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24-30)
하늘나라(천국; 하느님의 다스림)는 '~하는 사람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해설하는 데
있어서 'A는 B와 같은 경우와 유사하다'는 아람어의 관용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J. Jeremias는 말한다.
여기서 '씨'로 번역된 '스페르마'(sperma; seed)는 '어떤 사물을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제라'(zera)의 희랍어 역어로서 식물의 씨앗(창세1,11.12)
뿐만 아니라 후손을 번성케 하는 동물의 정액(레위15,16; 18,21) 이라는 뜻도 있다.
신약성경에서 '스페르마'(sperma)는 43회 쓰였는데,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영적 기업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계약(언약)의 후손'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마태22,24; 루카1,55; 사도3,25; 로마9,8; 갈라3,16; 히브2,16등등).
이 비유에서도 '스페르마'(sperma)는 '좋은'('칼로스'; kalos)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기업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하늘나라(천국)의 자녀들'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마태13,38).
'좋은 씨' 즉 '하늘 나(천국)의 자녀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세상에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번창해 나갈 것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밭'에 해당하는 '토 아그로 아우투'(to agro autou; his field)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 세상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이 세상과 더불어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원천적으로도 현상적으로도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을 돌보시고 가꾸시며 인간을 당신의 섭리
안에 두고 계신다.
한편, 본문의 '그의 원수'에 해당하는 '아우투 호 에크트로스'(autou ho echthros;
his enemy)는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인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 마태13,37)인
예수님의 원수인 '악마'(마귀; 마태13,39)를 가리킨다.
그리고 '가라지'로 번역된 '지자니아'(zizania; tares; weeds)의 원형 '지자니온'
(zizanion)은 성장 기간에는 밀과 닮아 보이지만, 그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독보리를 가리키는 명사이다.
흔히 밀밭에는 낟알이 약간 거무스름할 뿐, 쉽게 분별하기 힘든 독보리들이
성장하게 되는데, 밀 사이에 자라고 있는 독보리들은 그 뿌리가 밀의 뿌리에
엉켜 있다.
그래서 독보리의 낟알이 검은 것을 보고 농부가 그 줄기를 잡아 뽑게 되면,
옆에 있는 밀 줄기까지 따라 뽑히게 된다(마태13,29).
따라서 경험이 많은 농부들은 추수 때까지 그 독보리를 그냥 놓아둔다(마태13,30).
본문에서 '지자니온'(zizanion)은 복수로 되어 있어서 마귀가 독보리를 수없이
많이 뿌렸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비유에서 이 수많은 독보리들은 '악마'(악한 자)의
자녀들을 상징하고 있다(마태13,38).
그런데 마태오 복음 13장 26절에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고 한다.
'열매를 맺을'에 해당하는 '카르폰 에포이에센'(karpon epoiesen)을 직역하면
'그것이 이삭 혹은 열매를 만들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것이 만들다' 즉
'에포이에센'(epoiesen)의 주체는 마태오 복음 13장 24절의 '좋은 씨'이다.
좋은 씨가 그 속에 배태하고 있던 생명으로 말미암아 좋은 이삭을 막 맺기
시작할 때, 가라지는 그 좋은 씨가 맺은 이삭과는 다른 이삭을 맺게 된다.
따라서 농부들은 줄기 끝에 맺혀 있는 이삭을 보고 가라지를 쉽게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마태7,16)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어디서'로 번역된 '포텐'(pothen; from where)은 기원이나 근원을 캐는 부사로서
'어떤 장소로부터'라는 의미와 더불어 '어떤 존재(사람)로 부터?'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마태13,54.56절).
여기서는 곡식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를 가리키므로, 장소보다도 사람의
의미로 쓰였다.
'생기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케이'(echei)는 '가지다','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능동형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현재 ~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좋은 씨가 뿌려진 주인의 밭에서 가라지가 스스로 생겨나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해서 그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선(善)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어떻게 악(惡)이 존재하며,
그 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를 드러낸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
마태오 복음 13장 25절에서 '원수'가 '호 에크트로스'(ho echtros)였는데,
여기 28절에서는 '에크트로스 안트로포스'(echtros anthropos)가 되었는데,
같은 실체인데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크트로스'(echtros)는 '증오받는', '가증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이란
의미의 형용사이며, '안트로포스'(anthropos)는 보편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에프트로스 안트로포스'는 '가증한 사람', '집주인에게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로 '악마'(마귀)를 뜻하는데,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심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선교와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분쇄하려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심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저희가 ~거두다'(뽑다)는 의미로 번역된 '쉴렉소멘'(sylleksomen)의 원형
'쉴레고'(syllego)는 '긁어 모으다'는 의미인데, '그릇에 담다', '열매를 따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가라지의 윗부분을 잡고 '긁어 모어듯이
훑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종들은 영적 통찰력이 부족해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훑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신적 통찰력을 가지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집주인은 전후 모든 사정을 잘
알고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아니다'('ou'; '우'; no)라고 말한다.
마태오 복음 13장 29절의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쉴레곤테스'(syllegontes)의 원형 '쉴레고'(syllego)는 28절에도 쓰인
단어로서 '긁어 모으다', '모으듯이 훑어버리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밀까지 함께 '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에크리조세테'(ekrizosete)의
원형 '에크리조오'(ekrizoo)는 '뿌리째 뽑아버리다'는 뜻이다.
가라지의 뿌리는 주변에 있는 밀의 뿌리와 너무나 얼키설키 엉켜 있어서
가라지의 목을 잡고 그것만 훑는다 해도 밀의 뿌리가 뽑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가라지를 훑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