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장례 문화
에트루리아는 무덤 1000개로 '죽은 자의 도시' 만들었죠
입력 : 2024.03.20 03:30 조선일보
장례 문화
▲ 과거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든 공동묘지 유적. 무덤이지만 마치 사람이 사는 것처럼 집과 도로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도시(네크로폴리스)’라고 불려요. /유네스코
최근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사후에 함께 무덤에 들어갈 이들과 생전에 만나 식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행사가 열린다고 NHK 등이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만나서 친해지면 '무덤 친구(하카토모·墓友)'가 된다고 합니다. 일본의 효고현에는 무덤 친구끼리 함께 묻히는 합장묘가 있는데, 처음에 계약금만 내면 이후 무덤을 돌보는 데 돈이 들지 않아 인기가 있대요. 이렇다 보니 '같은 무덤에 누울 이들끼리 생전에 만나 친해지자'며 모임이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고령자가 장례나 무덤 등 사후의 일들을 미리 준비해 두는 '슈카쓰(終活·마무리하는 활동)'도 일본에서 일상화되고 있대요. 최신형 묘지·납골당을 견학하고 법률 전문가가 유언장 작성도 도와주는 '슈카쓰 투어'를 운영하는 상조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의 단면이죠.
이렇게 장례 방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세관뿐만 아니라 시대 상황을 드러내요. 과거 세계에는 어떤 장례 풍속들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무덤 속을 가정집처럼 꾸민 '공동묘지'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650년쯤 이탈리아 중부에서 강성했던 나라예요. 이탈리아에서 로마제국이 나타나기 전에는 가장 강력한 문명이었어요. 초기 로마에 정치·종교·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지요. 에트루리아인들은 그리스 문자를 받아들여 현재 로마 알파벳 문자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문명이 발달하면서 에트루리아인들은 공동묘지를 점차 도시 외곽에 넓고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묘지 규모가 실제 도시만큼 커서, 고대 그리스어가 어원인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로 불렸대요.
에트루리아인들은 도시처럼 바둑판 모양의 도로를 따라 집처럼 만든 무덤을 1000개 넘게 배치했어요.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작은 도시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죠. 길은 광장으로 이어지도록 조성했고, 무덤 내부는 가정집처럼 거실과 방으로 나뉘어요.
에트루리아인들은 죽은 이후에도 도시를 만들어 살아간 거예요. 다양한 벽화와 조각도 무덤 내부에서 발견됐대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연회를 하는 사람들, 동물과 식물 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대 에트루리아의 내세관과 당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죠.
강물이 생전 잘못 씻어준다고 믿어
인도에서 주로 믿는 힌두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반복한다는 '윤회'와 이전 삶이 다음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또 갠지스강은 나쁜 업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큰 힘이 있다고 여기죠. 갠지스강은 그 자체로 여신이면서 힌두교의 대부분 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답니다.
힌두교도들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하는 의식을 반복해서 치르고, 강물은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해요. 특히 죽어서 시신의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면 생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윤회에서 벗어나 모든 고뇌가 사라지는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죽은 이후에는 화장돼 갠지스강과 함께하기를 바라요.
이렇다 보니 갠지스강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죄를 씻기 위해 목욕하고 음식과 꽃을 제물로 바쳐요. 또 화장된 유골의 재가 강물에 뿌려지는데, 갠지스강이 지나는 도시인 바라나시 한 곳에서 화장되는 시신만 매년 4만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화장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가족의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흰 천으로 감싼 다음에 강으로 떠나보내요. 갠지스강을 너무 사랑하는 모습이죠. 그렇지만 갠지스강의 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안타까워요.
옥수수빵 냄새 사라지면 "죽은 자 다녀갔네"
멕시코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톨릭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내세관은 과거 멕시코에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을 따르는 것으로 보여요. 가톨릭 전통인 매장이 아니라 아즈텍식으로 화장을 해요. 또 죽은 이의 영혼이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올 수 있다고 여기죠. 이때를 위해 후손들은 죽은 이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한답니다.
화장하기 전에는 특별한 절차를 거쳐야 해요. 죽은 이에게 입히는 옷은 직업에 따라 달라져요. 군인의 경우에는 '전쟁의 신', 술에 취해 죽은 사람은 '술의 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비의 신'에게로 가기 위한 옷을 입혀요. 죽은 이에게 머리에 물을 뿌리고 무릎을 가슴에 붙이도록 하고, 아즈텍의 전통에 따라 입에 돌을 넣어요. 돌은 인간의 영혼이 머무는 심장을 상징한대요. 과거 왕이나 귀족은 옥을, 평민들은 흑요석 등 비싸지 않은 돌을 입에 넣었대요. 화장을 마친 다음에는 돌, 태어날 때 잘라둔 머리카락, 죽은 뒤 잘라둔 머리카락을 항아리에 함께 넣고 묻어요. 이 절차는 죽은 이후에 다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징하며, 죽음과 탄생이 돌고 돈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요.
매년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 되면 멕시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찾아올 의미 있는 장소에 제단을 만들어요. 제단에는 먼저 고인의 사진을 올리고 가톨릭 성인의 그림, 예쁘게 오린 종이와 꽃 등으로 장식해요. 옥수숫가루로 만든 빵에 고기와 치즈를 넣은 '죽은 자의 빵'도 올려요. 음식에서 맛과 향이 사라지면 죽은 영혼들이 다녀간 것으로 여겼대요. 이후에 사람들은 가족이 묻힌 묘지를 찾아가 청소하고 '죽음의 꽃'이라 불리는 마리골드(marigold)로 장식한 후 촛불을 켜 놓아요.
이런 전통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이후에도 이어졌어요. 스페인이 정복했던 시절 멕시코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11월 1일을 '성인들을 위한 날'로, 2일을 '죽은 신자들의 날'로 따로 기념하다가, 지금은 이 기간을 합하여 '죽은 자들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어요. 멕시코인들은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어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여겨져요. 특히 멕시코의 주식인 옥수수 수확에 감사하는 의미도 있죠. 올해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을 향해 바치는 동양의 추석 문화와도 비슷해 보여요.
▲ 공동묘지 유적에서 발견된 ‘페르세포네의 납치가 묘사된 유골함’. 로마 제국이 들어서기 전 기원전 2세기쯤 에트루리아인들이 그리스 신화 내용을 유골함에 묘사해 놓은 모습이에요. 에트루리아는 뒤이어 이탈리아에서 번성한 로마 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구아르나치에트루리아박물관
▲ 인도 동부 도시 바라나시에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있어요. 매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유골 4만구의 재 가루가 이 근처에 뿌려져요. 이런 장례 문화는 인도인들이 신성한 갠지스강이 죄를 씻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래요. /롯데관광
▲ 2019년 10월 27일(현지 시각) 멕시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 축제를 앞두고 길거리 행진을 벌이는 모습이에요. 매년 11월 초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들이 잠시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고 그들을 환영하는 축제를 벌인답니다. /EPA 연합뉴스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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