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3대 트레일 걸어… CNN 선정 세계 50대 대자연의 신비 제1호로 꼽혀
오로라, 연어의 본고장,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의 배경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노르웨이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피오르드이다.
피오르드fjord는 노르웨이의 자연을 완벽한 한 폭의 풍경화로 만들어 준다.
피오르드는 수만 년 동안 빙하가 침식해서 만든 좁고 긴 U자형 골짜기에 바닷물이 깊게 들어와 생긴 만으로 노르웨이와 캐나다 북극해 연안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지형이다.
피오르드 해안선 길이를 이어 놓으면 지구 반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한다.
피오르드와 빙하가 만들어 놓은 노르웨이의 자연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이맥스 영화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자연 속을 두 다리로 걷는 느낌은 어떠할까?
프레이케스톨렌, 쉐락볼튼 그리고 트롤통가는 노르웨이의 3대 트레킹 코스이다.
프레이케스톨렌과 쉐락볼튼은 뤼세피오르드, 트롤통가는 송내 피오르드에 있다.
뤼세 피오르드는 하르당게르, 송네, 예이랑게르와 함께 노르웨이 4대 피오르드이다.
규모는 작지만 태고의 자연이 만든 절경으로 스타방게르의 동쪽에 있다.
송내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의 가장 길고 깊은 피오르드로 곳곳에 절경이 숨어 있다.
‘겨울왕국’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 설교단 같이 생긴 바위
밤사이 비바람은 텐트도 날려버릴 기세였다.
텐트는 마치 고무풍선처럼 휘청거렸다.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어 밤새 텐트 폴대를 붙잡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도 비바람은 수그러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캠핑장을 예정보다 일찍 떠나기로 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모든 것은 완전히 침수되었다.
엄청난 비바람 속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텐트는 제대로 패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팩과 폴대만 빼고 대충 둘둘 말았다.
그나마 차라도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프레이케스톨렌은 CNN이 선정한 세계 50대 대자연의 신비 가운데 제1위로 선정되었고,
2018년 개봉한 ‘미션임파서블 폴아웃’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교회의 설교단같이 생겨서 펄핏 록으로 부르는 바위이다.
직선거리로 약 600m 아래는 바닷물이 철렁이고 정상에는 가로 25m, 세로 25m의 정사각형 모양의 암반이 있다.
1년이면 세계 각국에서 약 2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다.
노르웨이 첫 번째 일정인 프레이케스톨렌 트레킹은 취소하고 다음 예정지인 쉐락볼튼으로 이동하려다가
혹시 날씨가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프레이케스톨렌 주차장까지만 가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비바람은 소강 상태. 산행 안내판에는 왕복 8km, 5시간 소요라고 적혀 있다.
처음 2km까지만 오르막이어서 비가 온다 해도 별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부슬거리며 내리는 비는 지난밤의 비와는 다르게 부드럽게 내 볼을 스쳤다.
바람까지 곁에 머무니 데크 길을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긴장했던 어젯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한껏 분위기 잡고 걸었던 데크 길이 끝나니 북한산 인수봉 오르는 길처럼 바위가 차고 넘쳤다.
도대체 이 바위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상으로 가는 등로에는 빨간색으로 T자를 바위 곳곳에 표시해 놓아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정상 도착. 발아래로 까마득하게 아찔한 바다가 보였다.
프레이케스톨렌 절벽에 비바람이 부딪치는 소리는 태풍 그 이상이었다. 한순간에 물보라 속으로 날아갈 수도 있을 만큼 위험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바위 끝으로 이동했다.
발끝이 찌릿찌릿했다.
정상 암반은 생각보다 넓었다.
암반 위에서 내려다보는 뤼세피오르드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프레이케스톨렌을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비바람이 거세어졌다.
하산을 서둘렀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프레이케스톨렌 정상에 섰다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했다.
쉐락볼튼 Kjeragbolten
절벽 사이에 끼어 있는 달걀바위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벽 사이 좁은 틈에 하늘에서 떨어진 공깃돌 모양의 바위가 박혀 있다.
피오르드에서 바라보며 감탄하는 이들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산 길을 따라 올라가 스릴을 만끽한다.
달걀바위라고도 불리는 쉐락볼튼에 올라 서기도 하고, 심지어는 물구나무서는 사람까지 있다.
뤼세보튼Lysebotn에서 쉐락볼튼 주자장으로 향하는 도로는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물처럼
돌고 돌아서 산 위로 오르는데 중앙선 표시조차 없어서 극도로 조심하며 운전을 했다.
산행 안내판에는 왕복 13km, 5시간 소요라고 쓰여 있다.
첫 시작부터 바위 구간에 쇠줄을 잡아야 하는 곳이 많았다.
북한산 바위 구간처럼 쇠사슬을 붙잡고 오르고 내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가 와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게다가 암릉 구간에는 쇠사슬이 끊어진 부분도 있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몸을 지탱하기도 쉽지 않았다.
프레이케스톨렌에 비하면 오르내림도 심하고 돌길이 대부분이라 난도도 높았다.
구름이 살짝 뒤덮고 있지만 산 사이를 깊숙이 파고 들어와 광활하게 펼쳐진 뤼세피오르드의 비경은 신비로웠다.
한여름의 날씨에도 그늘진 곳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었고 빛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엔 양들이 아침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4km 지나니 능선길은 빗방울이 그치고 시야도 제법 열렸다.
뤼세피오르드의 초록은 물을 머금어서 더욱 상큼하게 다가왔다.
잠시지만 능선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정상에 도착해도 바람은 여전했다.
쉐락볼튼 위에 서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아래쪽의 바다를 보고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었지만 그냥 앞만 주시했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서 바위를 붙잡고 한발 한발 걸어서 달걀바위 위에 올라섰다.
다행히 달걀바위는 빠지지 않고 지탱해 주었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스릴이 아니라 엄숙한 긴장의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고 바위에서 내려올 때는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트롤통가 Troltonga
세계 최고의 피오르드 절경을 조망하는 트롤의 혓바닥
트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도깨비의 이름.
마치 트롤이 기다란 혓바닥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바위가 피오르드 위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약 1,100m 높이의 절벽에 서서 바라보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트롤통가까지의 여정은 왕복 22km, 10~12시간 소요.
짧지 않은 거리이고 시작 1km 정도는 급한 오르막이다.
난도는 중상 이상.
트레킹은 6월 15일에서 10월 20일까지 가능하지만 산에 눈이 녹는 시기에 따라 시작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
구간에 따라 빙설 구간이 있으므로 등산화를 신고 트레킹 폴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방한복, 간단한 식사 준비는 필수이다.
계곡물을 식수로 마실 수 있어서 작은 물병을 준비하면 좋다.
프레이케스톨렌, 쉐락볼튼과는 난이도가 다르므로 일기예보를 확인한 다음 강한 비바람이나 짙은 안개가 예보된 날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짧지 않은 거리를 왕복해야 하므로 오전 8시 이전에는 시작하는 것이 좋다.
조금 여유롭게 트레일을 즐기고 싶다면 트롤통가 주변에서 캠핑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에는 트레킹을 즐기러 온 많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3대 트레일 중에 제일 힘든 코스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날씨도 며칠 만에 화창했다.
모처럼 우비를 입지 않고 걸으니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철로를 걸어 올라가면 왕복 1시간은 줄일 수 있지만 중간에 침목이 빠진 곳들이 있어서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은 폐쇄되었다. 시작부터 너덜길.
온통 질퍽거리는 진흙땅이라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밧줄을 매어 놓은 구간이 있긴 했지만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는 진흙에 빠지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피하기보다는 맞서서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트롤통가 트레킹은 다른 안전장치는 거의 없는데 정확히 1km마다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아마도 자신의 체력을 잘 분배해서 안전하게 트레일을 즐기라는 의미이겠지!! 걷는 길 양 옆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내렸다.
언제든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계곡물을 한 컵 떠서 단숨에 들이켜 마시니 시원한 물줄기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머리끝까지 찌릿했다.
우리나라도 산에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km쯤 걸어가니 반 정도 눈이 녹은 호수가 나타났다.
눈으로 덮인 구간엔 등로 표시조차 없다.
다만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 것이 안전의 지름길이다.
눈을 밟으니 “뽀드득” 소리가 난다.
한여름에 들으니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호수를 지나니 빙하가 녹아 흘러 작은 계곡이 되고 마침내는 송내피오르드와 만났다.
그곳에는 링게달 호수가 있었다.
그림같이 펼쳐지는 하얀 설산과 링게달호수의 파노라마.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곳이 트롤통가임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앞쪽으로 나아가니 피오르드 위로 툭 튀어나온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끝에는 멋진 인생 샷을 위해 스릴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소 위험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는 사람이 더 아찔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트롤통가에 오르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차례가 되려면 최소한 30분, 길게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의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트롤통가에 올라선 이들이 포즈를 취할 때마다 반대편 절벽 위에서는 일행의 사진을 담느라 분주했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그 느낌을 함께했다.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트롤통가 위에 오르니 링게달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발아래의 해수면까지는 거의 1km.
링게달호수와 설산의 어우러짐은 지구상의 모습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세계 최고의 전망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3색의 트레일을 마치다
빙하가 만들어 준 기이한 바위를 찾아서 피오르드를 따라 걸었던 3개의 트레일.
트롤통가를 제외하면 거리도 비교적 짧아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차량을 렌트한 경우에는 한 곳의 트레일을 마친 후에 다음 트레일 들머리로 이동하면 단 3일 만에 3대 트레일을 모두 걸을 수 있다.
매서운 비바람 속에 올라섰던 프레이케스톨렌,
정상이 달걀처럼 동그랗게 생겨서 서기조차 어려웠던 쉐락볼튼, 트롤의 혓바닥처럼 길게 뻗어 나온 트롤통가.
각각의 바위 위에 올라섰을 때의 스릴, 긴장감은 아주 색다른 추억으로 남았다.
북유럽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3색의 트레킹을 즐기면서 바위에 올라 온몸으로 스릴도 느끼고 평생 남을 사진도 남겨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