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오동나무 천년을 살아도
신흠(申欽)
오동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곡조를 잃지 않고
매화나무는 일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네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래의 성질 변치 않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가지가 새로이 돋네.
桐千年老恒藏曲(도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어휘풀이]
-柳經(유경) : 버드나무 가지
[역사이야기]
신흠(申欽:1566~162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현헌(玄軒), 상촌(象村)이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인 까닭에 이에 연후되어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 즉위년 이조판서 겸 예문관 홍문관의 대제학에 중용되었다. 같은 해 7월에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로 피난했다. 같은 해 9월 영의정에 오른 후 타계했다.
계축옥사(癸丑獄事)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파 영창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의 정인홍, 이이첨 등이 선조의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을 옹립하고 소북이 역모하였다는 구실로 소북파를 축출하였다. 선조 말엽부터 광해군을 지지하는대북파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 간의 암투가 심각했는데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들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구실로 소북파 영수인 영의정 유영경을 사사하고 소북파를 축출하는 한편 신흠, 박동량 등을 가두었으며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시켰다가 이듬해에 살해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조선 인조 5년(1627)에 후금의 왕자 아민(阿敏)이 인조반정의 부당성을 내세우고 침입하여 일어난 난이다. 아민과 장군 패륵이 명나라를 치기 전에 배후를 위협하고 있는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3만여 군대를 이끌고 침입한 난.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후금군을 피하여 소현세자는 전주로 인조왕은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이를 두고 화전양론(和戰兩論)이 분분하던 중 주화론(主和論)이 채택되어 후금과 평화조약을 맺고 두 나라는 형제국이 되었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