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2. 성탄 특별 큐티
이사야 8:1 ~ 10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관찰 :
1) 이사야의 아들
- 1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고, 이사야는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서판에 글을 쓰라 명하셨습니다. “마할살랄하스바스”(מַהֵר שָׁלָל חָשׁ בַּז, 마헤르 솰랄 하쉬 바즈)는 직역하면, “신속하게 - 약탈물을 - 급속히 - 노획물을”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약탈과 노획이 급속히 이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앗수르에 의해서 곧 노략을 당하고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시간이 신속하게 다가올 것임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아하스 왕에 말씀하신 것이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정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 2절.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에게 빌붙어 후에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앗수르 제단을 건립하는 데 협력한 자입니다(왕하 16:10-16). 여기서 스가랴는 아하스 왕의 장인을 가리킵니다(왕하 18:1, 2; 대하 29:1). 이들을 “진실한 증인”이라 부르신 것은 그 지명도와 영향력이 커서 백성들에게 사실을 왜곡됨 없이 말해주리라고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 3절.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 앞서 언급한 임마누엘을 이 아이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억지 해석입니다. 이사야의 아내는 처녀가 아니기 때문이며, 이사야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사야가 임마누엘에 대해서, 메시야에 대해서, 고난 받는 종에 대해서 자기 아이와 연관하는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실 임박한 심판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로 이사야의 집안을 사용해서 메시지를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명대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짓게 되었습니다.
- 4절.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 여기서 이사야서를 해석하는 중요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임마누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대로 임박한 심판이 그 아이가 이사야와 그의 아내에 대해서 엄마, 아빠라 부르기 전에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서 점령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2 ~ 3년 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확증해서 알려주시는 메시지입니다.
2) 앗수르 왕의 침략
- 5절.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이사야는 충실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자 했습니다. 이사야 6장의 소명에 대한 반응은 한순간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 드려진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 6절 ~ 7절.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 실로아 물은 기혼 샘물에서 발원하여 예루살렘 도성의 동편을 끼고 흐르는 작고 가느다란 시냇물입니다. 본문에서는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에 대조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은근하고도 비밀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백성들은 그렇게 은근하고 비밀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외면했습니다. 불신앙으로 인해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짓눌려서 천천히 흐르는 이 실로아 물이 자신들에게 참된 구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했습니다. 즉, 유다 백성들이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이 파멸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더 무서운 사건이 되리라는 것을 유다 백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앗수르가 도리어 자신들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되리라는 것을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어리석고 미련하게 된 것입니다.
- 8절.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 앗수르의 약탈은 유다에 흘러 들어와서 유다의 목에까지 미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헤립이 유다에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유다는 거의 망하기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이사야는 유다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장차 오실 주님의 이름이지만, 하나님께서 주리라 하신 것을 믿고, 미래완료시제적 표현으로서 유다에 임할 구원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깨우치시다
- 9절.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다를 쳐서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공격이 무섭게 휘몰아치게 될지라도 그들은 끝내 패망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유대 백성들이 이 메시지를 듣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허리에 띠를 띠고, 그 환란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분명히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 10절.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 아람도, 에브라임도, 앗수르도, 여기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이어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이 유다를 무너뜨리고, 여자의 후손이 끊어지게 하고자 할 것이지만 결국 다 망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실 것임을 전제하고, 그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것이 이사야가 임마누엘을 언급한 것을 해석하는 핵심입니다. 당시에 태어난 어린 아이의 이름으로서의 임마누엘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흐르는 실로아 물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위로와 보호하심이 그 어떤 대적이라도 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이사야의 아들은 임마누엘이 아닙니다. 다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메시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과 성장 과정에서 일어날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것이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하스 왕에게 말하는 임마누엘이 그 시기에 태어나는 실제 아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미래완료시제적 확신에서 태어난 것을 전제로 하는 메시지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 됩니다.
2) 이사야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등장하면서, 자신의 삶이 녹아드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가 하나님의 소명에 반응하고 자신의 온 삶을 드려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기로 결정했고, 그에 순종하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언약은 추후로 미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의 아들을 보교재로 삼아 그 아이가 성장하는 것에 따라 임박할 환란이 예언되고, 궤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함께 하실 것을 언약하시고, 유다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셨습니다.
4) 유다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면면히 보호하심에 대해서 불만족했고, 앗수르의 강력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의 목숨을 턱밑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자 아둔함이 임해서 무엇이 진정 자신들을 지키는 것임을 잊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유다를 괴롭히는 자들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임마누엘 예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700년 후에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하시지만, 그 이전에도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을 떠나면 그렇게 지혜와 명철이 있던 존재도 어리석게 됩니다. 세상적으로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지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미련해 보여도 주님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당장 지금 욕을 먹어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2) 주님의 역사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로 오실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오셨듯이,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자로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기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오늘의 시간을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이 효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