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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수능 도시락 징글 징글하게 여러 번 쌌다는 이야기 계속 씁니다. ^^
어디까지 썼더라? 아, 외고 붙은 이야기까지 썼쥬? ㅎㅎ
얼른 마저 쓰고 자야징, 그리고 내일은 착하게 명절 음식 많이 만들어야쥬. ^^
글 시작 전에 경고 말씀 한 마디, 이 글 되게 길어요.
3편까지 끌고 갈 수 없어서 길게 길게 2편까지 씁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읽기에 지루하시진 않을 거고,
이욍에 쓰는 글이니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너무 너무 감사하겠어요. ^^
아이는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대일외고에 합격하여 어깨에 힘 팍 주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의정부 지역에 그 학교 학생들이 꽤 살아서, 스쿨버스가 집 앞까지 왔기 때문에
고2까지는 그 버스 타고 통학을 했고, 고3 때는 왕복 두 시간의 낭비를 줄여주고자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줬어요.
딸 자식이라서 허술한 셋방에 혼자 재우기가 불안해서,
저는 날마다 퇴근 후엔 살림 좀 돌본 뒤에 아이에게 가서 함께 자고 아침엔 거기서 출근하고..
네? 그렇게 힘들게 출퇴근 하느라 큰고생 했겠다구요?
아니요, 출퇴근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그 무렵 마음 고생에 비하면요.
애가 날이면 날마다 아침에 아무리 두들겨 깨워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편두통 고치려고 MRI 찍고 강남의 명의를 찾아가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낫질 않더군요.
그리고 항상 무슨 말이든 부정적으로만 하고, 사사 건건 대들고...
정릉 언덕배기의 허름한 투룸 안에서, 수시로 모녀 전쟁이 벌어지곤 했어요.
나중에 알고나니 그게 다 우울증 증세였는데, 우울증이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고
너 심리적으로 불안정해보이니 상담 치료를 받자고 하면 왜 미친년 취급하냐며 대들고...
아무튼 그렇게 전쟁 같은 고등학교 생활을 끝내고 치른 첫 수능.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아픈 머리만 감싸쥐고 지냈으니, 기대만큼의 성적은 물론 안 나왔고
가고 싶어하던 고대는 떨어지고 외대는 붙었어요.
그 결과에 아이는 절대 만족 못했죠.
그 학교 졸업생 중에 평균적으로 반 정도가 소위 SKY 대학에 진학하곤 했는데
(그중에도 절반은 재수해서 SKY, 그러니까 해마다 그 학교 고3 현역이 25퍼센트 정도,
재수한 졸업생이 또 25퍼센트 정도 SKY에 진학함, 신기하게 매년 그 비율은 거의 일정했음)
자기도 그 세 대학교 중에 한 곳에는 꼭 가야한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어차피 안 다닐 대학교에 등록금은 왜 내냐고 외대엔 아예 등록도 안 하고 바로 재수 시작.
그렇게 시작한 재수 생활.
입시학원에서는 출신 성분이 좋다고 ㅎㅎ 대환영을 해줬는데,
1년 정신 차리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교에 붙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못 차리더군요. ㅎㅎ
그 때 정신 차렸으면 그렇게 큰 고생을 길게 안 했을 거라고 지금은 후회하지요, 물론.
그래서 재수를 망치고 삼수..
첫 수능 망쳤을 때는, 그 학교 졸업생들이 하도 재수를 많이 하니까
그래 네가 그럴 줄 알았다, 한 번 더 하면 잘하겠지 하면서 크게 슬퍼하지 않았는데
재수에 실패하고 나니 진짜 눈물이 나대요. 내 똑똑한 딸이 왜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에...
그리고 삼수 때엔 학원에도 안 다니겠다며 독학을 했어요.
학원에서의 인간 관계도 너무 피곤하다고.
독학을 하니 외려 더 성적이 오르더군요.
대입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하는 모의 수능에서 전 영역 1등급 나오고 그랬는데
막상 진짜 수능장에 들어가서는 또 죽을 쑤고 나왔으니....
자, 이젠 어쩔 수 없어, 원하는 대학은 못 가도 한 군데는 붙었으니 이젠 거기 가야 해.
그렇게 해서 등록한 대학교가 한국교원대.
거기도 좋은 학교거든요, 교원대도 아무나 갈 수 없는 좋은 학교예요. 지가 원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어, 졸업해서 교사 되면 안정적이고 좋지 뭘.
하지만 아이는 가기 싫다고 다니기 싫다고... 지 부모가 무슨 나쁜 본을 보인 건지 선생 되기 싫대요.
흐이구 진짜 속 터져.. 그래도 어디든 적을 두긴 해야 하니 마지 못해 교원대 다니기 시작했지만
주말이면 집에 와서는 또 눈물 바람, 신세 한탄, 원망, 좌절...
그러니 어쩌겠어요, 1학기 마치고 바로 휴학하고 또 반수 시작.
그렇게 치르게 된 네 번 째 수능, 결과는 또 불만족..
3월 되어 복학 후 한 학기 근근히 다니다 또 반수...
읽으시는 우리 님들도 기가 막히시쥬? 그래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답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애는 또 한 번의 수능을 봤어요.. 그게 2012년의 일이지요.
수능 전날, 아이는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어요. 내일 또 시험을 볼 생각을 하니 딱 죽고 싶다면서...
안경 벗으면 맹인 수준인 아이가 안경을 내던지며 목이 쉬도록 울었어요.
시험 전날 오밤중에 그거 깨졌으면 어쩔 뻔 했나? ㅎㅎ 다행히도 안경알은 무사했고.. 아이는 시험을 봤고..
이번에도 역시 점수는 본인의 기대치에 못 미쳤지만.. 더는 어쩌겠어요..
그래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므로.. 입시 컨설턴트한테 돈까지 내고 상담을 했어요.
메가스터디나 진학사의 유료 모의 지원 사이트에 지원한 바로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점수가 좀 모자랐는데
(매년 원서를 내던 그 고대의 그 학과 ㅎㅎㅎ)
컨설팅을 해준 선생님은, 자기 자식 같으면 그냥 거기 지르겠다고 하더군요. 자기 판단으로는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은 아이는 간이 쪼그라든 상태라서.. 소신 지원은 못하고...
안정권으로 생각되는 서강대의 EU 문화계열과, 이변이 없는 한 떨어지지 않을 듯한 외대의 러어과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가군, 나군을 고르고,
서강대가 만일 안 되면 외대는 반드시 될 터인데 뭐하러 다군까지 고르냐며 선택의 고민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ㅎㅎㅎ
2012년 12월 26일 밤...
이 날짜를 저는 죽도록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 날의 고통은 이미 많이 아물었지만...
그날 저는 늦도록 퇴근을 못하고 학교에서 학기말 성적처리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학교는 그해에 방학이 28일로 늦었거든요.
방학을 앞둔 학교에는 언제나처럼 일더미가 수북했고..
오늘까지 성적 처리를 다 마친 후 내일은 28일이 마감인 서강대와 27일이 마감인 외대 원서접수를 하리라 생각했지요.
매년 아이의 인터넷 원서 접수는 제 몫이었거든요.
수능만 보면 죽어버리겠다며 밤새 아이가 우는 악몽이 매년 반복되었기 때문에..
넋을 놓고 있는 아이를 대신해서 제가 이리 저리 알아보고 원서 넣고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올해도 엄마가 알아서 원서를 접수시키겠거니 생각하고 아이는 신경을 안 썼고,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6시를 넘긴 시각, 교실에서 일을하고 있는 제게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외대 오늘 마감이었대, 난 몰랐네, 엄만 알았어?
세상에! 오늘 마감이었다고? 어찌나 놀랬는지...
확인하려고 입시 사이트를 여는 손이 벌벌 떨리는데.. 과연 마감이 되었더군요..
어쩌지? 이게 무슨 일이람? 왜 나는 마감 날짜를 27일로 기억을 했더란 말인가?
혼란스럽고 당황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저에 비해서 아이는 침착하더군요.
어쩌지? 어쩌지?를 연발하는 저를 안심을 시키며,
엄마 걱정 마. 서강대도 점수가 넉넉하니까 서강대 될 거야, 걱정 마..
그래, 그래, 잘 될 거야..
이렇게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고.. 더 이상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아서 컴을 끄고 교실 정리를 하고..
어두워진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차의 시동을 켜는데... 아이에게서 또 전화가 옵니다.
엄마.. 서강대도 오늘이 마감이었대...
뭐어???? 아니야, 아니야, 서강대는 28일이 마감이야~~ 내가 서강대 홈피에서 확인했어~~~ 아니야~~~
아니야, 엄마.. 내가 지금 스마트 폰으로 확인해봤는데 마감된 거 맞아...
아니라니까? 내가 지금 다시 교실 올라가서 컴 켜고 확인할 거야~~ 아니야~ 28일이야~~~
허겁 지겁 다시 교실로 올라와서 컴을 켜서 서강대 입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마감.. 마감...
아닌데에~~ 내가 분명히 팝업창으로 확인했는데~~~
눈물을 철철 흘리며 다시 팝업창을 띄워보니..
분명히 적혀있는..'서류접수 마감 12월 28일'이라는 공지...
거기 적힌 서류접수 마감은, 원서 접수 마감이 아니고...
원서 외에 부가 서류가 더 필요한 특별 전형 학생들의 서류 제출 마감이었는데...
그걸 원서 접수 마감 공지로 제가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ㅠㅠㅠ
그런 착각을!! 그런 착각을 하다니이!!
그래서.. 그래서... 가려 했던 두 학교에 원서도 못 써보고.. ㅠㅠㅠ
진짜 기가 막히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더랍니다..
아무튼... 그 때 제 심정은 어떻게 말로 다 표현이 안 됩니다..
우리 애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에~~~ 얼마나 상처가 많은데에~~~
어떻게 엄마가 이렇게 큰 실수를 할 수가 있나?
나는 왜 그 중요한 날짜를 착각을 했을까?
난 왜 그랬을까? 우리 애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잘못을 나는 어떻게 만회를 해야 하나?
멘붕..이라는 낱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라는 것을 저는 그날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이가 오히려 침착하더라구요.
저를 염려하더라구요...
전화통을 붙들고,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왜 그랬을까아~~ 하며 목 놓아 우는 저를
아이가 오히려 달래더라구요. 자기는 울지도 않더라구요..
엄마 괜찮아, 엄마 나는 괜찮아, 그게 왜 엄마 잘못이야?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엄마가 하겠거니 다 맡긴 내 잘못이지..
아니야 아니야~~ 엄마 믿고 네가 맡긴 건데에~~ 내가 일을 다 망쳤어어~~ 미안해~~ 미안해~~ 어쩌면 좋아아? ㅠㅠㅠㅠ
제가 하도 우니까 어떻게 운전을 하며 오겠냐고, 남편이 학교로 데리러 오겠다는 것을, 무슨 벼슬 했냐고 그냥 간다 하고..
울며 울며 차를 끌고 간신히 집에 오니...
원서 못 쓴 충격보다 엄마 걱정이 더 큰.. 내 사랑하는 딸, 내 소중한 딸,
그동안의 모진 고생을 통과하며 훌쩍 자란 내 목숨 같은 딸이
엄마, 우리 이제 울지 말고, 아직 원서 마감 안 된 학교 찾아보자, 이럽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26일까지 웬만한 대학은 다 마감이 되었고...
27일이 마감인 학교 중에 가,나,다 군에서 제일 나은 곳이
경희대, 중앙대, 포항의 한동대(아시는 분은 아시는 명품 기독교 대학) 이렇게 세 곳이었어요...
뭐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죠...
그래서 세 학교를 썼고..
뚜껑을 열어보니, 경희대는 언론정보학과 수석합격에 2년 전액 장학금, 한동대는 부분 장학생, 중앙대는 우선 선발,
이렇게 붙었더군요... 세 학교 다 점수가 한참 남다보니.. 이런 일이... ㅠㅠㅠㅠ
중앙대는 전공은 맘에 드나 집에서 다니기에 너무 멀고.. 한동대와 경희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집에서 가깝고 수석이라는 메리트가 있는 경희대를 택했고... 아이는 입학을 했고...
대학을 졸업할 나이에 다시 1학년이 된.. 그것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대학의 신입생이 된 아이.
(경희대 재학생 또는 졸업생을 자녀로 두신 회원님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경희대 충분히 좋은 학교인데, 우리 애의 욕심이 과해서요 ^^)
어찌 맘이 편할 수가 있었을까요..
교원대에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기 싫다 해서 자퇴하고 경희대에 입학은 했으나
학교도 싫고 전공도 싫다면서 허구헌날 눈물바람에,
모든 사람이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누가 말을 붙이면 가슴이 쿵쾅댄다며 살짝 대인기피 증세까지 보였더랬는데...
수석입학으로 확보한 장학금을 유지하려면 직전 학기 평균 A- 이상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장학금까지 뺏기면 진짜 자존심 상해서 학교 못 다닐 것 같다며 어쩔 수 없이 공부를 들이판 결과...
연속적으로 모든 학기에 평균 A-를 넘은 것은 물론 평균 Ao를 상회하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도 차츰 차츰 회복이 되었고..
경희대는 6학기 평균 Ao가 넘으면 조기 졸업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조기 졸업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 4년에 마치는 대학을 3년 만에,
그것도 입학 때처럼 과 수석에 정경대 전체 차석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수석입학, 수석졸업, 조기졸업의 3관왕이 된 것이죠.
그리고 늘 수석을 하다보니 3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았구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수석 타이틀을 내내 달고 다니며 대학 생활을 마친 뒤 도전한 국비유학생 시험.
1차는 서류 전형에서 2배수를 걸러내고,
2차는 수험생 1인 당 30분의 압박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 시험입니다.
경쟁률은 무려 53대 1이었구요.
서류 전형은 대학시절 성적표와 영어 공인성적과 자기 소개서, 학업 계획서 등을 제출하는데
수석 입학 조기 졸업 등등의 성과에다가 3년 내내 A플러스로 도배한 막강한 학점이 일단 큰 무기가 됐고
대학 시절에 과제로 제출하는 글마다 교수님들의 극찬을 받은 글쓰기 실력으로 자기 소개서와 학업 계획서도 잘 써서 냈습니다.
그렇게 1차 전형을 통과하고 2차 면접을 보러 가던 날
분당에 위치한 국립국제교육원까지 제가 연가를 내고 태워다 줬는데
주차된 차 안에서 손이 벌벌 떨리는 불안 증세를 보이더니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들어가서
시험을 마치고는 묻는 말에 술술술술 대답을 잘했다며 밝은 표정으로 나오더군요.
그러더니 합격! 그 수재들과의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합격자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더니 이러더군요.
엄마, 내 옆에 앉은 애는 서울대 나왔고, 내 뒤에 앉은 애는 카이스트 출신이고, 그 옆의 아이는 연대 나왔고...
그래 내 딸아, 네가 그렇게도 목을 매던 소위 SKY 출신들하고 네가 어깨를 나란히 한 거야.
이제 과거의 상처는 잊어도 된다. 이제 글로벌 인재가 되는 일만 남았어... ㅠㅠㅠ
아이는 그렇게 국비유학생이 되어 영국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왔습니다,
그 석사 과정 중에, 날씨가 음습한 런던에서 향수병과 싸우며 고된 학업에 시달리다보니
중학교 때부터 조짐이 보였던 우울 증세가 드디어 표면으로 드러나서 큰 고생을 했어요.
우울증 자가 진단 세 가지를 해봤는데 다 심각 수준으로 나왔다고 하길래 가슴이 철렁...
그깟 학위가 무슨 대수냐고, 나랏돈 받은 거 거액이지만 엄마 아빠가 다 물어낼 테니 어서 돌아오라고 종용을 했지만
큰 돈을 물어내는 불효를 저지를 수도 없고, 중도 포기라는 불명예도 견딜 수 없다며
현지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가며 사투를 벌인 결과,
졸업 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뽑히는 영광 속에 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잘 쉬며 우울증 치료를 잘 받아서 미국으로 박사 과정 떠날 때는 건강한 상태로 갔구요.
그렇게 아이의 학업은 현재 진행형...
하이고 길기도 길다... ㅎㅎ 무슨 수능 여러 번 본 이야기를 벼슬이나 한 것 처럼 길게도 썼네요.
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아이로 인해 눈물 구덩이에 빠져 헤매는 동안,
내 귀한 자식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작은 골방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특히 마지막 입시에서 원서 접수 날짜를 놓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을 때 그 생각은 극에 달했죠.
하나님께서 아이도, 아이와 함께 이 어미도 버리신 듯한...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그 벽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장을 열고! 아이를, 아이와 함께 이 어미를 꺼내주셨습니다.
원하는 학교에는 결국 가질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진학한 학교에서 아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고
그 성과가 바탕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유학 길이 열렸습니다.
아이가 소원대로 큰 고생 없이 명문대에 진학을 했다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무난히 졸업해서 무난한 직장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신 대신 다른쪽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아이의 적성은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고 공부하고 글쓰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로 들어선 지금은 더 확실하게 본인이 그 사실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서 교수가 된다면,
SKY 학연 아니면 발 붙이기가 힘든 한국의 교수보다는 미국 대학 교수가 우리 아이에게 더 적합합니다.
미국의 대학교수는 한국의 교수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급여 등이 상대적으로 좀 못하지만
종신 근무를 할 수 있는 테뉴어를 받게 되면 안정적으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정년 없이 몰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인 유학생들의 거의 백퍼센트가 미국에 남길 원하고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대요.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석사 과정 국비유학과 미국박사 합격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저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도 아이는 대학 입시 과정에서의 상처를 완전히는 극복을 못했습니다.
일리노이대 박사과정 한인 학생들도 거의가 SKY 출신들이라서, 한인 유학생 모임엘 잘 가지 않으려 하고 그래요.
누가 출신 학교를 물어볼까 겁난대요,
아니, 네가 졸업한 학교가 어때서!
그리고 다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그 학교 박사과정에 붙은 건데 네가 왜 기죽니.. 아 가슴 아파....
이젠 제발 좀 극복하면 좋은데... 그 아이들에게 없는 국비유학생 경력도 있건만..
그래도 서서히 이겨내고 있으니, 마침내는 그 마음의 상처로부터도 자유할 것으로 저는 믿고 기도합니다.
아 길다... ㅎㅎㅎ 진짜 지겹게도 긴 글 읽어주신 우리 님들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이제 그만 씁니다. 읽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첫댓글 참으로 부모 노릇하는 것도 힘들군요
그러니까 세분이서 고생을 하셨네요
어머님 따님 그리고 문열어 주시는 하느님,
그런데 우울증 그거 본인은 참 어려운 병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극복한 것은 정말 다행이군요
그노무 대학이 뭔지 정말 엄마도 같은 학생의 고생을
같이 하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어쨌던 서강대 한강넘어 있는거 약간 언덕베기있는거
저도 가봤습니만 그기 보다는 미국이 낫지요
아주아주 잘 되어서 보람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다지 길지않은글인 것 같아요 어느새 다 읽었어요
읽어내려오면서 위에 얘기는 까먹어가면서 그렇게
읽었습니다 이제 자야 하는데 이글 기다리느라고 여태
안자고 있었지요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잘 주무십시요 고생 많으 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려고 안 주무시고 기다리셨다니!
이렇게 감동을 주셔도 되는 겁니까?? ^^
우리 차선배님 정도 많으시고, 마음이 뭉클합니다.
차선배님 차남이 고대 출신이라고 하셨죠?
우리 애가 그 대학 여러 번 떨어졌어요. ㅎㅎㅎ
그래요, 그 학벌 그 타이틀이 뭐라고...
아이가 외고엘 안 가고 일반고에 갔더라면 오히려 수시로 수월하게 명문대 갔을 수도 있어요.
중학교 때 전교 1,2등 했으니 같은 지역 아이들과 같이 진학하는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이 뛰어났을 확률이 높지요.
아무튼 너무도 고생이 많았지만, 지내놓고 보니 다 은혜랍니다.
차선배님 정말 감사해요. 안녕히 편히 주무세요. ^^
@보라수정 그렇습니다
우리 둘째 아들이 고려대 나와서
대기업 간부로 있습니다
성질머리는 제일 나쁜놈이지요
감사 합니다
그동안 모진 마음고생 다이겨내고 좋은 결과가 있었으니 남은 과정도 잘 이겨내고 좋은 성적이 있을 것이고 앞길은 꽃길이리라 믿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긴 글 읽어주시고 축복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
우리 애가 고슴도치 에미 눈에는 인물도 이쁜데 ㅎㅎㅎ
남자친구 만나고 한참 이쁠 20대 초반엔 독서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문제집을 풀었고
촌사랑 선배님 며느님들처럼 시집 가서 아이 낳을 나이에는 타국에서 저렇게 고생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아 갔으니, 좋은 열매 거둘 날 기다리며 기도로 돕습니다.
고마우신 말씀 거듭 감사합니다. ^^
보라수정님
잘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따님이 시험공포증이 있지않나 싶어요.
결론적으로 보면 재수를 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학업성적은 매우 우수하다는 거네요.
부모님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고요.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성공하길 기도합니다.
마지막 수능 보던 날엔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시험장에 들어갔어요.
의사 진단으로는 우울증 더하기 약간의 공황 장애라고 하네요.
만리타국 영국에서 드디어 곪은 상처가 터진 거죠.
하지만 그 우울증을 겪으며 졸업 논문을 쓰던 그 암담한 순간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있던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이 저를 이 위기에서 건져주시면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이의 그러한 회심이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젠 치료 잘 받아서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몰라요 ㅎㅎ
하지만 제 살아온 세월 중 가장 아팠던 시간들의 기록이라, 언젠가는 글로 쭉 풀어내고 싶었어요.
긴 글 읽고 기도해주심 감사합니다! ^^
보라수정님 글 길어도
살아온 이야기니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딸과의 전쟁
그 소리없는 노력의 결과가 지금을
만들었으니 이젠 감사할 일만 남았습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남은 시간은 꽃길만
펼쳐질 듯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결과는 우승.
박수 보내드립니다
우리 고우신 선배님 따뜻하신 말씀, 예쁜 꽃다발 감사합니다. ^^
부러우시긴요, 거듭된 실패의 기록을 쓴 건데요.
선배님의 고우신 마음에 또 한 번 감동합니다.
축복의 말씀 감사드려요! 복된 명절 되시어요. ^^
어제 이어 오늘 1,2편을 다 읽었습니다
저는 딸 아이 둘을 서울로 보내 대학까지 경제적인 뒷바라지만 했는 데
선생님 지난 일을 들어보니 참 엄마도 따님도 다 대단힌 길을 걸어 온 것같습니다
이제는 좋은 결과를 얻겠지요
고진감래라는 말이 생각나는 군요
따님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항상 자상하시고 배려심 깊으신 우경선배님!
긴 글을 다 읽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이렇게 격려와 응원의 말씀 또한 남겨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립니다.
따님들을 서울로 대학을 보내셨다니, 영특하고 공부들을 잘했나 봅니다.
그러게요, 다른 집 애들은 한 번에 혹은 많아야 두 번에 가는 대학을
우리 둘째는 그렇게 길고 모진 고생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이 상처를 받았지만, 아픈 만큼 분명 성숙해졌으니 그 또한 감사입니다.
고진감래, 아직도 고생은 길게도 많게도 남았지만
그 끝에 주어질 달콤한 열매를 기다리며 오늘도 기도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새해 맞으시어요. ^^
힘들었겠어요 보는 엄마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울딸은 D 여대 응용 화학과 나름상위권 인데 고등 학교 들어가고 애아빠랑 소송중 신경을 못써주었어요 1차실패 재수 한참낯추어 D여대. 한번더 재수한다고 한것을 사정사정 해서 말리고 해서 결국 다녔죠 졸업 할때 까지 엄마가 조금만 도와 주어도sky 충분히 갈수 있었다고 할때 항상 미안 하죠 그때부터 미국 갈려고 준비 했다고 하던대요 졸업후 M화장품 연구원 으로400 :1로 들어가고 다니다 과감히 사표 시카고 화장품 회사에 인턴 으로 다니다 너무힘들어서 한국 나올려고하다 미국은 공부 하기 위해서라도 오는나라 덴 이런 고생은 견텨야한다고 버텻대요 난기도 밖에 해준것이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셔서 세게적 기업에연구원 으로 들어가고 직원 평가에서도 자기분야 에서 최고 점수 받았다고 하네요
지금도 뉴져지 온누리 교회 다님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이 받으십니다 수정님 따님도 영광은 눈물어린 엄마의 기도와 주님영광 입니다
뉴저지 온누리교회를 다닌다니, 따님의 신앙이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 애는 혼자서 기도만 하고 교회를 안 가요.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싫대요. 큰 기도 제목입니다.
특히 한인교회는 절대 안 가려드는데, 미국 교회 중에는 신앙의 정체성이 모호한 교회들도 많기 때문에
아이의 교회 선택을 위해 날마다 기도합니다.
우리 애 기숙사 근처 한 교회는, 교회 담벼락에다가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떡! 하니 걸어놨어요.
선배님의 진취적이고 똑똑한 따님의 성공담이 제게도 큰 힘이 됩니다.
만리타국에서 이미 자리잡고 잘 지내는 따님의 승승장구를 바라며 응원합니다.
고마우신 선배님, 복된 새해 맞으시어요. ^^
먼 길을 돌아 오셨습니다
따님의 성취 뒤에는
보라수정님의 공이 반 이상입니다
맹모삼천지교에 못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재발이 잘 되는 병입니다
꾸준히 치료하셔야 합니다
제가 항우울제 마케팅을 했었습니다
Lilly 사의 Prozac이라는 약물
Serotonine 분비와 관계되는 약물입니다
선풍적으로 팔렸던 블록버스터였지요
우울증의 종점이 자살입니다
약물로 꾸준히 치료하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따님의 장도에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긴 글 잘 읽고 갑니다
설 명절 잘 쇠시기 바랍니다
아이구 맹모삼천지교라니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엄마일 뿐이고, 그저 애가 울 때 저는 더 울며 기도했을 뿐입니다.
프로작, 우리 애도 처방 받았던 약이네요. 이름이 눈에 익어요.
우울증의 심각성을 익히 아는 터라, 영국에서 애가 발병했을 때 진짜 걱정이 컸어요.
학위고 뭐고 다 때려치고 돌아오라고 종용했었죠.
하지만 영국에서 치료해준 의사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서 큰 도움을 받았고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받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가까스로 논문을 끝내고 잘 마무리를 하고 왔습니다.
귀국 후 만난 의사도 참 좋은 분이고 처방해준 약이 잘 맞아서 거의 완치 단계인데
그래도 지금도 약을 먹긴 먹습니다.
한 번에 보름 치 밖에는 안 지어주는데, 같은 약을 미국에서도 처방 받아서 먹어요.
미국 의사는 너 이제 환자 아니라고 그만 먹으라고 한다는데
본인이 재발이 무섭다고 아직 약을 못 끊고 있어요.
한국 의사도 이제 거의 나았지만 먹겠다면 먹으라고 합니다.
고마우신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새해 맞으시어요. ^^
두분다 의지의 한국인이십니다. 따님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영국과 미국유학까지 이루어내셨으니 대단하십니다. 그뒤에는 맹모를 능가하는 보라수정님의 눈물겨운 모정이 있어서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맹모께서 지하에서 들으시고 노하실까봐 겁나요 ㅎㅎㅎ
어쩌겠어요, 내 자식이 괴로움에 빠져있는데...
그저 같이 괴로워하면서 어떻게든 다독이려고 애쓴 세월이었어요.
그놈의 공부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 진짜 지칠 법도 하건만
그래도 매 학기 성과가 좋으니까 힘내서 잘하고 있네요.
이번 학기에는 논문 담당 교수님을 정하게 되는데, 자기 제자들을 아주 잘 챙겨주는 좋은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그것도 감사입니다.
항상 힘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
햐 !~~
참으로 대한민국 의 훌륭한 어머니 !!! 보라 수정님 !
참으로 존경합니다 그험하고 힘든 공부를 훌륭한 어머님 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부모된 우리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경청해야 합니다
보라수정 ! 보라수정 ! 빛나는 당신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
선배님!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사실 이 글을 쓰고 마음이 무겁고 좀 슬펐더랬어요.
내가 왜 이리 지난 상처를 까발려서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나
더구나 나만의 상처도 아니고 내 자식의 상처를...
하지만 그린이선배님이 이렇게 공감해주시고 응원을 해주시니
솔직한 고백에 들려오는 메아리가 감사해서 가슴이 찡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더 힘내서 아이 돌볼게요!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어요~` ^^
@보라수정 보라수정 님 !
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공부 입니다 공부 너무 잘하면 나라에 빼앗깁니다 그리고 처가에 빼앗기고요
이제 편히 좋은 시간 되세요
@그린이 선배님 정말 따뜻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
맹모나 사임당
그리고 님과 같은 어머니상이 있기에
훌륭한 자제들의 등장을 기대할수 있는거고
이제 여기까집니다
씨앗은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위로 납니다
씨앗은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위로 난다는 말씀에 담긴 뜻을 헤아려 봅니다.
저는 날마다 기도해요. 제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썩는 밀알이 되겠으니
제가 썩어진 그 토양에서 제 딸들의 삶이 꽃피게 해주십사고요.
제 엄마가 제게 그렇게 하셨듯이요...
인간의 삶이 별 거 아니더라구요. 자식 낳고 키운 뒤 죽는 거더라구요.
유무이님 격려 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새해 맞으시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