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양산을 쓰고 시내를 활보한다면 구경거리가 될까? 아직은 보편화 되지 않아서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혹여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런 내가 요즘 외출 시 제일 먼저 챙기는 물건이 양산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누굴 의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배짱도 생겼다.
백내장 수술을 하고부터 햇살이 강한 날은 외출하기가 부담스럽다. 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가려도 보지만 강한 빛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나도 모르게 찡그리게 되고 쉬 피로해지는 눈으로 인하여 짜증이 난다. 정기적으로 찾는 안과에서도 딱히 묘안이 없으니 외출할 때는 선글라스나 모자를 써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둘 다 평소에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어색하여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뒀다.
그런데 한 번은 아내와 외출할 때 양산을 내가든 적이 있었다. 결혼 초부터 내 양손에는 늘 무거운 짐들로 채워져 있었고 아내는 빈손이었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아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남자가 창피하게”라며 빼앗던 양산 역시 다른 물건들처럼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할 때는 내가 들어준다는 핑계로 같이 쓰는 걸 당연시하지만 나 혼자 외출 시는 달랐다. 나잇살께나 먹은 남자가 저딴 걸 왜 쓰고 다니지?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곱지 않은 시선들도 그렇고, 양산을 쓴 여자들과 눈길이 마주칠 때는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다.
서울로 시집간 딸에게 아내가 통화하면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아빠가 창피스럽다고 흉을 본다. 딸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게 왜 창피하지. 서울은 양산 쓰고 다니는 남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오히려 눈 건강을 위해서 당당하게 쓰고 다니길 권한다. 벌써 유행의 바람이 불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문화 차이인지 몰라도 지역 간의 격차가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남성용 양산이 인기리에 시판 중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여성용과는 달리 색상이 짙고 단색이 많으며 면적이 넓다고 했다. 특히 남성들은 우산 겸용 양산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마도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모 방송국 종합 뉴스 진행자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자기도 출근길에 용기를 내어 시범적으로 양산을 써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시원함에 놀랐다며 이제는 여성들의 전유물에서 탈피해도 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자외선에 취약하고 면역성이 약해서 탈모가 빨리 온다고 한다. 그러니 남자들이 오히려 양산을 더 쓰고 다녀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 전 제주도 여행에서 남자 가이드가 관광버스에 오르내릴 때 항시 손에 우산을 꼭 쥐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직업상 그러는가보다 예사로 생각했었는데 5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비와 햇볕을 동시에 막아줄 수 있는 양산 겸 우산이야말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을 그는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리라.
도로는 지열로 뜨거운데 양산 속은 거짓말처럼 선선함을 느끼기까지 하니 신통하지 않을 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양산의 효능을 나처럼 경험하게 된다면 양산 예찬론 남자가 될 것이다.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양산, 이제는 남자들도 과감하게 쓰고 다닐 것을 권해본다. 이 좋은 걸 왜 진즉 몰랐을까? 참으로 고마운 양산이 아닐 수 없다. 유난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 요즘 젊은 남자들은 화장품이나 액세서리에는 관심을 보여도 아직 양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친 것 같다. 머지않아 한국 남자들도 일본처럼 양산의 편리함과 매력을 알게 된다면 앞 다투어 하나씩 장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산 겸용 양산처럼 비도 막아주고 햇볕도 가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회자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어본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듯 고마운 양산 같은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 해본다. (2018.10.9.)
첫댓글 좋은 내용과 아이디어 입니다. 양우산 겸용우산이 꼭 필요하다 는 생각을 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 여름 찌는듯한 여름에 길을 걷다보면 여자들처럼 양산이 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울 때 자외선을 많이 쬐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남자들도 양산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법전에 남자는 양산을 쓰면 안된다는 조향이 없으니 남자가 양산을 쓴다고 해서 어느 누가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사회통염상 양산은 여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되어서 남자가 양산을 쓰면 남자 답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지요. 저는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릴때는 양산대신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 일한답니다. 엄청시원했습니다. 우신은 조금 무거우니 가벼운 남자 양산이 시판된다면 하나 구입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일상생활의 평범한 이야기를 알기 쉬운 단어로 잘 구성하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백내장 수술 후 짝눈이 되어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찡그리며 사람을 보게되는 일이 잦아지자 궁여지책으로 안쓰던 색안경을쓰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것도 매우 번거롭기만 합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름의 좋은 방법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잔잔한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글의 흐름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금년 여름 폭염 때 부터 양산쓰는 님자 얘기가 많이 나왔고 쓰고 다니는 남자도 봤습니다 . "양산 쓰는 남자" 의 대 선배님이 되셨는거 같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저도 이번 여름에 양산 쓴 남자를 봤습니다. 한번 더 돌아보기는 했지만 너무 더우니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용기있게 잘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 과거기존의 틀에 얽매이는 것보다 가끔 시대에 부응하는 탄력력 사고와 행동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우산겸 양산을 쓰고 나가라고 권하지만 창피하다며 전통부채로 햇빛을 가리고 다닙니다. 요즘은 양산 겸 우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산인지 우산인지 헷갈릴 만큼 예쁜 우산도 많습니다. 저도 안 쪽에는 밝은 바둑무늬, 바깥쪽은 청색인 양산 겸 우산으로 바꾸었습니다. 남자는 비는 피할 수 있지만 햇빛을 피하면 안된다는 관습이나 고정관념이 시대에도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산쓰시는 구름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내년에는 남편도 우산겸 양산을 하나 선물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신하고 시사성 있는 글제를 택하셔서 적절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주신 것 같습니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듯 고마운 양산 같은 삶을 살아가겠다." 고 하신 글의 끝 부분에서 선생님의 깊은 뜻을 짐작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양산도 선글라스도 이젠 필수품입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선생님의 용기가
대단하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
손가방에 넣어 다니는 작은 우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양산 대신에 외출 시 마다 활용해 보았습니다.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이제는 햇볕가리게로 사용하며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당연시 합니다. 양산 사용 적극 권장 홍보대사로 위촉합니다. 좋은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긴 여름이 계속되면 남자도 양산을 많이 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쏟아지는 햇빛을 맨 얼굴로 감당하기란 여간 짜증스러울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유행을 창출하신 선구자 대열에 서신것입니다.
치장용 양산이 아니라 햇빛과 비바람을 동시에 막아주는 양산. 그러한 영산을 쓰고 다니는 남자라면 남에게도 그늘이 되어주고 비바람도 막아주는 멋진 남자일 것입니다. 양상 쓰는 남자가 많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