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한 푼 내놓지 않고 설립자가 된 박정희와 재단의 주인이 된 박근혜처럼, 재단 역시 아무런 물질적 기여 없이 영남학원을 주무르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30여 명이 모여 섰다. 이들은 대열 앞에 '영남학원 적폐 청산하고 민주적 학문공동체 회복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교재단에 영남대에 쌓인 적자와 운영 부실의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재정적자 사태가 빚어진 근본 원인이 박정희, 박근혜 부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악연은 영남대가 설립된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는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강제 통합했다. 한때 영남대 재단인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정관 제1장 제1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교주(校主)'라고 칭하기도 했다. 영남대가 '박정희의 대학교'라고 불렸던 이유다. 이 조항은 지금은 삭제됐다.
경주 최씨 가문과 박정희 가문과의 악연도 영남대 설립과 함께 시작됐다. 영남대에 통합되기 전 대구대는 경주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의 상징이었다. 47년 경북의 유지들을 모아 대구대 설립을 주도한 것은 경주 최부잣집의 12대손 최준(1884~1970) 선생이었다. 최부잣집의 마지막 재산은 대구대 건립에 모두 쏟아 부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온 후인 64년 최준 선생은 대구대의 운영권을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에게 넘겼다. 박정희 정권이 '대학정비사업' 명목으로 여러 시설기준을 세워 신규 투자를 강요했지만 이미 모든 재산을 학교에 쏟아 부은 최준 선생에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6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발각되는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에 휘말리면서 이 회장은 대구대를 박정희 정권에 반강제로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청구대 역시 신축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이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이사진은 설립자 최해청(1905~1977) 선생을 배제한 채 이사회를 열어 청구대 운영권을 박정희에게 넘겼다. 그렇게 박정희 정권에 넘겨진 대구대는 청구대와 합쳐져 종합대학 영남대가 됐다.
박근혜가 영남학원의 이사장이 된 것은 박정희가 10·26으로 숨진 이후인 80년이었다. 하지만 영남학원이 각종 비리의혹에 휩싸이면서 박근혜 이사장 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영남대 구성원들은 비리의혹을 내세워 박근혜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박근혜는 7개월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이사직만 맡았다. 하지만 박근혜가 사실상 전권을 쥔 재단은 국정감사가 이뤄진 88년까지 해체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형제 조순제(2008년 사망)씨가 학교 재산, 설립자 최준의 조상묘역 등을 모두 팔아버렸다. 조씨는 이사는 아니었지만 이사장에서 이사로 물러난 박근혜의 측근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속칭 '박근혜 재단'이 해체되자 88년 이후 영남대 재단은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그러다 박근혜가 2007년 대선 후보로 떠오르자 2009년에는 '재단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사립재단이 부활했다. 당시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설립자유족' 자격으로 박근혜에게 7명의 이사진 중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재단 정상화'라는 목표가 무색하게도 지금 영남대는 역대 최악의 재정적자난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최근 600억원에 가까운 재정적자로 학사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적자를 채우기 위해 연구비와 대학운영비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살림을 앞장서 챙겨야 할 재단이 오히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영남대 내부에서도 '박근혜 재단'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9년 이사 7명 중 과반인 4명을 박근혜가 추천했고, 현재 11명까지 늘어난 이사들도 여전히 박근혜 측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주장이다. 영남대 교수회와 영남대 직원노조는 재단이 설립될 때부터 박근혜가 추천한 이사로 과반이 채워졌고 현재까지도 그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자와 운영부실도 이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최근 600억원에 가까운 재정적자로 대학의 학사운영은 파탄에 이르렀고 독단적인 총장과 재단 아래 대학의 자치와 민주주의는 크게 추락했다"며 영남대가 맞은 초유의 재정위기 사태에 재단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며 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이사회를 개방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법인이사회를 전면 재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대구대 설립자인 최준 선생의 장손인 최염(84)씨는 67년 12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모시고 서울 반도호텔 924B호 객실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대구대와 청구대 각각의 이사회를 마치고 양쪽의 이사들이 모여 최종 통합을 의결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는 "객실 구석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문교부(현 교육부) 법무관이었다. 사립대학끼리 통합을 논의하는 자리에 문교부 법무관이 참석해 감시를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지적했다.
최씨는 70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에게 유언으로 '영남대가 내 뜻에 반해 탄생했지만 대학은 하나의 생명체다. 영남대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필귀정(事必歸正)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50년이란 세월이 지나니 사필귀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한편 강광수(52) 영남대교수회 의장은 "재단이 독단적으로 학교 운영을 이끌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대학이 직면한 재정적자와 운영부실 책임은 재단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재단을 재구성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총장·학장 직선제도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