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식당을 꼽으라면 어디가 될까요?
영국의 권위 있는 음식전문지 <더 레스토랑>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음식평론가
560명에게 세계 최고의 식당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세계 50대 레스토랑을 발표했습니다.
50위 안에 든 식당은 파리가 아홉 곳, 런던이 여섯 곳, 뉴욕이 세 곳 등이었지만
정작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영예는 스페인 카탈로니아 북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엘 불리(El Bulli)' 라는 작은 레스토랑이 차지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으로 160킬로미터쯤 떨어진 산자락의 고즈넉한 지중해
연안 마을에 위치한 엘 불리는 전 세계 미식가들이 군침을 삼키는 레스토랑으로
명성이 나 있지만 정작 테이블은 열 개, 하루에 50명 남짓한 손님 만을 받는
작은 레스토랑인데다가 영업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만 합니다.
그래서 이 레스토랑의 예약경쟁률은 자그마치 1000대 1. 웬만한 미식가들도
테이블을 차지하려면 수개월에서 몇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실제로 예약 대기자가 20만 명을 넘어간 해도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엘 불리를 대대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니 자리를 일주일 내에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자 “뉴욕타임스니까 2년만 기다리게 해 주겠다”고 답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만큼 엘 불리는 콧대 높은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엘 불리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뽑힌 까닭은 뭘까요?
바로 셰프 즉 주방장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때문입니다.
엘 불리의 명성은 레스토랑의 규모나 디자인 혹은 전망이나 위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주방장인 페란 아드리아의 가히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요리솜씨 덕분입니다.
엘 불리의 주방장 페란아드리아는 200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선정된 바 있지만 굳이 언론에서 '세계 최고의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그 독창적인 요리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셰프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수천 가지 음식 맛을 확실하게 암기하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모방이 아닌 창조'가 레스토랑의 경영 기조인 엘 불리의 주인 겸 주방장인
페란 아드리아에게 모든 요리는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 입니다.
이 작품들을 창조하기 위해 그는 1년 중 6개월만 엘불리의 문을 열고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식당 문을 닫습니다.
그 6개월 동안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재료와 요리 아이디어를
찾아낸 후 바르셀로나에 있는 자신의 음식연구소에 틀어박혀 엘 불리만의
독특한 맛, 질감, 향, 모양을 새롭게 얻기 위해 실험에 매진합니다.
새로운 한 해의 메뉴를 구성할 코스 요리들을 확정짓기까지 페란 아드리아는
최소한 5000개 이상의 실험적 요리들을 쓰레기통에 처넣습니다.
5000여 건의 실험을 거친 끝에 결정된 200여 개의 요리는 다음해 엘 불리의
새로운 메뉴판을 장식합니다. 그래서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는 단순히 메뉴가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처럼 '컬렉션' 이라 불립니다.
- 정진홍 저, '사람공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