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목소리
엄마! 벗꽃이랑 자목련이 활짝 피었어요. 가로수마다 왕벚꽃이 가지가 휘어지게 매달렸네. 주홍색 철죽도 폈던데, 우리 꽃 보러 나갈까? 엄마는 꽃 소식을 전할 때마다 왠지 심드렁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걸 환영하듯 고국은 몇 년 사이에 꽃 천국이 되어 있었다. 올해는 개나리와 벗꽃, 목련과 철죽이 동시에 피었다고 했다. 긴 겨울옷을 벗은 꽃나무들은 화사했다. 어딜 가도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펼쳐졌고, 꽃을 볼 때마다 집안에만 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사진을 못 보시는 엄마. 지금 한창인 꽃 이름과 모양이라도 알려드리고 싶어 딸은 안달을 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곁벚꽃과 왕벗꽃이 파란 하늘을 떠받들고 있었고 바위틈마다 철쭉으로 붉었다.
고국에만 오면 가속도가 붙은 듯 시간이 날아간다. 엄마는 날짜를 마음속으로 꼽고 계셨는지 도착한지 보름이 지나자, 갈 날이 며칠 남았느냐고 어린아이처럼 매일 물어보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년 만에 만난 엄마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아파트 단지를 두어 바퀴 도는 게 고작일 만큼 행동반경이 좁아져 있었다. 바깥나들이는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음식점에 다녀오시는 게 전부였다.
외식하러 가는 길이었다. 눈이 시리게 만개한 벛꽃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묻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허옇게' 지나간 게 뭐냐고. 나는 엄마의 그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말았다. 황반변성이 심하면 사람이나 사물을 윤곽으로만 파악하는데, 빛의 종류와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볼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이 곱디고운 봄꽃 마저 보실 수 없게 됐구나. 어쩌면 내가 전해주던 바깥세상 꽃 이야기에 마음이 더 무거울 수도 있었겠구나. 창가에 않은 동생이 말없이 차창을 열었다. 봄꽃 향기라도 들어오게 하려는 마음 씀씀이인지. 엄마는 안 보이는 눈으로도 연신 바깥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과거 어느 봄날 풍경을 상상 속에 더듬고 계신 것이었을까. 잘 보이진 않아도 들을 수는 있어서 매일 너랑 전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바람처럼 귓전을 울리며 윙윙거렸다. 다시 창문이 닫히고 차 안에 밀도 높은 침묵이 들어설 때쯤, 운전하던 제부가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바뀠다. 그날 우리는 모두, 웃음 끝이 아팠을 것이다.
떠나려면 닷새 남았다.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안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사가 재미있어서 엄마가 즐겨 듣는다는 노래 <백 세 인생> 이었다. 거실로 나오던 엄마가 선 채로 두 팔을 벌리 더니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웃는 엄마 얼굴이 하회탈을 닮았다. 식사할 때만 틀니를 끼는 업마가 틀니를 빼고 웃으니 영락없는 하회탈이었다. 덩실덩실 팔을 흔들다가 손목을 앞뒤로 꺾을 때는 제대로 배운 춤꾼 같았다. 넘어지실까 봐 불안하면서도 나도 일어나서 같이 흔들었다. 어깨에 흥이 실리자. 어설프지만 팔다리가 처절로 움직였다. 처음으로 춰 본 엄마와의 춤, 이별을 앞둔 모녀의 춤이었다.
엄마 자궁에 있을 때 양수에서 흐느적거리던 몸짓이 이랬을까 2분 남짓한 노래가 끝나자, 96세 등 굽은 노인의 춤도 멈췄다. 더운 피가 돌기 시작한 것처럼 얼굴이 발그레헤진 엄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
"내 나이는, 저승사자가 데리러오면 군소리 말고 따라가라는 나이인가 보다." 노래 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하회탈이 내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알알이 부서져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떠나는 날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울컥거리는 감정을 애써 다잡고 엄마와 나는 오전 시간을 용케 버텼다. 가는 뒷모습이라도 보려고 현관문을 붙들고 서 계신 엄마를 의식했는지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는 쉬지 않고 16층까지 단숨에 올라왔고, 타자마자 어느새 1층 이었다. 차에 짐을 다 싣고 혹시나 하여 올려다본 하늘. 베란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양팔을 휘젓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엄마~! 나는 남편과 함께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며, 까마득한 곳에 있는 엄마를 향해 두 팔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힘껏 흔들었다. 그때 였다. 깊은 창자 끝에서부터 쥐어짜내어 끌어올린 듯한 격앙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잘 가게, 임서바앙~! 잘 가라, 영수야아~!" 가날프던 목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카랑카랑한 소리가 되어 16층 아래까지 내려올 수 있는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위와 딸을, 차에 타기 전에 이름이라도 한 번 더 부르고 싶으셨을까.이별이 서러운 노모의 목소리를 불가사의하게 증폭시킨 것이 강렬한 모성애의 발현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목련꽃 지듯이 후드득 떨어지던 목소리는 나의 눈불보를 기어이 터뜨리고 말았다. 다행히 엄마는 딸의 눈물을 볼 수 없는 높이에 자그마한 조각구를처럼 떠 있었다.
14시간 비행 후, 집에 돌아와 전화기부터 집어 들었다. 긴 비행 시간에 피곤하면서도, 나 살던 익숙한 곳에 돌아왔다는 편안함 때문인지 짐짓 씩씩해진 내 목소리에 비해 엄마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래 잘들 갔구나!"라는 말이 "이제는 정말로 갔구나! 하는 한숨처럼 들렸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주눅이 들어 소리 죽여 가만가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디선가 이명처럼 울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 잘 가게, 임서바앙~! 잘 가라, 영수야아~!" 오랜 세월 다하도록 나에게 달려왔을, 그리고 여전히 다가오고 있을, 엄마. 나의 어머니!
김영수 2007년 (에세이문학>등단. 제30회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 수필집 <시간의 기차 여행), <어느 물고기의 독백), <멀리가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외. 수필선집 <하얀 고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