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새선생님 고맙습니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신 것 같습니다. 약하고 힘이 없어도 자식을 위해서는 한없이 강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하면서 항상 희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시전에 잘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못한 것이 역시 아쉽기만 하네요.
영면이란 말 그대로 였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이었다 할 정도이었으니 이제는 평온하게 쉴 수 있으시니 그 또한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
고맙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제 답글입니다.
큰일 치루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먼곳이라 가 뵙지를 못해
송구한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好喪이란 없다는 말을 저는 늘 하고 삽니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부모님 조문을 간 사람들이 '호상(好喪)입니다'를 연발할 때마다
단호하게 '호상은 없다'라는 말을 한마디씩 합니다.
아무리 장수하신 부모님의 상이라 한들, 이 세상에 부모님고 헤어지는 슬픔이 좋은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여의고 나면, 그제서야 휑하니 불어오는 가슴속 찬 바람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호상이라는 말을 다시금 하지 못하지요.
저는 어머님을 86년에 보내드렸습니다.
어머님 연세 마흔아홉의 정말 꽃다운 나이에 이별을 하셨습니다.
그때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그때부터 제 시는 아무리 밝은 글을 쓴다고 써도 어딘지 서글픈 단조풍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 머리속에 남아있는 어머님 모습은 곱디고운 마흔아홉의 젊은 모습이라는 것...
저보다 훨씬 젊으신 어머님 모습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
어머님보다 늙어버린 아들을
이 다음에 알아는 보실까...라는 걱정도 가끔 들기는 합니다.
회장님
그렇게 먼 길을 보내드리고 오시느라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모님들 보내드린 다음에 텅 빈 마음을 헤아릴 길 없으시겠지만
자식들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드리는 것이 슬픔을 잊는 빠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회장님 답글을 쓰다가
발송시간은 아침9시쯤으로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녕히 주무세요