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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더 큰 성장, 더 큰 도약을 위해!
성당이나 교회, 병원이나 상점 등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진상 고객입니다. 업체에서는 그런 분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특별 관리를 하며, 강력하게 대처합니다.
그들의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자신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나 어려움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이 들 때 그럴 것입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단정지으니 더 악이 받쳐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방식이 소리소리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고, 뒤집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 이면에는 큰 상처나 약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그런 진상고객으로 인해 힘든 순간을 보내셨습니다. 갑작스레 가나안 부인이 등장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바로 뒤를 따라 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자들이 제지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딸이 호되게 마귀에 들려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수시로 자해를 하고 틈만 나면 괴성을 지르고, 발작을 시작하면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도 제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죽어가는 딸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던 나머지 예수님께로 달려온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예수님께서 바로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십니다. 살짝 뜸을 들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얄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다른 곳에서는 청하기도 전에 인간 측의 결핍을 눈여겨보시며, 먼저 다가오셔서 치유의 은총을 베풀던 주님이셨는데, 오늘은 대체 왜 이러실까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더욱 촉구하는 분위기로 여겨집니다. 보십시오. 여인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도에 지나치는 굴욕적인 발언에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또 한 번 크게 자신을 낮춥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여인의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 겸손한 자세,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결국 기적을 불러오게 됩니다.
가끔씩 사람을 키우는 큰 스승님들의 제자 교육방식을 눈여겨봅니다. 때로 칭찬도 필요합니다. 당근과 격려도 필요합니다.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위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더 큰 성장, 더 큰 도약을 위해, 더 큰 완성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보라는 차원에서의 자극, 채찍질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 큰 사람이 되라, 스승인 나를 넘어서라는 의미에서 혹독한 과정도 의도적으로 거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여인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 자극을 주신 것입니다. 더 크게 한걸음 나아가라고 살짝 튕긴 것입니다.
딸의 치유는 사실 그녀가 얻은 것 가운데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더 큰 선물, 더 큰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이 세상에서의 일회적인 치유와 회복뿐이 아니라 영원한 치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 하느님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인의 내면 안에서는 큰 도약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치유자를 넘어 영혼의 치유자란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주인임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의 주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마태오 15,21-28
부스러기라도 감사할 때 빵도 받는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해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예상외로 가나안 여인에게 불친절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십니다.
이에 가나안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자존심도 없나?’란 생각이 드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믿음이 있어야 바라는 대로 됩니다.
믿음도 없이 바라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것의 부스러기라도 바라는 겸손에서 나옵니다.
나를 믿음이 하느님을 믿지 않음이고 하느님을 믿음이 나를 믿지 않음입니다.
‘포크포크’엔 ‘모두가 거부한 아이 입양한 여성. 20년 뒤 놀라운 운명 마주해’란 동영상이 있습니다.
한 여성이 모두가 싫어하는 아이를 입양하게 됩니다.
잉게보르는 수년간 125명의 위탁 아동을
보살펴왔습니다.
조던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잉게보르는 조던을 입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던의 생모는 백인이 흑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자기 아들이 잉게보르에게
입양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흑인 남자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4년이 지나서야 잉게보르는 조던을 입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잉게보르와 조던은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친 모자와 다를 바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뒤, 잉게보르는 어느 날부턴가 복부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통증은 더 심해졌고 의사는 너무 늦어서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신장을 줄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잉게보르가 모든 것을 놓고 주저앉으려는 순간 조던이 어머니 몰래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조던이 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던은 끝까지 주장하였고 의사들이 맞춰본 결과 놀랍게도 조던의 신장은 어머니 것과 정확히 일치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조던 것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미 조던의 마음은 굳어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제게 모든 것을 주셨잖아요.
이제 제가 돌려드릴 때가 됐어요.
이 모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은 그 안에 나에게 꼭 필요한 더 큰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은 생명을 무시하며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청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자수성가한 부자가 걸어 다니다가 길에 떨어진 10원이 있으면 주울까요, 줍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제가 읽고 본 내용들을 종합하면 그들은 반드시 그 돈을 줍습니다.
돈은 하늘이 주시는 것인데, 그 작은 것을 대하는 자세가 큰 것을 대하는 자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하나 같이 적은 돈을 소중히 여기라고 합니다.
천 원짜리도 다리미로 다려서 빳빳한 장지갑에 넣고 다니라고 합니다.
돈도 하나의 인격체라 자기 새끼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가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이 자신의 회사 앞에 있는 거지에게 조금 큰돈을 주었더니 그가 벌떡 일어나서 잔돈을 버리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래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은총도 마찬가집니다.
작은 은총을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큰 은총을 주실 리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받은 것에 항상 감사합시다.
그리고 혹시 작은 은총을 무시해버리지 않는지 살펴봅시다.
저도 더 많은 신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는 하지만, 아직 요양원에 계신 분들을 다 챙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우리 지역 요양원을 조사하여 신자들을 찾아내어 하루 따로 시간을 내서 봉성체를 하려고 합니다.
이미 집에서 봉성체 하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고 약하고 힘없고 소외된 분들 먼저
챙기지 않으면서 더 많은 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은총을 청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작은 것들은 무시하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부스러기부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스러기를 잘 챙기는 우리를 보며 주님께서 큰 빵 덩어리 하나를 주지 않으실 리 없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때 큰 것도 받게 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마태 15,21-28: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오늘 복음은 이방 여인의 믿음을 통해 참된 기도의 자세와 구원의 보편성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가나안 여인은 애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치 스승이 제자의 갈망을 시험하듯이.”(Homilia in Matthaeum 52 재해석) 우리 삶에도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외면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우리를 이끄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26절)라고 하신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드러내는 강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여인은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응답한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7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는 겸손 안에서 승리하였다. 교만은 하늘에서 천사를 끌어 내렸으나, 겸손은 이방 여인을 은총의 자녀로 들어 올렸다.”(Sermo 요약) 겸손은 은총을 끌어들이는 열쇠이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낮아질 때, 그분은 우리를 높여 주신다.(루카 14,11 참조)
예수님은 마침내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28절)라고 말씀하시며 그 딸을 치유해 주신다. 이는 구원이 유다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성 바오로 6세는 이렇게 가르쳤다. “교회는 민족, 인종, 문화의 장벽을 넘어 모든 이에게 열린 보편적 성사이다.”(교회 13항 요약) 오늘 복음은 교회가 모든 이들에게 열린 집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메시지를 준다.
★끈질긴 기도의 모범이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리는 기도의 자세를 말한다.
★타인을 위한 중재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딸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 역시 가족, 사회,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중재해야 한다.
★겸손의 길이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권리가 아니라, 은총을 구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믿음은 하느님께 매달리는 끈질긴 용기이며, 은총은 겸손한 이들의 마음을 통해 흐른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우리에게 침묵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 겸손한 마음, 그리고 구원의 보편성을 가르쳐 준다. 우리도 매 미사 때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이 고백 안에 가나안 여인의 겸손과 백인 대장의 믿음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이 겸손한 믿음을 지닐 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인지 치료 창시자인 심리학자 ‘아론 벡’에 따르면, 한 사람의 삶은 그가 자기 자신, 자신을 둘러싼 세상 그리고 자신의 미래,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 단점에만 집중하고, 세상을 치열한 전쟁터 인식하며, 미래에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부족함을 탓하고 환경 탓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장점을 보려 노력하고, 일상에서 여유를 느끼며, 미래의 행복을 찾는 태도야말로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재능과 환경 탓에 제대로 살 수 없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 주변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계속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침묵에도 그분의 뜻을 찾으면서 흔들리지 않고 해야 할 것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런 여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이곳은 갈릴래아 북서쪽에 위치한 이방인들의 지역입니다. 여기서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15,22)라고 소리 지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방인 여인은 예수님을 유다인의 메시아 칭호인 ‘다윗의 자손’이라고 정확하게 부릅니다.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부르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라면서 인격적으로 모독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아지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은 ‘개’라고 부르면서 경멸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이 말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자녀들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고집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너무나 크고 풍성해서, 그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으로도 자신의 딸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에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며 감탄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바라는 대로 딸이 낫게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걸림돌도 상관없었습니다. 제자들의 가로막음도 장애물이 안 되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 겸손하지만 합리적인 자신감 없이는 성공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노먼 빈센트 필)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8.05.수.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 15,28)
응답이 없으면 돌아서는 믿음은
아직 조건을 붙인 믿음입니다.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서
누구를 만나는가로 바뀌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워
하느님께 머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공이 믿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선한 가치와 사랑을
선택하는 결단이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인격적인 만남과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믿음을 보여주십니다.
가나안 여인은 사랑하기위해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자존심보다
생명을 먼저 선택합니다.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딸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자비를 향하고,
자비는 현실을 이끌어 갑니다.
이와 같이 신앙은 결과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큰 믿음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을 선택합니다.
모든 것이 흔들려도
하느님을 놓지 않는 삶이길
기도드립니다.
큰 믿음은 먼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열고 맡겨드리는
겸손입니다.
겸손을 배우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품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김경진 베드로 신부님 -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일기를 매일 썼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면서
저는 저의 감정과 느낌을 토해내며
스스로 정화하는 노하우를
조금씩 터특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는 거의 매일 묵상 글을 쓰고
영적 일기를 썼습니다.
말씀을 거울삼아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의 바탕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저의 삶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 때
제 삶이 평범한 삶이 아님을 깨달았고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믿음을 성령을 통해
이끌어 주시고 성장시켜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의 보물을 간직한 기쁨으로
지나친 욕심으로 내 것을 먼저 챙기고
사람 마음 다치게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 먼저 챙기고
단순한 삶으로 저를 내려놓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5,21-28)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역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을 때, 그 고장에서 가나안 여자가 나와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었습니다."(마태15,22)
그런데 놀랍게도 자비하신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마태15,23)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15,25) 하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 이후 이어진 가나안 여자와 예수님과 대화는 이렇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15,25)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15,26)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15,27)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누가 이런 믿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참으로 큰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큰 무시와 모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강아지 취급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간절함'과 '확신과 믿음' 때문입니다.
자기 딸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과 예수님께서 자기 딸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과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을 이루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그 장애물들을 넘어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목적을 이룹니다.
'신앙인의 목적'은 '이제와 영원한 부활'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살고, 저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지금 여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저는 그것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우리의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 목적을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이제와 영원한 부활을 향해 나아갑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러 가지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성 프란치스코의 권고 14, 마음의 가난)
(~ 집회51,30)
복음말씀
제1독서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31,1-7
1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3 주님께서 먼 곳에서 와 그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우면 네가 일어서리라.
네가 다시 손북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밭을 만들리니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리라.
6 에프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 ’”
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고, 민족들의 으뜸에게 환성을 올려라.
이렇게 외치며 찬양하여라.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