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 G90의 외모엔 굵직한 선과 각이 많아 ‘회장님 차’ 이미지가 강했다. 반면 신형의 얼굴을 보면 강가에서 주운 조약돌이 떠오른다. 클램 쉘 타입 보닛으로 절개선을 줄이고, 주름도 반듯하게 다려 인상이 부드럽다. 역대 제네시스 중 가장 가느다란 헤드램프에선 속도감도 드러난다. 사무실이 아닌 젊은 부부의 결혼식장 앞에서도 어색하지 않다.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식이 끝났다. 이제 일일 기사 역할을 수행할 차례. G90의 모든 문짝엔 터치 또는 버튼을 눌러 문을 닫는 기능을 넣었다. 쉽게 말하면 ‘자동문’이다. 신랑 신부의 탑승을 확인한 뒤, 도어 핸들을 살짝 터치하니 전기 모터가 문을 닫는다. 물론 2열 센터콘솔 버튼으로 탑승객이 직접 닫을 수도 있다. 무거운 문짝 당기느라 힘 뺄 일이 없다.
이어서 동승석 뒤 시트를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세팅했다. 등받이나 종아리 받침대를 일일이 조절할 필요는 없다. 도어 패널 위 ‘REST’ 버튼만 누르면 1열 동승석 시트를 앞으로 밀고, 발 받침대를 펼쳐 아늑한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옆자리 승객이 서운할 정도로 호화롭다. 굳이 4인승 버전인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를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
신혼부부 의전할 핵심 기능, 쇼퍼 모드(Chauffeur Mode)
G90를 가져온 핵심 이유, 바로 ‘쇼퍼 모드’다. 쇼퍼(Chauffeur)란 ‘기사 역할을 하다’라는 뜻. 다시 말해 2열 승객 의전에 특화한 주행 모드다. 가속과 제동, 서스펜션 등 차의 움직임과 관련 있는 모든 기능을 제어한다. 가령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땐 더 부드럽게 가속하도록 엔진 반응을 늦춘다. 브레이크 페달도 긴장을 풀어, 제동력이 갑작스럽게 솟구치지 않는다.
차고 조절 ‘보통’ 단계에서는 에어 서스펜션도 앞뒤 세팅에 차이를 둔다. G90의 기본 최저지상고는 148㎜. 이때 쇼퍼 모드로 바꾸면 앞 차고만 6㎜ 띄운다. 전방 서스펜션이 흡수할 수 있는 충격량의 범위를 늘려, 반대로 리어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낮음과 매우 낮음 단계에선 앞뒤 높이 차이가 없다. 컴포트 모드 대비 8~12㎜ 높게 유지할 뿐이다.
즉, 쇼퍼 모드로 달리면 1열 승차감을 희생해 2열 환경을 최적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운전자가 체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노면 굴곡을 잔잔하게 포장하는 실력이 감탄스럽다. 시속 100㎞를 넘어서면 차체를 살짝 낮추며 주행 안정감도 더한다. 노면을 미리 읽어 충격에 대응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에어 스프링’이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 뒷좌석에 탄 신혼부부는 각종 편의장비를 마음껏 누렸다. G90의 안마 기능은 누르는 압력이 강해 꽤 쓸만하다. 특히 등받이에는 공기 주머니가 10개나 숨어있어 주무르는 범위도 넓다. 동승석 뒷자리 승객만을 위한 발 마사지 기능도 있다. 결혼식 내내 긴장했던 주인공들의 몸을 다독이기에 충분하다.
23개 스피커로 구성한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은 차 안을 순식간에 음악 스튜디오로 바꾼다. 특히 ‘서라운드’ 모드에서의 입체감이 일품. 선배는 “볼보의 바워스&윌킨스 오디오보다도 좋다”라고 극찬했다. 방음 수준도 뛰어나다. 볼륨을 끈 G90의 실내는 침 삼키기도 부담스러울 만큼 고요하다. 외부 소음과 반대 위상 주파수를 쏘는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ANC-R)’ 기술과 사방을 둘러싼 ‘이중 접합 차음 유리’ 덕분이다.
스피커로 귀가 호강했다면, 실내 향기 시스템은 후각을 책임진다. G90의 글로브 박스에는 향기 카트리지를 2개가 들어있다. 공조 장치 터치 패널을 통해 향을 고를 수 있으며, 모두 은은하고 고급스러워 방향제를 따로 구매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 내 차에 꽂아둘 방향제를 찾고 있었는데, G90 디퓨저만 결제할 수는 없나?
후륜 조향 &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운전자를 위한 옵션도 한가득
운전기사 입장에서의 장점도 수두룩하다. 우선 ‘운전’ 그 자체가 쉽다. G90의 보닛 아래엔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m을 내는 V6 3.5L 가솔린 터보 엔진이 자리했다. 그중 최대토크는 겨우 1,300rpm에서부터 나오는데, 힘을 차분하게 전달해 가속이 부담스럽지 않다. 뒷좌석 승객이 급가속 때문에 불쾌할까봐 눈치 볼 일이 없다. 쇼퍼 모드에선 더더욱.
좁은 골목이나 시내를 달릴 땐 능동형 후륜 조향 시스템이 활약한다. 저속에서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4°까지 비틀어 회전 직경을 줄인다. 실제로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유턴하면 중형급 이하 승용차처럼 가볍게 돌아나간다. 비좁은 주차장에선 서라운드 뷰 모니터에 의지했다. 차 주변을 3D 합성 이미지로 띄워, 모든 방향 장애물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을 가득 채운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중앙 모니터에 띄우는 방식보다 훨씬 보기 좋다. 내비게이션과 연동하면 도로 위에 다음 안내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하고, 빠져나가야 할 램프 앞에 3D 화살표를 얹는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지만, 이를 표시하는 중앙 모니터 위치가 낮아 시선 이동이 너무 잦았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2’의 차로 변경 보조 제어 기능도 쏠쏠하다. 해당 아이콘이 초록색일 때, 방향지시등을 원하는 쪽으로 밀면 순서 끝. 이후 차 스스로 주변 장애물을 확인한 뒤,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때 ‘스르륵’ 차선을 옮긴다. 운전대를 느긋하게 돌리는 솜씨가 10년차 드라이버 부럽지 않다. 기능이 재미있어 자주 썼는데, 뒷좌석에서는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한 듯하다.
정체 구간이 이어질수록 부부의 대화 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슬쩍 룸미러를 들여다보니 곤히 잠들었다. 재빨리 ‘후석 취침 모드’를 활성화했다. 이내 뒷좌석 스피커가 입을 닫고, 1열 볼륨도 최소한으로 낮췄다. 내비게이션 길안내 음성이나 각종 경고음은 애초부터 운전석 헤드레스트 속 스피커에서 나왔다. 마치 VIP 모르게 무전으로 지령 받는 보디가드 느낌이랄까.
약 1시간을 달려 선배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내리막길을 만나자 차체 앞부분이 붕 뜬다. ‘경사로 제어 기능’으로, 가속도 센서가 노면 경사를 계산해 앞 차고를 15~25㎜ 높여 범퍼를 보호한다. 운전기사도 스크래치에 대한 부담이 줄어 홀가분하다. 출발부터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에어 서스펜션의 능력이 돋보인다.
몇 없는 단점은 ‘트렁크 용량’이다. 짐을 꺼내드리려고 트렁크를 열었는데, 예상보다 공간이 좁아 놀랐다. G90의 적재 용량은 410L. 구형보다 74L나 줄었다. 감히 이유를 추측하자면, 리어 시트 편의장비와 에어 서스펜션, 후륜 조향 장치가 빽빽하게 들어선 탓일 수 있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G90의 넘치는 배려에 운전자와 2열 탑승객 모두 만족했다. 웃으며 차에서 내리는 선배 부부를 보니 뿌듯함은 두 배로 늘어난다. 운전기사는 이만 물러날 시간. ‘나도 언젠가는 결혼할 수 있겠지...’라고 혼잣말하며 웨딩카 장식을 떼어냈다.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