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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Brexit to Trump, it’s Death by 1,000 Cuts By Jonathon Cook with comments by Ron Apr 7, 2019 - 3:57:02 AM |
https://dissidentvoice.org/2019/04/from-brexit-to-trump-its-death-by-1000-cuts/#more-90813
April 4th, 2019
혹시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기업 미디어가 외로움, 불안 및 불면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기사뿐만 아니라 도피할 수있는 신기술에 몰입할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얼마나 많은 기사를 헌정했는지 알아봤나요?
우리의 관심은 정치적, 문화적, 의학적, 기술적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우리 엘리트들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때, 모든 객관적인 증거들은 그들이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감독하고, 정치적으로 만든 시스템으로 우리 경제를 파산시키고, 우리의 행성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그들은 필사적으로 우리의 에너지를 다시 뺏으려 합니다. 그런 자들을 비난하는 대신, 우리는 스스로를 고치라고 듣는데 - 또는 적어도 오락으로라도 스스로를 진정시키라는 말을 듣는다.
Has anyone else noticed how over the past few years the corporate media has been dedicating ever more space to articles on how to deal with loneliness, anxiety and insomnia, as well as ways to immerse ourselves in escapist new technology?
Our attention is being diverted away from the political to the cultural, medical and technical. When our elites have no solutions to the most pressing problems of the day, when all the objective evidence indicates that the political system they oversee and have designed to enrich themselves is driving us over a cliff edge, with our economies going bankrupt and our planet dying, they desperately need to rechannel our energies. Instead of blaming them, we are told to fix ourselves - or at least to pacify ourselves with entertainment.
우리가 분명히 스스로를 고칠 필요가 있을 때 그것은 물론 훨씬 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보다 더 불안하고, 고립되어있고, 혼란스러운데, 그렇게 된 아주 정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의 83 %가 유럽 연합 (EU)을 떠나는 믿을만한 방법을 찾기위한 티격태격 투쟁인 브렉시트 (Brexit) 혼란의 소식을 듣느라 기운이 소진됐다. 국민의 3 분의 2는 이 슬로우 모션으로 벌어진 소동때문에 사람들이 남몰래 불안해지고, 또 불안증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틀리지 않습니다.
That, of course, all sounds a lot more plausible when we clearly do need to fix ourselves. We are more anxious, more isolated, more confused than ever before. And for very good reason.
A new poll finds that 83 per cent of Britons are exhausted by hearing blow-by-blow news of Brexit, Britain's interminable struggle to find a credible way to leave the European Union. Two-thirds believe that the anxiety provoked by this slow-motion plunge into the unknown is bad for people's - presumably including their own - mental health. They are not wrong.
무거운 정서적인 요금
Heavy emotional toll
한편 도널드 트럼프가 러시아와 공모하여 2016 대선을 훔친 것으로 입증하고자, 2년이 넘도록 돌렸던 음모론으로써 러시아 게이트 (Russiagate)는 미국 정치계의 모든 산소를 소진시켰다. 그 기간동안에 전문가들이 거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미국 여론에 대한 조사가 트럼프에 대한 이같은 강력하고도 불가항력적인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미국인들 사이에서 유사한 고뇌를 발견할 것이라고 의심한다. 트럼프에 대한 소위 말하는 저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미국인 친구는 자신의 눈을 감고 그 혼란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해줍니다. 그것은 분명히 정신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Meanwhile, Russiagate - the establishment-promoted conspiracy theory that Donald Trump stole the 2016 presidential election by colluding with Russia - has similarly sucked out all oxygen from the US political arena. For more than two years pundits there have spoken and thought about little else.
I suspect surveys of US public opinion would find a similar ennui among most Americans about these wildly improbable, and now disproven, claims against Trump. American friends who consider themselves part of the so-called #resistance to Trump tell me they wish they could just shut their eyes and the whole mess go away. It's clearly not helping their mental health either.
러시아게이트 Russiagate 음모론의 TV 치어리더인 레이첼 매도우 Rachel Maddow가 Mueller의 수사에 대해서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공중파에서 발표해야 했을때 분명히 말했던 것처럼, 이 기득권층의 설화를 앞서서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조차 심한 감정과 심령의 통행료가 요구되었고 2년 동안 그들은 멍청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로버트 뮬러 (Robert Mueller)는 러시아 담합의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Maddow는 그녀의 기둥이 되는 바로 그 곳에서 무시당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흔적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그녀의 조롱하는 듯한 얼굴의 곡선과 그녀의 조증적인 웃음을 지켜보려고 조급해 했다. 그녀는 주요 어떤 TV 쇼 호스트보다 치료가 필요한 여성이었습니다.
A heavy emotional and psychic toll is being inflicted even on those fronting these establishment narratives, as was evident when Rachel Maddow, TV cheerleader-in-chief for the Russiagate conspiracy theory, had to announce on air that the Mueller investigation she had so excitedly played up for two years was a dud. Robert Mueller had found zero evidence of collusion.
Maddow's pained facial contortions, her manic laughter as she tried to prop up the last vestiges of a narrative that had just been discredited by the very establishment she is a key pillar of was distressing to watch. Here was a woman who looked more in need of therapy than a major TV show.
죽을 정도로 우리를 지루하게 한 것 Boring us to death
그러나 이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어서 아마도 대중적 인지부조화의 사례 말고는 달리 봐줄 수가 없다. 어쩌면 정서적, 정신적, 영적 붕괴가 실제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목표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고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 적으로 우리는 붙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실패했고 - 그리고 약간 그런게 아니라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실패한 것이다. 행성을 파삭 파삭하게 태우거나 세계 인구를 지원하는 자원이 고갈될 때까지 세계 인구를 키우는 결과를 전제로 하는 이데올로기는 모두 착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속임수입니다. 그러니 사실상 정신이상입니다.
But maybe it's too simple to see this as nothing more than an example of mass cognitive dissonance. Maybe the emotional, mental and spiritual breakdown is actually the point. Maybe the goal is to frustrate and bore us quite literally to death.
Politically and ideologically we are stuck. Capitalism has failed - and not marginally but ignominiously. Any ideology premised on an outcome that burns the planet to a crisp, or grows the world's population until the resources to support it are exhausted, or both, is not only mistaken but dangerously deluded. Insanity, in fact.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모두 그 마법에 매달려 왔습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와 같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품고, 우리 정부는 공공기반 시설과 공동선을 팔아서 우리를 외딴 섬같은 존재로 삼았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영국의 대처의 인두세 Thatcher 's poll tax에 맞서 광부들을 지원했던 우리조차도 그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수용했습니다.
우리는 저명한 지식인들이 역사가 끝났으며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TV에서 "진지한" 논쟁을 지켜봤습니다. 우리는 열반에 빠지는 여행을 했다. 심지어 우리 중 일부가 그러한 논쟁이 잘못되었거나 너무 단순한 것인지 궁금해했을 때조차도 그 논쟁이 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비웃음으로 거의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But for decades we have all been caught up in that spell. Think of the Thatcher and Reagan years, of how most of us lapped up the idea that there was no such thing as society, that each of us was an island as our governments sold off public infrastructure and the common good. And at some level we all absorbed those mantras, even those of us in the UK who railed against Thatcher's poll tax and supported the miners.
We all watched "serious" debates on TV in which eminent intellectuals told us that history had ended and that free-market capitalism had triumphed. We were on our journey to nirvana. Even when some of us wondered whether such arguments might be wrong or too simplistic, we rarely greeted them with the derision they so obviously deserved.
이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안에서 배양된 광기였던 망상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없는 우리를 착취하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를 깊이깊이 흡수해 왔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것에서 해방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Now the delusion, the insanity cultivated in us over those past decades, is coming home to roost. We have so deeply imbibed the ideology of those who exploit us that we cannot imagine - we even fear - the possibility of being liberated from it.
싸구려 보석에 정신이 팔린다 Distracted by baubles
권력과 부를 현재 시스템에서 훑어먹은 지배 엘리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허용하지 않으며, 또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나도록 변화시키는 과정에는 절대 관심이 없다. 그들은 더 이상 확정적인 반란에 자금을 대주거나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해외 조세 피난처를 폐쇄하기보다는 기득권 매체나 입법부 에코 챔버 (앵무새 정치인) 에서 급진적이거나 실험적인 사고를 할 수있는 기반을 더이상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처와 레이건 이전의 질서로 우리를 복귀시키려는 노력조차도 영국의 제레미 코빈 (Jeremy Corbyn)이나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미국 의회의 반란세력 국회의원 등 엘리트들이 적극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The elites whose power and wealth derives from the current system have absolutely no interest in changing course, in allowing new ideas, new paradigms to emerge. They are no more likely to provide a platform for radical or experimental thinking either in the establishment media or in our legislative echo-chambers than they are to fund Extinction Rebellion or shut down the offshore tax havens where they hoard their gargantuan wealth.
Even efforts to return us to the order that predated Thatcher and Reagan - one that placed some value in the collective - is being aggressively snuffed out by our elites, whether it's Jeremy Corbyn in the UK or Bernie Sanders and the Congress's insurgency lawmakers in the US.
자본주의의 자멸 - 내부 모순의 징조, 즉 자원이 유한한 행성에서 끝없는 경제 성장의 필요성은 당분간 분명해졌다. 일단 우리는 싸구려 보석으로 몰입당했는데, 새로운 iPhones 및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그리고 정치로 재미 가득한 광경에 빠져서 산만해졌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Trump)와 영국의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은 정치 프로세스의 논리적 종말점이 될 수 있습니다.
The self-destruction of capitalism - the signs of its internal contradictions, its need for endless economic growth on a resource-finite planet - has been evident for some time. Once we could be distracted with baubles, with new iPhones and home entertainment systems, and by politics as fun-filled spectacle. Trump in the US and Boris Johnson in the UK may be the logical endpoints of that political process.
정치적 마비 Political paralysis
이제 우리는 정치 구경거리에서부터 정치적 오락에 이르기까지 천 번의 상처를 입었기에 죽음을 향해 끌려가고 있습니다.
영국은 EU를 떠날 수는 없지만, 또 머물 수도 없다. 영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뒤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마비되어 갇혀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결정은 사회적 계약의 구조를 갈가리 찢어지게 합니다.
Brexit은 우리 시대의 비유를 제공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인종으로서의 우리의 곤경의 미니어처입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우리와 대부분의 삶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계급은 우주나 자원이 그들이 만든 혼란에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동안 세뇌된 우리는 현재의 자살로 향한 코스로부터 적절한 탈출을 하는것조차 두려워합니다.
Now we are moving from spectacle, from politics as entertainment, to politics as death by a thousand cuts.
Britain cannot leave the EU, but also it cannot stay. The UK cannot move forward, and it has no possibility to move back. It is trapped, politically paralysed. A decision either way will tear the fabric of the social contract to shreds.
Does Brexit not offer us a parable for our times? It is in miniature our predicament as a species. We cannot move forward with capitalism because it is killing us and most life on the planet, but the capitalist class will not allow us the space or resources to find another way out of the mess they created. And brainwashed for so long, we fear even a modest diversion from our current suicidal path.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인 운명이나 집단적 운명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것처럼 펼쳐지는 TV를 목표로 합니다. 우리는 심연을 지켜보았습니다. 지루함과 삐걱 거리는 불안의 혼합은 우리 자신의 절박한 죽음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반응이었습니다.
외롭고 불안하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퀴즈로 스스로를 치료하며, 우리는 코빈의 반유대주의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부여하는 미국의 전범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뒤집는 기득권들의 그림자 술책으로 자신을 잠시 방해합니다.
So we aimlessly watch TV unfold as if we have no power over either our individual fates or our collective fate. We stare into the abyss, a mixture of boredom and creeping anxiety our only responses to our own imminent demise.
We feel lonely, anxious and confused. We medicate ourselves with trivia, with entertainment, and we allow ourselves to be briefly distracted with establishment shadow plays that invert reality, from Corbyn's supposed anti-semitism to US war criminals assigning themselves the right to pick Venezuela's president.
지루할 시간이 없음 No time for boredom
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 수십 년 전에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잠시동안 집단적 광기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망상에 빠져들고,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것은 희망의 표시입니다.
트럼프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 집단 질병의 증상입니다.
마찬가지로, Brexit은 실제로 세계의 종말이 아니며, 더 깊은 질문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웅장한 변혁 활동입니다. 영국이 유럽에 머물러 있든 아니면 떠나든, 관계없이 자본주의는 여전히 우리를 멸종의 대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Brexit은 심지어 우리가 그러한 종말을 얼마나 빨리 당하는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We have been on this path to collective insanity for a while, as the renowned psychologist Erich Fromm warned decades ago. It is at least a sign of hope that it is finally dawning on many of us that we are immersed in delusion, that we are mentally, emotionally and spiritually at a dead end.
That requires understanding that Trump isn't the enemy, he is a symptom of our collective illness.
Similarly, Brexit isn't really the end of the world, it is grand displacement activity - our effort to distract ourselves from much deeper questions. Whether the UK stays in Europe or leaves, capitalism will still be herding us towards extinction. Brexit is unlikely even to affect how quickly we bring about such end-times.
우리가 피할 수 없었던 더 깊은 질문들은 우리가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가지기를 희망하는지를 물어보는데, 우리 우주의 작은 구석에 우리가 존재할 수있는 고유한 행성에서 생존을 이끌어 내도록 강요합니다. 우리의 진화론적 지류 (branch-line)를 유지하는 것은 인류의 최고 성취에 달려있다.
우리가 이 문제에 직면할 때만 정치 혼란과 개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심연의 가장자리에 서서 지루함을 위한 시간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깊은 반성과 급속한 개인적 및 집단적 성장을 위한 시간입니다.
The deeper questions we have been evading force us to address who we are as individuals and as a society, and whether we wish to have a future, to belong to a planet that possibly uniquely in our small corner of the universe can sustain higher life forms and the supreme achievement of our evolutionary branch-line, human beings.
Only in facing those questions can we rid ourselves of our political confusion and our individual anxiety. Standing on the edge of an abyss should be no time for boredom. It is time for deep reflection, and rapid personal and collective growth.
[Colour fonts, bolding and comments in square brackets added.].
Jonathan Cook, based in Nazareth, Israel is a winner of the Martha Gellhorn Special Prize for Journalism. His latest books are Israel and the Clash of Civilisations: Iraq, Iran and the Plan to Remake the Middle East(Pluto Press) and Disappearing Palestine: Israel's Experiments in Human Despair (Zed Books). Read other articles by Jonathan, or visit Jonathan's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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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가 전하는 세라핀 전문 (빛의 시대 번역)|미명 속에 전해진 빛의소식2011.12.09 08:04:16 보기 위해 파도들의 높이와 강도를 측정하는 대신 말인데, 이런 종류의 행동이 당신을 하나의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흔들고, 따라서 당신이 희망과 절망의 파도를 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눈을 파도들의 수준을 넘어 위로 집중하세요, 그리고 파도의 강도의 유동성에 상관없이, 수평선 위의 땅이 점점 더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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