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사기념관 건립과 앞으로의 과제
박휘규
최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각 지방에서는 적지 않은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이 건립되었거나, 건립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의 변화와 지방자치제의 강화 흐름과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독립운동은 각기 다른 이념과 노선을 가지고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해방이후 남북분단이라는 시련 속에서 남쪽은 민족주의적인 우파계열의 독립운동을 치하하는 데 힘썼다. 때문에 1920년대 독립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던 사회주의계열, 아나키즘계열의 활동은 소수의 연구자에 의해서면 조금씩 알려질 뿐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인식이 점차 무너지고, 근현대사의 올바른 평가를 위한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노선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박열을 비롯한 아나키즘ㆍ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점차 이루어져 나갔다.
한편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지방의회가 강제로 해산되면서,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30년 동안 중단 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구·시·군 의회 선거와 시·도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였다. 지방자치제도의 확립은 여러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해당지역의 선양사업 활성화가 있었다. 지역의 전통적인 정신을 살리고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앞선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지역의 나라사랑 표지석으로 기념관과 박물관 건립 등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박열의사기념관도 이러한 흐름 속에 2012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기념관이 문을 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2001년 박열의사기념사업회가 창립하였는데, 그 결실을 맺기까지 11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사실 근현대에 대한 역사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아나키즘’은 생소한 단어였고, 그 밖에 예산 수급문제 등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2003년부터 진행된 가네코 후미코 묘소이전 사업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였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보여준 역사적 사실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잘 알고 있던 사업회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였다. 특히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야마나시현 가네코후미코연구회에서 보내준 응원과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박열의사기념관인 것이다.
박열의사기념관은 대한민국 문경시에 위치하고 있다. 박열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곳에 선생의 생가와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관을 세웠다. 그리고 옆에 양지바른 곳에는 가네코 후미코가 편안히 쉬고 있다. 지역에서 적지 않은 규모로 세워진 기념관은 2층으로 나누어 700여점의 관련 유물과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고, 교육시설들을 갖추어 놓았다. 1층 전시실에는 박열의 유년시절을 소개하는 패널과 가네코 후미코 특별실, 후세 다츠지 변호사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2층 전시실에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검거 이후의 내용을 담아 전시하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펼친 법정투쟁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모의재판 체험장으로 꾸몄다.
기념관의 건립만으로는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독립운동사만을 담고 있는 전문 기념관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제외하고 총 34개로 파악된다. 그러나 몇몇 기념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억원 미만의 예산과 4명 이하의 근무자, 연 5만 이하의 방문객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전국 기념관 가운데 17개의 기념관은 일상적으로 개방ㆍ운영이 되지 않고 관리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정규 학예인력이 편성된 경우는 6개소로 전체 34개소 대비 17.6%에 지나지 않아 전문 인력의 부재가 큰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열의사기념관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는 올바른 운영과 홍보였다.
1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치고 문을 연 박열의사기념관은 석 달 뒷면 벌써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 되지 않기 위해 교육과 학술 사업에 큰 역점을 두었다. 우선 매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비롯한 아나키즘 독립운동사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학술서와 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정리한 위인전 등의 대중서를 발간하기 위한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교육사업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찾아가는 독립운동사 체험 교실’이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의 벽지에 위치하여 교육의 기회가 풍부하지 못한 학교에 직접 찾아가 역사를 즐겁게 알려주는 것이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독립운동사를 다양한 체험활동과 답사로 흥미를 일으키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기획하였다.
이 밖에 지역뿐 아니라 한국 전체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을 알리기 위한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얼마 전 6월 21일에는 작년에 이어 ‘나라사랑 글짓기ㆍ그림그리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 뿐 아니라 부대행사로 먹거리와 체험 부스를 두어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기념관에서 쉬었다 가는 자리를 꾸몄다. 그리고 전국의 현충시설을 알리는 박람회에서도 기념관의 존재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렇듯 박열의사기념관은 지속적으로 대중들과 호흡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저 덩그러니 앉아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기념관이 아니라 “나라사랑 우리차례”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교육활동, 학술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어려움에도 이렇게 사업들을 진행하는 것은 기념관을 건립한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기념사업회의 노력과 이를 지지해 주는 한국ㆍ일본의 많은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박열의사기념관이 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이 바로 일본과의 교류와 협력 사업들이다. 아직은 계획단계에 있지만, 기념관 주위에 연수시설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교육연수 사업을 펼치려고 한다. 여기에는 국내 연수자 뿐 아니라 한국의 정신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는 일본교포 2~3세들에 대한 교육을 꿈꾸고 있다. 또한 기념관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움직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문경과 야마나시현의 자매결연 추진도 주요한 과제이다. 두 곳은 자연적인 지형도 비슷한 공통점도 있고, 아나키즘 활동 뿐 아니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보여준 아름다운 로맨스는 한ㆍ일 양국의 관계 진전에 큰 열쇠가 될 수 있다. 그 첫 고리가 문경과 야마나시의 문화교류라고 여기는 것이다.
간단하게나마 박열의사기념관의 건립과정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하여 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이어져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보여준 믿음과 그들이 추구하였던 시대적 과제해결이 가지는 의의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열의사기념관
주 소 :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
우편번호 : 745-862
전화번호 : 054-572-33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