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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풋볼뉴스(Football News)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문
한국 여자축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누렸다. 뛰어난 재능의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고, 소위 ‘황금 세대’는 국내외에서 계속 성과를 쌓아 갔다. 그러나 환하게 주변을 밝히던 불도 언젠가는 그 빛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 여자대표팀은 새로운 선장인 신상우 감독을 맞이하며 중흥을 위한 도약대에 섰다.
2024년 10월 10일, 대한축구협회(이하 KFA)는 신상우 전 김천상무 코치를 대한민국 여자 축구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했다. 전임 콜린 벨 감독과 계약 종료 후 4개월 여 공백이었던 자리는 새 주인을 맞았다. 남녀 축구에 대한 폭넓은 경험, 확고한 철학, 여자 축구에 대한 비전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우 감독은 부임 이후 6개월간 여자대표팀 재정비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그 시간 동안 세 차례 대표팀을 소집하고, 일곱 차례 A매치를 치렀다. WK리그를 중심으로 새 얼굴도 적극적으로 불러들였다. A매치 경험이 없던 18명의 선수가 발탁되며 경험과 자신감을 채워가는 중이다. 지소연을 비롯해 대표팀의 중심이 돼야 할 선수들은 신구조화를 위해 때로는 리더, 때로는 서포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상우 감독은 단계적인 변화를 통해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원정 때는 해외파보다 WK리그 선수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당시 WK리그는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는 팀들만 그 시기에 운동하고, 나머지 팀은 전국체전이 끝난 10월 말부터 쉬는 상태였습니다. WK리그를 주목한 건, 8개 구단 선수를 골고루 뽑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팀에 잘 하는 선수가 몰려 있는 건 맞지만, 열악한 팀에도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가 있으니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어요. KFA에서도 제 의견을 받아줬고요.”
“대표팀을 맡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선발하기로 했어요. 현재 A대표팀의 박윤정 코치가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했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 대한 자료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선발한 선수 중 한 명이 김신지(AS로마)예요. 상징적인 선수라 할 수 있죠. 어린 선수들이 11월에 스페인으로 원정을 가서 지소연, 이영주 같은 주축들과 훈련을 하고 경기에 나가는 과정을 통해 크게 느낀 거 같았어요. 훌륭한 선배들을 보고 작은 행동부터 스스로 변화하더라고요.”
선수 구성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모든 선수들을 새 얼굴로 바꿀 수 없다. 여자 축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신상우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핑크레이디스컵까지 점진적으로 변화를 준 이유다. 그 과정을 통해 선수들을 다층적으로,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처음 대표팀에와서도 능력을 보여주고 자신감을 많이 올린 선수가 있는 반면, 아직은 훈련과 경험이 더 필요한 선수도 있었다. 그 평가를 기준으로 내년 3월 열리는 2026 호주 여자아시안컵을 위한 최선의 스쿼드를 구성해야 한다.
신상우 감독은 핑크레이디스컵에서 우즈베키스탄(3-0), 태국(4-0), 인도(3-0)를 차례로 꺾으며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일본(0-4), 스페인(0-5), 캐나다(1-5) 같은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큰 패배를 경험했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증명한 것이 핑크레이디스컵 우승이었다.
“A매치를 할 때마다 경기의 목적과 포인트를 잡고 설명해줍니다. 10월과 11월의 경기는 과정의 중요성, 경험의 공유를 말했습니다. 점수 차가 컸지만 선수들은 제가 하려는 축구를 위한 과정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핑크레이디스컵 때는 랭킹이 우리보다 낮은 하위권 팀들과 붙었지만, 상대를 확실하게 누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점하지 않고 전반 30분 이내에 골을 넣는 경기를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죠. 향후 아시안컵 같은 대회에서도 그게 가능해야 우리가 변수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고맙게 선수들이 그걸 달성했습니다. 이기는 생각, 위닝 멘탈리티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4월에는 다시 강호 호주를 상대로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신상우 감독은 호주전은 앞선 세 차례 소집으로 만들어가는 팀의 색깔을 강화하는 시간으로 봤다. 자칫 패배할 수 있지만 두드려 맞더라도 강팀과 계속 경기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KFA에 했다. 그 경험으로 팀이 한층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이라는 1차 목적지까지 신상우호는 철을 제련하듯 냉탕과 온탕을 오갈 계획이다.
“여자 대표팀은 소집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하는데 이왕이면 강팀과 계속 붙고 싶다고 했습니다. 호주 원정 이후 7월 열리는 E-1 챔피언십 때는 일본, 중국 등을 상대로 효율적으로 경기할 수 있는 방식을 준비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10월 A매치 기간은 저희가 전국체전 이슈로 활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12월에 한 차례 소집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내년 2월 한 차례 더 소집해서 훈련을 한 뒤 아시안컵으로 갈 계획입니다.”
올해 초 핑크레이디스컵에서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꼼꼼하고 부드러운 성향, 여자축구와 잘 맞는다
취임 후 약 6개월. 신상우 감독의 시간은 설렘으로 시작했다. 대표팀 감독이 주는 중압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크든 작든 지도자는 압박감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순간 신상우 감독은 축구를 시작한 이래, 지도자가 된 이후 긴 시간 꿈꿔 온 순간이 이뤄진 것에 대해 솔직한 감정을 누렸다.
“여자대표팀 감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정정용 감독님을 통해 들었습니다. 사무실로 내려오라고 하셨고, 그때 처음 얘기하셨어요. KFA로부터 연락이 왔고 면접 기회가 있는데 해보겠느냐고. 정정용 감독님이 김천상무에 부임하시고, 첫 면담 때도 저는 기회가 되면 여자축구로 다시 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여자축구에 관심이 많다는 건 감독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당시 시즌 중이었기에 선수단 휴식에 맞춰 1박2일로 올라가서 면접을 봤죠. 2시간 가량 면접을 가졌고, 9년 동안 여자축구에서 일하며 느낀 점을 쭉 말씀드렸습니다. 전술이나 게임모델 등에 대한 최종 발표까지 했고요. 국가대표가 쉬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꿈이 실현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죠.”
면접 발표 당시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강조한 내용은 동기 유발에 관한 것이었다. 신상우 감독은 과거 창녕WFC에서 초대 감독으로 긴 시간 집중했다. WK리그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의 팀에서 일을 한 것이 오히려 선수들의 동기 유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지도자가 인프라를 크게 개선하긴 어렵지만, 소통을 통해 신뢰를 끌어낼 수는 있었다. 선수들의 의지를 높여 현실을 넘어서는 시도를 한 덕에 갖게 된 자신만의 노하우였다.
“전술도 중요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먼저 서 있어야 합니다. 팀이 합심해야 한다는 게 제 축구 철학이었고요. 남자축구 선수보다 여자축구 선수들과 그 부분은 오히려 더 잘 됐던 경험도 있습니다. 제 성격이 여자축구랑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향이 꼼꼼하고, 부드러운 편이라 자평합니다. 여자축구 선수들은 하나를 잘 가르쳐주면 그 하나를 정말 잘 합니다. 그런데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걸 마스터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때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여자축구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커졌습니다.”
2015년은 신상우 감독의 축구인생에서 변곡점에 선 시점이었다. 당시 WK리그 소속인 부산상무(현 문경상무)의 이미연 감독이 남자 지도자의 합류를 고려했고, 함께 지도자 연수를 받았던 신상우 당시 코치에게 제안했다. 결정의 날, 새로운 제안이 왔다. 광주FC의 정식 감독으로 승진한 남기일 감독이 코치직을 제안한 것.
“성남일화 시절 남기일 감독님과 선수 생활을 함께 했어요. 마음이 통하는 좋은 선후배 관계였기 때문에 지도자로서도 함께 하고 싶어 제안을 주신 거였죠. 하지만 이미연 감독님과 이미 상당 부분 대화가 진행된 상태였어요. 상황을 뒤집고 광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의를 지키고 싶었어요. 잠시 고민 후 상무로 가겠다고 했죠. 그날이 여자축구와 제 인연이 시작된 날입니다.”
신상우 감독은 축구인 2세다. 동북고 출신인 부친 신두순 감독은 제일은행 감독직을 수행하며 실업 축구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다. 1993년에는 킹스컵에 출전한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이후 실업축구연맹 이사로 활동했다. 한양대 시절 기동력 넘치는 미드필더로 명성을 떨친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의 은사이기도 하다. 뒤늦게 축구를 시작한 신상우 감독은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원래 꿈은 건축 디자이너였습니다.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축구인의 피가 어디로 가진 않았던 모양이에요. 국민학교 시절 육상부와 축구부가 있었는데, 제가 잘 뛴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서 불렀어요. 갑자기 훈련을 하라고 하는데 4학년인 제가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운동장 20바퀴 돌기에서 3위를 했어요. 그러면서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죠. 훗날 제 스승이 되시는 광운대 강기욱 감독님이 집에 오셨다가 그 트로피를 보고 아버지를 설득하신 거죠. 사실 제가 빠르긴 해도 덩치는 왜소한 편이라 부모님이 운동시킬 생각을 안 하셨거든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중학교 1학년이었죠. 저는 성인이 쓰는 5호 축구공이 그렇게 큰 지 몰랐어요.”
“늦게 출발했지만 뭘 한다고 하면 끈질기게 하는 성격이라 다행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결정적 계기도 있었죠. 시합을 나갔는데 어떤 부모님들이 ‘쟤는 축구인 2세라 경기를 뛴다’며 시샘 섞인 이야기를 했죠. 그 얘길 들어서인지 집중을 못했어요. 전반전 끝난 뒤 감독님께 저만 10분 동안 맞았습니다. 그러고도 감독님은 후반전을 계속 뛰게 해 주셨어요. 숙소로 와서 실컷 울고 거울을 보는데 제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어요. 바로 다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선수로, 지도자로 축구를 통해 성공하겠다. 그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시작점이었죠. 방식은 잘못됐지만 당시 감독님이 제 안의 오기를 끌어내 주신 거죠. 다른 부모님도 그날 이후론 ‘누구 아들이라 뛴다’ 그런 얘긴 안 했습니다.”
선수 신상우가 경쟁력을 갖춘 건 고등학교 때였다. 체격이 커졌고, 특유의 강점이었던 스피드는 단연 뛰어났다. 성실한 선수여서 졸업하는 학년이 되면 꼭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고3 시절 19세 이하 대표팀에 가면서 처음 연령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광운대 4학년 때는 덴소컵에서 활약했다. 1999년 드래프트 2순위로 대전시티즌에 입단할 수 있었다.
“처음엔 대전에서 경기를 못 뛰었는데, 우연히 기회를 얻었어요. 당시엔 K리그가 끝장 승부였어요. 정규리그와 컵대회에서 90분 내 승부를 못 가리면 바로 승부차기까지 갔습니다. 부산대우와의 대한화재컵이었는데, 당시 김기복 대전 감독님과 눈이 마주치며 연장전에 투입돼 데뷔했어요. 그때 제가 안정환 형의 ‘접기’에 당했고, 그 장면에서 결승골을 허용했어요. 본격 데뷔는 수원삼성 원정이었습니다. 선발 출전했는데 당시 수원 에이스인 서정원 선배님에게 제가 맨투맨 수비를 붙어 선전했어요. 그 다음 부천SK와의 홈 경기 때는 윙포워드로 전진해 뛰었고, 데뷔골을 넣었죠. 그 이후로 프로 생활이 풀렸던 것 같아요.”
1999년 신상우는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31경기에 출전, 5골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2년 더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데뷔 후 3년 간 총 93경기 7골 3도움을 기록했다. 이후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에 입대했는데, 큰 부상을 입으며 축구 인생의 첫 위기를 맞았다.
“날짜도 잊지 못합니다. 2002년 12월 4일 FA컵(현 코리아컵)이었어요. 전북현대와 경기를 했는데 상대 선수 태클이 심하게 들어와서 무릎 십자인대, 연골까지 다 다쳤어요. 군인 신분이라 해외로 수술하러 못 나갔고, 국내 병원만 돌아다니는데 다들 이건 운동을 못하는 수준의 부상이라고 했죠. 2년짜리 진단이 나왔어요. 의병 제대를 했고, 목발 생활만 6개월을 했어요. 회복까지 총 18개월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대전 구단에서 그 기간 동안 치료를 지원하고 저를 기다려 주셨어요. 팀에 있는 동안 열심히 한 덕분인 것 같아요. 2004년에 복귀를 했지만, 몸상태가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여름이 되니까 부상 부위도 괜찮아지면서 15경기를 뛰었죠. 그러다 성남일화 김학범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적을 하게 됐어요. 신경 써서 관리도 해 주셨고, 저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과의 리그컵 경기에 나갔다가 반대편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그래도 전방십자인대만 다친 거라 5개월 만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
양쪽 무릎을 모두 다친 뒤 K리그 공식 기록은 1경기를 더 추가하는 데 그쳤다. 총 3년 간 성남에 있었고, 이후 유스 지도자를 권유 받았지만 현역 선수에 대한 미련으로 인천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자신이 K리그에 입성하며 세웠던 프로 생활의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 목표란 10년 간 뛰고, 100경기 나서고, 한 경기에서 1골 1도움 이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2008년 인천에서 뛰며 마지막 10년차를 채웠다. 이후 2009년 김해시청으로 갔고, 그곳에서 플레잉코치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신상우 감독의 축구 철학은 '합심'이다
칭찬의 리더십, 여자축구 잠재력 깨울 수 있다
2009년부터 시작한 지도자 생활 동안 신상우 감독의 기조는 늘 ‘성실’과 ‘진실’이었다. 2015년 여자축구라는 전환점에서 그에 맞는 변화도 필요했다. 여자축구의 특징에 맞게 더 디테일한 관찰, 정서적인 이해를 통해 선수들을 돕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 개별 성향에 대한 파악도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축구도 큰 틀에서는 남자축구와 같은 방식으로 지도합니다. 하지만 여자축구는 그만의 특징이 여럿 있습니다.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관찰도 중요합니다. 감정적 변화나 컨디션 기복에 변수가 있으니까요.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선수에게 직접 접근하는 건 안 좋아요. 트레이너(AT) 선생님을 통해 선수의 컨디션이나 데이터를 확인합니다. 배려가 필요하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할 부분이 있어요. 감정을 잘못 터치하면 크게 요동쳐요. 이름을 틀리게 부른 적이 있는데, 기분이 상했는지 긴 시간 저를 피하는 선수도 있었죠. 상무 시절에는 팀 훈련 이후 별도로 지도한 선수가 있는데, 막 울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부족한 걸 따로 케어해 준 지도자가 처음이라 벅차서 울었다는 거예요. 보람을 느꼈지만,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 있는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팀을 맡으면 선수 개별 성격 파악에 애를 씁니다. 장난을 치며 접근할 선수, 진지하게 얘기할 선수, 약간의 무관심과 함께 대화할 선수는 누구인지 보죠. 그 다음에 거기 맞는 방식으로 다가가죠. 가장 중요한 건 훈련장에서 최대한 몰입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합니다. 고통보다는 즐거운 분위기 위주로요. 훈련 스케줄을 일주일과 한달 사이클로 주기화 하는 게 여자축구엔 잘 맞아요. 요즘은 선수들이 그 스케줄에 맞춰 준비를 잘 하고요. 여자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훈련 외적인 시간에도 축구에 집중합니다. 스포츠전문지도사 자격을 따기 위한 준비를 틈틈이 하는 선수가 많거든요. 남자선수는 3년 이상 프로 생활을 하면 몇몇 과정이 생략되는데 여자선수는 처음부터 다 통과해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배려를 하니까 관계의 진정성에서 신뢰가 생겨나더라고요.”
신상우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는 스태프 전체의 태도다. 코칭스태프에 지원스태프까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 관찰력이 뛰어난 여자 선수들은 스태프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여기면 덩달아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스태프가 먼저 똘똘 뭉치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파도처럼 올라탄다. 미팅 때는 모든 대화에 솔직하고, 진성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런 것들이 기초가 되면 팀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신상우 감독의 지론이다.
대표팀 취임 당시 신상우 감독은 칭찬을 통해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여자축구에서 지도자로 긴 시간 활동하며 체득한 경험과 통찰로 뱉은 발언이었다. 그는 지도자로서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과 소신을 지켜오려고 애썼다. 과거 한 차례 그런 행동이 결과를 뒤집는 성과를 가져다 준 적이 있지만, 그런 방식이 이룬 성과는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지도자 생활 중 딱 한번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창녕 감독 시절에 세종 스포츠토토를 상대로 전반에만 3실점을 했습니다. 하프타임에 라커룸에 들어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죠.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 선수들이 후반에는 바뀔까?’ 라커룸에 들어가서 작전판을 손바닥으로 정말 세게 쳤어요. 선수들이 놀란 표정이었죠. 그때 제 마음은 그랬던 것 같아요. 지고 이기는 걸 떠나서, 우리가 훈련하면서 보여준 성실함과 간절함이 사라진 게 화가 났습니다. 실력만 보면 당시 스포츠토토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로 컸어요. 다만 할 수 있는 것까지 하지 않으려는 게 화가 난다고 얘기했죠. 그날 우리가 4-3으로 역전해서 이겼어요. 그런데 그 승리가 저는 싫었어요. 끝나고 선수들에게 얘기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행동은 안할거다. 감독이 화를 내서 여러분이 더 뛰는 건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 얘기를 지금까지는 지켜오고 있습니다.”
“저는 긍정의 동기부여를 원합니다. 칭찬했을 때 선수 스스로가 더 노력하고 발산하길 원해요. 창녕 감독 시절 손화연, 홍혜지 두 선수를 우선지명으로 뽑았습니다. 열악한 창단팀에 오고 싶은 선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손화연 선수는 적응이 빨랐고, 홍혜지 선수는 시간이 걸렸어요. 겉돌았죠. 칭찬을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월등하다고 해서 다른 선수와 다르게 대할 순 없다고 얘기했어요. 결국 홍혜지 선수도 잠시 겉돌다가 팀에 헌신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도자가 중심을 잡으면 선수는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잘못한 건 지적해야죠. 그것까지 감쌀 순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칭찬을 하고, 잘 하는 걸 더 부각시킬 수 있게 해 줘야죠. A대표팀은 특히 그렇습니다. 짧은 소집 기간 동안 자신감을 더 주는 칭찬이 맞다고 봅니다.”
신상우 감독은 상대의 마음을 가져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고 얘기했다. 억지로 하기보다는, 마음이 진정으로 통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는 그였다. 경직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목표를 위해 한걸음씩 가기 위해서는, 말로만 원팀이 아닌 행동과 마음으로 통하는 원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지소연, 이영주, 임선주, 김혜리 같은 베테랑들에게 고마워요. 누군가는 그럽니다. 아직도 지소연이냐, 포스트 지소연은 생각 안하느냐. 저는 지소연이란 선수를 대표팀에 와서 처음 만났습니다. 일단 퍼포먼스에서 떨어지는 게 없어요. 정말 대단한 건 리더십입니다. 우리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 중에 잠재력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아직 기존 주축들과는 차이가 큽니다. 지소연이라는 모델을 보고 그 선수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게 더 필요한 시간이에요. 그걸 통해 자연스럽게 쫓아가는 선수가 나타나야 합니다. 지소연은 스타의식보다 대표팀과 여자축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동료들을 이끌고, 안아주는 성품의 선수입니다. 그건 당분간 대체하기 어렵다고 봐요. 지소연이 후배들과 함께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놀랐습니다. 솔선수범해요. 자기 플레이만 신경 쓴다고 하면 저도 지소연의 발탁 여부에 대해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선수입니다.”
대표팀은 최근 새로운 변수도 맞았다. 기존 해외파인 지소연, 이영주, 이금민, 최유리 외에도 신나영, 추효주, 김신지, 김혜리, 홍혜지, 전유경 등이 최근 1년 사이 해외 무대로 진출했다. 선수에 대한 관찰이나 소집에서 과거보다 난도가 올라갔다. 선수 개인과 한국 축구 전체의 성장을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선 고민이 많아진 시기다.
“최대한 중계와 영상 자료를 보며 체크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잘 하고 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직접 소통 중이고요. 소속팀 데이터도 제공 받아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중이죠. 국내 선수들을 더 많이 관찰하려 하고, 스태프들이 각기 흩어져 WK리그 위주로 선수의 성장을 살피고 있습니다. 소집 문제는 A매치 윈도우는 세계 공통이니까 가능한데, 나머지 소집은 공문을 보내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당장 7월 E-1 챔피언십의 경우 중국에서 뛰는 김혜리 선수는 소집이 가능할 텐데 나머지 해외파는 따로 노력을 해야죠.”
“9박 10일의 대표팀 소집 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채워줄 내용도 최선을 다해 준비 중입니다. 한국 여자축구만의 빠른 축구를 하고 싶어요. 여자 축구라는 기준에서 지금보다 더 빠르고, 콤팩트한 축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점을 해도 선수들이 제가 원한 장면을 수행하는 게 많기 때문에 과정을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걸 분석해서 리뷰 자료를 공유했고요. 머리 속에 그걸 담고, 경기장에서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구조화가 필요하다 생각했고요. 젊은 선수들의 활동력, 에너지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한국 여자축구는 대표팀을 중심으로 한 성과가 시스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이 현실을 바꾸는 것은 대표팀 감독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상우 감독은 당장은 대표팀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고 했다. 여자축구가 다시 웃는 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기존의 성과를 재현하고, 새로운 위치에 도달하길 원합니다. 1차 목표는 아시안컵에서 성과를 내 월드컵 본선에 가는 것입니다. 최소 4위 이상의 성적을 내서 본선으로 가길 원합니다. 본선에서는 2015년 이후 16강을 가지 못했습니다. 꼭 16강에 가도록 결과를 내고 싶어요. 언젠가부터 우리 선수들이 지는 상황이 익숙해지고, 리드 상황에서도 실점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1차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월드컵을 통해 중간 평가를 받는데, 그걸 통과하면 올림픽에 도전해야 합니다. 월드컵보다 더 힘든 게 올림픽입니다. 올림픽에 최초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고, 메달권을 목표로 삼아야겠죠.”
“현재 여자축구는 WK리그에 8개 팀이 있지만 선수는 200명이 채 안 됩니다. 초등학교부터 전체 구조를 보면 총 67개팀입니다. 그 좁은 풀에서 대표 선수를 뽑습니다. 현실이 열악하다고 그 탓만 할 순 없습니다. 발품을 팔아 고등학교 팀도 보려고 합니다. 중간층 강화가 필요한데, 현재 KFA에서 23세 이하 대표팀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학생, WK리그의 1, 2년차 선수들을 모아 훈련하고 경기를 한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WK리그 감독님들과 꾸준히 미팅을 통해 소통 중입니다. 여자축구연맹도 회장님 교체 후 변화의 움직임이 있고, KFA와 소통이 잘될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의 최종 목표는 여자축구의 발전입니다. 현장 지도자들의 노고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출산 시대에 딸을 운동 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님들이 적은데, 설득하고 데려와서 육성하는 지도자들의 헌신이 지금 한국 여자축구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더욱 더 노력해서 결과를 가져와야 합니다. 축구인 2세 중 최초로 대표팀 감독이 된 건 영광이지만, 지금은 제 소임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여자축구에 새로운 봄이 올 수 있게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4월호 ‘LEADERSHIP’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서호정
사진=이연수,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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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풋볼뉴스(Football News)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