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팔경도의 의의
송나라 이후로 소상팔경도가 점점 더 많이 그려졌다. 중국에서 소상팔경도가 인기를 얻게 되는 배경도 잠시 보도록 합시다.
송나라 때부터 자연을 가까이하여 살아감으로 마음의 편안을 누리려는 사조가 퍼지고 있었다. 도연명의 시들이 도화선이 되었으리라고 한다. 문인 세계에 이런 분위기를 급속히 퍼트린 사람은 소식을 비롯한 그 일파의 문인들이라고 한다.
그림의 양식도 바뀌어 갔다. 북송 대의 산수화는 거칠고 험준한 산과 울퉁불통하게 솟아오른 바위 절벽이 산을 이루므로, 웅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소식을 위시한 문인들이 즐겨하는 산은 거친 산이 아니다. 산봉은 낮고, 토산의 순한 산봉과 산 줄기는 부드럽게 이어진다. 괴암절벽이 우뚝우뚝 솟은 먼 산 대신에 낮고 습기가 촉촉하게 베여있는 남방의 산수를 선호하였다. 미술사에서는 흔히 동원-거연이 표현해 낸 남방의 산수라고 한다.
이 화가들은 남방의 산수를 정감이 넘치도록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11세기 때(북송 시기이다.) 소동파의 친구이기도 한 문인 송적(宋迪)이 소상팔경도를 그렸을 때 많은 화가들이 영감을 받았다. 낮은 산과 산과 나무가 안개에 가리워지고, 안개가 산의 실체보다, 안개로 덮힌 전경을 더 촉감이 느껴지도록 그렸다. 이것은 산수라기 보다는 화가의 정신세계를 투사한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것은 외계의 사물을 직접 표현하기 보다는 하나의 환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찍이 소동파는 자기가 시를 쓰는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ㅍ현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 논리를 그림에 가져 온 것이다.
스님들이 그린 선화(禪畵)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스님은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려 선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마음 너머에 있는 그 어떤 실재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소상팔경도는 화가가 자기의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