그만큼 손해”라고 했다. ‘치킨집 사장님’ 구씨는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다”면서 “오래된 식당은 가스관 등 설비가 낡은 경우가 있는데 무조건 처벌부터 할 게 아니라, 노후 설비 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5일 국회 본회의가 마지막…尹대통령, 국회에 “현장 어려움 귀 기울여달라”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 시행됐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2년 유예됐다. 정부·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점을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 오는 25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50인 미만 사업장이 당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지만, 개정안은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앞서 민주당은 민주당은 ▲법 유예 시 대안 마련 ▲2년 뒤 모든 기업에 법을 적용한다는 약속 ▲정부의 사과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 취약 분야 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계도 2년 뒤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이 장관도 준비 부족을 사과했다. 양대노총은 중대재해법 추가 유예에 반발하고 있어 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에 중대재해법 개정안 통과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현장의 영세기업들은 살얼음판 위로 떠밀려 올라가는 심정이라고 한다”며 “고금리·고물가로 영세기업들이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짐을 지우게 돼 중소기업이 더 존속하기 어렵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겨우 열흘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에 한 번만 귀 기울여달라”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