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가톨릭 문학산책] 18 신 고전파 시인 - 프랑시스 잠
자연사랑에서 신앙의 은총으로…, 문체의 장식 배제… 소박한 어휘 사용
유유자적한 목가시인의 면모 “물씬”
삶의 주변ㆍ일상에서 아름다움 도출
섬세한 감수성… 아이처럼 단순 “특징”
프랑시스 잠이 시를 쓰던 시대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실로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보들레르에서 비롯된 상징의 미학이 벨를렌느, 랭보에게서 절정을 이루며 만화경처럼 펼쳐졌던 19세기 후반기가 저물고 20세기가 시작되자 그 화려한 빛은 시들어 어느덧 가냘픈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일부 시인들은 상징주의 쇠락의 원인이기도 하였던 지나친 기교와 난해성을 완화하는 한편 고전적 순수성을 도입한 신 상징주의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낭만주의 서정성을 다시 가미한 신 낭만주의 같은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외에도 각기 새로운 경향을 추구하여 잡다한 문학사조가 범람하였는데 이른바 나튀리슴의 경우 앞선 시대 고답파의 냉담, 몰개성과 상징주의의 결점을 모두 거부하고 생명, 자연, 사랑, 노동, 영웅심 등을 찬양하면서 건강한 시적 상상력의 원동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개인의 정서보다는 집단, 도시, 군중, 국민 등 전체적 생활을 노래하면서 유대감과 상호이해의 미덕을 실천하려한 전일주의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상징주의의 기법과 난삽함을 거부하고 익살맞은 기지, 농담조를 수용하는 순박한 감동의 환상주의 등이 상징주의 쇠락의 대체세력임을 주장하였지만 그다지 큰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이 무렵 현역장교의 국가기밀 누설 여부에 관련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를 뒤흔들며 지식인, 예술가, 문인들의 현실참여를 첨예하게 부추기면서 사회적 사명, 예술과 민중의 접근 등이 지대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갖가지 논쟁, 합종연횡의 문단세력, 소란스러움과 격양된 목소리속에서 우리는 한마리 새의 지저귐같은 천진한 한 시인의 목소리가 신기할 정도로 그 안에 섞여 있는 것을 알아보게 된다.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그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시의 형식과 근원을 쇄신시키려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시인이었다. 이를테면 잠주의(Jammisme)로 부를 수 있는 그의 문학관은 이러하다. 시인은 나름대로의 시세계가 개화되기 이전에 하나의 공식이나 틀에 갇혀버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시인이라면 간직해야 할 영원한 숙명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쉬운시를 주장하였고 문학과 웅변을 분리시키려 했다.
앞선 세대의 낭만주의 문학의 과도한 서정 토로와 감정 노출에 대한 반동이기도 했지만 그 결과 시 창작에 있어 가식없이, 문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소박한 어휘와 이미지 사용에 이끌리게 되었다. 낡고 진부한 표현을 「새롭게」단장하고 거기에 생명의 옷을 입히는 능력에 잠의 문학성은 근거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어휘들을 자신의 작품안에서 괄목할 만큼 새롭게 기적적인 신성함으로 바꾸는 마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잠의 작품을 처음 대하면 대개 놀라게 된다. 이른바 시라는 문학의 속성이 내포하는 여러 고정관념, 이를테면 언어의 압축, 비유, 상징, 관념적 이미지 등에 길들여진 관계로 순수한 자연이라든가 원초적 은총 등을 시에서 대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잠의 시를 계속 읽으며 바야흐로 거기에 익숙해지면 나머지 것에서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운 꾸밈새가 눈에 띄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인공성과 복잡함, 거대한 도시문화의 격동에 따른 흥분과 열광이 삶을 시시각각으로 수축, 이완시키는 현대사회 구조속에서 잠은 이와 정반대로 유유자적한 목가시인의 면모로 나타난다. 프랑스 문학에서 적지않은 시인작가들이 전원을 배경으로 목가문학을 시도한 바 있지만 그들 대부분의 신분은 고관귀족이나 궁정인 등 상류계층이었다. 작품에서는 짐짓 우아하고 순수한 목동 행세를 하지만 그들의 정서와 감수성은 어디까지나 특권계급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은 시종 자신의 영혼이 꽃, 과일, 흐르는 물, 살랑이는 바람, 산들로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또한 자기가 노래 부르는 땅에 발디디고 사는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넋이 자신에게 이입되기를 바랐다. 내면세계의 소통과 교류에 있어 잠의 영혼은 어린아이처럼 단순 소박하였다. 그러나 떨리는 섬세한 감수성이 거기에 함께 하였고 그 바탕에 있어 드러난 외양보다 훨씬 심층적이었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잠의 기법 또한 복합구조를 보여준다. 그 복합성은 그 누구보다도 내밀하고 원초성에 닿을 수 있는 정교함을 드러낸다. 천진함과 맞물리면서 잠의 독특한 내면의 울림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하였다.
오, 주님 제가 당신께로 가는 날에는 축제에 싸인듯한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골라 주소서. 제가 이 세상에서 그랬듯이 대낮에도 별들이 빛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동무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날 따라오게. 푸른 하늘의 온순한 친구들아, 날쌔게 귀를 움직여 파리와 쇠파리, 꿀벌 등을 쫓는 사랑하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제가 당신의 천국 성스러운 물에 몸을 구부려, 영원한 사랑의 맑은 거울에 겸허하고 다사로운 가난을 비추는 당나귀들처럼 저도 되게 해주소서.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에서)
잠의 시에는 특출하거나 기발한 주제가 눈에 띄지 않는다. 늘 마주하는 삶의 주변, 그 일상성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는 재능이야말로 천진스러움속에서 어린아이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집안은 장미로 가득차…」, 「아기가 죽지않게 하기 위한 기도」, 「순박한 아내를 가지기 위한 기도」,「성지 주일」,「평화는 숲속에 깃들고」 같은 시 제목이 보여주듯 문명의 번잡함과 욕망의 분출을 멀리하는 때묻지 않은 감수성은 가령 어린이가 당하는 고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저 아기를 저렇듯 죽지않게 해주시는 것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저 아기를 살려 주시면 내년 화창한 성체 성혈대축일에 장미를 바치지 않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너무 좋은 분이시니 장미처럼 발그레한 뺨에 푸르른 죽음을 놓는 것은 주님이 아니시지 않습니까.(「아기가 죽지않게 하기 위한 기도」에서)
흡사 어린아이의 동시같은 표현마저도 온전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부당함에 마주한 시인의 인식이 드러내 보이는 순수와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비평가들 중에는 더러 잠의 희귀한 천진성이 가식된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잠의 삶과 문학연보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서 문학을 통하여 사랑의 마음과 눈길을 구체화 시켜왔음을 증거하고 있다. 실상 잠의 시세계 배후에는 어느 시기까지 한가닥 불안과 우울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모름지기 시인의 천부적 고독의 비애이기도 하고 영원 불멸을 향한 동경이기도 하다. 이 길을 통하여 그는 신앙으로 향하는 정신의 여로를 일구어 나갔다. 평생의 친구 시인 폴클로델의 열성적 도움과 어느 주일 보르도 성당에서의 영적 체험으로 신앙에 몰두하게 된다. 이전에는 무의식적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이후 시와 신앙을 조화시키는 종교시인이 된 것이다. 잠은 타고난 감상주의자였다. 그와 함께 그는 프랑스 시인 가운데 뛰어난 리얼리스트였다. 새들이 지푸라기며 진흙같은 보잘것없는 부스러기들을 모아 둥지를 만들 듯 시를 썼다. 생활주변에서, 일상의 언저리에 산재한 더없이 평범한 삶의 단편들을 엮어 탁월하고 경탄스러운 시편을 창작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조롭고 범용한 나날의 생활 언저리에서 깨끗하고 겸손한 시가 이루어진다.
그 아름답던 여름 날 가난한 삶이 나에게는 그 모든 존엄성을 나타내 보인듯 했다. 나의 의자곁으로 슬프고 말없지만 건강한 농부들이 어둡고 신선한 그늘속으로 수레를 밀고 지나갔을 때 나는 그들에게 아무말 않고 머리만 숙였다. (「광속에서」에서)
잠은 1868년 스페인과 맞닿아 있는 프랑스 서남부 오트 피레네지방 투르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르테스라는 소도시에 오래 살았는데 이 곳에서 공증인 사무소 서기로 일하면서 시를 발표하였다. 또한 거기서 차츰 이름이 알려지고 39세에 뒤늦게 결혼, 아이들의 출생과 성숙기 재능이 활짝 꽃피는 것을 경험한다. 보르도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기간 이외에는 시골마을에 살면서 익숙한 자연, 친근한 전원 풍광과 은밀한 교감을 나누며 속삭이는 듯한 음조로 이를 노래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1898)에서는 시인과 자연의 대화를 통하여 신의 계시를 감득하고 있다.
초가집의 벽
돌과 고사리, 송악이 어우러진 틈사이 수채구멍
지금 주님
오, 나의 주님, 나의 주님
참새가 우짖는 푸른하늘 앞에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성지주일」에서)
다소 조심스러웠던 신앙표현이 1906년 「천국에 있는 숲속의 빈터」에서부터 적극적인 고백과 권면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정형시율격을 배제한 독특한 자유시 속에서 모방할 수 없는 재능은 종교적 감흥과 전원의 감동이 절묘한 조화를 보이는 「그리스도교 농경시집」(1919)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계절에 따라 변모하는 자연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들의 노고가 의미하는 종교적 가치를 고양 하였다. 실로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의 전형이 형상화되었다. 잠의 시세계는 그러한 까닭에 주님앞에서 주고 받는 시인-신자와 자연의 대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습관적인 속내 이야기 나눔을, 잠은 공허한 수사와 가식을 배제하고 순간순간 가슴에 와닿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배어나오는 진실과 겸양, 순수한 심상은 우리의 교만이나 어리석음, 용렬함을 너그럽게 감싸 안아주는 주님의 현존을 항상 새롭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미사때 영성체후 우리몸에 오신 주님을 흠숭할 때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주송자의 묵상인도가 바로 잠의 소박한 신앙시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 당신은 저를 사람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자 여기 제가 있습니다. 저는 괴로워하고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께서 저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그들이 제게 전해준 말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들의 놀림속에서 고개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원하시는 때에 나아가렵니다. 삼종기도 종소리 울립니다.(「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서문)
이규식ㆍ안젤로ㆍ한남대 불문과 교수
https://naver.me/5uIz7i1f
1. 개요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시 《위대한 것은 인간들의 일이니...》로 유명하며 한국에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언급되는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2.1. 초년기
1868년, 프랑시스 잠은 오트피레네 주의 투르네(Tournay)에서 빅토르 잠(1831-1888)과 아나 벨로(1841-1934)의 아들로 태어났다.[5]
잠은 포(Pau) 고등학교를 거쳐 보르도 고등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성적은 변변치 않았다(mediocre). 1886년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고,[6] 1888년에 아버지 빅토르를 여읜 데 이어 이듬해인 1889년 바칼로레아에서는 프랑스어에서 0점을 받으며 낙방하고 만다.
결국 잠은 오르테즈에서 공증인의 서기 일 따위를 하면서 하루하루 벌이를 하게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자아 찾기의 일환으로 시 습작을 써서 잡지에 투고하는 일을 시작했다. 한편 어머니인 아나 벨로는 몇 차례나 자비로 잠의 습작 시집을 출판했는데, 이러한 시편이 스테판 말라르메, 앙드레 지드 같은 시인들에게 찬사를 얻고 정식 출간을 권유받았다.
2.2. 잠주의(Le Jammisme)
1895년 즈음하여 잠의 작품은 마침내 파리의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1896년에는 지드와 함께 알제리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말라르메, 앙리 드 레니에[7] 등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일부 상징주의자들의 눈에 들기만 했을 뿐, 잠은 여전히 폭 넓은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서기 투잡을 뛰어야 하는 당시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했다. 물론 파리의 문단에 끼지도 못하는 무명 시인들에 비해서는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말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잠을 자연주의의 선구자로 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정작 잠 본인은 자연주의와 어느 정도 선을 그으려 했다.
이에 따라 1897년, 잠은 풍자적인 문학적 강령(매니페스토)으로서 잠주의(Jammisme)를 주창하고, 문예평론지인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지에 이를 투고한다.[8] 해당 선언문의 골자는 ‘자연주의적인 태도[9]로 신을 찬미하되, 그것이 지닌 지나친 엄숙주의와 교만함은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나는 신을 찬미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생각한다. 신을 찬미하는 것만이 우리의 시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학교[10]만이 존재한다. 그 학교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예쁜 글씨 연습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따라 쓰듯이, 시인들이 아름다운 새, 꽃, 혹은 매력적인 다리와 우아한 가슴을 가진 소녀를 주의 깊게 모사하는 것이다.
원문은 《잠주의(Le Jammisme)》에서 발췌.
마지막 구절(매력적인 다리와 우아한 가슴을 가진 소녀 운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해당 선언문은 잠의 시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되, 지나친 엄숙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약간의 코미디적인 자학과 풍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잠은 자연주의니 상징주의니 하는 문단의 기싸움에서 어느 한 쪽에 가담하거나 편드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기만의 ‘학교’를 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저마다 각각 하나씩 자기만의 학교를 세우라’고까지 했다.
같은 해 제1시집인 《새벽 기도 종부터 저녁 기도 종까지》의 작품들이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실리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동명의 상징주의 문학 레이블에서 출간되는데, 이는 프랑시스 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한 폴 클로델[11]과의 교류도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폴 클로델은 이후 잠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2.3. 가톨릭으로의 신앙 회복
《잠주의》에서 ‘신을 찬양하는 것’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대표작인 《기도 종⋯》이나 《열네 개의 기도》 모두가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이제까지만 해도 잠은 스스로가 기독교인임을 부인하는 불신자였다. 반면에 폴 클로델은 1886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령의 계시를 받은’ 이래로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는데, 그가 희곡을 집필하게 된 것도 기독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신앙심 때문이었다.
잠의 작품[12]을 접한 클로델은, 기도문의 소박하면서도 경건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극찬하면서도, 그래 놓고 정작 불신자를 표방하는 잠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맹공을 가했다. 클로델의 끈덕진 전도(?)가 통한 것인지, 1904년에 이르러 프랑시스 잠은 마침내 가톨릭으로 개종(또는 회귀)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 아울러 신앙을 되찾게 해 준 폴 클로델에게 대단한 감사를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후로 잠의 시는 가톨릭 신앙에 강한 영향을 받아 더욱 검소하고 경건한 색채를 띠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교조적으로 비치는 표현까지도 나타나게 된다.
1901년에는 《열네 개의 기도》가 출간되었으며, 이 시점에 이르자 잠은 공증인 서기 일을 그만두어도 될 만큼 시로 충분한 수입을 벌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에 발표한 애정시[13]가 실패를 거두자, 크게 실망하여 방황하게 되는데 가톨릭으로의 회개를 결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잠은 이때의 절망을 바탕으로 《슬픔(Tristesses)》이라는 작품군을 집필한다.
2.4. 결혼과 말년
1907년, 39세가 된 프랑시스 잠은 자신의 팬으로서 편지를 주고받던준비에브 괴도르프(Geneviève Goedorp)와 결혼해 엔주에 머물게 된다. 1910년대에 들어서 프랑시스 잠의 작품은 1900년대 초반 같은 인기를 끌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잠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파리의 문인들이 보기에 잠은 ‘딱히 계파가 명확하지도 않고, 시는 좀 촌스럽고, 피레네 산골에 콕 박혀서 사는 은둔 시인’ 정도의 인식이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사실 잠은 지드를 비롯한 시인들과 교류하고 있었을뿐더러 살롱에도 드나들었다. 게다가 1917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부문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까지 했는데, 정작 몇 차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가입 신청은 끝내 거절당했다.
1938년 11월 1일 사망했다. 이는 가톨릭의 모든성인대축일(만성절)이다.
3. 문학 색채
잠이 보들레르 같은 상징주의 시인이었는지, 아니면 잠주의에서 주창한 그대로 자연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는지 무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분명 난해한 상징주의와는 선을 그었지만 잠은 줄곧 상징주의자들과 깊게 교류했으며, 자연주의에 가까운 문체를 띠고는 있으나 자연주의자들과는 척을 지기도 했다.
잠의 초기 저작은 자연주의의 총아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지만, 정작 제1시집인 《새벽 기도 종부터 저녁 기도 종까지》가 출간되고 나자 모리스 레블롱[14]이 쓴 기사로 공격받게 되고, 상징주의자인 지드가 프랑시스 잠을 열심히 옹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잠의 시는 한때 자연주의적인 색채를 띠기는 했으나 ‘계파’로서의 자연주의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폴 클로델과의 교류 이후 가톨릭 색채가 강해지면서 이러한 논쟁도 사그라들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프랑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https://naver.me/xjgTbd0P
내 가슴 속의 모든 슬픔을-프란시스 잠
Francis Jammes 『내 가슴 속의 모든 슬픔을』, 태학당, 1994
내 가슴 속의 모든 슬픔을···
내 가슴 속의 모든 슬픔을 그대가 알 수 있다면,
병들고 가련한 어느 어머니의 눈물에
그대는 비교하리.
지친 듯, 수척한 듯한, 어느 어머니의
바로 닥친 죽음을 느끼고,
막내 아이에게 주려고
번쩍거리는 장난감, 그러나 값싼 장난감을
그 앞에 펼쳐 보이는 그런 가련한 어머니의 눈물에.
치즈 냄새 풍기는···
치즈 냄새 풍기는 옷을 입고, 파란 우산을 가지고,
지저분한 양떼를 몰고
너는 언덕의 하늘을 향해 간다. 호랑가시나무나
참나무나 모과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튀어나온 등에 광택 없는 물통을 실은 당나귀와
거센 털을 가진 개를 너는 뒤따라간다.
너는 마을마다 대장장이 앞을 지나
향내에 싸인 산으로 되돌아간다.
그곳에서 관목 덤불 같은 너의 양떼는 풀을 뜯으리.
거기, 안개는 길게 끌려 산봉우리들을 감추고,
거기, 목의 깃털이 빠진 독수리들이 날고,
밤 안개 속에 붉은 연기가 타오른다.
그곳에서 너는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그 끝없는 광대함 위에 聖神이
떠돌고 있는 것을.
집안은 장미와 말벌들로···
집안은 장미와 말벌들로 가득 차 있겠지.
오후엔 저녁 기도의 종소리가 들려오리라.
투명한 돌 색의 포도송이들은 태양 아래 천천히 움직이는
그늘 속에서 잠들은 것처럼 보이리라.
그 가운데서 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물넷의 나의 온 마음, 꼬집기를 잘 하는 내 정신, 그리고
내 오만과 흰 장미의 시를 당신에게 바치리.
하지만 난 당신을 알지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대.
다만 나는 아노라, 그대가 나처럼
초원 깊숙이 지금 여기 살아 있다면,
황금빛의 꿀벌들이 날고 있는 나무 밑에서
우리 웃으며 입맞추리라는 걸.
시원한 시냇가 옆, 깊숙한 나무 밑에서
입맞추리라는 걸.
들리는 건 뜨거운 햇빛 뿐.
너의 귀에는 개암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우린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랑을 이야기하려 웃음을 멈추고
입술을 섞으리. 그래 난 그대 붉은 입술 위에서 찾으리라,
황금색 포도송이의 맛을, 붉은 장미와 말벌의 내음을.
빛 아래 나무딸기들 사이로···
빛 아래 나무딸기들 사이로, 푸르른 하늘 아래
꿀벌들이 잉잉대는 과수원 속을 나는 가고 있었지.
내 나이 아주 젊을 때의 이야기라오.
내가 태어난 곳은 산들이, 산들이 높이 솟은 옆.
그래 이제 난 정녕 느낀다오, 내 영혼 속에
눈雪이 있고, 무서리 빛깔의 도랑이 있고,
잘려져 나간 높은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취할 것 같은 대기 속에, 눈雪과 도랑을 후려치는
바람 속에 맹금들이 떠도는 산봉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렴, 난 진정 느낀다오, 내가 산을 닮았다는 것을.
내 슬픔은 산에서 자라는 용담 색깔.
우리 집안 조상들 중엔 아마추어 식물 채집가들이 있었고,
몹시 더운 오후, 초록 빛의 채집통을 메고
서늘한 숲속 그늘 속으로 희귀한 표본 찾아
빠져들어 가는 그런 식물 채집가들이.
잠재울 듯 시원한 분수들이 있는 희한한 바그다드
마법사들이 가진 옛날 보물들과도 그들은
그 표본들을 바꾸지 않았을 거요.
무지개의 다정함을 내 사랑은 지녔다오,
비가 그친 후 4월의 태양이
노래하는 그런 무지개의 다정함을.
어째서 난 지금 같은 생활에 이르렀을까? ···
석양의 평화로 사람들이 커지는 시간,
가축 떼가 흩뿌리는 눈 속에서
나는 긴 지팡이 짚고 산봉우리 위에서 살도록
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대는 裸身이리···
그대는 나신이리, 오래된 집기들이 있는 홀에서,
빛으로 된 갈대처럼 그대는 가냘프리.
그리고 다리를 포갠 채 장밋빛 불 옆에서
그대는 겨울 소리를 들으리라.
나는 그대 발 밑에서 내 팔 안에 그대 무릎을 안으리.
실버들 가지보다 더 우아한 몸매로 그대는 미소 지으리.
그리고 부드러운 그대 허리에 내 머리를 긷ㄴ 채
나는 더할 수 없는 그대의 부드러움에 그만 울어버리리라.
거만한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에게는 다정하리.
그래 내가 그대 목에 입맞출 때, 나를 향해
미소하며 그대는 눈길을 떨으뜨리리.
그리고 그대 부드러운 목덜미를 휘리라.
그러다가 병들고 충직한 늙은 하녀가
방 문을 두드리며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할 때,
그대는 소스라쳐 놀라며 얼굴을 붉히리.
그리고 그대 여린 손은 그대의 회색 빛 드레스를
입을 준비를 하리라.
그리고 바람이 방문 밑으로
낡은 벽시계가 지친 듯 울 때,
그대는 검은 실내화 속에
상아 향기가 나는 그대의 발을 끼워 넣으리라.
이제 며칠 후면
이제 며칠 후면 눈이 오겠지. 지난 해를
회상한다. 불 옆에 앉아 내 슬픔을 회상한다.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면
난 대답했으리라-날 그냥 내버려 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난 해 내 방에서 난 깊이 생각했었지.
그때 밖에선 눈이 몹시 내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생각만 했었지. 그때처럼
지금 난 호박 향의 나무 파이프를 피운다.
나의 오래 된 참나무 옷장에선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난 바보였었지.
그런 일들은 그때 변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을 내쫓으려는 것은 허세이니까.
도대체 왜 우리는 생각하는 걸까, 왜 말하는 걸까?
그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입맞춤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그걸 이해하는 법. 친구의
발자국 소린 다정한 말보다 더 다정한 것.
별들의 이름을 사람들이 지었다. 별들은
이름이 필요없음을 생각지도 않고
어둠을 뚫고 지나는 아름다운 혜성을 증명하는
수치들이 그것들을 지나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을.
지금 이 순간도, 지난 해의 옛 슬픔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거의 회상하지도 못하는 것을.
지금 이 방에서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날 그냥 내버려 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냇가 풀밭은···
시냇가 풀밭은 빽빽하고,
세차게 내린 비로 밀은 젖어 쓰러져 있다.
시내 둑의 나뭇잎들은 더욱 푸르고,
버드나무들만 흐릿한 잿빗이다.
건초는 벌통처럼 나란히 쌓여 있고
언덕들은 너무나 밋믹하여 누군가 애무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 친구여, 우리들의 모든 마음의 기쁨을
앗아가는 괴로움이 없다면 모든 것이 평온하리라.
하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함은 헛된 일.
말벌은 풀밭을 떠나지 않는 법이니.
그러니 삶이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세나, 검은 암소들이 마실 물이 있는 곳에서
풀을 뜯ㅗ고 내버려 두세나,
그래 언제까지고 괴로워하는 모든 이들을,
우리와 같은 모든 이들을 동정하기로 하세.
사실 누구나 우리와 같다네 누구나 모두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건 유일한 차이점이지만 중요한 것이라네.
좋은 위로는 아름다운 사랑이니,
오래도록 급히 흐르는 물가의 어린 딸기처럼.
식당
우리 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추억을 늘 간직하고 있는 장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 시계도 하나 있는데,
왠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이유를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 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성스러운 하인이다.
우리 집의 많은 여자와 남자들이 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 작은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는
-안녕하신지요, 쟘씨?
고양이는 불 옆에 있고···
고양이는 불 옆에 있고 냄비가 끓고 있다.
어두침침한 부엌.
붉은 순대 두 개가 낡고 검은
나무 막대기에 걸려 있다.
안뜰과 접한 어두운 창문들의
유리 위로 비가 내리는데,
그 어두운 유리창 밖에서
달리듯 내리는 가랑비.
이 어두침침한 부엌, 벽난로 불이 잘 핀 숯등걸
나는 까만 드레스를
입은 처녀와
그리고, 그녀와 입맞추리.
그리고 검은 벽난로 위에서는
가스등이 빛나고 있으리···
목을 가르릉대는 내 착한 꼬마 고양이마저
까맣게 보인다.
부엌 바닥의 붉은 타일은 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불 옆에 쌓여 있는 검은 포도 그루터기들.
벽난로의 장작 받침대는 녹슬어 있는데,
어두운 이 부엌.
그러나 검게 탄 장작 옆에
슈미즈 속의 너만은,
모든 것이 검기만 한 이 부엌에서 너만은
희리라, 희리라 희리라, 희리라.
조용한 숲속에···
흘러가는 시냇물을 가르는 조용한 숲속에,
칼과 같은 나뭇잎들 위에
평화가 있다. 시냇물은 꿈속처럼
이끼들의 금빛 끝에 내려앉는
해맑은 하늘의 푸름을 반사하고.
검은 참나무 아래 나는 앉았다. 그리고
생각을 접어두었다. 지빠귀 새가 나무 높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는
조용할 뿐. 그 고요 속에서
삶은 장엄하고, 정다웠다.
나의 개 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삼키려고 노려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 괴로움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고, 체념이 내 영혼을
슬프게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한 기도
주여, 저 작은 아이를 계속
엄마, 아빠 품에 지켜 주소서,
바람 속에서도 풀잎을 지켜 주시듯,
저 울고 있는 엄마를 보시면,
피할 수 없는 일인 듯 얼마 후
저 아이를 살리는 것이
당신께 무슨 큰일이겠나이까?
당신이 저 아이를 살게 해주신다면,
아이는 내년 맑은 날 聖體膽禮에
장미를 던지지 않으리까?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 좋으신 분, 장미처럼 발그레한
뺨에 푸르스름한 주검을 놓은 것은, 주여
당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주위가 바라보이는 창문 곁,
엄마 옆에 아이를 놀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면?
왜 이 세상에선 그렇게 못하겠습니까?
아! 죽어가는 저 아이 앞에서, 시간이 되었으니,
소박한 아내를 맞이하기 위한 기도
주여, 내 아내가 될 여인은
겸손하고 따뜻하며, 다정한 친구가 되도록 해주소서.
우리가 잠잘 때에는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잠들도록 해주소서.
그녀가 메달이 달린 은 목걸이를 가슴 사이에 감출 듯
말 듯 목에 걸도록 해주소서.
그녀의 피부는 늦여름, 조는 듯한 자두보다 더 매끄럽고 더
따뜻하고 더 금빛으로 빛나도록 해주소서.
그녀의 마음 속에 부드러운 순결이 간직돼 있어
서로 껴안으며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도록 해주소서.
그녀가 튼튼하게 되어, 꿀벌이 잠자는 꽃을 돌보듯
내 영혼을 돌보도록 해주소서.
그리고 내가 죽을 날 그녀가 내 눈을 감기고,
내 침대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고통의 흐느낌으로
부풀린 가슴에 숨막혀 하며
무릎을 꿇는 이외의 어떤 다른 기도도
내게 주지 않도록 해주소서.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
슬픈 古家를 나는 방문했다.
조그만 마차로 간 그 여행은
쓸쓸했으나, 햇빛에 젖어 꿀처럼 포근했다.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우리가
따라가는 밭 옆으로 비둘기들이 날고 있었다.
늙은 말은 무척 지쳐 있었고,
내 마음은 언짢았다. 내가 찾아가고 있는
그 옛날의 사물들처럼 늙은 말.
백 년 전에 이미 죽은 그 마을의 우리 조상들.
후회 없는 눈동자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그 조상들.
일요일에 그들은 제일 좋은 흰 셔츠를
입고 갔었겠지.
그들이 옛날 이 먼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을 나는 전해 들었었다.
그래 쐐기풀에 덮혀 있는
그들의 무덤이 있을 이 고향 땅을 나는
알아볼 수 있을지 길을 떠난 것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내 무릎 위에서
내 두 손 사이에 자고 있던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나를 태우고 온 농부는
햇볕을 받고 있는 마을 광장의
얼음같이 서늘한 그늘로 몸을 피했다.
과거같은 오래된 탑 옆, 허물어질 듯한 낡은
종루는 정오를 알리고 있었다.
내가 물은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이들은 생각이 안 나오···
오래 전, 그래요, 아주 오래 전···
여든 살 먹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며칠 전에 죽었지요. 아마
그분들에 대해서는 그 할머니가 말해 줄 수 있었을 거요.
그래 나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문전을
돌아다녔다-옛날 우리 고조 할아버지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공증인도 찾았고, 본당 신부님도
찾았으나, 신부님마저 알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버려진 정원들의 다 낡은
정문들 앞을 지나갔는데, 굵다란 철책을 통해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 옆으로 묘지의 관문처럼
오랜 먼지로 닫힌 문들 옆으로,
붉은 접시꽃들이 푸른 잔디 가운데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 읍 청사 위의
새로운 깃발들, 그 바보 같은 것들은
보려고 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렇고 말고, 내 마음 속엔 옛날 생각만이
있었고, 高孫인 나는 나를 낳아 주신
사랑하는 조상들을 돌이켜 기억하러 온 것이다.
드디어 아주 오래되고 훌륭한 어느 집안의
장려한 철책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음아 고와 보이는 모습의
어느 老부인과, 허리 굽은 지팡이 짚은
老신사와, 훌륭하고 고귀한 詩的 집안의 아들과,
철책 곁의 덤불나무들을 보았다.
노부인이 이렇게 말했다-아, 쟘씨
가문의 한 분이군요! 그래요, 옛날, 쟘씨네들은
이 마을에서 살았죠. 나이 많은
공증인이 한 분 있었는데, 아들들이 모험을
찾아 떠나버렸죠··· 우리 집안이 무너져 가는
쟘씨 집을 샀답니다.
그들은 부엌에서 녹슨 열쇠를 가지고,
오래된 서글픈 성당에 맞닿게 세워진,
못으로 박아 놓은 서글픈 대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마 그것 역시 전부
녹이 슨 쇠망치로 못을 박았을 그 문으로
벽에 붙은 서글픈 창들 역시 주검과 세월의
먼지로 닫혀 있었다.
그들은 잘 열리지 않는 그 문을 삐걱대며 열었고,
나는 삭아진 서글픈 층계를 올라갔다.
바로 이곳을 그들도 오르내렸으리라,
이젠 아마 천국에서 쉬고 있을 우리 조상들.
집안에는 부서진
석고 상 위에,
벽 위에, 그리고
마치 화염인 양 긴 세월이 그을려놓은
문들 위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여, 모두가 검은 빛이어서,
그것 또한 초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여길 보아요···
이게 사무실이었답니다. 사무실···
사무실··· 커다란 침묵에
싸여 있는 쓰러져가는 그 집.
나는 하늘의 죽은 우리 조상들이 내가
찾아온 그 슬픈 집안에서 말소리를
그치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
다사로운 슬픔을 느끼며 나는
그 집의 친절하고 훌륭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거기를 떠나갔다.
드넓게 퍼지는 햇살 속에서, 거기서 먼
작은 도시로 되돌아오기 위해
나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래 마차의
그 초라한 말은 슬프게 다시 출발했다.
부드럽고 슬픈 강아지는 나와 그의 주인인
너그러운 농부 사이에서 잠들었고,
밭 주위를 비둘기가
슬프게 날아갔다.
아이들이 모험을
찾아 떠나버렸죠. 푸른
잔디 속에 붉은 접시꽃들에 싸인
철책문 뒤에서 그 훌륭한
노부인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마을 앞을 지날 때, 내가
태어난 곳의, 오래된 개오동나무들이
서 있는 조그만 역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그건 마음이 따뜻한 일이었다. 내가
네 살 때의 어느 인상을 보는 듯했다-
보는 듯했다-서늘한 감람나무
잎들 사이 그늘 속으로 흘러가는
맑은 물, 햇볕 속에서,
또 햇볕 속에서도 얻는 그것은 어두운
그늘 속의 그 물은 어디로,
어디로 그토록 멀리 흘러가는지
나는 궁금해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고 하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그 이후 그 시내 또한
나는 다시 보았다.
광 속, 울퉁불퉁하고···
광 속, 울퉁불퉁하고 단단히 다져진 땅 위에
마디에서 짤리고 쪼개어진,
진흙 묻은 참나무 가지들을 싣고
달구지가 자고 있었다.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돌아가던 탈곡기는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는 황소들 가운데서
멈춰 서 있고, 잡동사니 같은 작은 조각들이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때, 광의 들보 위에 있는 둥우리에서
하나님의 닭인 제비 새끼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두 명의 소작인이 느리지만 능란하게
다른 이의 어깨 위로 뛰어올라,
끝부분을 궁글게 굽인 양철 조각 하나를
못으로 천장에 붙였다.
그들은 그곳을 밀짚으로 채우고
떨어진 새끼 제비들을 올려놓았다.
그때 어미 제비가 겁 먹은 듯, 하늘 위로
길게 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그러다 천천히 어미 제비는
둥우리로 돌아왔다.
나는 쇠스랑과 번들거리는 보습 옆에 앉아 있었는데,
다사로운 슬픔이 내 마음 속에 스며들었다.
그건 마치 내 영혼 깊숙이
잿가루가 약간 흩날리는 햇빛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너무나도 귀여워 소녀들에게 주고 싶은
새끼 돼지 여덟 마리가 나타났다.
이제 3주일이나 될까 한 돼지 새끼들이었다.
그것들은 염소처럼 등을 곧추 세우고
서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 조그만 발들이 서로 다투었다.
주름지고 축 늘어진 젖통에
뻣뻣한 털을 가진 암퇘지가 진흙 투성이로
땅에 주둥이를 쑤셔 박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름날, 내겐
우리 가난한 삶이 그의 모든
존엄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앉아 있는 등 없는 의자 옆으로
슬프고도 말 없는, 아름다운 농부들이
어둡지만 신선한 그늘 속으로 수레를 밀며 지날 때,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을 뿐이었다.
당나귀와 천국으로 함께 가기 위한 기도
오 주여, 내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에 싸인 것처럼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해주소서. 내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낮에도 별들이 빛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내 마음에 드는 대로 자신 스스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나는 가겠나이다. 그리고 내 동무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나이다-나는 프랑시스 쟘,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하느님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말하겠나이다-푸른 하늘의 다정한 동무들이여,
날 들 오게나.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런 짐승들이여···
주여,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사이에서,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이들은 머리를 부드럽게 숙이고
더없이 부드러워 가엽기까지 한 태도로
그 조그만 발들을 맞붙이며 멈춰 섭니다.
수천 그들의 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허리에 바구니를 걸친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곡예사들의 수레나 깃털이나 양철로 만든 수레를 끄는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등에 울퉁불퉁한 양철통을 실었거나
물 든 가죽부대 모양 똥똥한 암당나귀를 업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파리들이 귀찮게 둥글게 떼지어 달려들고,
피가 스미는 푸르죽죽한 상처들 때문에 조그만 바지를 입힌
당나귀들이
나를 뒤따르는 가운데,
주여, 나는 당신 앞에 이르겠나이다.
주여, 내가 이 당나귀들과 함께 당신 앞으로 이르도록 해주소서
웃음 짓는 소녀들의 부드러운 피부처럼,
살구나무가 울창한 시내로
우리들 천사들의 평화 속으로 인도하도록 해주소서.
영혼들이 사는 그 천국에서
내가 당신의 그 천국 시냇물에 몸을 기울일 때,
거기에 그들의 가난을 비추는 겸손하고도 소박한
당나귀들과
사랑의 투명함에
내가 닮아가도록 해주소서.
플라타너스 낙엽이 하나···
플라타너스 낙엽이 하나 떨어진다. 다시 또 하나가.
햇빛 속에서 희끄무레한 뿔 같은 플라타너스 꼭대기.
그리고 사람들이 차가운 자갈을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원의 꽃들은 모두 어디로?
이슬에 젖은 밤의 차가운 전율 속에, 얼어붙듯
무겁게 고개 떨군 마지막 제라늄 몇 송이.
상기된 얼굴로 길 위에 꼼짝 않고 서 있는 소녀.
발 소리가 달그락거리는 그 길 위에서 모이를 쪼는 갈색 닭,
그리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다른 두 마리.
풀밭 위에 흰 즙이 쌉살한 민들레가
드문드문 피어 있고, 소귀나무가 부드러운 소녀들의
입맛에 떨떠름한 열매를 선사한다.
그게 삶인 것이다. 키 큰 목동이
양떼 앞에서 회양목 피리로 공기를 흔들며,
하나 하나 그 양들을 세고, 그런 후
물통을 걸친 당나귀 옆에서 안개 덮힌
산으로 걸어가는 걸 나는 보았다.
향기 좋은 풀들이 좋은 치즈를 만드는 그 산.
시든 생울타리 상이에서 흰 꽃들을 단,
시큼하고 강한 내음의 마지막 박하 풀들이 어울려져 있고,
금빛 벌이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떨면서도 그 사이를 빠져
나가지 못한다.
반들거리는 찬장 속엔 너무 익은 배들이
들어 있고, 누렇게 단풍진 포도넝쿨에서 추위로
굳어진 검은 포도알들이 벽 밑에 떨어진다.
가시로 찌르는 억센 첫 호랑가시나무들이 피처럼
붉고 동그란 열매들을 달고 있다.
아름다운 가을 꽃다발을 만들 수 있는 열매들을.
추위에 언뜻 메뚜기 한 마리가 햇볕에
쉬고 있다. 저기 활짝 핀 고운 장미 송이는
이제 곧 시들겠지, 모든 사물이 죽어가듯···
빨간 토마토와 장미꽃을 옆에 무더운
일요일의 쓸쓸하고 환한 정적이 내려앉던 여름 정원,
이젠 샐비어 꽃이 피어 있는 멀리 사라진 여름 정원이여,
내가 너를 알기 전, 개들을 앞세우고
젖은 아침 햇살 아래 숲속을 지나가며
너를 생각하던 그날, 그날도 멀리 사라졌다.
그때 빽빽한 검은 숲 밖으로 잠시
잠시 보이던 풍경, 내 마음 속 내 눈 속에
남아 있는 그 풍경은 환하게 밝은 계곡이었다.
그것은 생각처럼 깨끗하고 가장 맑은
산들이었고, 보랏빛 산봉우리들이었고,
산봉우리들의 장밋빛 흔들림이었다.
내 마음 속의 눈물이었고, 얌전하게
처음으로 바늘을 사용해 보는 소녀들의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보다 더 부드러운 미소였다.
내가 너를 생각하던 그날,
그 숲 기슭을 나왔을 때, 내 영혼 속의 천사들의 목소리가
떠도는 것 같던 그날, 그날은 멀리 사라진 것이다.
나의 소중한 영혼은 큰 길 위에 몸을 엎드렸고,
아늑하고 신성한 어떤 것이, 누런 황소들이 힘들여 수레를
끌고 오는 길의 투명한 푸른 공기 속에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노래와도 같았고, 겨울날
밤을 지내려고 여인숙의 밀짚 쌓인
헛간으로 걸어가는 거지와도 같았다.
그날 갑자기 마을이 커다란
애정 속에서 슬프게 무릎 꿇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아카시아 잎들이 애무하듯 떨어졌다.
오리들이 발을 뒤뚱거리며 늪으로 걸어가고, 푸른
포도넝쿨이 어두운 유리창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고, 마을 국민학교에서는 착한 학생들이 유익한
과학의 예쁜 도표들 앞에서, 아A 베B
체C 데D를 노래하는 알파벳 노래의,
벌들이 붕붕대듯 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찌그러진 낡은
문간에는 마치 새파란 깃털의 물총새가 강가에
내려앉듯, 푸른 하늘이 내려온 듯 보인다.
하지만 이젠 멀리 사라진 다정한 손길의
탄력 있고 가늘던 네 목과, 물결처럼 둥글게
조여들던 네 허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눈앞에 다시 떠오르는, 제비처럼 검던 네 머리,
너처럼 아름답던 네 눈, 도톰하던 네 입,
아래쪽으로 넓고 의지적으로 보이던 새하얀 네 목덜미.
우린 웃었었지. 그리고 네게 난 이렇게
말했었다- 아, 넌, 이끼 위 당나귀에 올라탄
모습을 그린, 뮈세의 시집 속 오래된 삽화 같아.
그러자 넌 날 껴안았고, 네 높은 웃음의 전율과
함께 우리의 입술들은 서로 포개졌지··· 그리고
우린 다시 떨어져 얌전한 몸가짐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넌, 내가 그 옆에 놓아 둔 내
큰 차양모자 위에 내가 무심코
던져 놓은 글라디올러스의 긴 잎새를 바라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