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 온 사단법인 글로벌 프랜드(최규택 대표)가 설립 20주년 기념 사업으로 한국과 미국의 선린과 두 나라 국민의 우의에 공을 세운 이들을 기려 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주한 미 8군 초대 사령관으로 한국 수호에 큰 공을 세운 월튼 해리스 워커(1889,12.3~1950.12.23) 대장과 주한미군 군수사령관으로 퇴역한 뒤 전후 재건에 힘을 보탠 리처드 시버리 위트컴(1894.12.27~1982.7.12) 준장의 이름을 따 이르면 내년부터 시상할 예정이다. 두 사람의 공적 사항을 정리한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리처드 S 위트컴 장군이 주한미군 제2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1953년이었다. 캔자스주 토피카 태생으로 와이오밍 대학 학군단(ROTC) 출신으로 육군 소위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2차대전 당시 소령으로 아이슬란드에 있다가 영국, 프랑스에서 복무했던 위트컴 사령관은 그 해 11월 27일 부산 중구 영주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 부산역까지 화마가 내려와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29명의 사상자에다 무려 3만명의 피란민이 집을 잃자 팔을 걷어붙였다.
위트컴 사령관은 피란민들에게 텐트와 먹을 것을 나눠준 것은 물론 학교, 병원, 이주주택, 고아원을 지었다. 상부나 유엔군 사령부 등에 알리지 않고, 군법을 어긴 것이라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다. 그는 당당하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했고,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듬해 준장으로 전역했는데 한국에 남아 미군 대한 원조(AFAK) 기금을 지원받아 160병상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지금의 메리놀 병원이다. 건축비가 모자라자 휘하 장병들에게 월급의 1%씩을 ‘한국사랑기금’에 갹출하자고 호소했다. 부산의 유엔평화기념관엔 “가장행렬을 해서라도 기금을 모으겠다”며 군복 대신 갓과 도포 차림으로 부인과 함께 거리를 누비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메리놀병원뿐만 아니라 성분도병원, 복음병원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금정구 장전동의 군수사령부 기지를 부산대학교 부지로 넘긴 것도 그였다.
전쟁 중에도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 정성으로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부인에게 유언하길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한묘숙 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서 길죽길죽한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한묘숙 여사에게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 쪽에 300달러씩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렇게 북한이 한 여사에게 보낸 유골 중에는 우리 국군의 유해도 여럿 있었다. 하와이를 거쳐 송환된 우리 국군의 유해 대부분은 한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사들인 것들이다. 한 여사는 간첩 누명을 쓰면서도 남편의 유언을 지켰다. 위트컴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여 부부는 이 땅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았다.
위트컴 장군은 고아들을 돌보다가 1982년 서울 용산기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는데 12개 국가 2326명의 참전용사 가운데 유일한 장군으로 잠들어 있다. 영면 40주기인 2022년 11월 8일에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된 점은 뒤늦어도 한참 뒤늦었다. 2017년 1월 1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묘숙 여사도 부군 곁에 합장됐다. 아들 민태정을 남겼다.
한묘숙 여사의 언니는 1993년 작고한 유명한 여류 소설가 한무숙이며, 동생 역시
소설가 한말숙으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부인이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이곳에서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열린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 참전용사 등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 용사들을 향해 1분간 묵념한다. 2007년 캐나다 참전 용사 빈센트 커트니의 제안으로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7개국에서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자 영연방의 현충일인 이날 행사를 열었는데 지금은 22개 한국전쟁 참전국 전체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