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성지 순례(4) ㅡ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2)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알바 데 또로메스를 뒤로하고 성녀가 태어난 아빌라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았다. 정말 바보 같은 인생이었다.
20세에 아빌라 강생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철저한 영성 생활을 통해 많은 영적
체험을 하였으며, 기도와 침묵의 엄격한 초창기의 수도생활 규율로 회기할 것을 주장
하며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시작하고, 수많은 수도원을 창립한 가톨릭의 개혁가인
테레사 성녀의 삶은 믿음과 영적인 면에서 허한 나를 여전히 초라하게 만들었다.
꾸르실료를 체험한 꾸르실리스따면 뭐하노?
그렇다. 나는 바보다. 그냥 나는 바보라고 인정하고 단조로운 기존의 생활을 되풀이 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더 부끄러워하는 바보가 될 것이리라.
아득한 중세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아빌라에 도착하였다.
아빌라는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87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1,132m의 고지대로 길이
약 2.5Km인 다각형 모양의 성벽(12세기 건축)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빌라 성곽)
아빌라 성곽을 바라보면 사각 모양의 기념비가 보이는데 로마 시대 순교자 처형지로
기둥 안쪽에 십자가가 서 있어 '네기둥십자가'라 부르기도 한다.
성녀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자신의 온 삶을 봉사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가출을 하였는데, 당시 이곳에서 성녀의 삼촌이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아빌라 성곽을 살펴보고, 성녀께서 처음 입회했던 강생 가르멜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강생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한 테레사 성녀는 27년을 수녀생활을 하다가 이곳을
떠나 산 호세(성 요셉) 수도원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다시 이 수녀원에 돌아와
14년 간 원장직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개혁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1571년부터 5년 간 십자가의 성 요한 수사가 당시 수도원 고해 신부로 임명되었는데
아마 그때 많은 가르침을 성녀에게 주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생 가르멜 수도원)
( 테레사 성녀 생가 성당으로 가는 길)
(아빌라 거리 모습)
(테레사 성녀 생가 성당)
테레사 성녀 생가 성당을 둘러보고 나와 광장에 있는 성녀 동상 앞에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순간 내 머리 속엔 그 가난하고 궁핍했지만 철저했던
규율 속의 수도원 생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소로 하늘을
우러르며 두 손으로는 나를 맞아주는 듯한 따뜻한 손길을 보았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시니........."
성녀는 따뜻한 분이셨다. 마음 속 기도를 바치며 포근한 성녀의 사랑을 느꼈다.
기도와 절제를 통한 철저한 영성 생활, 완화된 회규를 고집하는 강한 반발을
극복하고 개혁을 이끌어낸 테레사 성녀는
"기도는 사랑하는 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리고, 무엇을 해야 그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라고 말 하였다.
그가 남긴 한편의 시에서 그 사랑은 더욱 짙게 가슴에 다가 온다.
" 그 무엇에도 너 마음을 설레지 마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 하지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으리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것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믓할 따름이다. "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결혼하신 분, 언제나 가시지 않고 계실 그 님을 위해,
그 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오로지 기도하는 삶을 사시며 인내하시고
만족하셨던 분, 오, 테레사 성녀여!
저를 바보라고 꾸짖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테레사 성녀 생가 성당을 떠나며.....)
( 앞 쪽으로 아빌라 San Pedro 성당이 보인다.)
(비센테 성당. 4세기 순교한 산 비센테와 그의 누이 2명이 잠든 석관이 있다.)
글, 사진 / 최운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