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신민형의 종교이야기5

[박창연]

 

보통한국인의 일상속 종교이야기 5.

장례의식과 종교

삶과 죽음, 종교와 생활의 접점-장례식

최고의 포교활동은 장례도우미

사주팔자이외에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인생은 피튀기는 생존경쟁이란 신조로 살았던 그는 자수성가하여 대기업 계열사의 CEO까지 올라갔다. 근검절약, 치열함 등 자신의 생존법칙을 벗어나면 처자식, 심지어는 홀어머니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부인에겐 교회가 질곡같은 생활을 벗어나게 해주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남편 눈치를 보며 교회다니고 헌금을 했지만 그 박해에 비례해 누구보다 열심히 믿었다.

그런 집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노모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룰 때이다. 교회에 열심이었던 부인의 활동만큼 장례식장은 북적였다. 계속되는 교인들의 문상과 초라한 죽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찬송 등 장례식장은 교회의식이 주도했다. 好喪을 호상답게 했다. 침울하고 썰렁했을 죽음을 엄숙하면서도 풍성하게 만들었다.

부인의 교회활동을 못마땅해 했던 그가 장례식을 계기로 확 달라졌다. 한푼의 헌금도 아까워하던 그가 거액의 감사헌금을 냈으며 부인의 새벽기도도 묵인하게 되었다. 은근히 교회활동을 장려하는 행태도 보였다. 자신은 어리석게 종교에 넘어가지 않지만 부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는 ‘통큰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교회 다니는 부인을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에게 종교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유용한 생활의 방편으로 여겨졌다.

억압에 길들여있던 부인은 남편의 배려에 하나님의 은총보다 더 감격할 뿐이다. 가정생활이 신앙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부인은 남편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개의치 않고 ‘凡事’에 감사하며 더욱 열정을 바쳐 하나님께 기도올리고 있다.  

종교보다 생활이 우선이다

장례를 치룬 후에 각 종교의 전도가 많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각 종교의 장례의식이 한 인생의 마무리를 거룩하게, 외롭지 않게 해주니 죽은 영혼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게다가 장례절차를 치루는 산 사람에게 편의까지 제공하니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에게 더 감사한 게 분명하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어떤 곳으로 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산 사람의 영혼은 장례를 주도한 종교가 확실하게 잡아 놓게 된다. 

종교는 일부 신앙인에게 자신보다 우선하며 모든 생활의 중심이다. 특히 예배당, 법당 등 神殿에 들어서 있을 때 ‘나’는 정말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전지전능한 신의 종일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신전을 벗어나 삶속에 뛰어들면 종교보다 생활이 우선이고 세상에 나만큼 귀중한 존재는 없게 된다. 그렇다고 신앙과 일상생활의 이율배반 때문에 깊이 갈등하지 않는다. 

종교보다 생활이 우선이다.

그러나 생활과 종교가 공동보조를 취하는 접점이 있다. 장례식일 것이다.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치러야하는 관혼상제의 통과의례엔 각 종교의 세계관, 신관, 인간관, 생활관 등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은 가장 중요한 의례다. 일생에서 가장 엄숙하고 두렵고 번잡한 마지막 과정인 장례는 죽은 사람과 산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

죽은 사람에겐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영원한 여행이며, 산 사람에겐 이별의 과정과 함께 자신의 삶을 정리, 반성해보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形式과 儀式이 정신을 지배한다

서두에 삶과 죽음, 종교와 생활이 만나는 장례의 예를 들며 한 사람을 다소 모독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러한 속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가을 아내를 길러주신 장모님 장례식을 치루면서 느낀 것이다.

아내의 생일이 낳아주신 장모님 제삿날이다. 그래서 장모님이 피붙이 아내를 떠 맡았고 80평생을 아내만 의지하고 살았다. 아내는 장모님 생전에 장모님의 죽음만큼 장례를 걱정해왔다.

혈육 하나없이 지방에 홀로사는 ‘엄마’의 쓸쓸한 죽음과 장례는 큰 짐이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외롭고 초라할 인생이 지레 가슴아팠다. 쓸쓸하지 않게, 경건하게 보내드려야 살아남은 사람의 위로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기구한 일생을 사신 엄마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조문객 아무도 없이 슬쓸하면 어때?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애들이 전부인 장모님에게 그 전부가 참석해 슬퍼하면 장모님 영혼도 만족하실 거야!”

치매로 인한 3년의 요양원 , 그리고 임종을 앞둔 3개월간의 중환자실 생활로 아내는 심신이 피곤했다. 게다가 내심 장례문제까지 염려하던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행동과 말은 이것뿐이었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10여년을 시골 성당에서 열성으로 봉사하며 지내던 장모님. 10년전 성당묘지를 예약했을 때는 장모와 아내가 모두 편안해 했다. 마지막 가는 장소와 방법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무슨 종교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요양원 입소 이후 끊어진 신앙생활로 인해 죽음을 앞둔 장모님과 성당을 연결시킬 방법이 막막했다. 이제 와서 성당을 찾아가 묘지문제를 해결하고 종부성사, 연도미사, 장례미사까지 부탁하는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끼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리 때문에 쑥스러워 하고 쭈빗거릴 시간이 없었다. ‘무엇이든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 성당에 함께 다녔던 자매를 통해 연령회장과 신부님과 연결이 되었다.

신부님이 시간을 내어 종부성사를 하는 등  모든 장례의식 절차를 천주교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임종, 연도, 장례미사 등 가톨릭의 장엄한 의식이 보잘 것 없는 노인의 삶에 과분하다 싶을 정도였다.

기독교식 영결식보다 그 의식절차가 진지했고 근엄했다. 인간이면 이 정도로 대접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장모님 영혼이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큰 위안이었다. 발인 전날밤엔 사위친구들의 밤샘 술잔치가 벌어졌으니 일생의 마무리를 행복하게 하신 게 분명하다. 게다가 천주님 품안으로 가셨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정결한 성당에서 이뤄진 장례미사는 밤샘 술자리에 이은 축제였다. 장모님 이승세계의 전부였던 아내와 군인 손자, 대학생 손녀가 지켜보았으며 경건하고 엄숙한 발인미사는 인간에 대한 가치 평가를 다시 하게끔 만들었다.

젊은 신부님의 정성스러운  강론은 큰 감동을 주어 눈물을 흘리게끔 했다. 장모님의 일생을 꿰뚫고 가엾은 영혼을 달래 주려는 진정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장엄한 儀式은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허무를 강조하는 사람도 그 분위기에선 하나님에 대한 찬미와 인간예찬을 노래할 수 밖에 없다.   

죽음앞에선 종교도 너그럽다

성당의 장례의식에 감사하고 감격한 나는 서두에 거론한 사람처럼 아내의 교회헌금과 일반적인 장례비용은 아꼈지만 종교의식에 드는 비용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례가 끝난 후에 시골성당을 찾아가 젊은 신부님에게 꼭 술대접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신부가 되는 과정에서 겪은 신앙적 갈등과 고뇌가 인간적,신앙적인 면에서 나보다 훨씬 성숙하게 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존경심도 생겼다.

그러나 내 신앙과는 별개였다. 장모님의 현실적 장례와 이후의 위로절차에 철저히 신부님을 의지하고 활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독교인 아내를 현명하게 활용한다고 자부하는 사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어느 종교나 신이든 죽음앞에선 너그러워 진다. 나같은 사람한테도 관대하다. 신부님은 술잔을 나누며 나의 불신과 오만을 탓하지 않고 종교를 떠나 나와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장례식장 역시 포용을 베푸는 풍경을 연출한다. 기독교식 장례식장이라도 문상객이 넙죽 절하면 만류할 수 없다. 상주한테 절하는데 맞절을 해야지 받고만 일을 수도 없다. 불교식 장례에 기독교인이 향을 피우지 않고 묵념만 한다고 항의할 상주도 없다.

상례에서 종교만 초교파적으로 화해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미워하고 반목했던 산 사람끼리도 영전앞에선 화해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종교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축제의 장이 바로 장례식인 것이다.

(북내비게이터 대표. 미디어강사)   

[김기모]

가까운 이의 죽음을 위로하는 교가.. 죽음을 넘는 복음으로 승화되기를.. ...

[김학준]

마지막 대목의 삶과 죽음이,종교와생활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축제의 장이 바로 장례식장인 것이다라는 글이 퍽이나 인상적이다...민형의 장모님의 장례식을 통해 종교이야기를 이해시켜준 점 고마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