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1970년,
일본에도 '적군파'라는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음.
계속되는 단속에
이들은 북한에 가려고
비행기를 납치할 계획을 세움

1970년 3월 30일
9명의 일본 적군파 조직은 도쿄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 요도호를 공중 납치함
(승무원 7명과 승객 등 129명탑승)
기장은 국내선이라 연료부족으로
북한은 못간다며 설득(실제론 충분)

납치범들은 후쿠오까 공항에 착륙하여
연료를 요구.
이 과정에서 활주로를 막고 전투기가 뜨고 소동.
어찌어찌 노인과 아이들, 환자는 풀어주고 이륙.

어느정도 날아가다,
이미 북한이라고 착각한ㅋㅋ 기장은
관제탑과 교신을 시작.
"여기는 평양 진입 관제" 라고 밝힌 관제탑의 통제대로
남쪽으로 회항.
하지만! 이것은 미리 연락받은 한국정부의
'지혜'로,
요도호는 서울공항에 착륙함ㅋㅋㅋ
언어소통이 안된기장과 납치범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순순히 따름ㅋㅋ

이들은 이곳이 북한이 아닌지를
한참 뒤에나(ㅋㅋ) 알게됨
출동하여 접촉한 한국군은 인민군 복장을 하고,
'환영 평양 도착'이란 플랜카드까지 걸었다는..

서울인걸 걸리게 된 이유에는
썰이 존재하는데ㅎㅎ
1. 인민군 복장을 한 장교에게 납치범은 북한의 경제개발 몇해째냐고 묻자,
당황한 장교가 우물쭈물한다.
평양이 맞냐고 재차 묻자
옆에 있던 병사고문관는
"여긴 서울이다!" 드립을 시전해서 걸렸다는 썰
(병사가 일본어를 알았나? 흠..)
2. 활주로에 있던 미국 항공사 항공기를 보고 알았다는 썰
3. 먼발치 흑인 미군 병사를 보고 알았다는 썰
4. 김일성 사진을 가져오라는 요구에 걸렸다는 썰 등이 있음.

납치범들은 속은 걸 알고 이륙하려하나,
이륙도 못하는 상태. 교섭을 진행하려 했으나 영어로도 소통불가.
일단 식사를 제공하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특전사부대를 투입하여
진압할 계획을 세우는 일촉즉발의 상황.
당시엔 테러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진압 매뉴얼조차 無.
실행됐으면 이른바 러시아식 진압으로
대참사가 일어났을..줄 알았는데 뒤에 또 반전ㅎ

이 때 일본정부가 급파한
야마무라 운수성 차관(오른)이 도착!
일본인이지만 본받아야할
공직자의 자세를 보여줌..
자신이 스스로 인질이 되는 조건으로
인질 모두를 풀어주는 딜을 성사시킴
79시간만에 요도호는 북한으로 이륙

평양에 도착하여 북한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데..
어이없게도 납치범들의 무기인 권총, 폭탄 등은
모두 장난감..으로 가짜

이후, 북한은 인질이었던
<야마무라 운수성 차관과 승무원들+기체>를 돌려보내네
마네 딜을 걸다가 욕을 실컷 먹고
인도주의 관점이라며 돌려보냄.

당시 일본정부는 군사정부인 한국정부가 무력진압을 실행할까 심히 우려했지만
한국정부의 간단한 기지로 북한행을 저지하고
아무튼 한국에서 인질이 모두 풀려난 점에서
한국정부에 빚을 지게 됨
또, 요도호 사건 마무리 중
재일한국인의 북송문제가 거론,
일본 정부의 무관심속에 재일한국인이
북송된 점이 불거지며
한일외교교섭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

영웅이 된 야마무라 운수성 차관은 이후
장관 - 중의원 테크로 승승장구하던중
1992년 외교사절로 방북 하루전
정신질환을 앓던
차녀의 칼에 찔려
사망..
납치범들은
일부는 북한에서 거주중 사망.
일부는 다시 일본에 잠입했다가 복역
일부는 인터폴 국제 수배중.
북한에서 낳은 자식들은 모두 일본으로 귀화.

* 업로더 유의사항 : 정치, 성혐오, 광고, 분쟁성, 어그로 게시물작성 금지
* 댓글러 유의사항 : 정치, 성혐오, 분쟁성, 어그로 댓글작성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