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14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개역개정판)
잠언 11:14 훌륭한 지도자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여도 충언자가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에,
한 레위 남자가 에브라임의 산골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그는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데려왔다. (삿 19:1)
왜 첩을 데리고 살았을까?
욕망 때문이었을까?
후손 때문이었을까?
어찌되었건 간에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산다?
이상한 시대였음에 틀림없다.
그 시대는 그랬다...
레위인이 그랬으니
일반인들은 뭐..
어찌되었건간에
그 첩이 행음함으로 친정에 가있었고
(어떤 학자들은 화가 나서 친정에 갔다고 하던데..)
좌우지간 첩을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친정 방문..
장인 어른의 지나친(?) 환대..
하루만 더 있다 가라
하루만 더 있다 가라
하루만 더..
하루만..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다.
왜 사위를 계속 데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딸 때문이 아니었을지..
친정으로 온 딸을 데리고 있었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 딸과 사위와 그 종까지 데리고 있었다.
사위가 뭐가 예뻤을까?
딸 때문이었겠지.
"저 도둑놈이 내 딸을 첩으로 삼고, 또 친정까지 오게 만들었네.."
자식만한 애물단지가 있을까?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와 같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다.
딸과 사위를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뭐 사위랑 코드가 맞았을 수도 있지만
그러고보니
10년전인 2016년
한때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던 김수현 작가를 동원하여
수십억원을 들였으나 장렬히 폭망한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에서도
사위가 장인이고 며느리고
같이 살면서
무슨 일만 있으면 부르던데
2000년대 초반에나 상식이던 일들은
2010년대에도 비상식이 되어있었으니
그때부터 이미 드라마 시청률이라는 것이 풍선 바람빠지듯 빠지고 있었던 것을 감안해도
그 앞의 수많은 작품들에 비하며 초라한 수치였고
그 세계관도 이미 철지난 것들이 되어있었다.
그 가족주의...
야만의 시대에도
오늘날의 야만적 시대상황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분명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보호 때문에
딸은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삼손의 아내였던 블레셋 여인은
아버지 집을 구하려고 삼손에게 매달려
수수께끼 정답을 알아냄으로써 그 아버지와 온 집을 일단 살렸으나
정작 그 아버지는 삼손의 아내를 블레셋 사람에게 주는 어리석은 결정을 함으로써
딸과 본인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지략도 지혜도 간구함도 없으면
그 결말은 거의 대부분 비극적이다.
레위인이야말로 아쉬운 선택을 했다.
첩을 왜 들였는지
떠난 첩을 왜 다시 데리러 갔는지
왜 며칠씩 붙잡혀 있었는지
왜 밤늦게 떠났는지
하룻밤만 더 자고 아침에만 갔었어도..
기브아 사람들의 영적 상황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첩들인거야 시대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행동과 결정들은
전혀 전략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첩의 시체를 열두덩이로 나눠 각 지파에 보낸 일은
아무런 유익도 없이
분노만 자아내고
내전으로 이어졌다.
내가 좋으면(또는 내가 좋아야)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이런 이야기 하는 분들도 있던데
모든 것이 기분에 따라 움직였는지
레위인이 그 첩에 대한 태도는
사랑이나 애처로움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그 어떤 애도와 추모의 기록도 없다.
사사기 19장 (개역개정판)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소돔과 고모라를 닮았던
베냐민 지파의 동성 성폭행 미수범들에게
자기의 첩을 내어주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라 집에 가자고 냉담하게 말했던 이 레위인(간)은
첩을 잃은 것에
슬퍼했다기보다는
분노했던 것 같다.
그 양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이나
기드온과 입다의 전쟁 당시 호출에는 폼만 잡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지파라고 싸고 돌았던 베냐민을 응징하기 위해 400,000명이나 모였다.
애통이 아니라
분노..
주로 타인의 잘못을 대할 때의 감정이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분노한 적이 많다고
남들에게도 잘 분노했던
그때 그 감정
보통 그런 상태에선
지략이나 전략을 생각하기 어렵다.
베냐민 지파는?
무슨 이유로 그 악한 범죄자들을 보호했는지 모를 일이다.
공의와 정의는 없었고
가족주의? 온정주의만 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싸움을 강행한다는 것은 전혀 지략적이지 못하다.
11:1의 싸움이다.
27,000 vs 400,000
명분도 11지파에게 있다.
왼손잡이들의 물맷돌을 믿었는지
이 전쟁을 강행한다.
베냐민이 여호와께 물었다는 기록은 없다.
11지파가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야 합니까?"라고 여쭈었다.
거기서부터 잘못이다.
전쟁은 이미 당연한 일로 정해 놓았으니
누가 올라가서 싸울건지나 이야기해달라는거다.
세상에
그렇게 잘못구했는데
응답은 있었다.
삿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응답은 있었는데 젔다.
발람 선지자가
이스라엘 저주하러 가도 되냐고 계속 구했을 때도
OK 사인이 있었지만
그게 결국 자신을 죽음의 자리로 이끌었다.
모략이라고 발락에게 가르쳐 준게
이방 여인들을 데려오라는..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나 발람이나
이미 하나님 뜻보다는
자신 소견의 옳은대로 일을 진행한다.
이것이 전략적 사고를 막는다.
두 번째에는 "다시 가서 싸워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는때 또 졌다.
삿 20: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지략도 전략도 없이
두 번의 패배와 눈물, 금식과 제사를 거친 뒤에야
드디어 바로 묻는다.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합니까?"
삿 20: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전쟁의 방법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하나님께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승리..
그러나
또 지략은 없었다.
베냐민도 마찬가지..
거짓 패배 후 유인..
여호수아 시절 가나안 전쟁 당시에 여러번 경험했을텐데..
또 이런 짓을 하고 흥분해서 뛰쳐나가다니..
지략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11지파는
군호도 짜고 나름 지략도 있었으나
그 이후의 흥분을 또 제어하지 못했다.
불량배만 처단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파 자체를 멸절할 뻔..
삿 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지략은커녕
생각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분노에 휩싸이면 그렇게 되기 쉽다.
삿 21:2~3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세번째 싸움 직전에도 금식하고 울며 기도해서 응답도 받았는데
이런 짓을 하고 말다니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그리고 또 전략이라는게
납치...
그것도 지략인가 싶다.
삿 21:19-21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지략은 없었다.
그게
금식도 하고
기도도 했으며
애통하는 마음까지 품었던 이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게
지략이라고는 없이
허겁지겁 살아가는
오늘날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그러진 상황에서도 인도하신다.
결국 베냐민을 징계하셨지만
그 베냐민을 통해
초대 왕 사울과 요나단,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사도 바울을 배출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써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내 삶에도
지혜와 지략이 가득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