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이 이야기 -1.5-
the Beast
린은 발바닥이 찢어질 뻔했다. 조금만 더 빨리 착지하려 들었더라면 달브레이크가 뒤로 돌면서 휘두른 검에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린은 좀전에 달브레이크의 머리를 충분히 강하게 밟았고 그래서 허공에 꽤 오래 체류할 수 있었다. 린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달브레이크가 내려친 검을 피해 주점 바닥을 물 흐르듯이 굴렀다. 하지만 그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공처럼 몸을 말고 마룻바닥을 구른 린은 달브레이크의 발 밑으로 몸을 던진 다음 왼손을 뻗어 그의 목줄기를 노렸다. "이크!" 달브레이크는 내려친 검을 회수하던 동작을 조금 바꿔 가슴팍을 스칠 듯 말 듯 하며 지나가는 오셀롯의 발톱을 막아냈다. 츠가가각!
왼손 발톱이 칼날에 얽혀 봉쇄당하자 린은 자유로운 오른손을 달브레이크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달브레이크가 더 빨랐다. 그는 왼손을 막고 있는 칼날을 비틀었고 그러자 린이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뭐야, 저 칼!' 그제서야 린은 상대의 칼날을 쳐다보았고 그 날이 기괴한 톱이빨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아니, 날 뿐 아니라 검신 곳곳에 그 톱날들이 돋아 있었다. 린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고 손바닥 한가운데에 작은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톱으로 칼날을 붙잡고 있었지만 칼을 비틀면서 칼 옆면에 달린 톱니에 손바닥을 다친 것이다.
"맨 이터Man Eater! 흉칙한 걸 갖고 다니는군?"
달브레이크는 식인검이라는 끔찍한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톱날검을 가슴 높이까지 들며 대꾸했다.
"넌 내 상대가 못 된다. 좀도둑 암코양이, 말로 할 때 얌전히 훔쳐간 전대 내놓고 꺼져라."
"뭐, 암코양이? 이 똥개 새끼가!"
서로의 종족성에 대한 가장 야비하면서도 통렬한 욕설을 통해 상대방에게 휴전의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시 격돌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치켜올린 달브레이크의 톱날검이 어깨 너머로 올라갔다. 반면 린은 오셀롯들의 주특기인 정면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더 빠른 쪽이 승리하는, 양보가 없는 수법들이다. 린이 파고드는 것이 더 빠르다면 달브레이크는 쳐든 검을 내리기 전에 목덜미에 다섯 개의 구멍이 나게 될 것이고, 그 반대라면 린은 찔러들어오는 팔을 잃거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게 된다.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임프 바텐더는 순라꾼들을 부르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시의 적절한 행동을 취한 사람이 있었다.
뻑!
린은 정면의 상대만 주시하고 있었던 터라 뒤에서 날아든 자기 머리통만한 손의 수도手刀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졸도했다. 달브레이크가 어이없는 시선을 보내는 동안 솔보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바닥에 엎어진 린을 들어올리고는 달브레이크를 돌아보았다.
"이 친구야. 살인 낼 생각이었어? 멍청하게스리... 수도에서 이러면 어떻하나? 이제 곧 순라꾼들이 들이닥칠 거야. 그 전에 빨리 튀자고!"
"어... 응, 알았어. 그런데 어디로?"
"내가 묵고 있는 여관방이 있어. 그리로!"
곧이어 두 사람은 뛰쳐나갔고, 순라꾼들이 도착하기 전에 주점에서 좀 떨어진 여관에 도착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솔보는 린을 옆구리에 낀 채였다.
"제기랄, 이거 빨리 안 풀어? 이 똥돼지 새끼야!"
솔보가 인상을 썼다.
"아가씨, 입이 너무 험한데. 일부러 챙겨서 데려왔더니."
"성질이 더러워서 그래. 그냥 몇 대 패고 얌전하게 만들어 주자니까."
좀전에 달브레이크는 그 '얌전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성적 매력이 충만하다는 오셀롯의 육체적인 특성을 즐겁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 터였기에 솔보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묶인 채 반항하지 못하는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딴 짓 했다간 가만히 둘 줄 알아? 돈 찾아갔으니 됐잖아? 이거 풀어!"
"풀면, 또 발톱 들이대려고?"
"안 싸울 테니까, 얌전히 집에 갈 테니까 풀라고! 안 풀어, 이 개새끼야?"
달브레이크는 낭인이 가장 싫어하는 욕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칼자루를 움켜쥐고 묶인 린에게 다가서려는 달브레이크를 솔보는 붙잡고 말렸다.
"이봐, 아무리 화가 나도 살인을 할 수야 있나?"
"눈알 정도는 뽑아 줄 수 있어!"
"돈 좀 훔쳤다고 이렇게 화를 내나. 돈 찾았으니 됐지."
"분풀이를 해야겠단 말이야!"
"어떻게, 덮치기라도 하려고?"
"... 제기랄, 나도 그렇게 막 나가는 놈은 아니야." 달브레이크는 좀전에 자신이 그런 방식의 대우를 제안했다는 것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몇 대 패 주고 말 거야."
"참으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순라꾼들한테 넘길 걸 그랬군?"
묶여 있던 린도 외쳤다.
"왜, 그러지 그랬어. 그럼 그냥 콩밥 먹고 말았을 텐데. 저 성질머리 더러운 놈한테 시달리느니 차라리 그게 나았을 걸."
"으아아아! 이거 놔!"
"젠장, 둘 다 제발 그만 좀 해!"
결국 약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솔보는 으르렁거리는 둘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휴, 내가 그 길거리에서 사람들한테 망신당한 것만 생각하면 하여튼... 으르르르!"
"야, 네 그 무식한 칼날에 손바닥 찢어졌단 말이야! 치료비 및 정신적 피해보상 요구하지 않는 것, 다행으로 생각해!"
"이 년이?"
"어디다 대고 이 년 저 년이야!"
그러니까, 서로 죽여버리겠다고 악다구니를 쓰지 않게 된 것을 솔보는 일단 '진정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공기가 살벌했기에, 솔보는 수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려는 계획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 이 친구들부터 좀 해결하고 나서.
"이봐, 이제 좀 놓아주지?"
"그래! 이제 풀어 달란 말이야!"
"... 제기랄. 아까 내가...!"
"도대체 길거리에서 망신당한 얘기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이야!"
"분한 걸 어떻하라고!"
그리고 달브레이크로 하여금 만족스런 복수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설득의 끝에서 솔보는 짜증을 내었고, 그래서 달브레이크는 순전히 솔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린을 놓아 주는 데 동의했다.
린과 달브레이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기에, 달브레이크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 있는 동안 솔보는 린의 팔다리를 풀어 주었다. 린이 처음에 깨어나자마자 하도 거칠게 반항하는 통에 털가죽이 밧줄에 긁혀 손발목에 생채기가 났다.
"어휴, 이 예쁜 털 다 상했네. 그러게 왜 그렇게 날뛰고 그래."
"쳇, 아저씨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린은 묶여 있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대꾸했다.
"근데 저 성질머리 더러운 놈은 어쩌다 알게 됐어?"
"어제 처음 만났어. 그냥 술친구야."
"어제 처음 만난 사람한테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냐? 나한테도 그렇고. 아저씨, 호인인 것 알겠지만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여관 창문으로 다가갔다. 놀란 솔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창문으로 몸을 던져 건너편 집의 지붕으로 뛰었다. 솔보가 그녀가 나간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달브레이크가 들어왔다.
"응? 이 년 그 새 나갔어?"
자기 없을 때 놓아주라고 담배까지 한 대 피우고 온 녀석이 능청스럽기는. 솔보는 속으로 피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브레이크는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쳇, 그건 그렇고 천 냥 날린 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든 해 봐야지. 그러잖아도 오늘은 찾아볼 곳이 몇 군데 있어. 자넨 어쩔 생각인가?"
"난 모험가 용역회사 가 봐야지. 일거리가 요즘 좀 많거든."
"용역회사 회원인가?"
용역회사란 원래는 인력을 조달해 주는 일을 대행하는 업체이다. 하지만 그 '인력'들이 모여서따로 설립한 회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모험가들의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며 그 경영은 보통 한때 이름깨나 날리다가 나이 들어 은퇴한 모험가들이 노년의 소일거리 삼아서 맡는다.
"거기라도 가입해 있어야 일이 들어오지, 아무 소속도 자격증도 없으면 그야말로 떠돌이일 뿐인 것이 낭인 아닌가."
"하긴 그렇겠군. 난 연고지도 구속도 없다는 것 때문에 자네들을 부러워했는데 불편한 점도 많겠구만."
"모르는 소리야. 부러워할 게 따로 있지. 그저 한 곳에서 자기 일 묵묵히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뭐, 낭인 남자놈들이야 다 그렇지만."
낭인 남자는 가족이 없다. 반면 여자는 낭인 남자가 남기고 간 씨를 낳아 자식으로 키우며 살아간다. 낭인에게는 사회나 문화가 없지만, 전해지는 무기는 존재한다. 낭인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공통분모를 들라면 무기와 그 무기를 제련하는 야금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낭인 여인들은 보통 대장간을 운영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자식들을 가르친다. 자식들은 대장장이 일을 완전히 배우고 나면 그 어머니로부터 무기를 받아 떠나간다. 그리고...
"그런데 자네 칼은 물려받은 것인 모양이지? 그러기 쉽지 않다는데."
"뭐... 그렇지."
낭인은 보통 한 배에 자식을 대여섯 명, 혹은 그 이상씩 낳는다. 그들 중에 어머니의 무기를 받는 자식은 하나뿐이다. 혹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식에게 줄 무기를 남기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 봤자 부모의 무기는 두 개 뿐이다. 따라서 자식들은 보다 훌륭한 야금술을 연마하기 위해, 그래서 부모의 무기를 물려받을 수 있는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피나는 수련을 한다. 개중에는 인간의 유명한 대장장이를 사사하여 수련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자도 있다고 한다.
"대장장이 일을 잘 하는 모양이군. 칼도 그런 모양의 물건이라면 관리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쩝, 그렇지도 않아. 여하튼, 그럼 각자 갈 곳 가야지."
"그래."
그들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여관 앞에서 그들은 악수를 한다.
"같이 맥주 마을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로 할 일도 있고 하니 어쩔 수 없겠군."
"물어물어 찾아가든가 해 보도록 하지. 기회가 된다면 또 보지."
"잘 가게."
"잘 가게."
낭인과 팬더런이 등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수도의 오후는 금빛으로 저물어 간다.
"그렇습니까?"
수도의 주류 반입을 맡고 있는 임프 관리 체-지갈은 물고 있던 곰방대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요즘 단속이 꽤 엄해졌지요! 팬더런들도 지금처럼 거래처를 분산해서 일하다간 손해 보기 십상일 것 같군요! 하지만 이게 우리 일인걸 어쩌겠습니까!"
솔보는 인상을 쓰며 동동주 사발을 들이켰다. 체-지갈은 길다란 볼수염을 짧은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세력 큰 도매상인을 구해서 그와 거래해 보십시오! 그게 제가 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애당초 솔보가 체-지갈을 만나러 온 것은 요즘의 동향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직책이 직책이니만큼 솔보는 주류 업계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과 친교를 쌓고 있었고 지금 눈앞의 임프가 그렇듯 그들 대부분은 솔보에게 우호적인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요즘의 상황은 도방에서 '백성들을 타락케 하고 맑고 순선한 정신을 흐리게 하여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악南岳 마을의 문사들은 그런 식의 상소를 통해 자신들의 발언권을 강화한다. 솔보는 남악 문사들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요구가 미친 파급 효과에는 짜증을 느꼈다.
어쨌든 수도 내에는 양조장이 없다. 그것은 주황성과 같은 거대하지만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도시 내에 입지하기는 어려운 시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수도에서 개인적인 밀주 제조는 금지되어 있기에 주류 시장은 그야말로 황금과 같은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실들을 조합하여 오늘날의 단속 강화라는 현실에 대입한 결과는 암담했다. 세상에, 주류 운반 수레의 숫자에 비례하는 반입세 징수라니!
"폭정입니다...! 너무 하는군요."
"쉿! 그런 말 함부로 하셨다가 큰일 나십니다!"
체-지갈은 솔보의 투덜거림에 눈이 휑하니 커져서 입단속을 시켰다. 솔보는 황제 폐하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무엄한 자신을 관리로서 눈감아 준 체-지갈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술을 마저 비우고 자리를 파한 뒤 여관으로 향하면서 솔보는 생각을 했다. '세력 큰 도매상인을 구해서 거래하는' 체-지갈의 제안은 오늘 낮에 들었던 샤오영의 제안과 일맥상통했다. 오 씨 가문도 맥주 수백 통을 구입하겠다고 나설 정도의 충분히 큰 세력이었고 그녀의 제안 중에는 분명히 '목적지 도착 비용' 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도 분명 주류 반입세 징수 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까지 생각해서 제안한 것일까? 대단한 아가씨군.'
사실은 '무서운 상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모든 상황이 그녀에게 맞춘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가문은 파라히트 가문보다야 미약한 세력이었지만. '어쩌면...' 그녀는 자신에게 불리한 요소인 파라히트를 없애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솔보에게 들었다. 솔보는 그 생각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여겼다.
'예상 외로 무서운 여자일지도 모르겠어.'
남성이 한 여성을 부를 때 아가씨나 아줌마 같은 호칭에서 '여자'라는 호칭으로 바뀔 때는 보통 어느 정도의 경계심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더해서 말할 경우이다. 팬더런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쨌든 솔보는 그녀와 거래할 경우 얻게 될 것들이 더 늘어났음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합명회사 황야의 바람 용역>의 건물은 작고 소박하다. 하지만 사물을 겉모습으로만 평가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처리되는 일들, 그곳에 관계되어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용역을 이용하는 이들과 그 용역에 의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규모를 생각하자면 그곳은 충분히 거대한 장소이다. 이곳은 말하자면 대륙의 쟁쟁한 모험가들과 그들의 능력이 필요한 이들을 이어 주는 교두보인 것이다.
낭인들은 그들의 파워를 감지하는 민감함에 의해 이 도시의 몇몇 장소에 대해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 파워라는 것은 꼭 강인한 전사나 거대한 대포에만 느끼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낭인들은 황궁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강한 파워를 느끼곤 한다. 전 제국의 통제권을 쥔 황제가 거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목탑으로 19층을 쌓았다는 제국의 건축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한 자룡탑은, 인간들이 보기엔 황궁보다도 훨씬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일지언정 낭인들에게는 허우대만 멀쩡할 뿐 아무런 파워도 집약되어 있지 않은 그냥 건물일 따름이기에 별볼일 없어 보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달브레이크는 이 허술하고 작은 건물에 다가가면서 막대한 파워의 집약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작고 허름한 이층집에 다가가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달브레이크는 그 거대한 파워를 부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대륙의 모든 모험가들의 대부인 스카스카 바다 공파는 그 정도의 파워를 가진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인물로 손꼽힐 만한 자인 것이다.
<황야의 바람 용역>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합명회사>라는 말이 보통의 경우처럼 친목이나 가족관계로 연결된 인간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명에는 스카스카를 제외한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스카스카 자신은 '가족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회사'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의 암묵적인 지시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만도 수백 명에 달한다.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지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곳은 암흑조직의 본부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결코 불법조직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곳의 복잡한 성격을 말해 준다.
합명회사가 다 그렇듯 이곳에서 임무를 맡을 때는 이곳의 일원으로서 무한책임을 진다. 즉 수락한 의뢰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계약을 수행하는 직원의 전재산을 몰수한다는 삭막한 조건이 붙는 것이다. 바꿔 말해 몬스터를 잡아 주기로 하고 나갔다가 몬스터가 지나치게 강해서 일행 모두가 사망하면 죽은 이들의 재산은 그 즉시 몰수되는 것이다. 물론 도의적 차원에서 장례식 정도는 치러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무슨 비루 먹은 개 같은 꼴인가.
'글쎄, 그러니 보통은 쉬운 임무를 맡지. 전멸당할 임무 같은 것 말고 말이야.'
입구에 앉은 직원에게 회원증을 확인받고 달브레이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수십 개에 앉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손님은 뜸하다. 달브레이크는 접수창구에 가서 일거리 의뢰 서류를 받아와 쓰기 시작한다.
이름 : 달브레이크 피터슨
종족 : 낭인(콜리)
나이 : 28세
가문 (인간일 경우) :
직종 : 전사
의뢰 수행 경력 : 20회
특기 및 특수능력 : 검술
특수능력 부분에서 달브레이크는 잠시 멈칫한다. 늘 하는 버릇이다. 하지만 그냥 넘긴다. 말해서 뭐 하겠다는 거야. 칼질이나 하지.
희망 업무 : 결투 대행, 미수금 반환, 야수 사냥, 상단 수호
의뢰 불이행시 위약에 따른 보상의 책임을 지며 위 사항에 따라 의뢰 처리를 신청합니다.
23 범 해 4월 12일 달브레이크 피터슨 (이 곳에 사인하세요)
사실 항상 위약금으로 전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계약금을 일정하게 걸고 나서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황야의 바람> 회원이 맡은 임무를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미숙해서라기보다는 임무가 너무 어려워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임무에 따르는 계약금은 엄청나게 큰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전재산을 털어야 할 만큼.
'쳇, 임무에 성공하면 계약금은 자기들이 떼고, 실패하면 우리한테 손해본 것 다 뽑아가고. 그러니 어찌 장사가 안 되겠어.'
달브레이크는 천장을 쳐다보면서 잠시 투덜거렸다. 정확한 방향이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회사 임원들이 위치한 곳이니까. 천장을 쳐다본 달브레이크는 그곳에서 아찔할 정도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저곳에 스카스카가 있는 모양이군.
스카스카가 저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스카스카 개인에게 파워가 결집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달브레이크의 생각은 조금 빗나갔다. 밖에서 보기에 이 건물에 파워가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건물이 다른 건물보다는 더 강한 영향력과 권한을 가진 자들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파워는 상징성을 함축한다. 그래서 달브레이크는 스카스카를 직접 본다 해도 지금 이 건물 안에서만큼 강한 파워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 회사의 임원들이 선출해서 뽑힌 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제국의 황제를 직접 보는 느낌은 확실히 짜릿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브레이크는 의뢰 서류를 접수계원에게 제출했다. 서류를 읽어나가던 계원이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잠깐 이채를 띤 시선을 보낸다. 그의 이름은 적어도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지. 성공율 95%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 그것도 20건 중에 19건을 말이야.' 한 건의 실패에 따른 보상금을 물고도 삼백 냥이라는 돈이 남을 정도이니 달브레이크의 수입도 이만하면 짭짤한 편이다.
"저쪽에 있는 차라도 한 잔 하시면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좋을 대로. 달브레이크는 구석에 간다. 차 주머니가 벽에 몇 개 걸려 있다. 구석에 차 타는 직원이 따로 배치되어 있어 물을 끓여 커피, 홍차, 녹차 등을 타 준다. 달브레이크는 홍차를 주문한다.
"맛있게 드세요."
그러도록 하죠. 자리로 돌아와 홍차를 한 모금 삼킨다. 낭인의 예민한 후각에 홍차의 강렬한 향기는 차라리 독약이다.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다. 짜릿해. 본래의 성질이 변질된 것에는 그 특유의 매력이 있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야. 훌륭해. 홍차를 옆에 놓고 자리에 놓인 신문을 집어들어 읽는다. 수도에서는 곳곳에서 양질의 신문을 접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 별다른 기사는 없다. 부고란에 올라온 몇 개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뒤진다. 그의 동업자들은 늘 죽음과 가까이 살아가기에, 그가 요절한 친구의 이름을 신문 부고란에서 찾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오늘은 아무도 없군. 홍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다 보니 담배도 한 대쯤 피우고 싶지만 건물 내는 아마 금연일 것이다. 참도록 하자.
솔보는 샤오영과 찻집에 와 있었다. 찻집 주인이 팬더런의 덩치에 맞는 의자를 찾지 못해 쩔쩔매는 것을 보다못해 솔보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의자에 앉은 샤오영과 눈높이가 비슷했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확답은 못 주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리다."
샤오영은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후후, 잘 생각하셨어요. 돌아가셔서 마을 분들께 제 얘기 잘 해 주셔야 해요?"
"그러도록 하지."
찻집이라 술이 없었고 그래서 솔보는 술 대신 뜨거운 홍차를 물처럼 들이켰다.
달브레이크는 현재 접수된 의뢰 중 자신의 조건에 맞는 목록을 받아들어 읽고 있었다.
'흠... 어디 보자. 결투 대행. 상대가 글래디에이터Gladiator라고...? 됐어. 목 떨어질 일 있냐? 다른 건... 상단 수호? 어디... 서령 들마골 행 상단 <돌격조>. 이름이 뭐 이래? 아무튼, 예상 소요 기간 왕복 두 달에 보수 사십 냥? 괜찮군. 이걸로 하자.'
"79번 의뢰로 합시다."
"접수하겠습니다. 계약금 열 냥을 맡기셔야 합니다."
달브레이크는 당황했다. 계약금의 액수 때문이었다.
"열 냥? 보수가 사십인데 그것밖에 안 됩니까?"
"아, 최근에 들르시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회원 유치 정책의 일환으로 보수의 25%만 받기로 회원 약관이 변했습니다. 열 냥만 내시면 됩니다."
호오, 이 양반들 조금 마음 씀씀이가 좋아졌는걸? 이제 적어도 임무 실패했다고 패가망신하는 이들은 많이 줄어들겠군. '회원 유치 정책'이라고 했으니 위약금 물까 봐 가입 안 하는 모험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속셈일 테고. 역시 장사 좀 할 줄 아는 친구들이야.
"여기 있습니다." "열 냥 받았습니다. 영수증 받아가세요. 내일 중에 <돌격조> 상단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그러죠."
"배신자를 죽였느냐?"
린은 머리를 조아렸다.
"네. 그가 팡을 죽이고 저도 해하려 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의 물품은?"
린은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죽은 스노위가 가지고 있던 서류를 꺼내 상관에게 내밀었다.
"수고했다. 돌아가 보거라."
물러나는 린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막 문을 나가려 하는데 상관이 그를 멈춰세운다. "잠깐." 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쳐진 주렴 너머로 실루엣만 보이는 상관이 말을 이었다.
"한 건 더 처리할 생각은 없느냐? 이번엔 뭔가를 찾는 일이다."
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원하신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합니다. 왤까요.
만취한 알콜환자가 팔짱을 끼고 술냄새를 풍기며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추태를 부리고 그 옆에서 그 어머니가 저런거 그냥 탁 죽어버렸음 좋겠다고 넋두리를 해서일까요.
아니면 손목에 몇 번 그은 상처가 십자모양으로 난 흉하고 무시무시한 몰골의 노인네 혈압 재는 걸 도와 주다가 맡은 악취에 나도 모르게 흠칫해서일까요.
그도 아니면 이 와중에도 공부 좀 해보겠다고 경제학 책 폈다가 하루종일 3쪽 읽는 신화를 창조해서일까요.
이도저도 다 아니면 그 여자에게서 오랜만에 온 문자에 또 싸워버려서일까요.
연애질,
자주 할 짓은 못 되는 듯합니다.
맘에 안 들거나 이상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질문이나 의견 부탁드립니다. 저도 발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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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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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Beast 님의 글은 충분히 흥미를 일으킵니다. 허나 지웅이 일과 연관성이 그다지 없어 보이는 수도의 얘기가 불쑥 이어져서 좀 당황했달까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전개하는 것도 지루함을 없애줘서 좋지만,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어줘야 이해가 잘 된답니다.
흠... 그럴까요. 사실 그 이야기, 여러 번 들은 얘기네요 ㅋㅋ 민망해라.
피에타 님/ 그게... 말이죠. 아마 제 생각에는, 저 등장인물들이, 어디에선가 다 만나지 않을까 하는데요. 외려... 저렇게 쓰는 것이 훨씬 어렵지요. 독자야, 아- 이런 이야기로 흘러가는구나- 라고 순순히 따라가주면 되지만, 작가는 그림을 잔뜩 그리고 있지 않으면... 절대로 저런 식으로 쓸 수 없지요. :)
그나저나, 짐승 님, 앞으로도 이 속도로 주욱? (키득)
어? 선장님 웬일로 제 편을 다 들어줘요? (......)
몸이 쫌 안좋아서.. (헤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보는 것은 좋지만 지웅이 이야기가 심히 궁금한데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